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0화 - 개인전 (1) >
마음만 먹으면 성지유의 사는 곳이며 다른 개인 정보들을 찾아 몰래 도움을 줄 수도 있는 위치였지만 영민은 굳이 그런 행동을 하지 않았다.
다만 자신이 퍼준 포션들을 노리는 무리들에게 곤란을 겪지 않도록 몰래 사람을 붙여주기만 했다.
그 속에는 그녀가 제 한 몸을 지킬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넣은 ‘비약’들도 있었기에 그냥 판매하기만 해도 어림잡아 수천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별도의 보고는 필요 없이 불순한 생각으로 접근하는 이들만 막도록 했으니 영민이 무의식 중에라도 그녀가 있는 곳을 찾아갈 일은 없었다.
그렇게 세상에 유일했던 인연을 접어두고 영민은 다시 던전 공략에 나섰다. 만약을 대비해 코인을 좀 더 벌어두고자 하는 것이다.
한국 대표 선발전을 위해 6레벨 이상의 던전은 헌터협회에 의해 통제되고 있었기 때문에 돌게 된 5레벨 던전은 영민과 다른 사람들에게 이제 너무 쉬운 사냥터였다.
경험치도 거의 오르지 않으니 숙련도 작업 겸 돈벌이 장소 정도로 밖에 의미가 없었지만 감각을 잃지 않기 위해 스스로와 겨루어가며 던전을 돌다보니 시간은 금세 흘러 세계 헌터 대회 대한민국 대표 선발전의 날이 다가왔다.
“형, 컨디션은 좀 어때요?”
“그냥 그렇지. 이게 뭐 별거라고.”
“와, 진짜 강심장이라니까. 저도 떨리는데··.”
민호가 더 떨려하며 물어보지만 영민은 그저 심드렁할 뿐이었다. 이 정도에 가슴 떨리기에는 강태성의 기억에서 너무 엄청난 것들을 많이 보았다.
“넌 개인전에도 안 나가면서 뭘 떨려해? 보니까 꽤 거창하게 차려놨던데 놀고 있어. 금방 끝내고 올 테니까.”
영민은 민호에게 핀잔을 주려 씨익 웃었다.
개인전에 참가하는 것은 영민과 철우, 단 두 사람.
아무리 A등급의 끝자락에 올랐다고는 하지만 상대로 등장할 인물들 역시 최소 A등급 끝자락에서 S등급쯤은 될 테니 민호와 가람으로서는 위태로울 수 있는 일이었다.
물론 가람의 경우 S등급에서도 최상위에 위치한 만병지왕 왕륜걸과 겨루어서 동수를 이룬 경험이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상성이 좋아서일 뿐, 그가 그 이하의 다른 S등급 헌터들과 동급이라는 소리는 아니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다른 강한 상대들과 겨루어보는 것은 그 자체로 큰 도움이 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들의 ‘함정’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는 너무 위험한 일이었다. 게임처럼 체력이 일정 퍼센티지 이하로 내려갈 경우 강제 종료되는 것이 아니라 까딱하면 죽고 죽일 수 있는 대결인 만큼 실수를 가장한 고의가 나올 수 있다는 판단이다.
‘원칙상으로는 결계를 친다지만··.’
물론 안전장치가 없는 것은 아니다. 헌터협회의 말에 따르면 협회 소속의 헌터가 결계 형식의 고유 능력을 사용해서 체력이 완전히 바닥나는 경우 자동으로 ‘힘 조절’이 되도록 안티 PK 필드를 펼친다고 했다.
그러나 영민은 알고 있었다. 그 안티 PK 필드의 맹점을. 자동으로 ‘힘 조절’이 되더라도 죽음에 이르게 만들 수 있는 방법을.
그렇기에 가람과 민호는 참가하지 못하게 하고 자신과 철우만 출전한 것이다.
자신은 당연히 우승을 할테고 철우도 어지간해서는 질 것 같지 않기 때문이다.
‘철우와는 결승에서 만나겠지.’
길드전의 경우 개인전에 출전하는 이들을 길드장으로 하는 곳들이 많아 뒤로 시간이 밀렸다.
사실 6레벨 이상의 던전을 공략하기 위해서는, 그것도 100명이라는 숫자로 희생 없이 가능하려면 10대 길드나 그에 준하는 대형 길드여야만 한 것이다.
그러니 길드에 한 둘씩은 개인전에 참여 했다고 보는 것이 옳았다. 그런 상황에서 동시에 경기를 치러봤자 제대로 된 시합이 될 리 없겠지.
“그럼 가볼까?”
영민과 철우는 자신 만만하게 시험장을 향해 걸어갔다.
