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전 준비 ⑴
“아... 그랬어?”
네 사람으로부터 자초지종을 설명 들은 영민은 그저 머리만 긁적거렸 다. 자신은 그저 ‘이동 기술’을 사용 한 것 뿐인데 리치로 부활한 루티 커틀렛을 처리했다니. 새삼 행운의 위력이 무섭게 다가왔다.
“어쨌든 잘 됐네.”
고유 능력의 특수성 때문에 영민이 었어도 상대하기 꽤나 까다로웠을 텐데,이렇게 쉽게 잡을 수 있다면 땡큐였다.
그 어설픈 반응에 뭔가 허무해진 네 사람이었지만 일단은 영민의 복
귀에 더 없이 기뻐했다.
“그 동안 뭐한 거에요? 소식도 뜸 하고 가끔 스킬북이랑 아이템 보낸 거 외에는 연락도 거의 안했잖아요”
“나? 나야 뭐' 열심히 렙업 했 지.”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그 한 마디 면 충분했다.
레벨 업을 했다. 그것도 아주 열심 히!
다들 뭔가 부족한 표정이었지만 그 가 진짜 레벨 업에 열중했을 것이라 는 것을 알기에 질문을 바꿨다.
“그럼 이제 충분히 레벨 업 했어 요?”
“아마도?”
씨익 하고 웃는 것이 꽤나 만족스 러워보였다. 정말 뭔가를 얻긴 얻은 모양.
그렇다면 다행이라 생각하고 있을 때,깜박 했다는 둣 영민이 무릎을 치며 손을 벌렸다.
“아! 철우야. 갑옷 이리 줘봐.,,
“갑옷? 이거요,아니면 다요?”
“다. 착용 한 거 전부 다.” 의아했지만 철우는 장비를 모두 벗 어 넘겼다. 꽤나 오랫동안 사용해온 생명의 전사 세트. 생명의 돌을 잃 어 위력이 많이 떨어졌지만 ‘생명의 전사’라는 특수한 고유 능력을 지닌 그에게는 여전히 최고의 장비였다. 그런 장비들을 손에 든 영민은 인
벤토리에서 주섬주섬 무언가를 꺼내 더니 경쾌하게 외쳤다.
“조합!”
“헉!”
파앗-
붉은 빛이 번쩍거리더니 변화가 일 어났다. 그가 건넸던 생명의 장화가 다른 이들의 그것처럼 붉게 변하는 가 싶더니 은근한 빛까지 뿜어내는 것이다.
그 모습에 놀라우면서도 한편으로 는 걱정도 됐다. 자신의 ‘착용 제한’ 때문에 장착 할 수 없게 되는 건 아니겠지? 그런 걱정을 하는 사이, 나머지 장비들도 차례로 모습이 바 뀌었다.
“조합.”
그리고 마지막으로 생명의 갑옷. 그것까지 붉게 변하는가 싶더니 영 민이 한 번 더 조합을 외쳤다.
“어? 어??”
번쩍!
그러자 이번엔 갑옷에 박혀있던 생 명의 돌에 변화가 생겼다. 조각난 생명의 돌이 원상태로 돌아갔나 싶 더니,자세히 보니 그 안에 또 다른 붉은 기운을 품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기운 자체도 묘하게 바뀌었 다. 기존의 것이 순수한 생명의 힘 이었다면 이제는 마나가 뒤섞인,그 러나 생명력 자체는 오히려 기존보 다 높아진 알 수 없는 상태가 된
것이다.
“드래곤 하트랑 합쳤으니 쓸만 할 거야.”
“네? 뭐요?!”
영민은 별 것 아니라는 둣 말했지 만,그 말에 담긴 의미는 엄청나게 컸다.
[용의 숨결이 담긴 생명의 갑옷] [에픽]
에이,설마 농담이겠지? 공유된 아 이템 정보를 보고서도 얼떨떨해하며 장비를 회수한 철우가 멍청히 그것 들을 착용했다.
동시에 몸안에서 끓어오르는 농도
짙은 생명력.
그 순간,철우는 영민의 말이 거짓 이 아님을 깨달을 수 있었다.
“형,대체 어떻게 한 거에요?”
철우가 기가막혀 하는 사이,참지 못하고 먼저 나선 것은 민호였다.
“‘조합’했지. 드래곤의 비늘이랑, 또 드래곤 하트랑.”
하지만 돌아오는 답은 간단했다. 강화의 상위 콘텐츠인 ‘조합’을 얻 기 위해 무려 400레벨이라는 어마 어마한 레벨을 달성해야했고 각종 제작 스킬 숙련도를 최소 90% 이 상까지 만들어야 했지만 그에게는 충분한 시간이 있었다. 8레벨 던전 의 시간 배율이 그에게 충분하고도
남을 만큼의 여유를 제공한 것이다.
