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화 (7/126)

 §

 사무실. 

 회의 시간에 힐끔하고 우다영을 쳐다봤지만 아무렇지도 않은 듯 회의에 집중하고 있었다.

 "시우가 말했던 것 처럼 일은 많은데 사람이 부족한 것 같아서 지금 사람 하나 구하고 있어."

 김우현의 말에 우다영을 쳐다봤던 고개를 돌려 그를 쳐다봤다.

 "누구?" 

 "지금 과대한테 말해놓긴했는데 누가 올지는 모르겠네."

  

 괜찮은 친구가 왔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일에 여유가 생겨야 시나리오를 쓰는데 더 집중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오늘도 서울 가는겨?"

 회의를 끝내고 담배를 입에 문채로 물었다. 

 "아니, 오늘은 안 갈 거 같아. 나도 일 거들어야지."

 "일 너무 빡시게 하지말어. 다영이가 많이 걱정하드라."

  

 내 말에 김우현이 머쓱한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그도 알고 있을 것이다. 여자친구가 자신을 걱정한다는 것을 말이다.

 "나도 알긴 아는데, 자리 잡을 때까지만 고생해야지."

 "그래그래, 얼른 자리 잡아라. 그 전까지 뼈 갈리도록 고생해줄게."

 나름 내 식대로 위로의 말을 건넸다. 

 김우현이 그런 나를 보면서 어깨를 툭하고 쳐주었다.

 "그래…, 고맙다, 시우야."

 "고맙긴 뭘. 내가 더 고맙지 뭐. 담배나 피고 올게." 

 이런 능력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나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몰랐기에 지금 그에게 해준 말이 어떤 뜻을 갖고 있는지 알리가 없었다. 

 그저 내 말에 진심으로 신뢰의 눈빛을 보내는 김우현이었다. 

 타닥.

 계단을 내려와 1층 옆 골목길에서 담배에 불을 붙였다. 

 치익.

 "후우."

 담배연기를 뱉으면서 하늘을 올려다보니 세상 어느때 보다 푸르러서 감동이었다.  

 "……다음 스토리는 찐득하게 나가도 되겠어."

 §

 찐득한 스토리를 위해서 준비해야할 소품들이 있었다.

 "흐음."

 홀로 보드게임들을 살펴보면서 고민을 했다. 

 "이게 괜찮겠네."

 여러 보드게임들 중 젠가를 하나 집어들었다. 

 이리저리 굴려보다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계산대로 향했다.

 "이거 계산해주세요."

 계산을 하고 나와 바로 사무실로 향했다. 

 찌는듯한 더위에 얼음이 녹듯 발걸음이 축축했다. 

 사무실로 돌아오자 몇 명의 사람들이 에어컨을 설치하고 있었다.

 눈빛으로 우다영에게 물었다.

 "에어컨 설치하러 오신거야. 근데 손에 든건 뭐야?" 

 "이거? 아, 젠가."

 "갑자기?"

 "나중에 컨텐츠로 사용할 수 있을거 같아서."

 컨텐츠란 말에 우다영이 눈을 좁히며 의아해했다.

 "이걸 어디다가?"

 "친구 사이에 젠가를 해보았다 이런거?"

 "……너무 구린데?"

 그녀의 평에 나는 엄지를 들어보였다.

 그 모습에 우다영이 고개를 저으며 내게서 거리를 벌렸다.

 "너무 아재 같은데?"

 "그래? 끌끌끌."

 "그건 할배지. 이 자식아."

 우다영이 주먹으로 내 어깨를 밀었다. 나는 피식 웃으면서 젠가를 들고 내 자리에 앉았다. 

 그래도 이제 에어컨이 설치되면 그나마 나아질 것 같았다.

 젠가를 책상 구석에 밀어놓고서 일단 일에 집중했다. 

 시나리오 북으로 돈을 끌어모을까 하는 생각도 있었지만 스토리를 어떻게 짜야할지 내 머리로는 도저히 생각이 나질 않았다.

 그렇게 큰 돈이 개인에게 들어오려면 철저하게 빈틈이 없는 이야기를 써내려야하는데 말이다.

 "수고하셨습니다~."

 그 사이에 에어컨 설치가 끝났는지 김우현의 인사가 들렸다.

 "얘들아, 창문 좀 닫아주라."

 창문을 닫고 곧바로 에어컨을 틀었다. 

 삑.

 온도를 23도로 맞춰놓으니 열심히 작동하는 에어컨. 

 "어이, 사장님."

 "응?"

 에어컨 리모콘을 들고 있던 김우현이 나를 쳐다봤다.

