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4화 - 용제 사냥 (1)
그야말로 폭탄 발언. 용제를 잡을 테니 시간만 끌어달라는 영민의 발 언은 모두를 자극함과 동시에 안도 하게 만들었다.
정말로 그의 말처럼 드래곤이,또 용제가 그렇게나 강력하다면 상대하 는 것만으로 얼마나 많은 피해를 입 어야 할지 짐작도 가지 않기 때문이 다.
하지만 좀처럼 쌍수를 들고 환영하 기는 어려웠다. 그에게 모든 것을 맡기기에는 자존심이 상해서? 그럴 리가. 값싼 자존심이나 내세우기에 는 그들의 어깨에 걸려있는 책임이
너무나 무겁다. 말 한 마디 잘못해 서,단 한 번의 결정을 실수해서 천 문학적인 액수의 피해를 보거나 수 만,수십만 이상의 사람들이 죽어나 가는 것도 충분히 가능한 상황이니 까.
그러니 솔직한 말로 어지간해서는 9레벨 던전에서 튀어나왔다는 군주 들을 자극하지 않고 싶은 것이 모두 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특히나 다섯 군주의 군단들이 자국과 멀리 떨어 져 있을수록 그런 기색이 심했다.
어쨌든 자신들에게까지 불동이 튀 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텐데,적당히 뭉개다보면 발등에 불이 멸어진 국 가들이 알아서 물량을 쏟아 붓지 않
을까. 소위 초강대국들이 어떻게든 해결해주지 않을까. 은근한 기대와 무책임으로 외면하고 싶은 것은 그 들을 탓할 일이 아니었다.
그런 마음을 알기에 영민은 크게 감정적이지 않은 눈빛으로 그들을 다시 한 번 돌아보았다.
“물론 이대로 시간을 끌 수도 있습 니다. 인류는 아마 제법 시간을 벌 수 있겠죠. 하지만 이걸 아셔야 합 니다. 그들은 ‘군주’입니다.”
“군주의 밑으로는 군단이,병사가 모이기 마련이죠. 드래곤 한 마리가 울부짖으면 산맥 하나에 서식하는 모든 몬스터들이 공포에 질려 집결
할 겁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놈들의 세력은 더 커지고 단단해지겠죠. 그 때 가서,시간이나 벌 수 있겠습니 까?”
명백한 도발이었지만 누구도 반론 을 제기하지 못했다. 당장 드래곤 한 마리와 싸우라 해도 정예가 떼로 몰려들어야 피해를 줄일 수 있을 판 이다. 그런데 그 이하 수백,수천, 수만 마리의 몬스터에 포위된 채로 싸우라고? 이겨도 찢겨 죽겠지.
물론 영민의 말이 사실이라는 전제 하이기는 하지만 딱히 거짓일 거라 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싸늘하게 흐르는 정적.
역시 가장 적극적으로 나선 것은
다섯 군주의 거점과 인접한 국가들 이었다.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작전이 있습니까?”
정말로 궁금하다기보다는 지푸라기 라도 잡고 싶어하는 듯한 모습. 다 섯 군주라는 날벼락을 직격으로 맞 은 미국과 인도,소련도 엉덩이가 들썩이는 모양이지만 간신히 참아내 는 모습이었다.
그러다,성녀 아리스가 가볍게 손 을 들고 제법 질문다운 질문을 던졌 다.
“그런데 왜 하필 ‘용제’부터인 거 지요?”
용제의 위치는 그랜드캐니언. 성녀
아리스가 속한 미국령이었기에 꽤나 복잡한 표정이었다.
첫 번째 타겟으로 자국에 있는 군 주를 처치한다는 것은 다행인 동시 에 매우 위험한 일이었으니까.
첫 번째라는 것은 일찌감치 위험을 제거할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했지 만 반대로 데이터가 없다는 의미이 기도 했다. 그만큼 위험도가 클 수 밖에 없다는 뜻이다.
“현재로서는 가장 가능성이 높으니 까요.”
“가장 약하다는 뜻인가요?”
그녀의 직설적인 물음에 모두의 표 정이 급격히 굳었다. 무려 드래곤들 의 군주,용제가 다섯 군주 중 가장
약하다고?
그래서인지 아리스의 표정은 무척 이나 슬퍼보였다.
‘어째 또 오지람이 시작하는 것 같 은데".’
절로 어깨를 감싸주고 싶은 그 순 수한 표정에 모두가 동조되는 가운 데 영민만은 심드렁하게 그녀를 쳐 다봤다.
