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행운 MAX-133화 (133/177)

< 133화 - 배후 (2) >

“정말 미국이 바로 뒤따라 오는 거지?”

목적지에 가까워질수록 영민과 다른 세 사람은 말이 적어지는 반면 강중만은 불안한지 말이 많아졌다. 영민에 대한 신뢰의 문제였다.

사실 그 스스로도 S등급의 헌터인 만큼 어느 정도의 일반 병력과 헌터들은 간단히 찜 쪄먹을 수 있는 실력을 지녔지만 미국과 프랑스 팀까지 개입했다는 점에서 뭔가 심상치 않은 기류를 읽은 것이다.

불안하기는 다른 세 사람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영민에 대한 강한 신뢰는 별 다른 말이나 기댈 구석을 필요치 않도록 만들었다.

미국 팀이고 프랑스 팀이고 영민이 가장 강력한 무기인데 무엇을 걱정하겠나.

다만 영민에게 쉽지 않은 전투가 될 것이라는 사실을 전해들은 터라 언제든 대응 할 수 있도록 몸을 긴장시키는 중이었다.

“조용히. 이 상태로 들어간다.”

그리고 마침내 목적지인 적의 본거지가 가까워졌을 때, 영민은 소란을 피우는 대신 잠입을 선택했다.

언젠가 중국의 S등급 헌터로부터 흡수했던 특성, 집단 은신이 힘을 발휘하며 고속으로 이동하는 다섯 사람이 기척도 없이 건물 안으로 이동했다.

일반 화기와 마나석 무기까지 지닌 인원들이 건물 주변을 지키고 있었지만 전혀 소용이 없었다. 영민이 바람의 정령을 부려, 그들 주변의 소음과 미풍까지 조절하고 있었기에 바로 옆으로 엄청난 속도의 인원들이 달려가는데도 까마득히 모른 채 침입을 허용했다.

‘진짜 길은··이쪽이었지.’

안으로 들어온 영민은 일단 로비에서 멈춰섰다. 건물은 위로 꽤나 크게 솟은 고층 빌딩이었고, 오르는 방법으로는 엘리베이터와 계단이 있었지만 그의 시선은 그 어느 곳도 아닌 다른 장소로 향했다.

바로 안내 데스크 뒤편에 위치한 직원 휴게실.

정확히는 그곳에 연결되어 있는 지하계단이었다.

화장실 쪽에도 지하로 통하는 숨겨진 길이 있긴 하지만 그곳의 문을 열면 아래쪽에서도 알게 된다. 집단 은신 능력 때문에 모습이야 감춰지겠지만 은신 계열의 헌터가 잠입했다는 사실은 충분히 알 수 있을 터. 때문에 아래쪽에 따로 연락이나 신호가 가지 않

는 직원 휴게실을 택한 것이다.

영민이 수신호를 하고 앞장서자 나머지 네 사람도 발을 맞춰 이동했다.

“!!”

영민이 직원 휴게실 안으로 들어선 것과, 안에 있던 자들이 눈을 부릅 뜬 채 목숨을 잃은 것은 거의 동시였다.

일반인이라면 자신이 당했는지조차 알 수 없을 만큼 쾌속의 일격에 그들을 난자하고 지나간 것이다.

그 증거로 안에 있던 세 사람 중 한 모금의 숨조차 토해낸 이가 없었다.

치이이익

영민은 쓰러진 세 구의 시신 위로 차원 상점에서 구입한 화골산을 부었다. 시신 자체를 녹여 흔적을 없애주는 약품.

흙 바닥이 아닌 이상 약간의 흔적이 남기는 하지만, 특별하거나 크게 남는 것은 아니어서 옷가지는 적당히 인벤토리에 넣어버리고 흔적은 발로 비비니 알아보기 어렵게 변했다.

“가자.”

영민이 앞장서서 비밀 통로를 열었다. 단순한 덮개 형식으로 되어 있는 문이었는데, 워낙 주변이 어지럽고 교묘해서 세밀히 살피지 않으면 보고도 알아차리기 어려운 통로였다.

과연 적의 본거지 답다고나 할까.

하지만 아무도 영민에게 어떻게 이 길을 알았는지에 대해 묻지 않았다. 세 사람은 말이 필요 없는 굳은 신뢰 때문이고, 강중만은 그의 거침없는 행동에 말을 잃은 탓이었다.

기껏해야 몬스터들과의 전투 정도나 해오던 그에게 이런 잠입은 다른 세상의 이야기였다. 물론 그 까짓 것, 하면 못 할 것도 없다고 생각하기는 했지만 이렇게 능숙하게 할 수 있을까? 부정적인 생각이 먼저 들었다.

비밀 통로의 개방부터 다시 닫아 눈속임을 하는 것까지. 영민의 행동은 혹시 첩자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만큼 자연스러웠다.

덕분에 위에서 알아차리기까지는 제법 시간이 걸릴 터였다. 일단 사라진 세 명을 찾는데 시간을 쓸 것이고, 그 다음 의심과 함께 주변을 조사하겠지.