 "다 좋은데 저희 종합 프린터기는 언제 들어옵니까."

 "아…, 그건 좀 기다려야 돼. 생각보다 비싸서, 중고로 알아보고 있어."

 "아이고~."

 회사라고는 하지만 말 그대로 기본적인 것만 있었다. 

 지금 당장은 월세와 우리 월급을 주는 것만으로도 벅찬 수준이었다.

 다행이 일은 많아서 충분히 시간만 있다면 하나둘씩 들어올 것이다.

  

 타다닥.

 타닥.

 에어컨 소리와 키보드를 두드리는 소리가 사무실 안을 가득 채웠다. 

 "우현아, 너한테 3개 보냈거든, 보정만 하면 돼. 자막은 다 입혀놨어."

 "아, 땡큐."

 셋이서 하니 그나마 여유가 있었다. 

 기왕 김우현이 하는 김에 야근까지 해가며 밀렸던 일들을 다 처리할 수 있었다. 

 "너네 먼저 퇴근해. 나 이것만 하고 퇴근할게."

 "벌써 밤 10시인데?"

 "응? 아, 걱정말고. 미리 하는김에 할려고."

 그 말에 김우현과 우다영이 걱정반 믿음반으로 나를 쳐다봤다.

 "아니면 우리가 같이 해줄게. 같이 끝내고 가자." 

 "아유~, 됐슈. 얼른가. 너네 집 서울이잖어, 지금 안 가면 차 끊겨."

 "미안해지네……."

 둘이 멋쩍어 하면서 사무실을 나섰다. 이렇게 일을 빡세게 하는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 번째, 능력을 얻었다고는 하나 우선 내 본업은 최면이 아니라 연출과 편집이었다. 

 두 번째, 앞으로 진행될 시나리오에 대비해 쌓아놓을 신뢰도였다. 빌드업을 위한 일이었다. 

 세 번째, 비록 외주로 편집을 하고 있지만 다른 사람들의 모습을 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앞으로 쓰게 될 시나리오에 영감을 받아내기 위함이기도 했다. 

 "이제 슬슬……."

 기지개를 켜며 편집을 끝내고 새롭게 포토샵 창을 띄웠다. 

 달칵.

 다음 시나리오를 위한 소품을 준비하기 위해 바쁘게 손을 놀렸다.

 [후장을 핥아주기]

 [애인에게 사과하며 섹스하기]

 [개 처럼 엎드려서 엉덩이 보여주기]

 [상대방이 원하는 부분을 애무해주기]

 적나라한 글들을 적어놓았다.

 "……젠가가 몇 개지……."

 결국 옆에 치워뒀던 젠가를 열어서 숫자를 일일이 세는 바보 같은 짓을 했다.

 밤 열두 시가 넘어서야 겨우 완성을 시켜놓고서 자리에서 일어날 수 있었다. 

 §

 우다영. 

 집 앞. 

 "시우한테 미안해지네……."

 헤어지기 전에 잠시 앞 편의점에서 음료수 하나를 사들고 앉아 얘기를 나눴다. 

 김우현의 말에 우다영도 턱을 괴고서 안쓰럽다는 듯 말했다.

 "그러니까……. 시우가 진짜 열심히 하던데."

 "전에 있던 회사에서도 열심히 했었으니까."

 "그랬나아~. 흐음, 나는 모르겠던데."

  

 안쓰럽기도 하고 그랬지만 친구라 그런가 고개를 갸웃했다.

 "여자 새로 들어오면 막 번호 물어보고 둘이 술 마시자 그러고 그러던데."

 "결국에는 다 까였잖아. 아닌가."

 "아니야아~, 시우랑 다 만났어, 한 달도 안 되서 다 헤어져서 그렇지." 

 옛날 생각이 났는지 김우현이 음료수를 손에 들고 어깨를 들썩 거리며 웃었다.

 "맞아맞아, 그랬었다. 그래도 세미나 같은거 갈 땐 진짜 잘 준비하기도 하고 열심히 했잖아."

 "음, 그건 그랬지……."

 둘이 생각하기에도 남시우만큼 사람이 가벼운 사람은 없었다. 

 그 가벼움 때문에 가끔은 그가 하는 일을 까먹곤 했다. 

 "그러고보니까 일은 잘 했던거 같네."

 항상 말도 안되는 드립을 치거나 어떻게 반응해야할지 감도 안 잡힐 정도로 갑분싸를 만들기도 했지만 말이다. 

 자기에게 주어진 일만큼은 확실하게 처리해서 일 적으로는 말이 안 나오도록 했었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상사들에게는 그저 재밌는 친구 정도로 취급하곤 했다.

