소설리스트

13화 (13/126)

 §

 일이 끝나면 잔업을 하면서 사이 좋은 친구 영상을 찍었다.

 "안녕하세요! 사이 좋은 친구의 우다영!"

 "원유찬입니다~!"

 돌아가는 의자에 앉아 카메라를 붙잡고서 둘을 봤다.

 "오늘은 원유찬씨가 왔습니다~! PD님 오늘 주제는 뭐죠!"

 우다영이 하이텐션으로 물었고 나 역시 하이텐션으로 대답했다.

 "오늘의 주제느은~! 빨리 입브금 틀어! 두둥두둥!"

 "뭔데뭔데!"

 "풍성대 무모!"

 "그게 뭔데!"

 시나리오가 아니다보니 가벼운 주제를 정할 수 밖에 없었다. 

 사이 좋은 친구를 찍다보니 주말이 생각났다. 

 "풍성은 뭐냐면, 막 그냥 가슴털부터 배렛나루 막 복실복실 난거랑 아예 털이 없는거."

 "눈썹도?"

 "엉, 눈썹도 없어, 막 그냥 없어. 머리는 있는데 얇아서 아, 이건 무조건 빠진다 싶은 거."

 주제를 들은 원유찬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너무……, 극단적 아닙니까 형님."

 "어허, PD입니다. 여튼 극단적으로 가야 재밌지!"

 친구들끼리 하는거라 그런지는 몰라도 찍는건 재미 있었다. 

 대학교 동아리에서 하던 느낌도 들고 할만했다. 

 영상들이 하나둘 쌓이면 언젠가 떡상하지 않겠냐는 마인드로 촬영에 임했다.  

 그래도 너무 극단적인 질문이라 그런지 둘 다 고민을 하는게 보였다.

 "우선 유찬아 너부터, 어떤게 낫냐."

 "으음, 저는……."

 각자의 생각을 말하고 나는 리액션을 해준다. 

 이게 기본적인 매커니즘이었다.

 둘이 했을 땐 조금 잔잔한 편이었는데 셋이 되니 나름 시끄러워 오디오가 빌 일이 없었다.

 "그럼 다영씨는요."

 "으, 둘 다 싫긴 한데 그래도 아예 없는게 나을 거 같아……. 가슴털은 좀 선 넘잖아~."

 다른 건 다 참아도 가슴털은 싫어하는 듯 했다.

 촬영을 하는 내내 계속해서 웃으며 일했기에 시간이 금방금방 지나갔다.

 "오케이, 엔딩 멘트 고고."

 카메라를 보면서 손을 저어주자 익숙하게 우다영이 외쳤다.

 "사이 좋은 친구의 우다영!"

 "원유찬이었습니다~."

 촬영을 마치고 데이터를 내 컴퓨터에 옮기는 작업을 바로 시작했다.

 "형님, 담배 하나 태우시죠." 

 "오야오야."

 데이터가 넘어가는걸 잠깐 보다가 담배를 들고 밖으로 나갔다. 

 여전히 추적추적 내리는 비를 멍하니 바라보다가 불을 건네주는 원유찬 덕에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벌써 해가 다 저물었다야."

 "그러니까요."

 "후우."

 담배 연기를 뱉고 있는데 위에서 우다영이 가방과 우산을 들고 내려왔다.

 "나 먼저 퇴근할게. 오늘 우현이랑 같이 밥 먹기로 했엉."

 "아, 그랴. 알았다."

 우다영을 먼저 보내고선 다시 사무실로 올라왔다.

 비 때문에 습해진 탓인지 옷에 배인 담배 냄새가 더 진해진 느낌이었다.

 "형님, 저도 그럼 먼저 가보겠습니다."

 원유찬도 육중한 몸을 일으켜 말을 했다.

 "오야오야, 오늘 고생했다. 조심히 들어가라이~."

 "형님은 퇴근 안 하십니까?"

 "나? 나는 이거 편집점만 나눠놓고 퇴근할게."

