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0화 - 루티 커틀렛 (3) >
회귀를 결정한 순간부터 강태성의 숙원 사업 중 하나이던 루티 커틀렛의 죽음이 허무하리만치 쉽게 일어나자 조금은 얼떨떨했지만 영민은 드레인으로 확인 사살을 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특성 ‘죽은 자들의 왕’을 흡수합니다.]
아니, 사실 쉽지는 않았다.
럭키 포텐이 아니었다면, 생각보다 고전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성역선포와 신성폭발의 콤보도 강력하기는 했지만 그녀가 감추어둔 수 역시 상당했으니까.
비록 상상도 하지 못했던 영민의 능력에 저항하느라 몽땅 사용해버렸지만 영민은 저절로 체득하게 된 ‘죽은 자들의 왕’을 통해 죽음의 정수와 영혼 봉인석을 만들기가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를 파악 할 수 있는 것이다.
더불어 그것을 위해 희생되었을 수많은 영혼들까지 헤아릴 수 있었다.
“한시름 던 건가.”
어떤 의미에서 루티 커틀렛은 다섯 군주보다도 두려운 존재였다. 그들은 최소한 죽음으로 안식을 주기라도 하지, 그녀는 연구와 재료라는 명목으로 사람들의 영혼을 강제로 가두고 고문하여 힘을 뽑아냈으니까.
그것을 막은 것만으로도 충분히 대단하고 훌륭한 결과라 할 수 있었다.
물론, 나중에 힘을 얻어 더 강해진 그녀와 상대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도 다행이었다.
“그래도 챙길 건 챙겨야지.”
가만히 그녀의 시체를 바라보던 영민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싸늘한 시체가 된 그녀의 옷이며 장신구들을 하나씩 벗기기 시작했다.
당연히 음흉한 목적은 아니었다. 그녀가 아무리 아름답고 매혹적이었다지만 시체와 이상한 짓을 하는 취미도 없었고 심장이 꿰뚫린 모습을 보고 있자니 얼른 아이템 수거를 마치고 싶다는 생각만 들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홀리에 맞아 불타버린 영혼 교환을 하기 전의 마크에게로 다가갔다. 녀석이 심장처럼 품고 있던 ‘생명의 돌’을 강제로 쥐어뜯었다.
생명의 돌은 벌써부터 녀석의 시체와 주변을 정화하고 땅에 뿌리내려 생명을 띄워낼 채비를 하고 있었지만 영민의 손에 들어가자 다시 제 속으로 힘을 갈무리했다.
‘오호?’
영민은 묵직하게 차오르는 생명력을 느끼며 그 힘을 가늠했다. 루티가 이런저런 연구를 하며 꽤나 소모했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여전히 힘이 충만했다. 그녀가 제대로 다루지 못했거나, 혹은 상상 이상으로 생명력이 응축되어 있었다는 소리다.
과연 이 힘을 철우가 얻게 되면 어떻게 될까? 불완전하던 생명의 돌을 얻었을 때도 그렇게나 강했는데.
어쩌면 버프를 받지 않은 상태의 자신보다 강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벌써부터 기대가 됐다.
“으음. 서둘러야 겠군.”
그러다 문득, 신성 폭발의 지속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확인했다.
물론 후유증이 온다해도 겨우 이정도의 던전 몬스터에 어찌 될 자신이 아니기는 했지만 또 다른 ‘난입’ 가능성을 생각할 필요는 있었다.
최근의 사태들을 통해 자신을 시기하고 상황에 따라 제거하려는 자들이 제법 있지 않은가?
영민은 즉시 귀환석을 사용해 던전을 탈출한 뒤, 나이트메어에 올라탔다.
악몽 탐색을 통해 없던 사람처럼 숙소로 사라져버렸다.
“형?”
“대장!”
영민이 숙소로 돌아오자 기다리고 있던 길드원들이 벗은 발로 달려와 맞이했다. 신성 폭발의 후유증 때문인지 힘이 많이 빠진 모습이지만 부축이 필요한 정도는 아니었기에 영민은 가볍게 손을 들어 그들을 진정시켰다.
그리고 메시지 기능을 사용해 민호에게만 은밀하게 자신의 상태를 전달했다.
얼마간 신성 계열 능력을 사용할 수 없고 능력에도 제약이 따른다는 사실을. 민호는 다시 가람과 철우를 불러 은밀히 그 내용을 전했고 그들은 굳은 표정으로 영민의 곁을 지키고 섰다.
