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8화 - 세계 헌터 대회 (1) >
인천 공항의 사건이 있은 후 길드 힐름에는, 정확히는 대한민국 언론에는 의외의 변화가 일어났다.
[시민 안전 위협하는 일부 길드의 제 멋대로 행보. 이대로 괜 찮은가?]
[명분 뿐인 막가파식 헌터들의 행동에 시민 안전 위협 받아]
“엥? 이건 또 무슨 참신한 개소리야?”
철우가 황당함을 감추지 못한 기사의 내용인즉 이랬다.
일부 막무가내식으로 일부터 저지르고 보는 헌터들 때문에 시민 안전이 위협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명분’을 내세우며 자신들의 명성을 높이기 위해 충분히 소란 없이 막을 수 있는 일도 거창하게 벌리는 것은 물론 살인 현장을 일반들에게 ‘일부러’
노출시키는 만행까지 저지르고 있다고 했다.
정확히 누구라고 지칭하지는 않았지만 기사에서 지목하는 것은 다름 아닌 자신들, 길드 힐름이었다.
누가봐도 이번 인천 공항 사태를 겨냥한 기사들.
사태와 동시에 일어난 여론과는 정 반대의 내용들이지만 한 두 개도 아니고 거의 모든 기사를 덮을 만큼 쏟아져 나오다시피 하니 여론에도 서서히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맞는 말이다. 듣자하니 A등급이랑 B등급이 고작이라던데 S등급 헌터쯤 되면 조용히 끝낼 수도 있는 거 아니냐?]
[윗놈. A등급이 빙다리 핫바지로 보이지? S등급하고 붙어도 어느 정도는 버틴다더라. 이번에는 독도 쓰는 놈들이었다며? 그럼 조용히 끝내긴 어렵지.]
[너야말로 모르면 가만히 있어라. 저번에 보니까 영국쪽 S등급 헌터 하나가 A등급 썰고 다니더라.]
[ㅇㅇ. 그리고 공항 수비대에도 A등급 헌터가 꽤 있다던데 왜 지들이 난리임? 신고만 하면 될 것을. 관종인 듯.]
어딘지 냄새가 나는 댓글들도 있었지만 진실이야 누가 알랴.
늘 논란을 만들어내는 것은 기자들이고, 기사를 쏟아내면 여론이 만들어지는 것도 사실이었다.
기자들의 입장에서도 모든 기반을 포기하고 소수를 유지하는 힐름보다는 언론홍보 비용으로 막대한 금액을 지출하는 다른 길드의 편을 들어주는 것이 훨씬 유리한 것이다.
영민의 포션 때문에 눈치를 보는 이들이 많다고는 하지만, 찌라시에 가까운 인터넷 언론들이 그것을 살 리도 없으니 당장 눈 앞의 돈을 쫓는 것이 어쩌면 당연하다.
“나름대로 아는 기자들에게 연락을 해보고는 있는데 누가 수작을 부리는 것 같습니다.”
상황이 이상하게 흘러가는 것을 보고 유재한이 전화기에 불이 나도록 연락을 돌려봤지만 한 손이 열 손을 당해낼 수는 없었다.
그와 연락이 닿은 기자들이 아무리 용을 쓰고 기사를 올려도 다른 수십건의 기사가 바로 밀어내버리니 노출되는 것은 대부분 힐름을 나쁘게 몰아가는 기사들이다.
“젠장! 죽을 놈들 살려줬더니 더 난리네.”
철우는 워낙 강하게 몰아붙이는 언론과 악플러들 때문에 침묵하는 다수의 대중. 그리고 ‘그들이 옳은 것처럼’ 보여지는 상황들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어찌 할 방법이 없었다.
다시 그놈들을 데려다 놓아 줄테니 알아서 잘 해보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렇다고 알면서 가만 두기에는 피해도 너무 커질 것 같은데다, 어쩐지 놈들의 계획대로 끌려가는 것만 같아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이 상황이 너무나 답답하기만 했다.
그런 마음은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여서 그들 중 기사와 댓글에 마음을 쓰지 않고 있는 것은 오직 영민 뿐이었다.
“그거 보고 있어봐야 쓸데도 없다니까 그러네.”
물론 여론은 중요하다. 대의명분과 대중의 지지는 대한민국 10대 길드라는 이끌어가는 큰 원동력 중 하나였다.
‘그런데 그게 뭐 어때서? 내가 10대 길드 시켜달라고 했나 뭐?’
하지만 영민에게는, 길드 힐름에게는 쓸데없는 소리이기도 했다. 10대 길드가 되면 누가 에픽 등급 장비라도 주는 것도 아니고, 돈도 충분하고 무력도 충분하고 던전에 들어가지 못하는 것도 아닌데 뭐하러 굳이 10대 길드의 허명에, 사람들의 목소리에 목
을 맬까?
정히 귀찮게 굴고 자신들을 배척하려 한다면 다른 국가로 소속을 옮겨버리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는 영민이었다.
당장의 무력이든 연금술이든 어느 하나만 내세워도 모셔가려고 하는 국가들이 줄을 서겠지.