 "예엡."

 넓은 사무실 공간에 나 혼자만이 남았다.

 쏴아아아.

 밖에서는 내리는 빗소리가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와 합쳐져 묘한 소리를 냈다.

 우르릉.

 중간중간에 천둥 소리가 들리긴 했지만 딱히 무섭거나 나쁘게 들리지는 않았다. 

 기다리는 동안에 가방에서 시나리오가 아닌 다른 공책을 꺼냈다.

 시나리오북에 적기 전에 미리 시놉시스를 짜기 위함이었다.

 "이번엔 어떤걸로 써야하나……."

 앞으로 계속 스토리를 즐기기 위해서는 그저 욕정에 사로잡힌 글을 쓰는건 힘들었다.

 "이상하게 쓰면 또 망작 뜰테고. 야발거. 존나 복잡하네."

 소설작가도 아니고 스토리가 막 떠오르진 않았다.

 시나리오북을 얻을거라고 미리 예상이라도 했었다면 모를까.

 물론 대기시간이 끝난 후에 바로 적진 않아도 되기에 시간적 여유는 많이 있었지만 그래도 놀리고 싶진 않았다. 

 "흐음."

 모나미 볼펜을 인중에 가로로 낀채로 꾸물거리며 생각에 잠겼다. 

 "사이 좋은 친구 컨셉으로 가도 되긴 하는데……."

 이미 소품들도 있었기에 조금만 더 보강하고 추가만 하면 됐다. 

 나는 이마를 긁적이다가 펜을 들고 공책에 조용히 끄적였다.

 대충이라도 낙서를 해놓는다면 언젠가 쓸 일이 있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

 우다영.

 "많이 피곤해?"

 맞은편에 앉은 김우현을 보며 물었다. 

 최근에 일이 많이 바쁘다보니 얼굴에서 피곤이 사라질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안쓰러운 눈으로 그를 쳐다봤다.

 "힝, 맨날 일 때문에 힘들지?"

 "그래도 재밌어서 버틸만 해."

 김우현이 웃으며 맞은편에 앉은 우다영의 손을 잡아주었다.

 "아직 초기니까, 몇 달만 참으면 금방 자리 잡을거야."

 워낙에 사람이 진중하고 유한 성격이다보니 그걸 알아준 사람들이 믿고 일거리를 주는 것 같았다. 

 덕분에 일이 많이 몰리긴 하지만 그 정도는 버틸 수 있다 생각한 우다영이었다.

 "그래도 시우랑 유찬이가 많이 도와주니까 다행인 것 같아."

 김우현은 친구와 후배에게 신뢰를 보내주고 있었다.

 우다영도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앙, 안 그래도 오늘 시우는 야근하고 간다구 하드라……."

 따로 시급을 챙겨주지 못함에도 스스로 야근을 하고 가는 남시우에게 미안함과 감사함이 교차하는 감정을 갖고 있었다.

 "자기야, 나중에 시우한테 제대로 성과금 챙겨줘야 돼~."

 우다영의 말에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같이 회사를 만들자고 했을 때 고민하는 낌새 없이 오케이 했던 친구였기에 감정이 남달랐다.

  

 식사를 마치고 나와 하늘을 올려다보니 아까보다는 약해졌지만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었다.

 이제 장마가 본격적으로 시작하려는지 비가 옅어진 적은 있어도 그칠 생각은 하지 않았다. 

 투둑

 투둑.

 떨어지는 빗소리를 들으며 버스 시간표를 확인하는데 우다영이 슬쩍 다가와 물었다.

 "오늘 여기 근처에서 자고 갈래?"

 우다영이 팔을 붙잡고 고개를 올려 눈을 마주쳤다. 김우현은 그런 여자친구의 모습에 세상 포근한 미소를 지으며 시간을 확인하던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그럴까?"

 들어갈때 편의점에서 간단하게 주전부리만 산채로 모텔로 들어갔다. 

