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전 준비 (2)
“와,이게 다 뭐냐.”
현상금 미션에서 얻은 별의별 보상 아이템들. 거기에는 아이템으로서 그럭저럭 쓸만한 것들도 있었지만 ‘불에 타다 만 석상’처럼 용도를 알 수 없는 것들도 많았다.
물론 레드 드래곤 세트로 무장한 지금의 그들에게는 어떤 것도 의미 없기는 마찬가지지만.
그렇게 여러 아이템들을 수집하고, 구입한 영민은 아무 생각 없이 그것 들을 모으고 만지작거렸다.
드래곤 슬레이어가 그랬듯,어차피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이것들의 용도
나 활용법을 알기는 어렵다. 당장 드래곤 슬레이어만 하더라도 아이템 을 파괴해야 한다는 것을 누가 생각 이나 했겠나? 그러니 아예 운에 맡 겨보려는 것이다.
양손에 하나씩. 아이템을 들고 합 치는 시늉을 해보는가 하면,아예 진짜로 ‘조합’을 사용해 보기도 했 다.
그리고,그것은 생각보다 효과가 좋았다.
“오호?”
조합의 위력이 생각보다 대단하다. 시스템의 보정을 받는 조합 능력이 다보니 예를 들어 한 아이템의 홈에 다른 아이템을 끼워야하는 등의 방
법까지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렇게 장님 문고리 잡듯 더듬더듬 풀어가니 쌓아놓은 아이템의 수는 금세 줄고 줄어 처음의 절반 이하로 바뀌어버렸다.
더불어 이제 몇몇은 용도를 추측 할 수 있는 수준까지 완성되었다.
“이게 이렇게 나오는 거였군. 그 놈들은 이걸 어떻게 안 거지?”
개 중에는 강태성의 기억에서 본 적 있는 것들도 있어 은근히 재미도 있었다.
그렇게 완성한 아이템이 무려 32 개.
하나하나가 드래곤 슬레이어 같은 키(key) 아이템은 아니고 몇 개를
연계해서 사용해야 획득 할 수 있는 것도 있었지만 아무래도 상관 없었 다.
영민에게는 ‘맵(Map)’과 ’행운‘이 있었으니까.
지난 레벨 업 기간 동안 단순히 몬스터만 사닝한 것이 아니라 타 차 원에서 생활하는데 꼭 필요한 몇 가 지를 챙겨둔 덕이다.
‘세계 전도’를 구해 미니맵에 등록 하자 굳이 직접 가서 지도를 밝힐 필요가 없이 모든 지형과 지물을 파 악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것을 바탕으로 영민은 아이템 설명이 가 리키는 지점을 찾아 아이템 사냥을 시작했다.
목적이 뚜렷하니 다른 이들을 이끌 고 갈 필요도 없었다. 혼자 얼른 가 서,아이템만 쏙 빼먹으면 그만이다.
다른 이들에게는 지속적인 현상금 미션 사냥과 7레벨 이하 던전에서 획득 할 수 있는 것들을 알려주고 8레벨 던전에 진입한 영민은 즉시 미니맵을 열어 위치를 가늠했다.
“멀긴 하지만". 이게 있으니까. 대 기권 뛰기!”
쿠응!
단 한 번의 도움닫기로 영민의 몸 이 긴 포물선을 그리고 올라가 대기 권을 돌파했다. 그리고 다시 스카이 다이빙을 하듯 빠르게 떨어져내렸 다.
대륙 간의 이동조차 가능하게 만들 어주는 초절의 이동기,대기권 뛰기 였다.
쿠응!
착지하는 순간,한 점에 가해진 충 격은 엄청났지만 그 뿐이었다. 운석 이 떨어진 것 같은 폭발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음에도 스킬의 보정을 받아 충격은 단 한 점에 집중되는 것으로 끝이 났다.
콰직
하필이면 그 끝에 사이클롭스가 있 었다. 루티 커틀렛이 허망한 최후를 맞이한 것처럼,놈 역시 하나뿐인 눈이 터져나가며 명을 달리했다.
“찝. 정확도가 떨어지는 건 어쩔
수 없나.”
대기권 뛰기의 유일한 단점인 낮은 정확도가 아쉬웠지만 숙련도 개념이 없는 스킬이라 어쩔 수는 없었다. 사실 크게 상관 없기도 했고.
보통이라면 사이클롭스의 시체를 언데드로 만들어 부릴 테지만 시간 관계상 패스했다. 아이템이야 어차 피 자동습득으로 인밴토리에 들어와 있을 테니까.
대신 이동 수단을 소환해 틀어진 목적지로의 빠른 이동을 준비했다.
“소환,본 드래곤.”
“크롸화롸롸롹-!”