그럼 나머지는 대체 어떤 수준이란 말인가?
“그건 아닙니다. 다만 현재의 상태 에서 가장 사냥하기 수월하다는 뜻 이지요.”
자칫 모두에게 절망을 가져다줄 뻔 한 그 물음에 영민은 한 자루 검을
들어 답했다.
+13 봉인의 드래곤 슬레이어가 가 진 능력치를 모두에게 공유했다.
“헉!”
“저,저게 말이 돼?”
“저것만 있으면 용족쯤은 그냥".”
그제야 모두가 이해를 했다. 용기 를 가졌다. 단순히 공격력만 따져도 자신의 무기보다 적게는 배에서 3배 까지도 높은데 모든 능력이 50%나 상승하고 용족에 대해 10배 데미지 를 준다고?
저것만 있으면 당장 자신이 용제를 때려잡을 수도 있을 것 같다는 막연 한 자신감이 솟아 오를 정도였다.
오직 영민만이 이조차 용제를 상대
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라는 것 을 알고 있을 뿐이지만 지금 인류에 게는 이런 희망이 필요했다. 그것이 명백한 오판일지라도.
“저 이외에도 이와 같은 드래곤 슬 레이어를 얻으신 곳이 있을 걸로 압 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영민이 한 가 지 약을 더 쳤다. 강태성의 시기에 도 모두 5자루가 존재했던 드래곤 슬레이어다. 시기가 이르다고는 하 지만 신기에 대해 밝힌 바 있는 상 황에서 한 두 자루쯤 이미 보유한 국가가 없을 것 같지는 않은 것이 다.
물론 +13까지 강화해서 힘을 이끌
어낸 케이스는 없겠지만 드래곤 슬 레이어라는 무기 자체는 누군가 가 지고 있을 가능성이 컸다.
말을 던짐과 동시에 숙 살피니 몇 몇의 표정이 미세하게 변하는 것을 발견 할 수 있었다. 중국과 러시아, 네덜란드가 그 주인공이다.
“그 분들을 펼두로 최대한 시간을 끌어주십시오. 그럼 그 동안 저와 저희 길드가 용제를 잡죠.”
하지만 영민은 그들에게 용제 사냥 의 협력을 요청할 생각이 없었다. 물론 드래곤 슬레이어를 지닌 것만 으로도 크나큰 전력이 될 테지만 그 들이 빠지면 다른 드래곤들을 상대 하기가 아주 어려워진다. 어떻게든
해낸다 하더라도 짧은 시간 큰 피해 를 입고 말겠지.
또한 손발이 맞지 않는 이들과 억 지로 함께 싸워봐야 득이 된다는 보 장도 없었다. 그럴 바에야 애초에 계획한 대로,자신이 꾸린 팀만으로 타격을 하는 편이 훨씬 나을 터였 다.
그 결정에 당사자들은 꽤나 안도하 는 모습이다. 드래곤의 강함조차 측 정이 되지 않는 상황에서 그들의 제 왕이라는 용제와 싸우라니,아무리 용맹한 헌터라 하더라도 겁이 나는 것이 당연하다.
“시선을 끄는 것은 어떻게 하면 됩 니까?”
정적 속 아리스의 차분한 음성에 영민이 안도했다. 호승심이 강한 아 렌이 자신도 끼워달라 나서면 어쩌 나 싶었는데 다행히 그러지 않은 것 이다.
아무래도 용제와 마주하는 것만으 로도 동생인 아리스가 절대로 위험 에 노출 될 것이라는 것을 고려한 듯 했다. 물론 수백의 드래곤과 휘 하 몬스터들을 상대하는 것 역시 만 만한 일은 아니지만 용제를 상대하 는 것보다야.
“그럼 지금부터 제 계획을 말씀드 리겠습니다.”
상황이 뜻대로 돌아가자 영민이 오 래전부터 계획해 온,용제 사냥의
계획을 털어 놓았다.
세계 헌터 회의가 화상으로 진행된 지 보름.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 동안 세계 각국과 헌터들은 아 주 분주한 나날을 보냈다. 도시 주 변의 정리는 어느 정도 끝이 났지만 여전히 몬스터의 발에 짓밟힌 채로 있는 주변 지역들을 수복해야했고, 몬스터들과의 전쟁을 장기화 할 수 있도록 체계를 마련해야 했으며 곧 불어 닥칠 태풍에 버틸 수 있도록 여러 가지 대비를 해야만 했다.