 꿉꿉한 냄새가 나긴 하지만 충분히 참을 수 있을 정도의 냄새였다.

 간단하게 씻고서 화장대 앞에서 간단하게 바른 우다영이 침대로 갔다.

 침대에 누워 핸드폰을 잠깐 확인한 다음에 옆에 누운 김우현을 쳐다봤다.

 "자기야."

 "응?"

 말을 걸면서 은근슬쩍 그의 배에 손을 올리는 우다영. 

 그 모습을 본 김우현도 마주웃으며 두 볼을 잡고 가볍게 입맞춤을 했다. 

 "불 끄고…."

 평소처럼 불을 끄고서 바로 삽입을 하려는 김우현을 보며 뭔가가 생략된 기분을 느꼈다. 

 '시우가…….'

   

 갑작스럽게 떠오른 남시우의 얼굴에 급히 고개를 저어 생각을 털어버렸다. 

 "아, 맞다 콘돔 껴야지."

 김우현이 다시 일어나 콘돔을 가지고왔다. 

 "으음…."

 우다영은 누운채로 어두운 공간 속에서 김우현을 바라봤다. 

 "잠깐만 안 서네……. 피곤한가봐……."

 "아, 그, 그래? 그럼……."

 자신도 모르게 김우현의 물건을 향해 손을 뻗었다. 

 "어? 다영아, 안 해도 괜찮아. 너무 무리하지마아~."

 다정하게 말을 하는 김우현에 흠칫 놀랐다. 

 서지 않는다는 말에 몸이 먼저 반응을 한 것에 대해 말이다.

 "넣을게……?"

 "으응."

 조심스럽게 그녀의 몸을 잡으며 삽입을 했다.

 찌걱.

  

 오랜만에 좋아하는 남자친구와 한다는 생각에 애액이 나오긴 했지만 계속해서 부족함을 느꼈다.

 정확히 언젠지는 기억이 흐릿했지만 분명한건 남시우와 했을 때에 이런 느낌은 아니었다.

 "움…."

 안에 넣은채로 입을 맞추고 허리를 움직이는 김우현. 

 움직임은 단조로웠다.

 서로 껴안은채로 허리만을 움직여 피스톤 운동을 하고 있었다.

 "으읏…. 응…."

 우다영의 입에서도 신음소리가 조금씩 나오긴 했지만 격렬하진 않았다. 

 꽉 차는 느낌이 들지 않아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 순간 자신의 못된 생각에 소름이 돋았다.

 겨우 몇 번 했을 남시우와의 관계였는데 그게 머릿속에 각인이 된 모양이었다.

 '어, 언제 했었지…….'

 허리를 흔드는 김우현의 품에 안겨서 남시우와의 일을 생각했다.

 "읏…. 다영아…."

 "우현아…."

 담백하기 그지 없는 움직임.

 움찔.

 "윽…."

 그의 입에서 뜨거운 숨이 짧게 터져나왔고 곧 움직임이 멈췄다.

 "……."

 "……가, 갔어?"

 "응, 너무 빨랐지? 피곤해서 그런가봐……."

 "아, 아냐. 괜찮아."

 원래라면 이 정도로도 충분히 만족했었다.

 그저 사랑을 확인하기만 하면 됐으니까.

 그래도 자신을 향해 웃어주는 김우현의 얼굴을 보며 마음이 채워지는 느낌을 받았다.

 쏴아아.

 물로 대충 씻고 나오니 김우현은 어느덧 침대에서 깊게 곯아 떨어져 있었다.

 "……."

 옆에 누운 우다영도 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눈을 감았지만 아래가 자꾸 근질거렸다. 

 김우현과도 콘돔을 끼지 않고 해보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7년 동안 같이 해온 시간이 있었기에 안에 싸도 그가 책임져줄 사람이란걸 알았기 때문이다.

 사락.

 깊게 잠든 김우현의 머리카락을 넘기며 얼굴을 보다보니 어느덧 잠에 빠졌다.

