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8화 - 럭키 포텐 (3) >
뻐엉
도저히 주먹과 망치가 부딪힌 타격음이라고 생각되지 않는 굉음이 장내를 지배했다.
마왕의 힘으로 터질 듯 부풀려진 놈의 근육이, 영민의 주먹과 맞닿는 순간 진짜로 터져버린 것이다.
럭키 펀치.
럭키 포텐에 이른 럭키 펀치 한 방에 놈의 팔 하나가 통째로 날아가버렸다.
‘이런, 스킬은 괜히 썼나?’
그나마 다행인 것은 팔 한 짝이 날아간 것에 그쳤다는 것이다. 만약 가슴이나 얼굴을 때렸다면 그대로 즉사를 면치 못했을지 몰랐다.
“어떻게, 어떻게··!”
피 대신 마기를 사방으로 뿜어내며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짓는 녀석. 하지만 놈이 어떤 표정을 짓건 정해진 결과였다.
지금의 상태라면 마계 대장군도 어렵지 않게 상대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몸에 과부하를 걸어 억지로 힘을 강화시킨 마계 장군 쯤이야.
영민은 조심스럽게 몇 방의 주먹질을 놈의 몸에 더 꽂아넣고 발로 지긋이 놈을 짓밟았다.
“끄어어억!!”
사방으로 풀풀 마기를 뿜으며 발버둥을 쳐보지만 소용없는 짓이다. 신성의 보호를 받는데다 스스로의 힘으로도 마기의 영향쯤은 걷어낼 수 있는 영민에게는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못했다.
오히려 힘을 쓸수록 빠르게 마기가 빠져나갈 뿐이었다.
“이제, 얘기 좀 할까?”
“더러운 신의 종자와 할 이야기 따위는 없다! 나는 끝까지··!”
퍼억
또 한 방이 놈의 몸에 틀어박혔다. 말을 듣지 않는다면 듣게 만드는 수밖에.
한 방 한 방, 주먹을 꽂아넣으며 대화를 유도했지만 과연 마계 장군답게 놈은 끝까지 이를 악물고 악을 쓸 지언정 더 이상의 대화를 이어가지 않았다.
“젠장. 할 수 없군.”
이쯤되자 영민도 어쩔 수 없었다. 럭키 포텐의 지속시간이 랜덤인 상황에서 언제 상황이 역전되어도 이상하지 않았기에 무리해서 답을 얻어내는 것보다는 놈의 숨통을 끊어놓기로 결정했다.
드래곤 슬레이어가 놈의 심장을 찌르고, 놈의 죽음을 알리는 무엇보다 명확한 증거가 나타났다.
[레벨업을 하셨습니다.]
레벨업을 한 것이다. 이보다 더 훌륭한 증거가 어디 있으랴.
그제야 비로소 영민은 한시름 놓을 수 있었다.
[마계 장군 ‘군시리스’의 사념을 흡수합니다.]
“어?”
그때, 드레인이 특이한 방향으로 작동했다. 바로 죽은 마계 장군의 사념을 흡수한 것이다.
순간, 영민의 기억에 어떤 의지와 감정들이 섞여 들어왔다.
분노. 그것은 분노에 가까웠다.
나름대로 평화로이 살고 있는 마계로 쳐들어와 분탕질을 치고 있는 침략자들에 대한 분노. 마족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들의 대지를 지키려는 용사와도 같은 그 순수한 마음에 당혹스러움이 들 정도다.
뭐지?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상황인 거지?
강태성의 기억까지 총 동원되어 뒤죽박죽인 채로 분석을 시도했다.
“으으음··.”
그리고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나름대로의 결론을 찾아냈다. 어떤 원리인지는 모르지만, 놈이 느낀 감정의 원인 정도는 알아차릴 수 있었다.
‘믿기는 어렵지만··.’
지구의 경우 난데 없이 던전이 생겨났듯이 이들 역시 던전으로 인해 자신들의 영토를 침범 당한 것이다. 군시리스의 경우 이번이 처음이지만, 여러 소식을 통해 세계의 곳곳에 ‘게이트’가 열리고, 그곳에서 인간들이 나타나 일부 지역을 ‘지워’낸다는 이야
기는 익히 들었던 것이다.
방어에 성공하는 경우도 제법 있었고, 아직까지 그의 수준으로 강력한 존재의 영토에는 게이트가 열린 적이 없지만 영토의 주인이 당하는 순간, 해당 지역이 세계에서 ‘지워’진다는 이야기는 그에게도 상당한 놀라움이자 두려움이 된 상태였다.
그리고 얼마전 자신의 던전에 열린 게이트의 존재 역시도.