 그런 캐릭터도 몇 달을 유지하니 이제는 다들 그런갑다 하면서 오히려 그가 없으면 재미가 없을 때도 있었다. 

 "괜히 나 때문에 일만 더 늘어난거 아닌가 싶어서 미안하네……."

 그 말에 우다영이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우리 셋만 있으니까 시덥잖은 드립은 안 들어도 되서 좋은데 뭘."

 "그런가, 시간 늦었다. 이만 들어가자."

 "아, 응. 우현아, 조심히 들어가."

 헤어지기 전에 김우현의 입술에 가벼운 입맞춤을 했다.  

 삑삑삑삑.

 부모님이 주무시고 계실테니 최대한 조용히 방 안으로 들어갔다. 

 "으~, 힘들다~."

  

 쭉 몸을 폈다가 접으면서 스트레칭 한 후에 갈아입을 옷을 들고 화장실 안으로 들어갔다.

 쏴아아아.

 뜨거운 물에 녹초가된 몸을 녹이는데 이상하게 아래가 간지러웠다. 

 물론 이상한 병이 있다거나 하는게 아니었다.

 "……."

 정확하게 기억은 나지 않지만 오늘따라 성욕이 부쩍 는 것 같았다.

 "생리는 올려면 멀었는데…."

 김우현을 괜히 보냈나 싶었다. 그렇다고 지금까지 한 번도 먼저 하자는 말을 꺼내 본 적도 없었다. 

 가끔 놀러가면 서로 말없이 합을 맞췄을 뿐.

 "……나이들면 성욕이 는다더니 진짜인가 보네……."

 §

 다시 아침이 되자마자 나는 어제 만든 것을 usb에 담아서 바로 사무용품점으로 향했다.

 위잉.

 계산을 하고서 곧바로 프린트를 시작했다. 

 스티커가 코팅이 되서 쭉 나왔다.

 "후훗."

 외설적인 단어들이 적혀 있는 스티커를 보면서 아주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러브젤을 사용해서 후장을 애무해주기.]

 사놨던 것들도 사용해야했기에 이런 것도 넣었다.

 뿐만 아니라 서로가 서로에게 해줘야했기에 일부러 남자니 여자니 주어를 넣지는 않았다.

 "그럼 이제부터는 시나리오를 짜야하는데……."

 아침임에도 따가운 햇빛을 손으로 가리면서 사무실을 향해 걸어갔다.

 띠리릭.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아침부터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는 둘이 보였다.

 "뭐여?"

 프린트해온 걸 가방에 넣으며 물었다. 

 목장갑을 끼고서 파티션을 옆으로 옮기던 김우현이 나를 발견하고는 씨익 웃으며 말해주었다.

 "파티션이 새로 와가지고 그거 설치하고 있었어."

 "아침부터 온겨? 기사분들도 대단하네."

 내 자리에 가방을 내려놓고서 그쪽으로 다가갔다. 

 무질서하게 놓여진 목장갑들 중 하나를 집어 손에 낀 후에 그를 거들었다.

 우다영은 커터칼을 갖고 포장되어있는 노끈을 일일이 하나씩 끊어내고 있었다.

 그러면 포장을 풀고 파티션을 든 채로 가져가 조립을 시작했다. 

 "여기는 사무실로 쓸거고, 저기는 가벽 세워서 회의실 및 미팅룸으로 만들 생각이야."

 셋이서 쓰기에는 너무나도 넓었던 곳이었기에 약간은 황량한 느낌이 들 때도 있었다.

 "휴게실도 만든다면서."

 "응, 저기 문 앞 쪽에 탕비실이랑 같이 만들어두려고."

 "으흠? 으흠."

 고개를 주억거리면서 아침부터 분주히 움직여 배달온 파티션들을 다 설치했다. 

 그리고는 같이 온 박스를 뜯은 우다영이 안에서 팻말들을 꺼냈다.

 [촬영팀]

 [편집1팀]

 [편집2팀]

 구상하고 있는걸 하나씩 해나간다는 느낌이 좋았다. 

 우다영이 간이사다리를 들고와 위에 설치했다. 

 "곧 명함도 나올거야. 100장씩 해서 주문을 해놨어."

 김우현이 뿌듯하게 쳐다봤다.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저렇게 기분 좋아하는걸 보니 나까지 텐션이 업되는 기분이었다.

  

 그 날 하루는 오랜만에 창문을 활짝 열어두고서 대청소를 시작했다. 

 "흐이~. 힘들다아~."

