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화 (12/126)

 §

 잠에서 깬건 해가 중천에 뜬 후였다.

 아니, 중천에서도 더 지난 후였다.

 "아…."

 "으으응…."

 둘 다 몸을 일으키는데 온 몸에 알이 배겨서 도저히 움직일 수가 없었다.

 허기짐 역시 크게 다가왔다.

 "윽…."

 "아파아…, 시우야 진짜아…."

 우다영은 자신의 허벅지를 주무르며 일어나다가 허리까지 쑤신걸 느끼고는 다시 침대에 누웠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오늘도 해가 질 때까지 섹스를 했어야했는데 몸이 따르질 않았다.

 아무리 시나리오 북에 디테일하게 적었더라도 나나 거기에 적힌 배우가 체력이 달리면 그대로 진행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래도……."

 서로 누운채로 천장을 보며 나는 한 마디 평을 내렸다.

 "능력이 개꿀이다."

 "……?"

 결국 우리 둘은 노을이 지고나서야 일어나 정리를 할 수 있었다. 

 "으…."

 "얼른 가 인마."

 더 하고 싶어도 불알이 땡겨와서 자꾸 매만져 줘야했다.

 심지어 소변을 볼 때에도 찌릿찌릿한 아픔을 느꼈다.

 나름 정력에 자신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우다영을 만나며 생각이 바뀌었다.

 "갈그야……."

 신발을 신고서 신발장에 기댄채로 숨을 고른 그녀가 겨우 집을 나섰다.

 나는 소파에 죽은듯 누우며 바보 같은 미소를 지었다.

 "아~, 다음이 벌써 기대되는데……. 쿠울~."

 [#3scenario 친구랑 젠가한 SSUL]

 [등급 : 평작]

 [영향력 : 45]

 [명성 : -2]

 [평]

 [: 사이 좋은 친구의 두 번째 작품]

 [소품 준비는 좋았으나……. 전체적으로는 글쎄…….]

 [짧은 런닝타임이 매우 아쉬운 작품]

 [전작과 이어지는 부분이 매끄러웠음]

 [point : 1]

  

 [다음 작품에서 몰입도 0%]

 [다음 작품에서 위화감 0%]

 월요일. 

 아침에 시나리오 북을 열고 읽은 평은 지난번과 비슷했다. 

 "평작 다음은 대체 뭐야?"

 망작에 평작도 있으니 분명히 그 다음도 있을텐데 알려주진 않았다. 

 친절하게 모든걸 볼 수 있으면 좋을텐데 말이다.

 "조건이라도 알면 참 좋을텐디……."

 대충 예상이 가긴 했다. 지금까지 모든 시나리오가 며칠을 넘기지 않았다. 

 "하루 시나리오 쓸려고 해도 며칠이 걸리는데……. 아놔……."

 일주일치 시나리오를 짜려면 대충 골머리가 빠개지겠지. 

 진짜 촬영처럼 중간에 끊고 다시 한 번 대본을 숙지하는 경우라도 있다면 달라졌겠지만 아쉽게도 그런건 없었다. 

 나는 이마를 긁적이며 일단 출근 준비를 했다.

 "어우…, 뻐근하네…."

 일요일 하루를 쉬었다만 불알이 땡겨오는 느낌은 여전했다. 

 연달아 싸지른 것도 아니었고 한 번 한 번을 긴 시간을 투자했었기에 더욱 그런 것 같았다.

 "발기를 하루 종일 해댔으니 안 아픈게 이상하긴 하지."

 스스로 납득을 하며 버스를 타기 위해 집을 나섰다. 

 §

 하늘을 올려다보니 당장이라도 비가 올 것 같이 먹구름이 드리웠다.

 치익.

 입에 담배를 꼬나물고서 회사 1층 옆 골목길에서 불을 붙였다.

 "후우."

 짙은 담배냄새와 함께 뿜어진 연기는 허공을 수놓았다가 금방 사라졌다. 