물론 최대한 자연스러운 모습을 연출하려고 노력하기도 했다. 누군가 관심을 갖고 집중해서 살핀다면 뭔가 어색함을 느끼겠지만, 사실 그래도 큰 상관은 없었다.
영민에게는 그들이 있고, 그 밖에도 자신을 보호할 여러 장치들이 있었으니까.
“아참, 이거 받아라.”
“대장, 이건··?”
그때 문득 생각이 났다는 듯, 영민이 인벤토리에서 생명의 돌을 꺼내 철우에게 던졌다.
그 외형은 그 역시 이미 알고 있는 것이기에 철우가 깜짝 놀라 받아들었다.
영민이 이르길, 생명의 돌이 자신을 ‘완성’ 시킬 수 있는 마지막 조각이라 하지 않았나?
신주단지 모시듯 두 손으로 받아든 철우에게 영민이 눈짓을 보내자 그가 굳은 표정으로 그것을 사용했다.
사용법은 간단하다. 당장 장비하고 있는 갑옷 상의에 난 홈에 끼워 넣으면 그만이다.
특별한 접착제를 바른 것도 아니건만, 생명의 돌은 그의 갑옷인 ‘생명의 갑옷’과 일체가 되어 처음부터 하나였던 것처럼 붙어버렸다.
아니, 일체가 된 것은 그것만이 아니다.
‘스킬’의 형태로 존재하던 ‘생명의 갑옷’까지 함께 융합되었다. 이 역시 강태성의 기억에는 없던 현상. 영민은 그의 변화를 유심히 지켜보았다.
“우오오오!!!”
한바탕 생명력의 폭풍이 몰아쳤다. 그의 그릇 가득히 채워져 있던 생명력이 일순간 흘러넘치며 폭발한 것이다.
생명의 돌에 깃들어 있던 농축된 생명력이 그의 그릇을 부수고 다시 회복 시켰다. 그리고 그에 따라 철우가 가진 생명력의 그릇은 더욱 커지고 단단해졌다.
[농축된 생명력에 영향을 받았습니다.]
[생명력이 1,000만큼 영구히 증가합니다.]
“····뭐?”
생명력 1천이면 체력 스텟으로만 따져도 1백개다. 그걸 공짜로 올려줬다고? 그저 옆에 있다는 것만으로?
영민은 그 황홀한 변화를 넋 놓고 보다가 깜짝 놀라 살펴보다 민호와 눈이 마주쳤다. 그리고 그 변화가 자신에게만 일어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가람과 민호, 그리고 유재한에게까지 동일한 효과가 적용된 것이다.
[대기를 떠도는 농축된 생명력을 흡수합니다.]
[생명력이 1,000만큼 영구히 증가합니다.]
[대기를 떠도는 농축된 생명력을 흡수합니다.]
[생명력이 1,000만큼 영구히 증가합니다.]
[대기를 떠도는 농축된 생명력을 흡수합니다.]
[생명력이 1,000만큼····.]
하지만 남들과 똑같으면 행운 Max가 아니다. 주변 이들이 철우가 내뿜는 생명력에 단 한 번 영향을 받은 것과 달리 영민은 전신 모공을 열어 그것들을 빨아들였다.
고유 능력 ‘드레인’이 발동한 것이다.
한 번 탐욕을 드러낸 드레인은 주변 뿐 아니라 일대를 장악했다. 영민의 피부에 직접 닿는 기운 뿐 아니라 공간을 장악하며 진공청소기처럼 철우에게서 뿜어지는 생명력을 흡수하기 시작한 것이다.
[드레인 능력이 진화합니다.]
[‘드레인 필드’를 사용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조합’을 사용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덕분일까? 철우가 미처 소화하기 못하고 대기 중으로 뿜어낸 생명력을 모조리 먹어치우던 드레인이 진화를 하기에 이르렀다.
‘미쳤군.’
그러고도 멈추지 않은 채 계속해서 생명력을 흡수해댔다. 생명령의 입자 하나까지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 마음껏 탐욕하고 포식했다.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
“후우!”
한참의 시간이 흐른 뒤, 정신이 아찔 할 만큼 충만해진 생명력을 느끼며 철우가 깨어났다.
그리고는 영민을 향해 넙죽 엎드렸다.
“감사합니다. 대장!!”
각성 후부터 지금까지, 자신이 겪은 모든 변화가 영민의 덕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스스로에게 각인 시키며 그에게 충심을 전한 것이다.