그들이 걸어가는 동안에도 절로 눈이 돌아가게 만드는 여러 재미난 볼거리들이 깔려 있었다. 첫 번째 던전쇼크와 맞물리는 바람에 다시는 열리지 못하게 된 대한민국 헌터 어워드 때 이상으로 크게 행사가 치러지는 까닭이다.
“으음, 예선을 치러야 한다고요?”
“예. 죄송하지만 그게 룰이라서··.”
대회장으로 들어선 영민은 다소 황당한 이야기를 들어야 했다. 명색이 10대 길드 중 하나인 그들에게 ‘예선’에 참가하라는 것이다.
당연히 ‘시드’로 배치를 받았다 생각 했건만 밑바닥부터 올라오라니? 이미 다른 10대 길드는 길드장 뿐 아니라 함께 참여하는 간부들까지 예선 자동 통과 혜택을 받은 것을 알고 있는데 어이가 없다 못해 화가 날 지경이었다.
“크흠. 영민님은 길드장이시니 예선 자동 통과가 가능하신데, 철우님은 규정상 예선부터 치르셔야 합니다. 사전에 참가 의사를 밝혀주셨으니 따로 신청을 하지는 않으셔도 되지만 참가하지 않으시면 자동 기권 처리가 되고····.”
이유인 즉, 시드권을 가져가는 기준이 길드의 ‘인원’이라는 것이다.
총 인원이 다섯 밖에 되지 않는 힐름이니 당연히 길드장 이외의 시드권은 없었고 무려 S등급인 철우라도 예선부터 시작을 해야한다는 것이다.
‘별 더러운 짓들을 다 하는 군.’
이것은 명백히 힐름을 겨냥한 물 먹이기였다. 차라리 공식 측정 된 마나량을 기준으로 한다면 이해가 되지만 ‘인원 수’라니?
10대 길드씩이나 되며 주가를 높이고 있는 힐름의 인원이 예선부터 이름값 낮은 이들과 치고 받는 모습을 보여주며 깎아내리고 조롱하려는 의도가 분명했다.
혹시나 그 과정에서 실수를 하거나 상대를 잘못 만나 탈락을 해주면 더 좋고.
“알겠습니다. 하죠.”
먼저 하겠다 나선 것은 다름 아닌 철우다.
어차피 여기서 깽판을 부려봤자 누군가가 노리는 바라는 것을 알기에 기꺼이 응해주겠다는 것이다.
은근히 자존심이 강한 철우이기에 괜찮겠냐는 눈으로 쳐다보자 철우는 씨익 시원한 미소를 지었다.
‘뭐, 걱정 할 건 없겠지.’
영민이 인정하는 최강의 딜탱인 그에게는 딱히 상성이랄만한 것이 없었다.
그나마 까다로운 형태라면 온갖 이동 방해 능력 따위로 무장한 디버퍼 형 헌터인데 그래봤자 그를 조금 지체시킬 뿐, 결과를 뒤집기는 어려웠다.
철우의 체력을 모두 깎기 전에 자신의 마나가 모두 소진되어 뻗어버릴 테니까.
그렇기에 그가 마음을 정하자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일단 접수를 해둔 뒤 연락처를 남기고 민호, 가람과 함께 주변 구경에 나섰다.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지만 분위기는 꽤나 화기애애했다. 모처럼의 축제 분위기에 가람이 아내와 딸을 데리고 나온 덕이다.
예린이 통통 거리며 뛰어다닐 때마다 모두에게 흐뭇한 아빠 미소, 오빠 미소가 지어졌고 집는 것마다 서로 사주겠다며 경쟁이 붙을 만큼 즐거운 시간이 흘러갔다.
“아, 먼저 가보겠습니다. 금방 끝내고 돌아올 테니 즐기고 계세요!”
그러다 호출을 받고 철우만 먼저 경기장으로 사라졌다.
“어. 그래. 갔다와.”
“예린아. 이번엔 저기 보러 갈까?”
하지만 그들 중 아무도 그를 걱정하는 이는 없었다.
무려 생명의 갑옷에 황홀한 강타까지 갖춘 철우다. 심지어 나머지 S등급 헌터들은 시드 배정을 받아 이미 본선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그를 곤란하게 만들 수 있는 사람이 있다고?
누군가 그런 말을 한다면 재미있는 친구라며 술 한 잔 사줄 용의까지 있었다.
아니, 영민을 제외한다면 다른 S등급 헌터들을 포함한다고 해도 그에게 승리 할 거라 생각되는 이가 없었다.
“우웅. 아빠, 철우 삼촌 응원 안가도 돼?”
“그럼~. 철우 삼촌이 얼마나 강한데. 방금 이야기 한 대로 금방 끝내고 올 테니까 예린이는 걱정 안해도 돼.”