그 안에서 영민은 단순히 경험치 획득과 아이템 파밍 뿐 아니라 각종 재료의 채집과 생산직 노가다를 마 친 상태였다.
행운 Max의 효과로 금방 금방 숙 련도가 올라버리니 지루할 틈도 없 었다.
그렇게 레벨을 올리고,새로운 스 킬북을 익히고,제작 숙련도를 올리 고,코인을 모으다보니 시간이 훌쩍 흘렀다.
“저도! 저도 해줘요!”
“안 돼. 재료도 부족하고 같은 드 래곤의 비늘을 덧대봐야 효과도 썩 좋지 못하거든.”
“끄응.”
그렇게 말하니 민호도 더 할말은 없었다. 어차피 지금의 장비에 만족 하지 못하는 것도 아니었고.
간단한 문답을 몇 가지 더한 다음 에는 역으로 그들이 영민에게 이야 기를 들려줄 차례가 됐다.
영민이 레벨 업을 위해 어딘가로 사라진 이후 일어난 일들에 대해. 아이템과 스킬북이야 영민쪽에서 일 방적으로 보낸 것이었고 영민도 딱 히 이 시점에 무언가가 일어나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 탓에 그 동안 정보 수집에 소흘 했던 것이다.
8레벨 던전의 시간 배율을 생각하 면 최대한 지구에서 머무는 시간을
줄이고 던전에 입장하는 편이 효율 성 면에서 좋기도 했고.
그들은 아예 유재한까지 불러 이야 기를 나누었다. 그들도 대략의 정보 들은 가지고 있지만 길드장 대행을 맡으며 많은 일들을 처리하고,수많 은 정보를 모아온 재한만큼은 아니 라는 생각에서였다.
재한은 그들의 기대를 져버리지 않 고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놓았다. 그 의 입장에서는 영민에게 들려줄 잔 소리가 아주아주 많았으니까.
중간에 듣다 못한 영민이 길드 운 영에 대한 부분은 스킵하라고 이야 기한 탓에 속을 다 풀어놓지는 못했 지만 앉은 자리에서 다섯 시간이 넘
는 브리핑이 계속됐다.
그리고 마침내,루티 커틀렛의 등 장과 잠수에 대한 부분까지 이야기 가 넘어갔다.
“으음…、”
이야기가 깊어갈수록 영민의 표정 이 어두워만 졌다. 그들이 알지 못 하는 무언가를 아는 것일까? 이야기 가 끝이 나고도 한참이나 생각에 빠 져 헤어 나오지를 못했다.
“설마? 아냐. 아냐. 그럴 리가 없 지. 음,하지만 그 방법 밖에는".”
그것도 모자라 혼자 중얼거리기까 지 한다. 다른 이들은 들어도 모를 말들을 중얼거리더니 몇 번이나 표 정이 굳어졌다 풀리기를 반복했다.
뭔가 걸리는 게 있기는 한 모양.
모두가 초조하게 그 모습을 지켜봤 지만 영민은 뚜렷한 답을 내놓지 않 았다.
“일단은 확인 할 방법이 없으니 까.”
한 가지 방법으로 루티 커틀렛의 사념체를 끌어내는 것도 있긴 했다. 하지만 그것은 시도와 동시에 실패 로 끝나고 말았다.
영민이 ‘죽은 자들의 왕’ 특성을 이용해 그녀의 혼백을 실체화시키려 는 순간,그녀가 더 이상 영혼의 형 태를 유지 할 수 없다는 것을 확인 했기 때문이다.
오직 자신과 연인의 생을 갈구하는
사념체로서만 존재 할 수 있을 뿐이 었다.
그저 사랑하는 사람과 행복하게 살 기만을 바라던 그녀의 최후 치고는 꽤나 비참했다.
하지만 그냥 두었다면 수많은 사람 들을 학살하고,역천의 지배자의 밑 에 들어가 이용만 당했을 테니 후회 는 없었다. 오히려 이렇게 일찍 삶 과 집착에서 해방시켜주는 것이 그 녀를 위해 더 나은 일일지도 몰랐 다.
‘결국 그 놈에게도 소생 능력은 없 었으니까 말이야.’
강태성이 마주한 역천의 지배자의 고백에 따르면 놈에게도 죽은 지 오
래된 영혼을 부활 시킬 능력이 없었 다. 기껏해야 언데드화 시키는 정도 일까. 루티가 억지로 혼령을 붙들어 놓으면서 그 안에 담긴 일종의 데이 터가 꾸준히 손상되고 빠져나간 탓 에 애써봐야 ‘조작된 기억을 가진 언데드’를 얻을 수 있을 뿐인 것이 다.
그녀가 약혼자를 언데드로 붙들어 두기 전에 아이템 ‘피닉스의 꼬리’ 에 대해서만 알았어도 많은 것이 바 뀌었을 텐데.
안타까움에 짧은 묵념을 하고 영민 은 다시 세계에 눈을 돌렸다.
