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7화 - 럭키 포텐 (2) >
“빌어먹을 놈들, 죽어라!!!”
문을 여는 순간, 영민이 반사적으로 앞으로 튀어나갔다. 문의 개방과 동시에 안에 있던 존재가 공격을 시도한 것이다.
초보 헌터들이라면 멀뚱히 있다가 공격을 허용했겠지만 그들은 달랐다. 영민이 앞으로 튀어나가는 것에 맞춰 철우가 그 뒤를 받치고 민호는 가람과 함께 만일의 순간 공간 왜곡을 사용할 타이밍을 쟀다.
“큭!”
물론 거울 방패로 정확히 방어해낸 영민 덕분에 준비한 것들이 소용 없게 되었지만 실로 신속한 대응이었다.
“매번 느끼는 거지만 좀 치사하단 말이야. 멘트도 좀 치고 그래야지.”
민호가 뒤에서 재빨리 캐스팅을 시작하며 투덜거렸다. 던전을 게임처럼 여기는 이들의 가장 큰 착각인 선 대화 또는 선 등장씬 후 전투라는 공식은 던전에서 전혀 통하지 않는 헛소리라는 것을 알지만 어쩐지 치사하게만 느껴지는 그였다.
“성역 선포!”
놈이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영민의 성역 선포가 먼저 발동했다. 그를 중심으로 하얀 빛의 파동이 퍼져나가며 검붉게 죽어있는 땅에 변화가 생겼다. 다시 생기를 찾는 것까지는 아니었지만, 죽음의 기운만큼은 거두어진 것이다.
이도 저도 아닌 거칠고 말라 비틀어진 땅.
그 땅이 힘없이 바스러지며 영민이 힘껏 날아올랐다.
“헤븐즈 드라이브!”
“마광포!”
“칫.”
순간 놈에게서 뿜어진 무시무시한 죽음의 광선에 영민도 경시하지 못하고 몸을 비틀어 피해냈다. 거울 방패를 들어 막아볼까 싶기도 했지만, 그 안에 담긴 물리력 또한 대단한 게 느껴져서 몸이 먼저 움직인 것이다.
쿠츠츠츳-
영민을 대신해 적중 당한 벽이 시꺼멓게 죽어갔다. 퍼엉 하고 터지는 대신 속에서부터 생명력을 잃고 죽어가는 것이다.
만약 저것을 사람이 맞았다면··. 그대로 미이라가 되어 생기를 잃고 말라 죽었을 것이다.
“쓸데없는 저항 말고 후딱 쫌 끝내자. 안 아프게 끝내줄게!”
하지만 영민은 거침이 없었다. 조심하는 것은 조심하는 것이고, 그것이 그를 두려워하게 만들지는 않기 때문이다.
강태성의 경우 마족들이 쏘아내는 죽음의 능력들이야 몇 번이나 봐왔던 터다.
힘껏 뻗어낸 놈의 주먹을 빠르게 몇 번이나 베어내고 물러서자 놈의 팔에서 신성한 폭발이 일어났다.
“어서와. 신성력 주입은 처음이지?”
드래곤 슬레이어로 놈을 베어내는 순간, 상처에 신성력을 주입시킨 것이다. 당연히 마족의 근본이 되는 힘과 반대의 힘이 주입되니 반발을 일으키는 것이 당연하다.
그것이 바로 대 마족용 필수 기술인 신성력 주입이었다.
나중에 가면 제법 대중화되는 기술이지만 현 시점에 있어 사용이 가능한 이는 그다지 많지 않았다.
“크윽! 가만히 있는 우리를 왜 괴롭히는 거냐. 신의 종자들이여!”
하지만 상대 또한 보통은 아니었다. 상급 마족만 되어도 팔이 통째로 날아갔을 텐데, 마계 장군쯤은 된다는 것인지 만신창이에 가까운 상처만을 남기는 정도로 버텨낸 것이다.
그 마저도 곧 죽음의 마나가 주입되자 완전 회복 되었다.
“이 마계에서는 너희가 얻어 갈 수 있는 것도 없을 텐데, 도대체 어째서 침략을 시도하는 것인가! 그것도 인간들까지 동원해서!”
“····?”
이건 또 무슨 개소리일까. 연이어 공격을 퍼부으려던 영민마저 공격을 잠시 멈추었다.
던전이라는 터널까지 뚫은 주제에 대체 누가 누굴 침략한다는 거지?
‘가만.’
그때 문득 영민의 머릿속에 어떤 기억들이 떠올랐다. 이런 언급을 한 것은 눈앞의 존재가 처음이 아닌 것이다. 약간의 어투 차이는 있었지만 비슷한 말을 하던 존재들이 있었다.
그들의 종족은 꽤 다양했다. 마족 뿐 아니라 엘프도 있었고, 몬스터도 있었고, 드래곤도 있었다.