그 사이 용제 사냥과 관련되어 활
약을 하기로 약속된 헌터들은 자신 을 최대한 정비하고,길드를 정비하 고,작전을 수행하기 위해 지역을 이동했다.
영민과 길드 힐름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드래곤들의 군주,용제를 타격하기 위한 타격대이기도 했지만 가장 먼저 드래곤들의 시선을 끌기 위한 미끼의 역할도 동시에 맡았다.
“정지.”
거르고 걸러 모은 이백의 헌터들이 영민의 한 마디에 못 박힌 듯 제자 리에 섰다.
이미 드래곤들의 영역에는 들어선 상황. 단 한 번의 실수나 명령 불복 이 엄청난 피해로 다가올 수 있다는
것을 알기에 모두 꽤나 긴장한 모습 이었다.
“지금부터 낚시를 시작한다.”
그들을 숙 돌아보고,영민이 선언 했다.
용제를 중심으로 모여든 드래곤들 이지만 그렇다고 그들이 인간처럼 군락을 이루고 산다는 의미는 아니 었다. 홀로 완전한 존재라고도 불리 는 만큼,독립성을 가지고 각자의 영역을 지키며 엉덩이 무겁게 버티 고 있는 것이다.
영민은 그 점을 노렸다. 스스로에 대한 프라이드가 워낙 강한 탓에 힘 이 모자라서 사냥을 당하는 동족 따 위는 오히려 비웃을 뿐인 드래곤의
특성을 이용해 처음은 각개격파하는 것으로 작전을 세웠다.
이 방법만 잘 사용해도 영역의 언 저리에 있는 몇 마리 정도는 수월히 수를 줄여낼 수 있을 터였다.
아니,운이 좋다면 두 자리 수의 드래곤을 사냥 할 수도 있을 것이 다. 문제는 그렇게 하기에 시간이 부족하다는 것이지만.
“소환,본 드레이크.”
시작은 본 드레이크였다. 드래곤 한 마리가 거느리고 있는 몬스터의 수는 족히 수천을 헤아리니 쓸데없 이 힘을 빼기보다 본 드레이크에게 맡기려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상당수의 본 드레이크
가 파괴될 수 있지만 그 또한 상관 없다. 어차피 드래곤이 나타나면 본 드레이크 라위야 제대로 힘을 쓰지 못하고 뼛조각이 되고 말 테니까.
“가라!”
“크와아앙-!”
영민의 명령에 본 드레이크들이 제 각기 피어를 발산하며 날아들었다. 더불어 제 몸에 한껏 머금은 사기로 주변을 물들이는 것도 잊지 않았다. 본 드래곤만큼 강력하지는 않아도 이 대지에 오랫동안 노출되는 시체 는 생리를 거스르고 다시 몸을 일으 키게 될 터였다.
그렇게,일백이 넘는 본 드레이크 가 날뛰기 시작했다.
놈들 또한 ‘용족’이기는 했지만 반 푼이인 탓에 존재만으로 드래곤의 분노를 사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그 들의 영역에서 난동을 피운다면? 공 포로 거둔 몬스터들 따위 얼마든지 죽어도 신경쓰지 않을 테지만 심기 를 거스를 정도로 난리를 피운다면?
‘왔나.’
제 아무리 드래곤이라 한들 모습을 드러내지 않을 리가 없었다.
“누가 감히 나의 영토에서 소란을 피우는 가!”
묵직하면서도 강대한 힘이 실린 언 령.
그저 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오금 이 저려오고 공포에 잡아먹혔다. 도
망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이 들고 차라리 스스로 배를 갈라 선처를 구 하고 싶은 생각이 온 몸을 지배했 다.
최소 A등급의 헌터들이 모여있음 에도 그 힘은 전율스러웠다.
“정신 차려라!”
그때 영민의 호통이 모두를 일깨웠 다. 청량한 신성이 깃든 목소리가 모두를 회복시키고 벌써 세 기째의 본 드레이크를 부수고 있는 그린 드 래곤에게로 향했다.
“곧 용제께서 심판을 하실 텐데, 알아서 명을 재촉하는 구나.”
덕분에 그들을 확인한 그린 드래곤 이 노란 안광을 번뜩거렸다. 하지만
그렇게 위협적으로 여기지는 않았 다. 드래곤들에게 있어 인간이란 노 리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이 다.
간혹 용사니 뭐니 하는 자들이 나 타나기도 하지만 당하는 쪽이 멍청 한 것이라 생각하던 그였다.
