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9화 - 보이지 않는 적 (1) >
던전 내부에 보름쯤 더 머물렀다면 뭔가 수작이 시작되었을 지도 몰랐다. 하지만 4일 하고도 반나절이라는 애매한 시점에 던전을 클리어하고 나왔기 때문에 다른 자들도 감히 수작을 부릴 수가 없었다.
던전의 스타일상 최초 클리어가 어렵다고 판단한 일부 길드가 아예 안전을 최우선 과제로 삼고 클리어에 나선 덕이다. 심지어는, 아직도 던전 내부에서 공략을 진행 중인 길드도 있었다.
“정말로 7레벨 던전을 단 4명이서 클리어 하신 겁니까?”
“내부는 어땠습니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해외에서는 세계 랭킹에 드는 일부 길드를 제외하면 단일 길드로 클리어하기 어렵다고 이야기했는데요.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러니 대한민국 뿐 아니라 세계의 관심이 집중되는 것이 당연했다. 국민들은 그들이 대한민국의 소속이라는 사실만으로 어깨가 으쓱거렸고 국뽕에 가까운 찬양 글들이 수두룩하게 올라오면서 국민 영웅 쯤으로 포장이 되었다.
영민도 그것을 굳이 마다하지 않았다. 그들이 관심을 받을수록 어설픈 수작이 줄어들 것이기 때문이다.
대신 작정하고 뒷공작을 펴는 자들은 더 늘어날수도 있지만 그런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받은 만큼 돌려주면 그만이니까.
물론 7레벨 던전을 단 네 명이서 공략한 이상, 이제 숫자가 적다고 섣불리 덤빌 놈들도 없을 테지만.
이왕 난리가 난 거, 영민은 분위기를 더 잡기 위해 값비싼 치료 계열의 포션 몇 병을 기부하기까지 했다.
질병 치료와 회복 계열의 포션은 재료비는 적게 들면서 일반인들에게 가장 크게 다가오는 종류라 홍보 효과는 끝내줬다.
“형, 저 그거 한 번 써보면 안 되요?”
어쨌든 대한민국 최초 클리어로 떠들썩해진 덕분에 급하게 마무리가 된 대한민국 대표 선발전은 힐름이 길드전 우승과 개인전 1, 2위를 싹쓸이하며 상품까지 몽땅 휩쓸어갔다.
길드전과 개인전 2, 3위 상품은 별게 없었다. 아니, 정확히는 꽤 대단한 물건들이긴 했지만 돈만 있으면 충분히 구할 수 있는 그런 물건들이었다.
때문에 정말로 희귀한 것은 바로 이 아이템, 전천사의 광익 뿐이었다. 모두가 관심을 보이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이 물건은 이름 그대로 ‘빛의 날개’ 형태를 한 비행 아이템이다. 착용자의 신체 일부처럼 빛의 날개가 돋아나 자유자재로 비행이 가능토록 해
주는 아이템.
사실 나중으로 가면 보다 성능이 뛰어난 ‘대천사의 광익’이나 ‘악마의 날개’ 따위도 등장하지만 아직 7레벨 던전도 몇 번 클리어 되지 않은 시점에서 ‘천사 계열’ 몬스터를 사냥해 극악한 확률로 얻을 수 있는 이 아이템은 무척이나 값진 것이었다.
당연히 영민도 탐이나는 물건이다. 성능이 썩 마음에 들지 않긴 하지만 ‘탑승’을 해야만 하는 나이트메어보다는 이쪽이 더 편리했으니까.
탈부착시에 적지 않은 고통을 수반하기는 하지만 다행히 귀속형 아이템도 아닌지라 민호도, 철우도, 가람도 한 번쯤은 사용해보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럴래?”
그들의 호기심을 영민도 말리지 않았다. 사용한다고 닳는 것도 아니고, 흔쾌히 전천사의 광익을 민호에게 건네자 철우와 가람도 곧바로 줄을 섰다.
“으으윽.”
‘장착’을 외치자 광익이 날개뼈에 뿌리를 내리며 상당한 고통을 가져왔다. 뼈가 시린 고통이지만 참지 못할 정도는 아니다.
한껏 인상을 찌푸린 민호는 곧 자신이 날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에 기뻐하며 고통을 잊어버렸다.
그리고 힘껏 점프해 날개를 퍼덕거렸다.
“어? 어어??”
꽈당!
하지만 보기 좋게 공중제비를 돌아 바닥에 쳐박혔다. 혹이 날 만큼 거창한 곤두박질이지만 그 정도면 다행이다. 심한 경우 목이 부러져 죽는 이들도 있었으니까.
“이잇!!”
오기가 생긴 민호는 몇 번이고 다시 날아올랐다. 그리고 매번 균형이 뒤집혀 땅에 쳐박혔다.
“으아아, 포기! 포기 할게요! 으으으으.”