 3분도 채 되지 않는 시간동안 담배를 다 핀 나는 계단을 올랐다.

 "야아~!"

 "……?"

 뒤를 돌아보니 우다영이 작은 우산을 손에 들고서 나를 부르고 있었다.

 "뭐여."

 심드렁하게 묻자 그녀가 주변을 두리번 거리더니 내 등을 때리며 말했다.

 "기억하지?"

 "……응? 뭘?"

 그녀와 따로 기억할만한게 없을텐데라고 말했다.

 "너랑 나랑 한거 비밀이다?"

 "……?!"

 시나리오 중에 한 약속이기에 당연하게 기억을 못할 줄 알았다.

 "뭐……?"

 "아, 왜 기억 못해."

 "아, 아니 내가 너랑 언제 했는데."

 당황하다보니 부정이 먼저 나왔다. 여튼 내 말을 들은 우다영이 움찔했다.

 "어…, 그러고보니까 우리가 언제 했지……."

 "그, 그래. 잘못 기억하고 있는거 같은데?"

 너무 당황해서 일단 에둘러 말했다. 

 그제야 우다영도 고개를 갸웃하면서 나를 지나 올라갔다.

 "이상하다아, 분명히……. 아, 언젠지가 기억이 안나네……."

 혼잣말을 하며 올라가는 그녀를 보며 몸이 굳었다.

 "왜지……?"

 어째서 기억이 남아있는건지 알 수가 없었다. 

 사무실로 들어가 내 자리에 앉자마자 곧바로 시나리오북을 꺼냈다.

 [등급 : 평작]

 [영향력 : 45]

 [명성 : -2]

 [대기시간 : 31h 56m]

 [몰입도 : 87%]

 [위화감 : 1%]

 분명히 이 중에서 영향을 준게 있을텐데 그걸 알아내기가 쉽지 않았다.

 "……일단 등급은 아니겠고……, 명성도 마이너스인데 그럴리가 없고……."

 대기시간은 단순히 쿨타임을 알려주는 일이니 제외했다. 

 그렇다면 남은건 영향력과 몰입도, 위화감이었다.

 "스읍, 명성인가……."

 아는게 없으니 뺐던 명성도 혹시 몰랐다. 

 몰입도가 아직 많이 남아있어서 기억이 남아있는건지 아니면 영향력 때문에 남아있는건지 불분명했다.

 분명한건 지난 번과는 다르게 기억이 남아있다는 점이었다.

 "……전부 다 기억하는건 아닌거 같은데……."

 전부 기억하고 있었다면 그렇게 고개를 갸웃하며 혼란스러워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시나리오를 잘 쓰면 기억이 남는건가……?"

 시나리오에서 벌어졌던 일이 기억에 남는다. 

 곧 입꼬리가 씰룩였다.

 "존나 재밌겠는데……?"

 연장선이 얼마나 이어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기억에 남아있다면 그걸 가지고 이용할 수도 있지 않을까 싶었다. 

 그러나 금방 책상에 엎드리며 비관적으로 생각했다.

 "현실에서는 신고할 수도 있고……. 에효, 미세한걸 보니까 아주 미세하게 남아있는걸수도 있고……."

 아직은 정확하게 알 수가 없으니 일단은 지금처럼 안전하고 확실한 스토리라인을 짜야했다.

 띠리릭.

 문이 열리며 원유찬이 들어왔다.

 앞 가게에서 산건지 손에는 굵직한 샌드위치가 들려 있었다.

 몇 개가 더 있길래 나눠주는건줄 알았다만 그게 아니라 전부 아침이었다.

 "하이하이."

 내가 인사를 건네자 원유찬이 웃으며 반갑게 인사를 해주었다.

 "그거 다 아침이냐."

 "넵, 형님."

 얼굴에 표정이 보였는지 주기 싫어하는 표정으로 샌드위치를 가리켰다.