‘어렵다. 어려워.’
하지만 그것을 온전히 믿을 수만도 없었다. 지구의 입장에서는 던전이라는 것 자체가 ‘이계의 침략 수단’으로 인식되고 있지 않은가?
일정 횟수 이상의 공략 실패 또는 타임오버가 가져오는 던전 브레이크는 강력한 몬스터들을 지구상에 풀어놓고, 퇴치되지 않은 몬스터들은 그 지역을 터전으로 삼아 군락을 이룬다.
일부 이동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게의 경우 그 상태로 세를 불려 더 많은 인간의 영토를 차지하려 들기에 인간들은 세상의 끝까지 밀려나야만 했다.
강태성의 기억을 통해 그것을 똑똑히 기억하는 영민으로서는 섣부른 판단을 할 수 없는 대목이었다.
뭘까? 마계만 그런 것일까? 던전이 연결되는 지역은 분명 마계 뿐이 아닐텐데?
어렵고도 어려운 문제였다. 강태성의 시대에서도 문제 제기와 의문이 나타나기는 했어도 깊이 있는 연구조차 되지 못했던 부분이 아닌가.
정보가 한정적인 지금 상황에서는 뭐라 답을 내릴 수 없는 일이었다.
‘정보를 더 모아보는 수밖에.’
뭔가 평화적인 방법을 찾는다고 이 사태가 해결되지는 않을 수도 있다. 당장 영민만 하더라도 더 강해지기 위해서는 몬스터를 사냥해야만 했고, 그들에게 아이템을 얻어야 했으니까.
앞으로 나타나는 모든 존재들이 평화적인 태도를 갖고 있다는 확신이 있지 않은 이상 던전의 공략과 몬스터의 사냥을 멈출 수는 없었다.
하지만, 만약 다섯 군주 중 하나만이라도 전투를 피할 수 있다면? 나아가 협정을 통해 아군으로 돌아서게 만들 수 있다면?
점점 힘을 얻으면서도 막막하던 미래에 대한 안개가 조금은 걷히는 느낌이었다.
“형!”
“대장!”
“괜찮습니까?!”
그때 전투 종료를 알아챈 세 사람이 다시 66층에 내려왔다. 아마도 민호에게 나타난 파티 알림 또는 경험치 습득 때문이겠지.
“흐읍.”
츠츠츠츳-
타이밍 좋게도 럭키 포텐의 지속 시간이 종료됐다. 만약 서두르지 않았다면 오히려 이쪽이 당했을 수도 있었을 판. 운이 좋았다는 생각과 함께 지속 시간이 랜덤이니 다음 번 럭키 포텐을 사용 할 때는 최대한 서두르는 것이 좋겠다는 판단을 했다.
“대장!!”
“잠깐만. 괜찮아. 괜찮아.”
다음 순간, 영민이 제대로 서지도 못하고 비틀거렸다. 다른 존재가 된 것만 같은 힘과 감정이 한순간에 사라지며 지독한 공허감이 밀려온 여파였다.
영민은 아예 자리에 드러누워 회복을 기다렸다. 몸과 영혼이 적응하기를. 하지만 한 번 맛봤던 경지에 대한 갈망은 사라지지 않으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과연 몇 레벨이나 되어야 할까?’
럭키 포텐과 같은 랜덤 증폭형 능력이 없이도 그 경지에 오르려면 과연 몇 레벨이 되어야 할지 상상도 되지 않았다.
한편으로는 그리 멀지만은 않을지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레벨업에 따른 능력의 강화가 점진적이고 꾸준하지만은 않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50레벨 단위, 100레벨 단위로 큰 변화가 있었듯이 어쩌면 300레벨, 350레벨, 400레벨이면 그 경기에 도달할 수 있을지 몰랐다.
‘다시, 노가다의 때가 왔군.’
강태성이 이루었던 경지를 초월한 이후, 한동안 별 의미가 없게만 느껴졌던 레벨업에 대한 열망이 다시금 타오르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선물 같은 변화가 찾아왔다.
[흩어진 마왕의 힘 x 3을 획득했습니다.]
“어?”
흩어진 마왕의 힘? 이건 또 뭐지? 지독한 공허감과 무력감을 느끼는 중에도 영민은 손을 놀려 방금 획득한 아이템을 확인했다.
없다. 분명 알림을 확인했는데 인벤토리의 어디에도 흩어진 마왕의 힘이라는 것은 찾을 수 없었다.
‘설마?’
[마왕의 힘][스킬][미활성]
현재 조건을 만족시키지 못해 미활성화 된 상태이다.
충분한 조건을 달성하면 마왕의 힘을 얻을 수 있다.