 §

 우르릉! 

 콰앙! 

 바로 옆에 우퍼라도 놓은 것 처럼 울리는 천둥소리에 깜짝 놀란 나는 창문을 봤다.

 "뭐여, 이 정도면 바로 옆에 떨어진거 아니냐."

 "그러게요."

 원유찬도 놀란 눈으로 핫바를 입에 문채로 대답했다.

 "아침도 먹고 왔다며, 그게 다 들어가냐."

 "일할 때 원래 계속 먹어줘야 합니다, 형님도 줄까요." 

 "인스턴트는 별로 안 좋아해서."

 손을 저어 거부를 하고는 다시 자세를 고쳐잡고 일을 시작했다. 

 편집할게 워낙에 많다보니 계속 붙잡고 있어도 시간이 부족했다.

  

 "다영아, 보냈으니까 음향만 보정해줘."

 "알았엉~."

 저 멀리 앉은 우다영이 대답했다.

 "형님, 컷트 이거 잡아주신거 여기 이 부분으로 수정 해도 되겠습니까."

 "어디? 보자."

  

 바로 옆에 앉은 원유찬이었기에 의자만 끌고가 확인을 했다.

 "어, 마음대로 해. 유찬아, 아니면 이 사람꺼 네가 아예 다 해볼래?"

 "에…. 그래도 됩니까?"

 내가 전체적인 편집을 마치면 다음 과정을 원유찬이 했었었다. 

 "응, 너도 할 줄 알잖어, 나보다 잘하는 것도 있구만. 한 번 해볼려?"

 "음…, 네, 주시면 해볼게요."

 "오야오야. 바로 보내줄게."

 아직 체계가 잡혀있지 않은 회사였지만 점차 자리가 잡혀가고 있었다.

 아무래도 전부 초짜가 아니라 전공에 경력까지 짧지만 있다보니 나름 수월하게 해내고 있었다.

 "예, 늘솜 스튜디오 김우현입니다."

 김우현이 전화를 받는 소리가 들렸다.

 전화야 자주 받다보니 그러려니 할 때 김우현이 벌떡 일어나 외쳤다.

 "정말요? 예! 좋습니다! 네! 괜찮아요! 예! 예! 그러면…, 네네! 가능합니다!"

 갑작스럽게 호들갑을 떠는 모습에 나와 원유찬이 스쿼트를 하듯 엉거주춤한 자세로 일어나 그를 쳐다봤다.

 저 멀리 앉은 우다영도 일어나서 김우현을 보고 있었다.

 우리의 시선도 못 느낄만큼 집중한 김우현이 신나서 소리를 외쳐대고 있었다.

 "감사합니다! 네네! 무조건 할 수 있습니다! 네, 그럼 일정은……. 네! 네! 알겠습니다! 네! 저희가 한 번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네, 그럼 계약서…. 네! 감사합니다!"

 감사하다는 말을 봇마냥 연속해서 뱉는 김우현을 보며 옆에 선 원유찬에게 한 마디 했다.

 "나는 죽었다깨나도 사장은 못하긋다."

 "……형님……. 잘 할 거 같은데요."

 "놀리냐."

 "예."

 "이 쉑."

 말장난을 하고 있는데 수화기를 내려놓은 김우현이 우리를 스윽 둘러보고는 두 팔을 번쩍 들며 외쳤다.

 "다영아! 시우야! 따왔다!"

 "……뭘 따."

 김우현이 감격에 겨운 눈으로 말했다.

 "시에서 홍보영상 찍는거 있잖아! 그거! 드디어 따왔어! 됐다 이제!"

 "……우리 일거리 느는거 아니냐."

 "그렇지! 시에서 하는거라 돈은 많이 줄거야! 모여봐봐."

 흥분의 여운이 아직 가시지 않는 상태에서 모두 모여들었다. 

 "예산은 얼만데?"

 김우현이 종이에 적어주었다. 공을 세아리던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김우현을 쳐다봤다.

