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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행운 MAX-124화 (124/177)

< 124화 - 우승 (1) >

단번에 몰아치듯 카드를 쏟아낸 덕에 유의왕은 손은 텅 비다시피 했다. 몇 장의 카드가 더 남아있기는 했지만 조금 전 소환하려 했던 태양의 시조새처럼 다수의 제물을 필요로 하는 것들인 까닭에 사실상 텅 빈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덕분에 손발이 어지러워지고 대응이 어려워졌다.

명색이 S등급의 헌터인 만큼 카드가 없다고 전투력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지만 상대는 영민이다. 육체적 스펙이든, 전투 경험이든, 스킬이든 그가 최대로 능력을 갖춘 상황에서도 결코 장담하기 어려운 상대. 어쩌면 태양의 시조새가 소환되었다

해도 승리하지 못할 수 있는 상대였다.

“넌 첫 판부터 장난질이냐!”

서걱

영민의 드래곤 슬레이어가 매정하게 놈의 손목을 잘랐다.

“으아아악!!!”

고통에 신음하는 놈의 몸부림과 함께 고유 능력이 해제되며 카드뭉치도 사라져버렸다. 이제 다시 소환해내기까지는 제법 시간이 걸릴 터. 아무래도 상관이 없지만 영민은 드래곤 슬레이어를 인벤토리에 집어넣고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일단 좀 쳐 맞자!”

퍼버버버버벅

이미 승부는 갈렸지만 누가 말릴 새도 없이 무자비한 구타가 이어졌다. 유의왕의 전신에 내리꽂히는 주먹. S등급 헌터의 육체적 스펙을 최대한 이용한 그 공격에, 놈의 몸은 맞아서 뜬 채로 계속해서 멈춰 있었다.

“그, 그, 그만! 승자 결정, 권영민 승!”

경기가 강제로 중단 된 것은 그 상태로 시간이 제법 흐른 뒤였다. 유의왕의 손목이 잘리기는 했지만 그런 것 쯤이야 등급 높은 회복계 헌터가 충분히 붙일 수 있었다. 사람에 따라 며칠에서 몇 주 정도 요양이 필요 할 수는 있지만 유의왕 역시 S등급의 헌

터가 아닌가? 충분히 역전할 기회가 있을 수도, 무언가 노리고 있는 것이 있을 수도 있는 상태에서 섣불리 승부를 중단 시킬 수 없는 것이다.

때문에 놈의 눈이 까뒤집혀 흰자가 보일 지경이 되어서야 겨우 경기가 강제 중단 되었다.

손목이 잘린 채로 두들겨 맞는 것은 꽤나 징그럽고 혐오스러운 장면이지만 방송은 여과없이 그대로 나갔다. 이미 몬스터들에게 사람이 죽어나가는 것이 낯설지 않은 상황인지라 이 정도쯤은 조금 눈살이 찌푸려지는 정도에 불과했고, S등급 헌터답게 지

혈 아이템을 갖춘 유의왕이었기에 피가 사방으로 뿌리는 일까지는 없는 까닭이기도 했다.

그런 상황에서 시청률이 높게 나오는 방송을 방송사들이 스스로 중단할 리는 없었다.

영문을 알 수는 없지만 S등급 헌터가 다른 S등급 헌터에게 일방적으로 두들겨 맞는 모습은 사람들의 열광을 일으켰고 영민에 대한 일부 재평가가 이루어졌다.

[헐. 같은 S등급인데 완전 가지고 노네. 갓영민 ㄷㄷ해.]

[연금술 아이템은 아예 쓰지도 않음. 외쳐 갓영민!]

[유의왕 저놈도 거품이라 그럼. 고유 능력 자체가 운빨이라 던전에서도 잉여일 때 많다고 들었음.]

[윗분 최소 카알못. 저 정도면 패 잘 뽑힌 거임. 단숨에 태양의 시조새 뽑을 뻔 한 거 못봄? 시조새가 유의왕 필살기급인데 소환 전에 능력을 깨부순 영민이 대단한 거임.]

물론 운에 좌우되는 경향이 큰 상대인지라 여전히 영민을 낮추어 보는 이들도 많았다. 그러나 확실해진 것은, 영민의 S등급 타이틀이 그저 이름 뿐이 아니라는 것이다.

연금술만 강조되던 영민이 연금술 없이도 S등급 헌터를 깨부술 만큼의 무력을 갖추었다는 평가를 받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저평가되고 있다는 것은 소수만 아는 일이지만 그 또한 이제 밝혀지는 것이 시간 문제일 따름이다.

“어디보자··. 나쁘지 않군.”

S등급 간의 대결인 만큼 나머지 경기들은 꽤나 치열했다. 상대와 상황이 특수했던 만큼 영민이 비정상적으로 경기를 빠르게 끝낸 것일 뿐이었다.

