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나리오를 작성하는데에만 하루로는 부족했다.
제대로 된 시나리오를 작성하기 위해 오랜만에 전공책을 꺼내들어야 했다.
"전작을 그대로 옮겨올 수 있나?"
지금까지 경험을 보면 시나리오가 끝나면 기억을 모두 잃는 것 처럼 보였는데 과연 이어서 쓰는게 가능할까 싶기도 했다.
이어쓰기가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이번 기회에 실험 삼아서 써보기로 했다.
§
3일이 지나고 시나리오가 점차 완성이 되갈 때 회사에 새로운 인원이 보충되었다.
"안녕하세요! 선배님들! 원유찬입니다!"
마시멜로 처럼 동글동글한 원유찬이 작은 눈을 곡선을 그리며 인사를 했다.
같은 과였기에 학교에서 자주 마주치곤 했었다.
"오~, 유찬이 올만이다야~."
내가 아는 척을 하며 손을 흔들어주었다.
"원래 다른 스튜디오에서 일 하다가 내 연락받고 넘어온 고마운 친구야."
"어머~, 유찬아~. 반가워~."
원유찬이 서글서글하게 웃으며 한 번더 꾸벅 인사했다.
키가 그리 크지는 않지만 살이 많이 쪄서인지 숨이 약간은 거칠었다.
"유찬이가 한 작품들 봤는데 괜찮게 하더라고. 그래서 조수 말고 편집 2팀장으로 넣으려고."
김우현의 말에 나는 아랫입술을 내밀며 말했다.
"모든 직원의 간부화 나쁘지 않구만."
다들 합심해서 책상과 의자를 가져와 깔아주었다.
컴퓨터도 새롭게 구매한 덕분에 번쩍이고 있었다.
"시우야, 네가 해줄거 말해주면 돼."
"아, 오키오키."
간단하게 아침 회의를 마친 후에 나는 원유찬에게 다가갔다.
"유찬아, 일단 중요한 일이 하나 있다야."
"앗, 뭡니까."
비록 살이 많이 찌긴 했지만 성격은 예나 지금이나 밝은 아이였다.
나는 파티션에 팔을 걸친채로 창문 밖을 가리켰다.
"날 좋고 바람도 선선하이 담배 하나 필 타이밍 아니겠는가."
"그렇습니다, 선배님."
"좋구만, 역시 배운 아이는 달러. 가자."
원유찬과 함께 담배를 피러 나가는데 우다영이 손을 흔들며 화를 냈다.
"야~! 오자마자 담배부터 가르치냐!"
"좋은 장소만 알려주는겨."
골목길에 서서 담배를 꼬나물고서 물었다.
"편집은 어느정도 하지?"
"예, 맞겨만 주시면 잘 하겠습니다!"
"구래구래. 그럼 메일이랑 이런거 적어서 나한테 보내주라. 할 것들 바로 보내줄게."
원유찬이 육중한 몸으로 라이터를 꺼내 내 담배에 불을 붙여주고는 자신의 담배에도 불을 붙였다.
"이렇게 둘이 있으니까 대학교 생각난다 안 그러냐."
"핫핫, 그렇습니다. 선배님."
"선배는 무슨."
담배를 태우며 가볍게 담소를 나눴다.
전에 다니던 회사에서 제법 봉급을 많이 줬는데 온 이유를 물으니 사람을 너무 갈아서 쓴다는 말을 해주었다.
"스읍, 여기도 비슷하지 않을까."
"그래도 전에 다니던 회사보다는 나을 것 같아서 왔습니다. 아는 선배님들이 있기도 하고요."
대학교 다닐 때 같이 수업을 듣거나 종종 담배를 같이 피던게 전부였다.
아무래도 여초과다 보니 남자들의 수도 적은데 담배 피는 이들의 숫자는 더욱 적었었다.
"여튼 잘해보자 유찬아."
"앗, 네!"
내가 손을 내밀자 손바닥을 바지에 닦고는 내 악수를 받아주는 원유찬이었다.
§
금요일.
원유찬이 오고나서 확실히 일에 여유가 생겼다.
"와, 씨. 너 뭐냐. 손가락 빠른거 보소."
손가락에도 살이 찌긴 했지만 나보다 더 빠르게 편집을 하는 원유찬을 보면서 감탄했다.
"전에 다니던 곳에서 하도 갈리다보니……. 핫핫!"
말은 그렇게 했지만 얼마나 굴렸을지 눈에 보였다.
첫 날에 잔업을 하지 않으니 이곳이 천국이라는 그의 말에 조용히 어깨를 두드려 주기도 했었다.