그때는 치열한 전투 중이라 생각할 겨를도 없이 서로를 죽고 죽이는 것에 집중을 했지만 상대를 압도할 자신이 있는 지금은 이야기가 달랐다.
“잠깐, 우리 얘기 좀 할까?”
때문에 영민은 그에게 먼저 대화를 요청했다.
“이번엔 무슨 말로 뒤통수를 치려는 것이냐! 헛소리를 더 늘어놓기 전에 죽여주마!!”
하지만 그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이쪽은 제법 냉정을 되찾았지만 상대는 이미 흥분이 극에 달한 상태였다.
이대로는 대화는커녕 일방적인 방어만 하게 생긴 상황. 영민은 일단 놈을 제압할 필요성을 느꼈다.
“파멸의 망치!”
콰앙!
놈이 소환해낸 전용 무기가 땅바닥을 때리자 거미줄 같은 균열과 함께 검은 기운이 넘실거렸다. 스스로 살아 움직이듯, 산 자를 찾아 삼키려는 움직임.
그 죽음의 기운이 너무나 강해 가룬은 감히 가까이 가지 못했다. 그의 특기이자 장기인 ‘간격’을 이용 할 수 없는 상태가 된 것. 영민도 굳이 그를 위험 속에 밀어넣기보다 민호를 보호하도록 지시하고 철우와 함께 놈을 몰아붙였다.
“크하하하하핫!!!”
신성력으로 스스로를 보호하는 영민과 달리, 철우는 순수한 생명력으로 죽음에 대항했다.
죽음의 기운이 생명을 갉아먹지만, 더 강하고 순수한 생명력을 내뿜어 죽음에 제압하는 것이다.
마치 물이 불을 제압할 수 있지만 반대로 강력한 불길이 물을 증발시켜버리는 것과 같은 이치였다.
대신 좀처럼 줄어들지 않는 철우의 체력이 제법 빠른 속도로 줄어들기는 했지만 영민이 몇 번이나 공격을 성공시킬 기회를 제공 할 수 있었다.
“크아아악! 죽여버리겠다!! 울부짖어라, 파멸의 번개여!”
놈의 망치가 어딘가에 부딪히 때마다 죽음의 기운을 번개처럼 뿌려졌다. 실로 무시무시한 위력과 범위다. 어설픈 자들이라면 가까이 있는 것만으로도 떼몰살을 당하고 죽음의 존재로 다시 태어날 만큼.
그러나 이미 단일 개체로서 S등급 헌터 최상위에 해당하는 무력을 지닌 마계 장군이지만 영민과 철우는 그 이상으로 막강했다.
죽음의 기운이라는 강력한 패시브가 통하지 않는데다 +13 봉인의 드래곤 슬레이어는 마기로 강화된 피부조차도 손쉽게 갈라버릴 정도여서 시간이 갈수록 상처가 깊어지고 마기가 약해지는 치욕을 겪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심지어 회심의 일격으로 준비하는 특수한 기술들마저 이미 꿰뚫고 있는 영민에게 사전 차단을 당하다보니 농락에 가까운 무력함에 무릎을 꿇어야했다.
“크크크크크큭.”
생을 포기한 것일까. 한참이나 일방적인 수세에 몰리던 놈이 돌연 웃음을 터트린다.
그 갑작스러운 태도 변화에 영민은 불길함을 느꼈다. 보통 이런 경우 뭔가를 한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철우, 빠져!”
때문에 철우마저 뒤로 물리고 오롯이 놈의 앞을 막아섰다.
자신이라면 놈의 어떤 공격이나 변화에도 충분히 대응 할 수 있으니까.
성역 선포는 사용할 수 없지만 그에 못지 않은 파워업을 할 수 있는 방법은 아직 몇 가지나 남았다.
“마왕이시여, 그대의 종이 그대의 영토를 지키려 합니다. 제게 힘을 허락해주소서!”
“망할.”
그냥 시간을 주지 말걸 그랬다. 영민은 놈을 생포할 생각에 지켜본 것을 순간 후회했다.
고오오오오오-
짙은 어둠이 놈을 감싸고, 붉게 빛나던 안광이 검은 구슬처럼 변했다. 마계 장군 이상의 존재만이 사용가능한 ‘접신’을 시작한 것이다. 마왕에게 빌어 힘의 일부를 끌어오는 능력. 대신 한계 이상의 힘을 받아들이는 대가는 스스로 치러야 했다.
“모두 위층으로 올라가!”
영민은 즉각 뒤편의 일행들에게 소리를 질렀다. 저 상태라면 지금의 전력으로는 무리였다. 아니, 상대가 불가능하지는 않지만 그들을 보호하면서는 어려운 것이다.