‘그때는 이미 게임 오버겠지만 말이야.’

그때는 너무 늦을 터였다. 미국이, 프랑스가 그들을 덮쳐올 테니까.

좁은 길목을 앞장서서 휘휘 앞서 나간 영민은 능숙하게 길을 찾아 아래로, 아래로 걸음을 옮겼다.

지하 3층. 지하 4층으로의 진입을 눈앞에 둘 때까지 조금도 멈추지 않고 움직였다.

“왜, 무슨 일이지?”

갑자기 영민이 멈춰 선 채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자 불안해진 강중만이 작게 속삭였지만 영민은 가만히 검지를 입에 가져갈 뿐, 확실한 대꾸를 해주지 않았다.

왜지? 왜일까? 고민할 새도 없이, 그 이유가 여실히 드러났다.

콰광! 콰과과광!

투다다다다다-

위쪽에서 한바탕 소란이 일어난 것이다.

아마도 미국와 프랑스 팀의 습격이었다.

총기와 마나 공격의 소리가 빗발치는 가운데 지하에 있던 인원들이 황급히 조를 짜서 위로 올라가자 영민은 그제야 멈췄던 걸음을 서둘렀다.

신속하게 4층까지 돌파해버렸다.

“여기서부터는 뚫고 간다. 적의 수뇌를 잡으려면 최대한 빨리 움직여야 하지만 안전이 최우선이니까 조심해.”

지하 5층을 목전에 두고 영민이 일행에게 경고를 했다. 이미 지하층부터는 헌터들의 영역이었다. 지하 3충과 4층에는 B등급 헌터들이 다수 몰려 있었고.

그 말인 즉, 이제부터는 A등급 헌터들의 거처일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었다.

“가자.”

영민은 아예 은신을 풀어버리고 안으로 뛰어들었다.

어차피 이곳에는 감지 능력이 펼쳐져 있었고, 그 상황에서 은신을 믿거나 유지하는 것은 괜한 마나 낭비에 불과했으니까.

“모조리 죽인다! 포지션 짜고 쓸어버려! 한 놈도 남기지 마라!”

그리고, 영민은 그들을 모조리 스치고 어느 지점을 향해 달려갔다. 눈 깜짝할 사이 돌파 당한 적들. 놈들의 배후이자 지하 6층으로 이동하는 통로를 막아선 영민은 다시 놈들을 향해 역으로 덤벼들었다.

“소환, 나이트메어!”

그리고 만약을 위해 나이트메어를 입구에 세워두었다. 그 자체로 어지간한 A등급 헌터는 장난감처럼 가지고 놀 수 있는 전투력을 지녔으니 지하 6층으로 오가는 놈들을 막아줄 터였다.

“침입자다!!”

“죽여!!”

그때부터 무자비한 학살이 시작됐다. A등급 이상의 고위 헌터 보유 수가 그리 많지는 않다고 알려졌지만 사실은 달랐다. ‘용병’들을 고용해 그 수가 이 층에만 무려 일백이 넘는 것이다.

하지만 학살을 자행하는 쪽은 오히려 한국 팀이었다.

일단 영민 쪽은 말할 것이 없었다. +13 봉인의 드래곤 슬레이어는 닿는 모든 것들을 조각내버렸다. 무기든, 몸이든, 이능이든. 종류를 가리지 않고 닿는 즉시 자르고 파괴해버렸다.

검술 또한 빠지지 않는다. 강태성이 실전으로 갈고 닦은 검술과 전투 센스는 영민에게 그대로 이어져 빛을 발했다.

“으랏차차!”

철우와 가람, 민호도 분발했다. 대표 공격 스킬인 황홀한 강타의 쿨타임이 적지 않은 철우는 뛰쳐나가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며 민호를 지키는 포지션에 섰다. 쿨타임이 돌아오는 족족 가까이 다가온 적 하나를 떡으로 만들어버리고, 민호가 마법을 사용 할 수

있는 여건을 충분히 벌어줬다.

철우의 비호를 받는 민호는 마음 놓고 마법을 난사했다. 지하라는 지형적 여건 때문에 파괴력이 강한 폭발형 마법들은 사용하지 못했지만 바람 계열이나 전격 계열 정도는 얼마든지 사용이 가능했다. 그 마법 한 방 한 방이 터질 때마다 적어도 세 명 이상이 쓰

러지거나 치명상을 입었다.

그런 와중에 가람은 오랜만에 날뛸 기회를 얻었다. 이런 난전이야 말로 그가 가장 강력한 힘을 발휘 할 수 있는 전장이었다.

나와 상대들의 간격을 완벽히 간파해낸 그는 난전 상황에서 단 한 번 공격에 스치지도 않고 적들을 일방적으로 쓰러뜨려갔다.

“미친··.”

이쯤되니 무혼을 각성시켜 한참 날뛰던 강중만조차 질려버릴 정도다. 그저 운이 좋지 않았던 것 뿐이라 생각했었는데, 힐름의 전력이 이 정도였나?