"선배님, 오늘 퇴근하시면 어떻게……."
그가 소주 한 잔을 털어넘는 제스처를 취했다.
"아, 오늘은 안 될 것 같은데. 할 일이 좀 많아서."
"그렇습니까……. 아쉽습니다."
"나중에 한 잔 하자. 미안하다야."
"아닙니다. 어쩔 수 없죠."
원유찬의 어깨를 한 번더 두드려주고는 퇴근을 했다.
술 한 잔 보다는 해야할게 있었다.
"주말 동안 아주 질펀하게 놀려면 술이 중요한게 아니지."
집에 돌아오자마자 컴퓨터를 열어 며칠 동안 붙잡고 있던 시나리오를 열었다.
스무 장이 넘는 분량의 시나리오였다.
"와, 씨. 이걸 언제 옮겨 적냐……."
그럼에도 하긴 해야했다.
이곳에 아는 사람 하나 없으니 주말엔 붕 떠 있어야했다.
"주말을 책임져 줘야지 다영아."
입가에는 음흉한 미소가 스물스물 피어났다.
한 글자씩 또박또박 옮기는 내 모습은 내가 보더라도 참 변태 같았다.
"아, 시발, 벌써 꼴리는데 어떡하지."
손으로 발기된 좆을 주물럭거리며 위치를 옮겨 편한 자세를 취했다.
사각사각.
몇 시간이나 적었지만 아직도 한참이나 남은 글들.
정수기에서 물을 떠온 후에 시나리오 북이 얼마나 남았는지 확인했다.
"얇아보이는데 줄어드는 느낌이 없네. 아닌가."
고개를 갸웃하면서 다시 옮겨적기 시작했다.
밤이 깊어 이젠 도시의 짐승들이 전부 잠들었을 시간에 겨우 옮길 수 있었다.
"스토리가 아주 끈적하구만. 스읍, 벌써부터 기대되는데 어떡하냐 시발거."
나는 찌뿌둥한 몸을 풀면서 마지막 마침표를 찍으려 하다가 포인트가 생각났다.
[몰입도 : 3%]
[위화감 : 1%]
전작에 올려뒀었던 몰입도와 위화감이 많이 내려와 있었다.
다만 글자에 하늘색 색연필로 칠한듯 은은하게 빛나고 있었다.
볼펜을 들어 글자를 찍으니 옆에 글자가 쓰여졌다.
[포인트를 사용하시겠습니까]
[Y/N]
"오?"
일반적인 공책처럼 보이는데 실시간으로 상호작용을 하는걸 보니 신기할 따름이었다.
나는 씨익 웃으면서 위화감에 YES를 눌렀다.
[한 작품에 한하여 현재 위화감 1%로 고정됩니다.]
우다영.
토요일.
주말이라 오랜만에 늦잠을 자려 했는데 남시우에게 연락이 왔다.
[야, 대박임. 빨리 우리 집에 오셈]
아직 잠이 덜 깬 상태로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야! 울 집 와! 조회수 개대박이야.]
"우응, 뭐가……."
남시우의 말이 무얼 뜻하는지 생각하는데 몇 초의 시간이 필요했다.
그러다가 아! 하고 떠올라서 물었다.
"지난번에 프리미엄에 올렸던거?"
[그래에~! 그거 대박이야! 벌써 조회수가 100만 넘음. 조회수 1당 1원이잖어! 개대박이여.]
그의 설명에 눈을 번쩍 떴다.
남아있던 잠도 한순간에 다 사라지는걸 느꼈다.
"저, 정말? 알았어, 바로 갈게."
이렇게만 된다면 창피한 영상이 남기는 하겠지만 항상 배려만 해주던 김우현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거란 생각을 했다.
이불을 걷고 일어나 붙박이 장에서 옷을 주섬주섬 꺼내 입었다.
오늘은 촬영이 없을 것 같았기에 굳이 화장을 하지는 않았다.
보라색의 무지 박스티에 딱 달라붙는 검정색의 핫팬츠를 입고 머리에 볼캡 모자를 썼다.
뒤이어 하얀양말을 신고 분홍색과 하얀색이 섞여 있는 운동화를 신고서 나가려했다.
"딸~! 어디가~."
"일 때문에 잠시 갔다올게요!"
급하게 집을 나서는데 어머니의 말에 급하게 대답을 하고 허둥지둥 나왔다.
작은 핸드백이 가슴골에 꼈지만 그걸 신경쓸 겨를도 없이 곧장 택시를 잡아타고 남시우의 집으로 향했다.
§
딩동.