비슷한 수준의 S등급 헌터들이 전력으로 부딪힐 경우 하루를 꼬박 싸우고도 승부가 나지 않을 수 있을 정도이니까.

그래봤자 수준 차이가 난다면 영민처럼 빠르게 승부가 결정 지어지겠지만.

그런 의미에서 철우는 제법 잘 싸우고 있었다. 기본적인 패턴은 비슷했는데, 어지간한 공격은 몸으로 때우고 근접해서 일격을 꽂아 넣는 식이었다.

다만, 상대와의 상성이 썩 좋지 못했다.

강화계면 가장 좋고, 강림계나 구현계, 변화계 쯤만 되어도 썩 나쁘지 않았을 텐데 하필이면 상대는 조작계 고유 능력을 지닌 자였다.

한 방 한 방의 위력이 강력하지는 않지만 거추장스럽게 만들고, 행동을 제약하는 것을 특기로 하다 보니 믿을 것은 맷집과 강력한 한 방 뿐인 철우가 고전을 면치 못하는 것이다.

상대 역시 철우가 ‘일격’을 꽂아 넣기 위해서는 일정 시간의 쿨타임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고 끊임없이 ‘일격’을 소진시키기 위한 수작을 부렸다.

붙들고, 옭아매고, 막아서는 등 행동을 제약시켜 황홀한 강타를 소진 시킨 뒤, 그 쿨타임 동안 안전하게 공격을 꽂아 넣는 식인 것이다.

언뜻보면 철우가 굉장히 수세에 몰리는 것처럼 보였지만 영민은 그다지 걱정하지 않았다.

괜히 자신이 ‘최강의 딜탱’이라 칭한 것이 아니었으니까. 상성은 분명 최악이라 할 만큼 안 좋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유리한 것은 철우 쪽이었다.

상대는 여러 수작을 부리느라 빠르게 마나를 소진하고 있지만 철우는 그저 ‘체력’만을 소모하고 있을 뿐이었으니까.

당장 유효 타격처럼 보이는 공격들도 실상은 철우에게 그다지 타격이 되고 있지 못했다. 그 마저도 극에 달한 철우의 체력 재생 능력으로 회복되기 일쑤였고.

그런 상황이니 시간이 흐를수록 상대의 마나는 고갈되도 철우는 멀쩡히 한 방을 꽂아넣을 틈을 보고 기다릴 수 있었다.

조작계라면 그 한 방을 버텨낼 확률이 무척이나 적을 것이고 말이다.

“끝났군.”

그렇게 지루한 술래잡기가 이어지는 것도 잠시. 포기하지 않고 집요하게 쫓아오는 철우와 갈수록 심해지는 마나 소모에 부담을 느꼈는지 상대 쪽에서 먼저 패를 꺼냈다.

원래는 감추려 했을지 모르지만 여기서 무리하지 않으면 패를 꺼내볼 기회조차 없었으니 어쩔 수 없는 결단이다.

“전능의 지배!”

마지막 한 수는 바로 ‘자가 지배’였다. 조작계의 고유 능력을 이용해 자기 자신을 조작하여 강화계를 뛰어넘는 육체 능력을 발휘하는 것. 영민 개인적으로는 남의 것을 탐내다 제 능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는 멍청한 짓이라고 생각하는 그것이 나타나며

철우를 밀어붙인 것이다.

난타에 가까운 연격.

일견하기에 철우가 계속해서 밀려나며 핀치에 몰리는 듯 싶었지만 알만한 자들은 다 눈치 챘을 터였다. 가드를 올려 방어한 덕분에 철우에게 주어지는 타격은 그리 크지 않다는 것을.

정타를 허용했어도 충분히 맷집으로 버텨낼 철우였지만 이제 맞는데 이골이 난 덕분인지 급소를 깨알 같이 방어하며 기회를 노렸다.

그리고,

“황홀한 강타!”

쩌엉

놈의 동작이 커지는 순간, 주먹을 맞부딪혔다.

“으윽.”

두 사람의 몸이 주르륵 서로 밀려났다. 위력이 비등한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어디까지나 ‘스킬이 유지 되는 동안’의 일이다.

변화계와 강화계의 능력을 섞어 부담을 줄였다지만 스킬이 해제되는 순간, 몸에 쌓인 모든 충격과 부담이 동시에 나타날 테니 단시간에 끝장을 보지 못하면 상황이 어려웠다.

그리고 그것은 철우도 바라던 바였다.

한 방이 강력한 철우이지만 자잘한 공격 스킬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생명력을 기반으로 하는 연타 스킬이나 범위 공격 스킬을 개발하려 했던 것을 영민도 종종 목격한 것이다.