영민이 소환해 낸 것은 나이트메어 가 아니었다. 그렇게 벼르고 벼르던
본 드래곤. 드래곤을 왕좌에 있을 수 있게 해주는 3가지 무기인 육체 능력,마법,브레스 중 마법을 사용 하지는 못하지만 암흑으로 강화되어 몇 가지 특수 능력을 대신 사용할 수 있는 녀석은 이미 8레벨 보스와 도 맞상대를 할 수 있을 만한 전투 력을 지닌 상태였다.
비록 지금은 영민의 자가용으로 이 용되고 있을 뿐이지만.
펄럭. 뼈 뿐인 날개를 휘젓자 그 거대한 몸체가 둥실 허공에 떠오른 다. 그만한 거체를 움직여 속도를 낼 수 있는 것은 애초에 육체 능력 이라기보다는 마법적 효과에 가까운 탓이다.
그로 인해 생각지 못한 이득도 보 았다. 사기와 어둠,적의로 똘똘 뭉 친 본 드래곤이 날개를 펄떡이며 지 나갈 때마다 주변의 생명력이 빠르 게 사라지고 약한 놈들은 질식해 숨 을 거두는 것이다. 그럴 때마다 경 험치는 꼬박꼬박 영민에게로 들어왔 고 죽은 자들은 되살아나서 인세를 혼란시키기 시작했다. 이 세계가 약 화될수록 지구에 가해지는 압박도 줄어드니 나쁠 것 없는 상황. 그렇 게 한참을 날자 목적했던 장소에 도 달할 수 있었다.
“마음껏 날뛰어라.”
목적지는 다름 아닌 인간들의 국 가,그 수도였다. 정확히는 그 안에
위치한 왕궁. 육안으로 확인이 될 만큼 그곳이 가까워졌을 때,영민은 본 드래곤에서 폴짝 뛰어내리며 명 령을 내렸다.
본능에 따라 모든 것을 죽이고 파 괴하기를 요구한 것이다.
“보,본 드래곤이다!”
“맙소사! 저 저주받은 괴물이 어떻 게시”
“아아,태양신이시여!”
갑작스레 나타난 본 드래곤과 저 멀리서부터 까맣게 밀려오는 언데드 대군. 그것을 확인한 수도 경비대의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아무리 높게 쳐둬도 B등급 헌터 수준의 그들이 발버둥을 쳐봐야 본
드래곤은커녕 그가 뿜어대는 기운에 도 대항하기 쉽지 않은 것이다.
그런데 본 드래곤이 아예 적의를 드러낸다? 절망과도 같은 일이었다.
그들이 당장 할 수 있는 것이라고 는 기사단과 왕실수호대가 나타날 때까지 시간을 버는 것 뿐.
용기 있는 지휘관이 고래고래 소리 를 지르며 대항을 명령했지만 드래 곤 피어에 질려 제대로 움직일 수 있는 인원은 몇 되지 않았다.
“쿠오오오오오오오-.”
그런 가운데 본 드래곤은 날개를 활짝 펼치고 허공에 머물며 막대한 에너지를 끌어모으기 시작했다. 주 변의 모든 마나와 생명력이 그의 입
주위로 모여들고 죽음의 기운으로 빠르게 전환된다.
역시,시작은 브레스였다.
“쿠와와와와와왁-!”
본 드래곤의 다크 브레스!
비록 역천의 비술로 되살아난 본 드래곤의 능력이지만 그 위력만큼은 본래의 것에 크게 뒤지지 않았다.
“끄아아악!!!!”
다만 생각처럼 쉽게 성벽을 부수고 도시를 집어삼키지는 못했다. 명색 이 왕성이 있는 수도인 만큼 성벽과 그 주위로 펼쳐진 결계와 보호마법 들이 대단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다크 브레스는 수십 겹이 나 되는 방어를 대번에 뚫어버리긴
했지만 물리적인 피해까지는 입히지 못했다.
“끄어어어어
하지만 다크 브레스의 무서움은 물 리력만이 아니었다. 수십 겹의 방어 막을 뚫으며 사방으로 퍼지고 스며 든 죽음의 기운은 결계 내부에까지 영향을 미친 것이다.
특히 대지 깊숙한 곳까지 스며들어 지하수를 오염시키고 직접 인간들의 몸은 침습했다.
“이봐,정신차려!”
“이잇! 쳐라! 이미 틀렸어!!”
그러자 내부에서도 난리가 났다. 정신력이 낮은 민간인이나 일부 병 사들이 죽음의 기운에 오염되어 아
군을 공격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 틈을 타 본 드래곤이 강하를 통한 물리력 행사에까지 나서니 금 세 성벽이 위태로워졌다.
“쏴! 나머지는 놈을 와라! 성벽을 공격하지 못하게 만들어!!”