1층 문에서 초인종이 울렸다.
문을 열어주고 잠시 기다리니 우다영이 급하게 안으로 들어왔다.
얼마나 급하게 왔는지 씻지도 않고 쌩얼로 온 듯 했다.
"……자고 안 씻었냐."
"너 보는데 뭘 씻어~."
"오히려 좋아."
대학생 때 쌩얼을 자주 봐서인지 딱히 충격을 받거나 하진 않았다.
애초에 연한 화장을 하기에 딱히 차이는 없어 보였다.
"그래서 그거는?"
우다영의 말에 나는 아차하는 표정을 지으며 곧바로 연기에 들어갔다.
"이게 대박이야. 일로와봐."
실제로 그런 사이트가 있을리 없었다.
나는 컴퓨터를 켜서 직접 만든 동영상을 사이트인척 열었다.
"이거봐봐. 조회수 보이냐."
그녀가 절대 마우스를 직접 터치하지 못하게 교묘하게 자리를 잡았다.
슬쩍 우다영의 표정을 보니 의심 하지는 않는 것 같았다.
"이거야? 와…."
조회수가 200만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걸 보여주었다.
"우선 10편이 넘어야 출금을 할 수 있다네."
"아, 정말로?"
이에 아쉬운듯한 표정을 지었다.
우다영이 바짝 붙으니 그녀의 집 냄새와 함께 살내음이 풍겼다.
아래가 철 없이 다시 반응하고 있어서 몰래 손으로 꾸욱 눌러 모르는 척 연기를 해야했다.
"그리고 이게……."
바로 다음 영상으로 넘겼다.
"이번에 업로드 한건데, 편집까지 다 한거거든."
"아, 정말로?"
"거실에서 tv로 연결해서 보자."
일부러 컴퓨터가 있는 방에서 나온 후에 거실로 자리를 옮겼다.
우다영은 쫄레쫄레 나를 쫓아 거실의 소파로 향했다.
"잠깐만."
그녀를 거실에 앉혀놓고 몰래 시나리오 북을 살펴봤다.
[몰입도 : 7%]
[위화감 : 1%]
위화감 부분은 하늘색 연필로 칠한것 처럼 보였다.
위화감 고정이라니 이번엔 어떤 짓을 하더라도 재미가 쏠쏠 할 것 같았다.
책을 다시 집어넣고서 거실로 나와 영상을 틀었다.
[흐앗! 하아! 하윽! 항!]
내가 애무를 해주는데 시원스럽게 신음소리를 내는 우다영.
"으. 이건 진짜……."
우다영이 얼굴을 붉혔다. 자신의 외설스런 모습을 영상으로 본다는게 창피한 모양이었다.
다음으로 나온건 그녀가 오나홀로 대딸을 해주는 모습이었다.
"편집은 시간이 없어서 대충 짜집기만 했거든. 근데 엄청 인기가 있드라고."
"정말로? 그래도 다행이다……."
영상이 꺼져 검정만이 남은 tv를 보면서 우다영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걱정했었거든. 잘 안 되면 어떡하나 하고……."
"사실 나도 그러긴 했어."
나는 볼을 긁적이며 다음 말을 하려고 할 때 밖에서 천둥소리가 들렸다.
우르릉!
나와 우다영이 거실에 난 창문으로 밖을 봤다.
어느새 먹구름이 드리우고 저 멀리 번개가 치는게 보였다.
번쩍.
"꺅!"
놀란 우다영이 소리를 지르며 뒤로 물러났다.
우르릉! 콰앙!
크게 울리는 소리에 움찔하는 우다영.
"문 닫고 커튼 쳐야겠는데."
그렇게 모든 문을 닫고서 커튼을 쳤다.
한 낮임에도 밤 같았다.
달칵.
거실 불을 켜놓고서 우다영에게 따뜻한 유자차를 타주었다.
"여튼간에 돈은 다음에 나올거고 그 전에 영상을 좀 찍어야 돼. 그래서 말인데."
우다영이 따듯한 차를 받아들고서 나를 쳐다봤다.
"아, 일단 더우니까 에어컨 부터 틀자."
에어컨을 켜놓고 그녀와 같이 소파에 앉아서 말을 했다.
"다음 컨텐츠를 생각해봤거든?"
"응, 어떤건데?"
"프리미엄 사이트에서 요새 유행하는건데……."
소파 옆에 둔 젠가를 꺼내 들었다.
"젠가?"
"응, 대신에 29금으로."
"29금?"
잘 모르는 듯한 눈치였다. 오히려 그게 더 나을 것 같았다.
"응, 한 번 봐봐."