때문에 이런 단기결전에 난타전도 철우가 마다할 만한 상황은 아니었다.

한 대를 맞으면 한 대를 돌려주고, 두 대를 맞으면 두 개를 돌려준다!

딱 그만큼. 더도 덜도 필요 없었다.

그 각오로 철우가 덤벼들자 결국 먼저 체력이 동나는 것은 상대 쪽이었다.

아무리 조작계의 능력 덕분에 충격과 고통을 무시 할 수 있다고는 해도 능력 해제의 순간 그 모든 데미지를 몰아서 받을 경우 ‘결계’의 보호를 받는다 해도 쇼크사 할 수 있었다.

‘아니, 정말 그럴 확률이 높겠지.’

죽음에 이르는 충격을 받아도 실낱 같은 목숨줄을 남겨 놓는 결계 내에서 상대를 죽일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 또한 비슷했으니까.

충격이 뒤늦게 오도록 하거나, 소위 ‘도트 데미지’를 주거나.

결계가 확보해 줄 수 있는 체력은 정말 밑바닥의 밑바닥에 해당하는 수준인 만큼 ‘전투 종료’로 인식한 이후에 미세한 타격이라도 받는다면 대책 없이 죽어버릴 수 있는 것이다.

과거 RPG 게임들에서 깃발 꽂고 싸우던 PVP에서 자주 쓰이던 방식인데, 헌터들 간의 전투에서도 통용되는 것이었다.

“승자, 강철우!”

결국 일찌감치 패배를 선언한 상대 덕분에 불상사는 생기지 않고 끝이 났다. 정말 죽을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인지는 몰라도 대결 후 불어닥칠 후폭풍이 두려웠음은 분명해보였다.

결국 철우와 영민은 나란히 준결승에 진출했다.

준결승과 결승전은 다음 날 치러졌다. 원래는 준결승까지 치른 후, 다음날 결승과 3, 4위전을 치를 예정이었지만 생각보다 치열한 대결로 휴식이 필요하다 판단이 된 것이다.

덕분에 하루의 시간을 벌었지만 충분한 것은 아니었다. 육체적, 정신적 피로를 푸는 것은 물론 오늘의 전투 데이터를 바탕으로 상대를 공략할 방도를 찾아야 했기 때문이다.

직접 대결을 벌일 당사자들은 물론이고 이하 길드의 분석팀이 총 동원되어 날을 새가며 전력 분석에 매진했다.

“아함~. 잘 잤다.”

물론 영민과 철우에게는 해당 없는 이야기였다.

분석팀 따위가 있지도 않을뿐더러 굳이 분석할 필요도 없었다. 그저 드로난 정보를 토대로 상대의 고유 능력이 무엇이고, 어떤 스타일의 전투를 선호하는지 정도를 파악하면 그 뿐이었다. 어차피 진짜 실력은 주먹을, 무기를 맞대는 순간 확인 할 수 있었

다.

“대장, 저한테 뭐 해줄 말은 없습니까?”

그런 영민의 주의를 따라 두 발 뻗고 자고 일어난 철우가 준결승전이 펼쳐지는 경기장으로 가기 전 마지막으로 영민에게 조언을 구했다.

그런 그에게 영민이 해줄 말은 딱 한 가지였다.

“살살 해.”

오늘 철우가 맞붙을 상대의 고유 능력은 강화계. 철우의 입장에서는 박수치고 축포를 터트려 마땅한 상대였다.

그러니 걱정할 것이 무언가. 치고 박고 승리하면 그만인 것을.

오히려 변수가 있는 것은 영민 쪽이었다.

‘재미있겠어.’

상대는 다름 아닌 아리랑 길드의 수장, 강중만이다.

호방하고 속 넓은 인간인줄 알았으나 최근 다시 생각을 하게 된 쫌생이.

처음 봤을 때는 A등급의 끝자락이었던 주제에 윈드 엘리멘탈을 통해 선풍환을 얻고, 다시 그것들로 상위 던전을 공략해 템빨로 무장하면서 S등급까지 뚫고 올라간 인물.

겉으로는 어떨지 몰라도 속으로는 앙금이 있는 사이인데, 그를 준결승 전에서 만나게 된 것이다.

어떤 위협이든 함정이든 박살을 내줄 자신이 있는 영민이지만 이렇게 차려진 밥상이니 마다 할 생각은 없었다.

서류로 확인했던, 강태성의 기억 속 강중만의 능력들을 떠올리며 독하게 마음을 먹고 준결승 무대에 올랐다.

“와아아아!!!!”

그렇게, 세계 헌터 대회에 출전할 대한민국 대표를 선발하기 위한 4강전이 시작되었다.

< 124화 - 우승 (1) > 끝

ⓒ 갈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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