 "하나 드릴까요……."

 "응."

 물론 거절따윈 하지 않았다.

 그가 건네준 샌드위치를 입에 물고서 오늘 할 일들을 정리했다.

 드륵.

 의자를 밀어 다가온 원유찬이 은근슬쩍 물었다.

 "형님, 근데 저희 회식 같은거 안 합니까?"

 "나는 이 회사에서 회식 한 번도 안 했는데."

 창립된지 한 달도 안 됐기 때문에 당연히 미경험이었다.

 애초에 친구들끼리 연 것이니 모여서 밥 먹는거 자체가 회식이긴 했다.

 "네가 저기 들어오는 사장한테 물어봐라야."

 마침 들어오는 김우현은 비에 젖은 우산을 탈탈 털어내고 입구에 세웠다.

 "어후, 밖에 비가 많이 오네. 다들 우산 가져왔지?"

 "예이."

 자신의 자리로 간 김우현이 가방을 내려놓으며 우리를 불렀다.

 "그럼 5분 뒤에 바로 회의 시작할게. 나 화장실만 갔다가."

 김우현이 화장실을 갔다오자마자 바로 회의를 시작했다.

 딱히 중대한 회의라고 할 건 없지만 일주일 동안 할 스케쥴을 대략적으로 브리핑하는 시간이었다.

 김우현은 두꺼운 공책을 펼치고는 말을 했다.

 "편집은 계속 진행하면 될 것 같아. 이 정도만 해도 수입은 어느정도 보장은 되니까."

 "예스예스."

 편집팀장인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해주었다. 

 뒤이어 옆에 앉은 원유찬을 본 김우현이 말했다.

 "유찬이도 시우랑 같이 하면 돼. 아마 자리 잡으려면 올해는 다 써야 할 거 같아서."

 그때 듣고 있던 우다영이 손을 들었다.

 "우리 자체적인 컨텐츠는 안 만들어?"

 "응? 아직은 여력도 없지 않아?"

 겨우 네 명뿐인 회사였다. 뭔가 자체적으로 만들 수 있는 인력풀이 없었다. 

  

 "그러면 나랑 시우랑 하는거 계속 해도 돼?"

 "어떤거? 아~, 사이 좋은 친구?"

 시나리오가 아니라 늘솜 스튜디오에서 하는 아주 건전한 컨텐츠였다.

 아직 반응은 미비했지만 그래도 조회수가 꾸준하게 올라가고 있었다.

 상승곡선이 백 단위가 아니라 몇 단위라 문제였지만 말이다.

 "인기가 없어서 그게 문제긴 해……."

 "존버해야지 뭐."

 답은 따로 없었다. 그래도 지금은 댓글이 한두 개씩 늘어나고 있었으니 그걸로 버티고 있었다.

 "처음부터 잘 될수는 없죵."

 듣고 있던 원유찬의 말에 나도 그렇고 다들 고개를 주억거렸다. 

 "근데 선배님, 저희 회식은 안 하나요?"

 김우현에게 바로 묻는 원유찬.

 "음…. 그럼 말 나온김에 오늘 할까?"

 "아~, 좋습니당~."

 "그러고보니까 우리도 회사 만들고나서 한 번도 못 먹었으니까. 이번 기회에 한 번 술 한 잔 하자."

 회의가 끝나고 잠시 담배를 피우러가기 전에 원유찬에게 물었다.

 "야, 유찬아. 근데 난 형님이고 왜 쟤는 선배여."

 "네? 형님은 학교때부터 선배라고 부르지말라고 했었잖아여. 형, 오빠라고 부르라면서요."

 원유찬의 말에 대답을 해준건 우다영이었다.

 "어휴, 저 모지리. 여후배들하고 한 번 엮어보려고 아주 그냥 그때 오빠라고 부르라고 그러고 댕겼잖아."