자신의 길드원들과 비교해봐도 크게 밀릴 것 같지 않은 상대들을 압살하고 있는 모습을 보니 같은 편인데도 모공이 송연해졌다.

지금의 ‘팀’은 한시적일 뿐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만약 이 힘이 자신들에게로 향한다면 막을 수 있을까? 아니, 살아남을 수 있을까? 두려움이 솟아났다.

“가자.”

정신을 차리자 무려 일백이 넘던 A등급 헌터들이 모두 싸늘한 주검으로 변해 있었다.

자신이 손을 쓴 것은 고작해야 열댓 명 정도 인 것 같은데··.

놀랄 새도 없이 영민들은 다음 층으로 내려가 버렸다.

“똑같이 간다.”

강중만이 따라 내려갔을 때, 이미 영민은 저만치를 달려가고 있었다.

보스만 공략하면 장땡인 던전 공략이었다면 이들을 무시하고 내려가 수뇌부들만 잡았겠지만 이것은 던전도 아니고 게임도 아니었다.

그들이 잠입한 것은 미국과 프랑스 팀의 습격보다 전이었으니, 그들의 소란으로 정신이 팔린 사이 정보를 차단하고 놈들을 잡아내겠다는 것이다.

때문에 영민은 좀 더 속도를 높였다.

‘어우, 정리 할 시간이 없네.’

그 와중에 드레인은 정말로 열심히 일을 했다. 일백개 이상이나 되는 A등급 헌터들의 스킬들을 모조리 흡수해냈으며 간혹 강화계의 경우 스텟의 형태로 흡수가 되기도 했다.

이것만 모아서 정리를 하는데만도 시간이 한참 걸릴 지경.

일단은 생각 저 편에 치워두고 눈 앞의 적들에 집중했다.

“조심해! 이것들, ‘인형’이다!”

6층은 5층과 마찬가지로 A등급 헌터들이 기거하는 장소였지만, 뭔가 분위기에서부터 이전 층의 놈들과 다른 느낌을 풍겼다.

뭔가 찜찜한데. 생각하며 검을 휘두른 영민은 가장 가까이에 있던 놈을 베는 순간, 그 차이를 알아차렸다.

놈들은 바로 매드 사이언티스트가 신체를 조작한 ‘인형’들인 것이다. 묘하게 위화감이 느껴지던 눈빛과 움직임은 바로 그 때문이었다.

“!!”

“?”

영민의 그 말에 강중만을 제외한 모든 이들이 알아차렸다.

그리고 그 순간, 놈들이 본색을 드러냈다.

투다다다다다-

기계로 된 몸 어딘가에서 화기를 드러내 쏘아내기 시작한 것이다. 일반 화기도 아니고, 마나석 무기도 아니었다. 헌터의 마나를 이용한 새로운 형태의 무기였다.

약 오십에 가까운 A등급 헌터들이 내뿜는 마나탄의 위력은  그야말로 무시무시했다. 가람과 민호가 얼른 철우의 뒤로 숨고 강중만은 화들짝 놀라 가지고 있던 레전드 등급의 방패를 일깨울 정도였다.

“성역 선포!”

영민은 어쩔 수 없이 성역 선포를 선언했다. 굳이 이것이 아니라도 잡지 못할 수준은 아니지만, 빠르게 제압하기 위해서는 이 방법 밖에 없었다.

대지가 신성한 빛으로 물들며 전신에 힘이 넘쳐 흘렀다. 놈들 중 일부가 내뿜는 미세한 독쯤은 거뜬히 이겨낼만한 내성이 몸안 세포 구석구석 쌓이기 시작했다.

“조져버려!”

영민의 외침에 모두가 힘을 끌어내기 시작했다. 상대들 역시 개조를 통해 육체적 능력이 크게 높아졌고, 고통마저 잊은 채 덤벼드는 터라 매섭고 까다로워졌지만 압도적으로 벌어진 능력의 차이를 유감없이 발휘하며 짓뭉개버렸다.

치이이익

피 대신 강력한 독액을 뿜으며 죽는 놈들도 허다했지만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그들에게는 어떠한 독도 금세 해독시키고, 치료 할 수 있는 최상급의 포션들이 몇 꾸러미나 있었으니까.

인벤토리를 가진 민호 뿐 아니라 영민이 ‘아공간’ 스킬북을 선물한 덕분에 가람과 철우 역시도 제약 없이 포션을 사용했다.

‘좀 더 업그레이드 되긴 했군. 그 사이 발전 한 건가?’

그렇게 날뛰어대는 세 사람의 활약을 지켜보던 영민의 표정이 살짝 굳어졌다. 여전히 압도하고 있었지만 매드 사이언티스트의 기술력이 더욱 발전했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본래의 미래보다도 빠른 성장세였다. 이대로 두었다가는 얼마나 발전하게 될지 알 수

가 없는 상황. 영민은 서둘러 놈을 끝장 내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드래곤 슬레이어를 더 강하게 휘둘렀다.

< 133화 - 배후 (2) > 끝

ⓒ 갈드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