뭐, 평소 같으면 심심풀이로 구경을 갈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은 예린이 함께 있는 상황. 싸우고 다치는 결투에 아이를 데려가고 싶은 이는 아무도 없었다.
“오오! 힐름에서 개인전 예선에 출전했다는데?”
“뭐? 거기 10대 길드 잖아? 10대 길드는 시드 배정 받고 본선부터 시작하는 거 아니었어?”
“그게 좀 규정이 이상하다나봐. 인원수가 모자라서 길드장만 자동 진출이라던데?”
“어휴. 헌터협회도 무슨 일을 그렇게 하냐.”
“뭐. 우리야 구경거리 생기고 좋지. 얼른 가보자! 힐름의 전력은 별로 안 알려져 있잖아? 이 기회에 구경 좀 해보자고.”
그들이 관심 없는 사이, 다른 헌터들 사이에서는 난리가 났다. 베일에 싸여있다 해도 과언이 아닌 힐름의 전력이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이니 당연히 관심이 높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순식간에 구름 관중이 모여들고, 덕분에 영민들은 한산하게 즐길거리들을 이용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경기장 쪽에서 우레와 같은 함성이 터졌다.
“와아아아아아-!”
“최고다. 강철우!!”
“강철우! 강철우!”
“힐름! 힐름! 힐름!”
철우가 뭔가를 한 모양이다. 갑작스런 소란에 조금 놀라기는 했지만 힐름의 다른 이들은 그러려니 하고 다시 예린이 돌보기에 집중 했다.
그들은 관심도 없었지만 그 다음 철우가 벌인 일은 그야말로 엄청났다.
원샷원킬, 아니 원펀치 올 KO 승.
상대가 어떤 공격을 하든, 어떤 고유 능력으로 훼방을 놓든 그저 뚜벅뚜벅 걸어가서 날린 주먹질 한 방을 버틴 이가 단 한 명도 없었다.
조작계든, 변화계든, 강화계든, 강림계든.
무슨 짓을 하든 딱 한 방이면 끝이었다.
덕분에 힐름에서 내보내는 다른 헌터를 무시하고 조롱하려던 이들의 음모는 철저히 분쇄되다 못해 오히려 더 큰 명성을 안겨다주었다.
예선전은 결계 안에서 동시다발적으로 펼쳐졌기에 다음 단계 진출자가 빠르게 줄어들었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돋보이는 것은 철우 뿐이었다.
다른 이들이 아무리 화려한 기술을 사용해도, 마나석을 이용한 특수한 기술로 만들어진 카메라는 그만을 잡고 있을 뿐이고 사람들의 시선 역시 오직 그만을 바라보았다.
그렇다보니 경기를 치르고 있는 이들도 그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처음에는 호승심과 경쟁심이었다.
그러나 짜놓은 듯 이름 난 헌터들과 맞붙는 그가 주먹질 한 방으로 경기를 끝날 때마다 마음이 찔끔거리고 초조해하기 시작했다.
‘제발 나랑 붙지 말아라. 제발!!’
그것은 아마도 그 순간 모든 출전 선수의 바람일 터였다.
붙는 이 마다 일격에 참패를 당하고 더러는 기권을 해대니 매 경기마다 그와 붙지 않은 이들은 상대가 누구든 안도의 한숨을 깊게 내쉴 정도였다.
심지어는 10대 길드에서 그를 곤란하게 만들기 위해 심어놓은 고수들마저 안색이 파래진 채 억지로 억지로 경기를 이어나갈 정도였다.
물론 그들 역시 일격에 패배하는 것을 피할 수 없었지만.
“강철우! 강철우!”
“원펀치! 원펀치!”
덕분에 그에게는 생각지 못한 별명까지 붙었다.
원펀치 강철우.
어째 조폭들이나 쓸 것 같은 닉네임이기는 했지만 주먹질 한 방으로 모든 것을 끝내는 그의 특징이 고스란히 담겨진 이름이었다.
물론 그의 진짜 강점은 공격력을 능가하는 무지막지한 생명력과 방어력에 있었지만, 지금으로서는 그것을 알 도리가 없었기에 구경하던 헌터들과 대중들은 한 번 더 놀랄 준비를 해야했다.
“이런 빌어먹을!”
“저놈들이 또··.”
사람들이 그의 이름을 연호하는 일이 잦아질수록, 더불어 이름 값이 높아질수록 불편해하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당장 그가 본선에 올라오기 전까지는 어찌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어 발만 동동 굴러야 했다.
“이놈, 본선에 올라오면 본 때를 보여주마.”
과연 그와 만났을 때 뜻대로 하는 것이 가능할지는 알 수 없었지만.
< 120화 - 개인전 (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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