철우를 ‘팀’의 멤버로 뽑은 것도 바로 이런 점 때문이었다. 변하지 않는 올곧은 마음과 의리. 어떤 상황에서도 결코 배신하지 않는 그의 심성을 믿었기 때문에.
그의 덕에 오히려 정신이 없어진 것은 영민이었지만 씨익 웃으면서 철우를 일으켰다. 생각 같아서는 영민이 그에게 절을 하고 싶을 지경이었지만 그저 어깨를 툭툭 쳐주는 것으로 대신했다.
“형, 어때요? 뭔가 파워 업 한 기분이 들어요?”
“철우야. 고맙다. 네 덕분에 우리도 뭔가 이득을 본 것 같다.”
“가람형, 그거 생명력 올라간 거에요. 이거 어지간한 체력 상승용 아이템보다도 많이 올라갔는데요? 히히.”
뒤 이어 민호와 가람이 끼어들어 그를 축하해줬다. 가람의 이야기에는 민호가 신이 나서 즉시 답을 해줬고 영민도 미소로 그 말에 동의했다.
이제 철우의 답만 남은 상황.
스무 개의 치아를 보이며 씨익 웃어보인 철우는 주먹을 쓰윽 앞으로 내밀어보이며 대답했다.
“이제 황홀한 강타를 연속으로 쓸 수 있게 됐지! 위력도 더 올라갔고, 생명력도 몇 배쯤 상승한 것 같은데?”
“헐. 대박.”
그 말에 민호가 질렸다는 표정을 지었다. 한 방 한 방이 필살기 급의 위력이라 쿨타임이 있는 것이 당연하게 느껴지던 황홀한 강타를 연속으로 쓸 수 있다고? 그것도 더 강력하게? 이렇게 되면 약점이 없는 것 아닌가? 게다가 뭐? 생명력이 몇 배나 상승해? 그
렇지 않아도 끝이 보이지 않던 무지막지한 생명력인데?
괜히 영민이 그를 일컬어 ‘최강의 딜탱’이라 했는 지를 비로소 깨닫게 된 민호였다.
“어후, 이쯤 되면 그냥 최강 아니에요?”
이전에는 그나마 시간을 끌수라도 있었는데 이제는 비벼 볼 수도 없겠다는 생각에 민호가 절레절레 고개를 내저었다. 이래서야 인류 최강이자 지상 최강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겠다.
그렇게 생각하던 민호의 시선이 저도 모르게 스윽 옆으로 옮겨갔다. 영민을 쳐다보았다.
혹시, 이제는 영민도 이길 수 있지 않을까?
이전에는 대련을 해도 일방적으로 두드려 맞기만 하던 철우였지만 이제는 다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생각과 시선을 읽었는지 영민이 가람과 민호를 슥 둘러보더니 마지막으로 철우에게 시선을 옮기며 입을 열었다.
“좀 있다가 대련 한 번 할까?”
“으음, 괜찮겠습니까. 대장?”
영민이 먼저 대련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아직 후유증이 남아있어 당장은 무리지만 회복이 되는 대로 한 판 붙어보자고 한 것이다.
그 제안에 철우가 왠지 머뭇거렸다. 평소와는 조금 다른 형태의 망설임이다. 평소에는 일방적으로 두들겨 맞는 것이 싫어서 그랬다면 지금은 혹시나 자신이 영민을 쓰러뜨릴까 걱정하는 것이다.
만약 자신이 영민을 이길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면 이 관계가 깨어질까 두려운 것이다.
가끔 대련을 빙자한 구타가 벌어지기는 해도, 그는 지금 이 관계가 너무 좋았다. 가능하다면 영원히 이들과 이 상태로 함께하고 싶을 정도로.
그의 표정과 행동에서 그 마음을 읽어낸 영민은 피식 웃음을 흘렸다.
쓸데없는 걱정을 하기는.
예상 범주를 뛰어넘는 성장을 보인 철우이지만 자신 역시 어마어마하게 강해졌다. 그리고 철우 덕분에 상승한 체력만 수만에 이르렀다. 어쩌면 철우가 상승한 생명력보다도 많은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이 정도라면 방어구 없이 황홀한 강타를 맞아도 웃으며 받아낼 수 있지 않을까 싶을 정도다.
일단은 여기까지. 영민에게도 휴식이 필요했고, 철우에게도 새롭게 얻고 익힌 것들을 수습할 시간이 필요했기에 일행은 하루 쉬고 나서 재집결 장소인 라스베가스로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