그렇게 고개를 돌려 남은 본 드레 이크를 향하는 순간,영민이 가볍게 손을 들어 지시를 내렸다. 작전을 시작했다.
“산개하라!”
작전에 따라 각 조장들이 조원들을 이끌고 산개하기 시작했다. 본 드레 이크에 그린 드래곤에 집중하는 사 이 어쩔 줄을 몰라하는 몬스터를 정
리하고 영민이 나누어준 장치들을 설치하기 시작했다.
“19조 완료!”
“27조 완료!”
“86조“.”
설치는 간단했다. 커다란 말뚝처럼 생긴 장치를 땅에 박아 넣으면 그만 인 것이다.
우우우웅-
준비한 마나석과 주변을 정리하며 추가로 획득한 마나석까지 쏟아붓자 장치가 작동하기 시작했다.
일명 대공 결계. 놈이 하늘을 나는 것을 막기 위한 결계였다.
놈의 힘에 있어서 비행은 아주 작 은 요소에 불과했지만 상대하는 입
장에서는 그만큼 까다로운 것도 없 기 때문이다.
마법의 조종이라는 수식어까지 있 는 놈들이지만,수시로 흐름을 바꾸 어대는 이 장치를 파훼하기란 쉽지 않을 터였다. 이제부터 그럴만한 시 간을 주지 않을 테니까.
“본 스틈!”
시작은 영민이었다. 놈이 파괴한 본 드레이크의 잔해들이 요동을 치 는가 싶더니 그 자체로 날카로운 무 기가 되어 놈을 때리기 시작한 것이 다.
드래곤에는 손색이 있지만 무려 드 레이크 씩이나 되는 존재의 뼈이다 보니 놈의 단단하던 비늘 사이사이
로 핏방울이 보이기 시작했다.
“공격하라!”
이어 사방으로 흩어진 힐름의 각 조들도 전력으로 공격을 퍼부었다. 영민이 가져다준 수천권의 스킬북들 을 나누어 익힌 그들이다. 공격 하 나하나가 8레벨 던전 몬스터들에게 도 치명적인 피해를 줄 수 있는 수 준이니 그린 드래곤이라고 무사할 리 없다.
“하찮은 것들이!!”
말은 짜증스럽게 했지만 그린 드래 곤의 상태를 썩 좋아보이지 않았다. 한 방 한 방이 죽음으로 인도 할 수 있는 위력적인 마법을 사방으로 뿌려대며 저항했지만 이미 각 조마
다 공간 이동 스킬을 지닌 이들이 하나씩 배치되어 있는 것이다.
막으려 했다면 고전을 했겠지만 영 민은 안전 확보를 최우선으로 지시 했기에 그들은 망설이지 않고 자리 를 이탈했다.
두더쥐 잡기 같은 공격과 회피가 이어지고,그 동안 계속해서 그린 드래곤의 거체에는 데미지가 쌓였 다.
이대로 시간만 끌더라도 사냥이 가 능할 법한 상황. 하지만 영민은 변 수를 줄이기 위해 직접 몸을 날렸 다.
“럭키 펀치.”
삐어어억!
정신 없는 틈을 타 은신으로 접근 한 영민의 주먹이 놈의 뺨을 내리쳤 다. 획 하고 꺾이는 고개. 그것이 다시 올라왔을 때,이미 영민의 드 래곤 슬레이어가 놈의 눈알을 터트 리고 있었다.
“크아아악!!!”
생전 처음 겪는 고통에 몸부림치는 그린 드래곤. 하지만 이미 시야까지 제한 당한 녀석이 영민의 공세를 막 아내는 것은 무리였다.
“우오오오오오!!!!”
“해냈다!!”
영민과 네 사람이 전력으로 나선 이상 놈의 목이 땅에 떨어지기까지 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이미 강태
성의 기억을 통해 드래곤의 전투 방 식과 대응 방식에 익숙한 것도 있 고,한 차례 드래곤을 직접 잡아본 바가 있는 영민이니 변수라는 것을 일체 허용하지 않을 수 있던 것이 다.
“장치를 회수해라. 다음 장소로 이 동한다.”
때문에 영민은 일체의 희생 없이 드래곤을 잡아냈다는 기쁨에 젖기보 다 빠르게 다음 작전을 수행하기 위 해 냉정을 유지 할 수 있었다.
드래곤들과의 전쟁은 이제부터 시 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