“다들 조심해요. 어딘가에 이미 9 레벨 던전이 있을 지도 모르니까.”
“예에?”
“그게 무슨 말입니까,대장.”
지도에 각 국의 던전 위치와 정보 를 띄우도록 지시한 영민이 이어 폭 탄 발언을 던졌다.
“그녀가 리치가 되어 나타난 게 마 음에 걸려요. 스스로 리치화를 한 것일 수도 있지만”.”
누군가의 힘이 개입했을 수도 있다 는 뜻이다.
리치화된 그녀의 모습과 수준으로 비추어 볼 때 그 누군가는 아마도 9레벨 던전에서 나타나는 어떠한 존 재일 터. 비록 숨이 끊어지고 망가 진 상태만 확인 할 수 있었지만 영 민이 본 루티의 잔해와 강태성이 보
았던 ‘역천의 지배자에게 되살려진 루티의 모습’이 비슷해 보인 까닭이 다.
최근 일어났다는 7레벨 던전 브레 이크도 어쩌면 루티의 탓만이 아닌 것이 아니었을까?
“뭐,어차피 한 판 붙어야 할 놈들 이긴 하지만.”
미래의 어떤 모습을 보는 듯한 멍 한 눈으로 허공을 응시하던 영민이 씁쓸하게 말을 뱉으며 다시 주의를 환기 시켰다.
“아참,민호야. 너 그 녀석은 만나 봤냐?”
“그 녀석이요?”
“륜-랜저드. 냉혈의 마법사라던
“아,그 재수 없게 생긴 자식? 형 이 그 놈을 어떻게 알아요?”
“뭐, 소문으로 들었지.”
영민이 언급한 것은 지난 3차 던 전 쇼크를 통해 각성한 강자들 중 하나였다. 이른 바 냉혈의 마법사, 륜-랜저드.
민호와 비슷한 연배인데다 마법사 라는 고유 능력의 형태까지 같아서 은근히 라이벌로 분류되는 인물이기 도 했지만 실제로도 성격이 영 맞지 않아 민호와 만나기만 하면 으르렁 대는 사이였다.
주로 민호가 방방거리면 륜-랜저 드가 촌데레처럼 구는 식이었지만
그 모습이 옆에서 보기에는 픽이나 재미있어서 갑자기 떠오른 것이다.
아무래도 아직 직접 만나보지는 않 은 모양.
영민은 이참에 다음 던전 공략은 그가 있는 지역으로 잡아볼까 하는 생각도 했다.
“그래도 다들 분발한 모양이네.”
데이터만 봐도 강태성의 미래와 비 교했을 때 몇 년은 빠른 성장 속도 였다. 물론 그만큼 던전 쇼크와 고 레벨 던전 등장 시기도 빨라지기는 했지만 이미 전체적인 헌터들의 수 준이나 숫자는 그때를 넘어설 정도 라 조금만 더 성장 시킬 수 있다면 다섯 군주 중 하나쯤은 힘으로 넘어
볼만도 하지 싶었다.
과거에도 용제를 잡기는 했지만, 그것을 온전히 힘으로 넘어섰다고 보기는 어려웠던 것이 사실이니까.
‘드래곤 슬레이어 같은 아이템이 더 필요해.’
문제는 용제를 제외한 나머지 네 군주에게 드래곤 슬레이어의 특수 능력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영민 자신은 이미 강태성을 넘어선지 오래이긴 했지만 그런 아 이템의 도움 없이도 다섯 군주를 상 대 할만한 강함을 손에 넣었다고 말 할 수 있을까?
다섯 군주를 모두,제대로 상대해 본 적 없는 상황에서 단정 짓기는
어려웠다.
때문에 영민은 당장의 7레벨 던전 브레이크를 수습하는 것보다,8레벨 던전의 브레이크나 있는지 없는지 모를 9레벨 던전을 걱정하기보다, 현상금 미션을 통해 다섯 군주를 상 대할 무기를 얻는 것을 더 중요하다 고 보았다.
드래곤 슬레이어와 같은 대 군주용 무기만 종류별로 모을 수 있다면, 이 막연한 불안감을 없앨 수 있을 것이라고 믿으며 전 세계의 현상금 미션 리스트를 추릴 것을 재한에게 지시했다.
무언가 일이 터지기 전까지,현상 금 미션들만 골라 초고속으로 돌파
하며 한 번 아이템을 모아볼 작정이 었다.
당장 강태성이 살던 시기에도 용제 를 상대할 드래곤 슬레이어를 제외 한 어떠한 방법도 추가로 밝혀지지 는 않았기에 어렵고 어려운 작업이 될 것이 분명했지만,행운이 있으니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한 편으로는 자리했다.
그렇게,다섯 사람은 7레벨,8레벨 던전을 공략하는 대신 비밀리에 저 레벨 현상금 미션을 골라서 우선 공 략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