그렇게 메다 꽂히기를 수십 번. 결국 민호는 항복을 선언했다. 그 뒤로 철우와 가람이 차례로 도전을 했지만 번번이 실패하기는 마찬가지. 그나마 체력이 좋은 철우가 뚝심 있게 버티긴 했지만 더 많이 시도를 한다고 성공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핵심은 요령을 터득하는 것.
모두가 항복하고 반납한 전천사의 날개를 장착한 영민은 그들을 비웃으며 서서히 날아올랐다.
비틀
기억으로만 알고 있는 탓인지 영민 역시 날아오름과 동시에 비틀 거렸다.
“우씨! 거봐요, 어렵다니까!!”
그 모습에 민호가 억울함을 토해내며 소리쳤지만 그의 기대와 다르게 영민은 곧 능숙한 모습으로 비행을 하기 시작했다.
“어? 이게 아닌데··.”
심통과 억울함이 뒤섞인 표정.
그러나 이미 더 까다로운 대천사의 날개를 사용해 본 경험이 있는 강태성 덕분에 영민은 체면을 구기지 않고 익숙하게 비행에 적응 할 수 있었다.
“나쁘지 않네.”
나이트메어의 비행 능력보다는 느렸지만 영민은 자력으로 날 수 있다는 것과 순간 출력이 나쁘지 않다는 사실에 만족했다.
이거라면 굳이 ‘허공 도약의 부츠’를 얻을 필요가 없었다.
부츠 계열 아이템 중에서도 옵션은 구린 편이지만 허공을 도약할 수 있다는 장점 하나 때문에 옵션을 포기해가면서 사용했던 아이템이지만 전천사의 광익에 조금만 숙달되면 굳이 필요치 않았기에 장비 하나만큼의 옵션을 버는 셈이었다.
이것을 당장 얻을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지 않아 대체품을 생각하지는 못했지만 꽤나 이득을 보았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아졌다.
그렇게 7레벨 던전에서 새롭게 얻은 아이템들을 분류하고 정리하며 소소하게 시간을 보낸 네 사람은 이틀 간 휴식을 더 취하다가 세계 헌터 대회 참석을 위해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이것들 봐라?”
헌터 세계 대회가 열리는 라스베가스까지는 장장 11시간에 달하는 긴 여정이었다.
한숨 눈을 붙이고 일어나도 한참의 거리가 남아 있는, 망망대해를 지나야만하는 장거리 비행.
모두가 잠이 든 비행기 안에서 영민이 번뜩 눈을 부릅떴다. 그리고 불쾌감을 드러내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그의 시선이 방향은 태평양 한가운데에 떠 있는 인공의 섬.
정확히는 어떻게 만들었는지 아무도 알지 못하는 그 곳에서 무언가를 준비하는 일단의 무리들이었다.
헌터는 아니다. 헌터 특유의 마나를 풍기는 이는 없었다.
민호나 가람, 철우가 알아차리지 못한 것도 바로 그 때문이었다. 하지만 영민의 감각까지 속이는 것은 무리였다.
이미 강태성의 기억을 통해 ‘마나석 무기’의 미세한 파장까지 포착할 수 있게 된 영민은 수십 킬로미터 전방에 숨어 무언가를 꾸미는 놈들의 기척까지 포착하고 있었다.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비행 내내 감각을 열어두고 있던 그였다.
“소환, 나이트메어.”
영민이 등에 오르자 나이트메어가 어둠이 되어 기체를 통과했다. 특수 스킬은 아니지만 유령마가 할 수 있는 것을 나이트메어가 하지 못할 리는 없었다. 혼령질주와 비슷하지만 단지 유체화 능력만을 사용한 나이트메어는 기체 외벽을 가뿐히 통과한 뒤
목적지를 향해 빠르게 비행했다.
그저 비행을 하는 것 뿐인데도 혼령질주만큼이나 빠른 속도였다. 과연 비싼 값을 한다고나 할까.
나이트메어의 승차감에 만족스런 미소를 지우기도 전에 목적했던 인공 섬에 도착했다.
“잠수함 같은 건가?”
“누구냐?!”
발로 톡톡 건드려보니 땅이 아니라 금속이었다. 마나석을 이용한 개조품인 듯 한데, 일종의 잠수함쯤 되는 모양이다.
갑작스레 등장한 영민을 보고 놀란 이들이 황급히 총구를 그에게 겨누었지만 일제 사격을 한다한들 눈 하나 깜짝할 영민이 아니다.
지금의 영민은 그야말로 슈퍼맨.
정확히 눈을 노리고 총을 쏴도 눈꺼풀에 막혀 총알이 튕겨나갈 지경이다.
제 아무리 마나석 무기라 해도 마찬가지였다. 당장 +10강 이상 강화된 방어구 덕분에 사람이든 몬스터든 B등급 이하로는 생채기조차 내지 못하니 최상품이라 해도 기껏해야 한 두발 정도 A등급 수준의 위력을 내는 것이 고작인 마나석 무기가 두려울 리
없었다.