젠가를 열어 몇 개를 꺼내 그녀에게 보여주었다.
글을 읽은 우다영이 동그랗게 눈을 뜨고는 나를 쳐다봤다.
"이걸……?"
"응, 그거 아니면 저번에 다 못 했었던 용품들 사용하거나."
그 말에 우다영이 고민을 했다.
"힝, 근데……. 이거 우현이가 보면 어떡하지……."
"그래서 묻는거야. 너가 선택해."
일부러 선택권을 그녀에게 건네주었다.
직접 고민을 할 수 있도록 말이다.
만약 포인트가 없었다면 지금이 빌드업을 위한 시간이었을 것이다.
그녀의 선택에 도움을 주기 위해 한 마디를 거들었다.
"나는 괜찮다고 보거든. 요즘에 많이 유행하고 있어서 조회수도 괜찮게 나오고, 지금 물 들어올 때 확 노를 저어야 싶기도 하고."
"그런가……."
나는 뒷목을 긁적이면서 말했다.
"10편은 만들어야하니까. 그래서 내일까지 밤새서 찍을까 생각중이야. 아, 만약에 네가 한다면."
내가 주말을 고른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오늘 하루종일 질펀하고 끈적이게 놀 생각이었기 때문이었다.
우다영은 찻잔을 만지작 거리며 고민을 하고 있었다.
결과는 이미 정해져 있었지만 나는 그녀의 선택을 존중하는 듯 말했다.
"처음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네가 원하면 할거야. 내가 생각해도 너무 19금이라서 차마 하자는 말은 못하겠드라고."
"……."
시나리오에 일부러 그녀가 고민을 하는 스토리를 넣어놨었다.
빌드업은 점심이 되기까지 이어질 예정이었기에 느긋하게 그녀의 반응을 살폈다.
포인트를 이런식으로 사용할 수 있었다면 오자마자 그녀의 엉덩이를 꽉 쥐어짜는건데 말이다.
"호록."
벽에 달린 시계에서 똑딱이는 소리와 간간이 차를 마시는 소리만이 들렸다.
"이거……. 우현이가 보지는 않겠지?"
"응, 회원제이기도 하고 한국에서는 제한 걸려 있어서 보기 힘들겨. 대부분 외국에서 보니까."
"아…."
우다영이 한 모금 마신 후에 내게 말했다.
"너는 괜찮아?"
"응? 뭐가."
"나랑 이런거 찍는거 말이야."
그 말에 슬쩍 벽시계를 쳐다봤다.
아직 시간이 많이 남긴 했지만 우다영을 똑바로 쳐다보면서 말했다.
"우현이가 비록 친구이기는 하지만 진짜 어른스러워서 배운게 많고 도움을 받은 적도 많거든."
"……응."
"그래서 네가 우현이를 도와주기 위해 이걸 한다고 했을 때 기꺼이 오케이 한거야. 나도 도움을 주고 싶었거든."
고민하는 우다영의 표정이 살짝 변화하는걸 느꼈다.
나는 이 기세를 몰아서 좀 더 목소리를 깔고 연기를 시작했다.
"나도 알고 있어, 이거 19금인거. 그래도 나는 상관없다는 마인드야. 내 얼굴 팔아서 우현이를 도와줄 수만 있다면야."
내가 확신을 갖고 말을 하자 우다영이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그러면서 동시에 전작에 이어서 스토리를 짤 수 있다는 것도 확인할 수 있었다.
이어서 쓸 수 있는건지 아니면 시나리오를 쓸 때만 사라진 기억들이 돌아오는건지 정확하게 판단할 수 없긴 하지만.
"좀 그러면 안 해도 돼. 애석하지만 프리미엄에 올린거 다 내리면 될거야."
"아."
그렇게 큰 돈을 다 놓칠수도 있겠단 생각에 우다영의 고민이 더 깊어졌다.
똑딱똑딱.
다시 시간이 매섭게도 흘러갔다.
오전 11시가 넘은시간.
쏴아아아.
시곗소리 사이로 빗소리가 빈공간을 메우며 적적하지 않게 해주었다.
괜히 빌드업을 오래 잡았나 싶기도 했다.
"이미 시작한거 해보자, 시우야."
그 말에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이미 할거라는걸 알고는 있지만 막상 이렇게 들으니 또 기분이 새로웠다.
나는 짐짓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딱 10편까지만 해보고 출금한다음에 빠지자. 그냥 딱 돈만 받고 치고 빠지는거지. 어때."
"그, 그래도 돼?"
"응, 읽어보니까 된다고 하데."
주말은 이제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