- 흩어진 마왕의 힘 : 3 / 100
흩어진 마왕의 힘은 다름 아닌 스킬의 활성화 조건에 해당하는 재료였다. 100개를 모으면 마왕의 힘을 사용 할 수 있다고 하는, 강태성의 기억에조차 없는 능력.
비슷한 아이템조차 있던 기억이 없는 것을 보면 아무래도 이 또한 ‘드레인’의 능력인 듯 했다.
‘드레인이 사기는 사기군.’
지금까지 드레인 덕에 올린 스텟량만 봐도 사기 소리가 절로 나오는데 이렇게 한 번씩 대박을 쳐주니 여간 사랑스러운 능력이 아니다.
더구나 게이머 능력과 시너지 효과까지 내주니 이런 특수한 스킬까지 생긴다.
‘마왕의 힘이라니··.’
이미 성역 선포와 각종 스킬을 통해 사용할 수 있는 신성력의 양이 대단한데 거기에 마왕의 힘까지 얻는다니? 두 가지를 동시에 쓰기는 어렵겠지만 꽤나 놀랍고 흥미로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마왕의 힘이야 완벽히 얻어낸 이후에야 정확한 효과를 알 수 있겠지만 만약 자신이 생각하는 그런 능력들이 맞다면? 활용도가 무궁무진해질 것이라 예상했다.
‘어쩌면 고민하던 것 중 2가지가 동시에 해결이 될 수도 있겠군.’
그렇게 스스로의 상태를 체크한 영민은 한참이나 드러누워 원상태로 돌아온 능력에 적응 한 뒤 털고 일어날 수 있었다.
“이제 돌아가는 건가요?”
영민을 대신해 군시리스의 시체에서 드랍 아이템을 찾아내기까지를 마친 민호가 살짝 들뜬 모습으로 물어왔다.
그들이 돌아가자마자 주어질 관심과 환호를 생각하니 벌써부터 몸이 떨리는 것이다.
영민이야 인류의 희망이라 불리던 결사대에 속해있던 강태성의 기억 때문에 어지간한 관심에도 시큰둥했고 가람과 철우는 오히려 살짝 부담스러워했지만 민호는 아직 어려서인지 연예인이라도 된 마냥 관심과 시선을 기꺼워하는 편이었다.
덕분에 네 사람 중 악플도 가장 많이 받았지만 어린 팬들도 제법 되어서 나름대로 인기를 만끽하는 중이었다.
거기에 이번 대한민국 대표 선발전 우승을 차지하면 주가는 더 오를 터. 거의 곧장 미국으로 떠나야 해서 높아진 인기를 제대로 즐기기는 어렵겠지만 상당히 기대하는 눈치였다.
하지만 영민은, 그 기대를 무참히 깨부수는 발언을 던졌다.
“아니. 이제 파밍을 해야지.”
“에엣?”
“선 공략, 후 파밍. 당연하잖아?”
빠르게 공략을 마치느라 무시하고 지나왔던 몬스터들의 사냥과 채집물들의 습득을 하겠노라 이야기 한 것이다.
대한민국에서는 처음으로 공략되는 7레벨 던전인 만큼 챙길 수 있는 것은 최대한 챙기는 것이 당연했다.
같은 수준의 몬스터라도, 보다 고레벨 던전에서 만났을 때는 더 많은 경험치와 더 훌륭한 아이템을 드랍하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다고 지하 1층까지 올라갈 필요는 없다. 그들의 수준에서 ‘쓸만’하다 여겨지는 물건은 50층 정도까지가 고작이니까. 자잘한 채집물까지 캐려면 더 높은 층까지 훑겠지만 그만큼 궁하지는 않았기에 그나마 거기까지로 한정한 것이다.
어차피 현실과의 시간 비율은 거의 10대 1 정도.
한 보름쯤 더 뭉개다 나가더라도 현실에서는 고작 3일 정도가 흘렀을 뿐이었다.
그래서 영민은 한 달을 더 머무르다가 군시리스에게 드랍된 귀환석을 사용해 현실로 돌아왔다.
“나왔다!!!”
그리고 그들의 귀환과 동시에 수 없이 많은 플래시가 터졌다.
처음으로 시도된 7레벨 던전 레이드.
그리고 불과 4일하고도 반나절 만의 공략 소식이었다.
당장 6레벨 던전 공략에만 3일에서 5일 정도가 평균적으로 걸렸으니 모두가 경악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그렇게, 길드 힐름은 고작 다섯의 인원으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길드가 되었다.
< 128화 - 럭키 포텐 (3) > 끝
ⓒ 갈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