 우다영이 흐르는 땀에 젖은 머리카락을 넘기며 말했다. 

 김우현이나 나나 마찬가지로 땀에 푹 절은채로 앉아서 배달어플을 열었다.

 "시원한거 시키자, 어후."

 점심도 먹을겸해서 콩국수와 냉면 그리고 갈비만두를 시켜놓은채로 청소를 마무리 하기 위해 대걸레를 집어들었다.

 "에이, 이거 어떤데. 레게풍."

 포장지를 막 뜯어 깨끗한 걸레를 머리 위에 이고는 건들거리는 제스처를 취했다.

 "에이, 에이. 전자담배랑 마일드세븐을 동시에 피는 멍청이! 에이에이!"

 "……쟤는 진짜 텐션 안 떨어진데?"

 우다영이 옆에 앉아서 웃고 있는 김우현을 툭툭 치면서 물었다.

 "그래도 재밌으니까."

 "으유~, 쟤랑 나랑 친구라는게 참……."

 그 말에 내가 손가락으로 그녀를 가리키면서 말했다.

 "헤이, 너랑 나랑 친구인 이유는 너도 제정신이 아니기 때문이지."

 "야잇."

 나를 잡으려고 일어났지만 요리조리 피해다니는 나를 잡을 재간이 그녀에게는 없었다. 

 "자자~, 그만하고 청소 마무리하자 얘들아~." 

 김우현의 만류덕분에 다시 청소를 재개할 수 있었다. 

 §

 퇴근하는 길에 에그드랍에서 간단하게 먹을걸 포장했다. 

 해가 산등성이에 걸쳐서 주황빛을 내뿜는데 그게 구름에 걸려 요상한 빛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띠리릭.

 집에 돌아온 나는 바로 컴퓨터 앞에 앉았다.

 "어디보자……."

 파일에 다 옮겨진 영상들.

 그 안에서 우다영은 어색한 표정으로 내가 하는 말을 그대로 따르고 있었다.

 "와, 시바. 보면 볼수록 신기한 능력일세."

 그저 공책에 적었을 뿐인데 이런 상황이 벌어질 줄은 몰랐다. 

 어디 야설에서나 봤을법한 그런 능력은 아니었다. 

 촛불이라든가 실에 매단 동전이라든가 혹은 최면 어플이라던가 그런거 볼 때마다 그냥 드립으로 썼었던 기억 밖에 없었다. 

 나는 손을 뻗어 영상들을 하나씩 편집 하기 시작했다. 

 우선 필요없는 부분들을 걷어내고서 보정도 없이 통합을 했다. 

 이렇게 보니 한 편의 야동과 다를게 없었다.

 촤락.

 가방에서 시나리오북을 꺼내들고서 내가 적은 시나리오를 한 번더 읽었다. 

 공책에 적었을 뿐인데 이런 상황이 벌어졌다는게 새삼 신기해서 실소가 계속해서 터져나왔다.

   

 "아…."

 통합이 끝나고 파일 이름을 적어야했다. 

 팔짱을 끼고서 뭘로 할까 하다가 이내 간단하게 적었다. 

 [늘솜 스튜디오 - #우다영]

 저장을 해놓고 잠시 어이없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야동마냥 품번을 적어놓을걸 그랬나."

 그랬다가 곧 내가 생각해도 어이가 없어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다음엔……."

 입에 포장해온 음식을 입에 물고서 포토샵을 열었다. 

 다음 작품에서 사용할 사진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확실히 내용이 디테일하고 또 소품이 있으니 몰입도는 빠르게 증가하고 위화감은 더디게 증가하는 편이었다. 

 "……매번 할 때마다 이렇게 생고생을 해야하나……."

 싶기도 했지만 머릿속에 우다영의 박음직스러운 엉덩이와 곱게 닫혀있던 선분홍빛의 보지가 생각났다.

 김우현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우다영의 늘씬한 몸을 생각하니 아래가 빠르게 반응했다. 

 그저 친구였기에 아무런 생각도 없었지만 지금은 우다영을 생각하는게 전혀 달라져 있었다. 

 "조금만 맛 볼게, 미안하다 우현아."

 처음엔 서울에서 경기도로 넘어온것에 불만이 있었지만 지금은 전혀 아니었다.

  

 "아직은 간만 봤다 우현아, 헤어지게 할 생각은 없고, 맛만 보자 맛만. 한 입만 나눠 먹자." 

 혼잣말을 중얼거리면서 한글을 켜놓고 시나리오 작성을 시작했다.

 여기서 작성을 끝내면 자필로 시나리오북에 옮겨야하긴 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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