 "리얼임 이거?" 

 "엉, 우리 대학교 때 만들었던 포트폴리오 있잖어, 졸업과제로."

 "……응. 설마. 에이."

 "그거랑 회사다닐때 만들었던거 다 긁어모아서 했는데 됐어!"

 유적지를 홍보하는 영상을 찍어오래서 거의 MT가듯이 가서 찍고 온 건데 그게 여기서 도움을 줄지는 몰랐다.

 나는 멋쩍어서 볼을 긁적이는데 김우현이 말했다.

 "그래서 말인데……. 홍보해주는 인물이 하나 있어야하는데……."

 그가 우리를 쳐다보는데 당연히 멀뚱히 쳐다보기만 했다.

 "대학과제도 아니고 우리가 찍을 수는 없잖아."

 "역시…. 그렇지……?"

 시무룩하는 김우현.

 "배우를 당장 섭외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거 뭐냐. 기간은 얼마나 되는데."

 "두 달."

 "……예스예스, 괜찮네. 그럼 뭐 배우 해줄 사람이 있어야하는데……. 우리 연기 하나도 못하자네."

 당연하게도 선택권이 없었다. 

 잠자코 듣고 있던 우다영이 조용히 손을 들고 말했다.

 "배우하는데 조건 있어?"

 "그런건 아닌데, 그래도 깔끔하고 차분한 느낌으로 나왔으면 한다고 하더라고."

 "……어……, 그러면. 개런티는 얼마 정도 예상하는데?"

 "두 달 정도 찍어야하니까 그래도 제법 나올거야."

 고민을 하는 우다영을 우리 셋은 하염없이 쳐다봤다.

 잠시 시간이 지난 후에 우다영이 우리를 보면서 말했다.

 "그러면 언니한테 말해볼까? 울 언니 배우였었잖아. 결혼해서 은퇴하긴 했지만."

 우다영의 말에 김우현을 제외한 나와 원유찬은 의아해했다.

 "진짜로?"

 "응, 몰랐어?"

 들은적이 없었으니 당연히 몰랐었다. 

 "그래도 다행이네. 우현아, 네 생각은 어뗘."

 대표이자 사장인 김우현을 쳐다보며 물었다.

 뭐가 됐든 선택권은 내가 아닌 그에게 있었으니 말이다.

 내 물음을 들은 김우현은 잠시 고민하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여 긍정을 표했다.

 "좋은 것 같아. 그럼 다영아, 미안한데 말해줄 수 있어?"

 "당연하지, 지금 물어보고 올게."

 "고마워~."

 우다영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에 우리는 앞으로 짤 스케쥴에 대해 회의를 시작했다.

 영상에 대해 스케치도 그려야했고 답사도 가야했으며 예산안도 만들어야했다.

  

 김우현이 공책에 빠르게 그림을 그려나갔다.

 "시놉시스는 최대한 깔끔하게 가는걸로 하자. 구성은 이렇게 하고."

 "……음, 그럼 답사는 내가 갈게." 

 답사는 내가 가는걸로 정했다. 

  

 "그럼 저는……?"

 "편집할 때 시우 도와서 하면 될 것 같아."

 "넵."

 아직 1차 회의였기에 간단하게 틀만 잡았다.

 "답사는 장마 끝나고 바로 가는걸로 하자."

 김우현의 말에 모두 동의했다.

 지금 가봤자 찍을 것도 없었고 우천에 괜히 미흡한 준비로 가져갔다가는 고가의 장비들을 망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얘들아~, 언니가 지금 해외에 있어서……. 내일 모레 온다는데 그때 괜찮아?"

 "응응, 당연히 괜찮지. 그럼 그 전에 대충 짜놔야겠다."

 회의가 마무리 되고서 다시 평범한 일로 돌아왔다.

 김우현은 자리에 앉아 바쁘게 스케쥴을 짜고 있는 것 같긴 하다만 나와 원유찬은 그것보다는 쌓인 일을 마무리 하는게 중요했다.