일부가 급히 방어에 나서보지만 소 용없는 짓이다. 본 드래곤이 괜히 본 드래곤인가? 주 재료가 드래곤 본인 만큼 어지간한 공격은 그것이 물리력이든 마법 공격이든 상관없이 무효화시켰다.
반면 성벽에는 계속해서 몸통을 부 딪히고 꼬리를 휘둘러대니,성벽이 출렁이고 균열이 일어나며 무너지기 직전의 상태까지 내몰렸다.
‘잘 하고 있군.’
저 멀리 왕성으로부터 소란과 함께 강력한 기운들이 여럿이나 빠져나오 고 있음을 확인한 영민은 득의의 미 소를 지었다.
그들이라면 어떻게든 본 드래곤의 상대가 될지 모른다. 하지만 어차피 본 드래곤은 한낱 소환수일 뿐,파 괴되어도 재소환 시간만 지나면 멀 쩡한 모습으로 다시 부릴 수 있었 다.
자신은 그 사이에 목적을 이루면 일방적인 이득을 취할 수 있었다.
‘일단은 국왕부터 조져야겠지?’
은신을 사용한 채 그들과 엇갈려 잠입한 영민은 즉시 국왕의 위치부
터 찾았다.
던전으로 연결된 이 차원계,이 인 간계에는 몇 개의 국가가 있었다. 영민이 찾은 이곳은 그 중에서도 태 양신 라펠타를 믿는 신정국가였다. 왕이 곧 신의 대리자 교황인 국가.
영민이 얻고자 하는 것은 그의 신 물이자 국가의 보물인 ‘태양의 검’ 이다.
드래곤 슬레이어에 비하면 부족함 이 있지만 그 자체로도 현존하는 모 든 무기 중 최상위를 차지하고 자루 에 패여있는 홈에 ‘태초의 화염’을 조합하면 화염계 데미지에서 따라올 무기가 없게 된다는 무기.
아마도 드래곤 슬레이어처럼 다섯
군주 중 하나에 대항하기 위한 것으 로 추정되는 무기의 획득이 코앞까 지 다가왔다.
[태양신 라펠타의 결계에 의해 은 신이 해제되었습니다.]
[불꽃과 신성을 제외한 모든 속성 의 사용이 크게 제약됩니다.]
국왕이 머무는 곳인 만큼 특별히 더 보호가 되는 모양이지만 영민은 당황하지 않았다. 화염과 신성만을 우대한다? 아예 다른 힘들을 봉인해 버린다 한들 자신이 있었다.
아무리 그래봤자 그가 아는 한,인 간계는 결국 ‘8레벨 던전’수준이 고
작이니까. 다섯 군주와 군단 중에 인간은 없었다. 그러니 이미 9레벨 던전급 몬스터도 두렵지만은 않은 영민에게 이 정도 제약은 핸디캡으 로 보기에도 우스울 수밖에.
“침입자다! 폐하를 보호하라!!”
때문에 왕실근위대가 겹겹이 그를 둘러싸는 중에도 오직 국왕만을 똑 바로 쳐다보며 여유를 부릴 수 있었 다.
정확히는 그가 들고 있는 ‘태양의 검’을 바라보았다.
“바깥의 소란도 네 짓인가,사악한 종자여.”
왕국의 최고수들로 포위했기 때문 일까,아니면 그 스스로가 왕국 최
강의 존재이기 때문일까. 국왕이 근 엄하게 물어왔지만 영민은 그저 우 습기만 했다.
이거,얕보인 모양이군.
대답 대신 피식 미소를 지으며 힘 을 일으키자 놈들의 안색이 싹 달라 졌다.
“이단이다! 쳐라!!”
본 드래곤을 부리는 자가 너무나 순수한 신성력을 가지고 있어서? 아 니다. 이단이라는 이유였다. 자신들 이 사용하는 신성력과는 다른 기질 을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국왕은 즉 결 심판을 명했다.
“럭키 펀치!”
그 순간 영민의 주먹이 바닥을 때
렸다.
그 한 방에 수십 층이나 되는 건 물이 통째로 무너져 내렸다. 일점 타격에 대해서는 본 드래곤의 다크 브레스보다 강력한 일격. 건물 전체 를 붕괴시키고도 계속해서 뻗어나간 힘은 지하까지 연결시키고서야 흩어 졌다.
덕분에 태양신과 가장 가까이에 선 다는 이유로 최상층에 모여있던 국 왕과 근위대의 자세가 크게 흔들렸 다. 무너지는 건물 속에서 함께 추 락을 하니 좀처럼 정신을 차리기 어 려운 것이 당연하다.
잠시 영체화를 통해 무너지는 잔해 를 모조리 통과시켜버린 영민은 그
모습을 가만히 내려다보다가 아래를 향해 몸을 날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