때문에 그들을 던전의 윗층으로 올려보냈다.
츠츠츠츳-
설상가상. 놈의 급격한 파워업과 함께 성역 선포가 힘을 잃어갔다. 마왕의 기운이 이곳에 강림하자 성역 선포가 깨지고 마계화가 다시 진행 되는 것이다.
이럴 경우 가장 간단한 방법은 바로 ‘도망’이었다.
마왕의 기운이 놈의 생명을 갉아먹을 때까지 도망치는 것. 물론 쉽게 도망치도록 놔두지 않을 테니 희생은 어느 정도 생기겠지만 적당히 방어에만 치중하며 시간을 끌면 놈은 자멸하기 마련이었다.
특히나 마계 대장군 급이 아닌 놈들이 마왕의 기운을 사용 할 수 있는 시간은 무척이나 짧았다.
길어봐야 10분 남짓?
물론 그 10분이 10년처럼 느껴질 수도 있는 노릇이지만 어떻게든 10분만 버텨낸다면 이쪽의 승리였다.
‘젠장. 왕이라는 놈이 무당도 아니고 무슨 강림이고 접신이야?’
하지만 영민은 차마 그곳을 벗어날 수 없었다. 이왕 여기까지 온 것, 놈을 ‘사냥’하는 대신 ‘제압’하리라는 생각을 아직 버리지 못한 것이다.
혹여 그것이 어렵다해도 놈을 상대로 ‘버티기’를 하는 것 또한 혼자인 쪽이 훨씬 수월했다.
‘그걸, 써볼까?’
어떤 스킬을 써야 놈에게 효과적으로 대항 할 수 있을까. 버서크? 신성 폭발? 아니면 뇌신 강림?
가만히 속으로 셈을 하던 영민이 문득 무언가를 떠올렸다.
지난 번 레벨업을 하면서 획득한 또 하나의 스킬.
고급 강화 기능의 오픈이며 온갖 사건, 나이트메어의 구입으로 치이고 치여 아직 확인조차 제대로 해보지 못한 그 스킬을 소리내어 발동시켰다.
“럭키 포텐.”
[럭키 포텐]
한순간 자신의 잠재력을 폭발시켜 한계 이상의 능력을 이끌어 낸다. 능력 증폭률은 랜덤이며 행운 수치가 높을수록 능력 증폭률이 높아질 확률이 증가한다.
단, 지속시간이 종료 된 후 신체 한계를 넘어서는 것에 대한 후유증이 발생 할 수 있다.
- 능력 증폭률 : 랜덤
- 지속 시간 : 랜덤
- 후유증 : 랜덤
- 행운 수치에 따른 가중치 적용
행운 수치가 적용되는 잠력 폭발.
그것이 발동하자 저 밑바닥에서부터 기이한 힘이 끓어올랐다.
연습 삼아 ‘신성 폭발’이나 ‘버서크’, ‘뇌신 강림’을 썼을 때도 경험해본 적 없는 강대한 미증유의 힘이 전신에 가득 깃들었다.
‘이건··.’
그 순간 영민은 깨달았다.
이 힘은 ‘격’이 다르다.
어쩌면 S등급을 넘어 아무도 경험해보지 못한 SS등급의 경지에 도달했는지도 몰랐다.
고작 마왕의 힘을 일부 빌린 마계 장군 애송이에게 쓰는 것이 아까울 만큼, 강대한 힘이 전신에 끓어올랐다.
“크르르르··.”
마왕의 힘에 취해 거의 마수가 되어버린 놈을 보며 영민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자신조차 필살기 급인 강화 스킬을 쓰지 않으면 위협을 느끼던 녀석인데, 지금은 벌레가 꿈틀거리는 것 마냥 허약해보였다.
새끼손가락으로 찍어눌러도 죽일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다. 지금 저 놈도 비슷한 상태겠지?
그런 생각이 들자 우습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했다.
지금 상태라면 마왕 본인이 오더라도 상대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고작 힘의 파편을 주워 먹은 정도로 이빨을 드러내다니.
가소롭기 짝이 없다 생각하며 가만히 주먹을 들어올렸다.
이런 놈에게는 드래곤 슬레이어를 쓰는 것도 아까웠다.
‘잘못해서 죽어버리면 곤란하기도 하고.’
“마계에서 가장 비루한 존재로 만들어주마. 신의 졸개들이여!!”
이 힘을 느끼지 못하는 건가?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피식 웃고 말았다. 그럴 수도 있지. 힘에 취해 정신도 없을 테고, 신성력의 증폭이 아닌 순수한 능력의 증폭이니까.
대신 영민은 놈을 향해 들어올린 주먹을 슬쩍 뻗었다.
< 127화 - 럭키 포텐 (2) > 끝
ⓒ 갈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