 지금 우리의 수입원이 전부 외주 받아 하는 것이니 말이다.

 퇴근하기 전. 

 김우현이 일어나며 아직 일을 하고 있는 내게 다가왔다.

 "시우야, 잠깐만."

 "어, 그래. 뭔데."

 그를 따라 잠시 밖으로 나왔다.

 쏴아아.

 시원하게 쏟아지는 비를 보며 건물 1층 입구에서 담배를 물었다.

 "대충 스케쥴은 짰는데……. 좀 더 고생해 줄 수 있나해서……."

 "지금도 거의 야근 중인디? 뭔데, 말해봐."

 "그게…. 인원이 없다보니까 촬영을 나갈 때 최소 인원으로 가야할 것 같아서……. 장비랑 이런것도……."

 아직 회사에 장비들이 턱없이 부족했다.

 괜히 편집 위주로 가는게 아니었기에 이해할 수는 있었다.

 "스읍, 후우. 그럼 장비 대여랑 다 내가 해야되는겨?"

 "아니아니, 그건 내가 구할게. 촬영 나갈 때 아무래도 혼자 가야할 것 같아서……."

 "……나 혼자? 장비가 몇 갠데."

 내가 말한 의미를 알기에 김우현이 난감해 했다.

 "당장 모니터도 2개 챙겨야 되고 조명이랑 배터리랑 백업용 노트북이랑. 배선만 해도 한 박스인데 에바여. 너도 알잖어."

 "그렇긴한데……."

 인원이 전부 빠져버리면 외주 받아온 일에 차질이 생기니 어느정도 이해가 가긴 했다.

 "에효, 어떻게든 해볼테니까, 한 명만 더 줘. 유찬이 주든가."

  

 최소 둘은 필요했다. 아니, 둘이라는 것도 말도 안 되는 일이긴 했지만 혼자서는 불가능했다.

 "……유찬이 말고 다영이 어때?"

 "다영이?"

 고되게 움직일텐데 우다영을 데리고 가면 함부로 써먹지 못할 것 같았다.

 그래도 받아온 큰 일인데 이건 제대로 처리해야하지 않나 싶어서 다시 말했다.

 "계속 배선 옮기고 설치하고 할텐데 다영이 힘들겨. 힘 쓰는 애가 낫지 차라리."

 표정을 보아하니 내가 촬영을 하는 동안에 밀린 일을 빠르게 처리할 인원이 필요한 모양이었다. 

 우다영도 잘하긴 하지만 그렇게 밀린 일을 야근까지 시켜가며 하기에는 불편한 듯 보였다.

 나는 이마를 긁적이다가 담배 연기를 뱉으며 말했다.

 "알았어, 다영이라도 주라. 없는 것보단 낫긋지. 대신에 빡세게 굴린다."

 "그건 괜찮아. 미안하다 시우야. 끝나면 더 챙겨줄게."

 "스읍, 보통 그런거 사기꾼이 그렇게 말하든디."

 웃으며 장난을 치자 김우현이 내 어깨를 토닥이며 마주 웃었다.

 "미안하다 진짜로. 이런거 맡길 친구가 너 밖에 없어……."

 "아유~, 됐슈, 나중에 돈이나 두둑하게 챙겨주쇼."

 개미의 발톱 때만큼이긴 하지만 미안한 마음이 있긴 있었다. 

  

 "에고…. 어쩔 수 없지 뭐."

 "일 빨리 끝내고 합류할게."

 "그려. 알았어, 어떻게든 해볼게. 먼저 올라가 담배 하나만 더 피고 올라가게."

 올라간 김우현을 뒤로 담배 하나를 더 꼬나물었다.

 시나리오 북이 차라리 최면 어플이었다면 돈이라도 왕창 벌어서 주지육림을 펼치겠는데 그게 힘드니 아쉬웠다.

 "후우~."

 짙은 담배 연기를 바라보며 다음 시나리오를 대폭 수정 해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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