“쏴버려!!”
투다다다다다-
피융-
콰광!!!
누군가의 한 마디 외침에 한바탕 소란이 일어났다. 그들이 들고 있던 무기들이 일제히 마나를 내뿜은 것. 일반 화기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치명적인 위력이 쏟아졌지만 영민은 이미 그 자리에 있지 않았다.
“비행기를 노린다라··. 누구 짓이냐?”
항공기를 노리는 것이 분명한 간이 미사일 발사대 위에 올라있었다.
“미친!!”
“최상위 헌터··!”
“뭐해? 같이 쏴버려!!”
뒤늦게 그를 발견한 놈들은 비명과 함께 발악을 했지만 함부로 미사일을 향해 무기를 발사 할 수는 없었다.
대신, 미사일 째로 쏘아버리려 시도를 했다.
“그, 그게. 이미 발사 버튼을 눌렀습니다만··.”
“뭣?!”
치이이익-
하지만 상황은 더 끔찍해졌다.
대장 쯤으로 보이는 자의 외침에 당황하며 대답하는 부하. 미사일 발사 버튼은 이미 눌러졌고, 가만보니 미사일의 하단 로켓 점화부근에 시뻘건 불꽃이 솟아 있는 것이다.
이미 발사가 된 미사일을, 영민이 발로 짓눌러 억지로 막고 있었다.
“거기 딱 서있어라.”
“뭐, 뭣?!”
우웅-
영민이 가볍게 손을 휘젓자 놈들 중 일부의 주위로 투명한 막이 씌워졌다.
강력한 보호의 힘을 담은 그레이트 실드.
그것을 통해 몇 명의 안전을 확보한 영민은 그대로 발을 떼며 솟우치는 미사일을 후려쳤다.
콰과과과과광-!
대폭발.
미사일이 그 자리에서 폭발하며 일대가 쑥대밭이 되었다.
인공 섬의 역할을 하던 잠수함 또한 심각한 타격을 받아 고철덩이가 되었고 심해를 향해 추락하기 시작했다.
살아남은 것은 오직 그레이트 실드의 보호를 받던 일부의 인원 뿐.
그들의 눈에 폭연을 뚫고 나타난 영민의 모습이 들어왔다.
“괴물··!”
“자, 이제 이야기를 시작해볼까? 빨리 대답하는 편이 좋을 거야. 태평양 한 가운데에 빠져죽기 싫으면.”
헌터라해도 태평양 한 가운데에 버려지면 살아남기는 힘들다. 아무리 운이 좋아도 이런 곳을 지나가는 배에게 구조되기를 바라는 것은 무리였고 그때까지 버틸 수도 없을 테니까.
그런데 그들은 일반인이었다. 마나석 장비를 몇 개나 가지고 있긴 했지만 이런 상황에 도움이 될만한 물건들은 아니다.
영민이 구조해주지 않는다면 꼼짝없이 익사를 해야 할 판.
마음의 결정을 내리기도 전에 풀려버린 보호마법 때문에 물을 잔뜩 먹은 놈들은 앞다투어 입을 열기 시작했다.
“말, 어푸! 하겠, 흐업!, 습··.”
푸쉬쉬쉭-
그때였다. 놈들의 텅빈 머리에서 난데없이 연기가 나더니 모두가 눈을 까뒤집고 죽어버렸다.
“이건····.”
다른 사람이라면 모르지만 영민은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것이 이곳을 지켜보는 누군가의 원격조종으로 인한 것이라는 사실을.
얼른 시체 하나를 건져 살핀 영민은 고개를 저으며 다시 바닷속으로 내던졌다. 의심가는 것은 있는데, 증거로 삼기에는 부족했다.
이 방식을 주로 사용하는 것은 매드 사이언티스트와 그의 기술을 사들인 이슬람 무장단체들이지만 꼭 그들만의 방식이라고는 하기 어려운 것이다.
나중이 되면 더욱 더 활성화되는 방법이기도 하니 의심만 가능할 뿐이다.
“어쩔 수 없군.”
더 이상 기감에도 잡히는 것이 없는 것을 확인하자 영민은 다시 나이트메어에 올랐다. 비행기로 돌아왔다.
마나석 무기를 사용하지 않은 어떠하 공격 시도가 있을 수도 있지만 설혹 감지해내지 못한다 해도 핵 쯤을 사용하는게 아닌 이상 영민이나 다른 일행들이 죽게 될 일은 없을 테니까. 아, 유재한 정도는 죽을 수도 있으려나?
조금 찝찝한 마음을 안고 비행기에 오른 영민은 몇 시간 뒤 공항에 무사히 안착했다.
< 129화 - 보이지 않는 적 (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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