 "……흠흠. 유찬아, 한 대 피러가자."

 멋쩍어서 볼만 긁적이다가 밖으로 나갔다. 

 §

 쏴아아아.

 쏟아지는 빗줄기는 그칠 생각이 없는지 우산을 써도 바지 밑단을 푹 적시고 있었다. 

 "대충 앞에 있는데서 사 먹어야긋다."

 네 명이지만 차를 갖고 있는 이가 단 한 명도 없었다. 

 결국 우산을 쓰고 근처에 있는 인생술집 안으로 들어갔다.

 몇몇 테이블이 있었지만 대체로 텅 비어있었다.

 달그락.

 안주와 술이 깔리고 가볍게 한 잔을 쭉 들이켰다.

 "건배사 같은거 안 하나요?"

 원유찬이 물었고 전부 고개를 저었다.

 "어차피 다 친구들인데 뭘."

 같은 대학교인데 굳이 건배사가 필요한가 싶었다. 

 "근데 저도 사이좋은친구 찍을 때 껴주시면 안 돼요?"

 "읭? 그럴래? 하긴 pd 하나 있으면 편하긴 하지."

 이런 사소한 얘기들을 나누며 친구들끼리 술을 마시듯 마셨다. 

 "근데 유찬아~."

 우다영이 원유찬을 불렀다.

 "……넴?"

 "근데 진짜 오해하지말고 들어주라."

 "네네."

 "살 빼야하지 않아?"

 우다영의 말에 나도 옆에 앉은 원유찬을 쳐다봤다.

 워낙에 커다란 옷을 입고 있었지만 그래도 살이 푸둥푸둥하게 찐걸 숨길 수는 없었다.

 건강이 살짝 걱정되긴 했지만 그거야 개인의 자유니까 굳이 말할 필요가 있었나 싶었다.

 "흠흠, 하지만 세상에 너무 맛있는게 많습니다, 선배님."

 "그렇긴 해에."

 그의 말에 곧바로 수긍하는 우다영이었다.

 "자, 한 잔 더 해."

 아무래도 대학교때 인원이 모이니 학교 얘기가 빠질 수가 없었다. 

 "그래서 학점 4점 넘음?"

 "네, 형님. 저 한 번도 4점 이하로 떨어진 적 없었어욥."

 내가 워낙 관심이 없다보니 모를 수도 있었다. 

 김우현은 술이 약한지라 벌써부터 달아오른 얼굴로 말했다.

 "유찬이가 과 1등도 몇 번 하지 않았어?"

 "음, 그랬긴 했죠."

 "그래도 연락 받아서 울 회사에 와줘서 고맙다, 유찬아."

 그 외에도 잡다한 얘기들이 오고갔다. 그 와중에 우다영은 김우현의 어깨에 몸을 기대며 손을 깍지낀채 놓을 생각을 안 했다.

 "이거 솔로는 슬퍼서 못 산다 진짜로."

 내가 투정을 부리자 그녀가 웃으면서 놀렸다.

 "그러게 너도 커플하지 그랬어."

 "……우현아, 쟤 한 대만 때려도 되냐."

 김우현도 웃으며 대답했다.

 "에이~, 그냥 장난이잖아."

 "어머, 시발. 꼴뵈기 싫어~."

 말투를 따라하며 술을 마시다보니 금세 술병이 쌓이기 시작했다.

 쏴아아아.

 다 먹고 나와도 비는 여전히 거세게 내리고 있었다. 

 "유찬아 먼저 타고 가라."

 "네에, 맛있게 먹었습니다~!"

 담배를 물고서 유찬이를 먼저 보내고 계산을 하고 나온 김우현과 우다영도 택시에 태웠다.

 "너는?"

 "나는 담배 다 피고 갈게. 어여 가."

 가라는 손짓을 하며 둘을 보냈다. 

 "후우."

 담배까지 다 핀 후에 마지막으로 택시에 올라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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