‘어차피 9레벨 던전 터지면 국가고 뭐고 없어질 텐데.’
더 먼 미래를, 8레벨과 9레벨 던전이 차례로 열리는 그때를 바라보는 영민에게 길드도 국경도 큰 의미는 없었다. 어차피 국가 단위로 덤벼봤자 잡몹 정도나 소탕할 수 있는 그 때가 오면 지금의 모든 울타리는 의미가 없어지고 대의명분도 사라진다.
그저 자신들을 지켜 줄 수 있는 힘을 가졌는지 아닌지 만이 중요했다.
그 모든 것들을 겪었던 강태성의 기억과 함께하는 영민에게는 이 소란스러운 상황이 우습게만 느껴졌다.
‘그래도, 감히 우리에게 장난질을 치는 놈들이 누구인지는 알아야겠지.’
네 사람의 호들갑을 한참이나 귀 후비며 방치하고 있던 영민은 무료한 눈빛으로 머리를 긁적이며 몸을 일으켰다.
아마도 여론 몰이를 하는 것이 한 둘은 아닐 거란 생각에 문제를 일으킬 마음은 없지만 그 외의 수작을 벌이려고 한다면 그에 응당한 대가를 치르게 해줄 생각이었다.
‘가만히 있으면 가마니로 보이는 게 이 바닥이니까.’
자신은 그저 귀찮을 뿐이지만 꼭 이런 것을 ‘겁 먹었다’거나 ‘패닉에 빠졌다’라는 식으로 오해를 하는 족속들이 있었다. 그리고는 허튼 수작까지 벌이곤 하는데 초장에 제대로 본 때를 보이지 않으면 더 귀찮은 일들이 벌어지기 십상이니 그럴 기미가 보이
면 손을 써둘 것이다.
“이 새끼들, 역시 호구인데?”
“거 봐요. 그쪽에는 전문가가 없다니까. 골든 크로스일 때야 홍보팀이라도 있었지. 꼴랑 헌터 몇 명이서 꾸려가면 아무리 돈이 많아봐야 여론전에서 밀리게 되어 있어요.”
“근데 이거 걸리지는 않겠지? 걔들 돈은 많잖아. 여론전은 포기해도 기자들 뒤를 캐서 시작한 사람을 찾기라도 하면··.”
“에이. 그래봤자 우리도 10대 길드 소속인데 지들이 뭘 어쩌겠어요. 우리가 개인으로 한 일인가? 다 길드에서 시켜서 한 건데. 더구나 우린 10대 길드 중에서도 상위고, 지들은 거품 낀 중위권이니 이빨도 못 드러낼걸요? 그리고 여기서 한 번 더 밟아주면
깨갱 할 겁니다.”
“밟아? 어떻게?”
“그러니까····.”
그렇게 영민이 역 추적을 시작하는 것도 모르고, 일을 시작한 자들은 신이 나서 다음 계략을 짜기 바빴다.
* * * * *
“이거 재미있네.”
자금과 정보망을 풀어 뒷조사를 하던 영민이 손에 받아든 결과지를 보고 히죽 웃음을 지었다.
대충 머릿속에 그렸던 그림이 있기는 한데, 결과가 생각보다 흥미로운 것이다.
“형, 왜요? 뭐 재미있는 거라도 있어요?”
“이거 봐.”
영민이 별 것 아니라는 듯 서류를 넘기자 민호 뿐 아니라 가람과 철우, 재한까지 다가와 함께 내용을 확인했다.
어지간한 일에는 거의 반응하지 않는 영민이다 보니 그가 흥미 있어 하는 일은 보통 놀라운 무언가일 확률이 높은 것이다.
“헐. 이거 정말이에요?”
“이런 우라질 놈들.”
그리고 그 서류를 모두 읽은 네 사람은 하나 같이 황당함과 분노를 동시에 표출했다.
“역시 착한 척 하는 놈들은 다 뒤로 호박씨 깐다니까!”
그 말에 그 대표주자였던 골든 크로스 소속이었던 유재한이 움찔하긴 했지만 잠시 눈치를 보고 더욱 열성적으로 상대를 까기 시작했다.
“아리랑 이 놈들은 최근 잘 나간다 싶더니 다 이렇게 싹을 밟아서 그런 모양입니다. 견제 한답시고 이런 짓까지 하는 걸 보면 우리를 보고 어지간히 배 아팠나 본데요? 지들도 아이템 하나 잘 먹어서 큰 주제에.”
그랬다. 영민의 예상대로 소문의 배후에는 여러 길드들이 도사리고 있었지만 그 중 강력하게 힘을 쓰는 곳들 중 아리랑이 끼어있는 것이다.
아리랑이라면 영민이 채집꾼으로 있던 시절 가져다 준 윈드 엘리멘탈을 이용해 제대로 꿀을 빨며 성장한 길드였으니, 은혜를 원수로 갚는 셈이나 마찬가지였다.
영민도 그것이 괘씸하게 여겨지기는 했지만 진지한이 아직 몸을 담고 있기에 분노보다는 흥미롭게 생각하는 중이었다.
그가 아는 진지한이라면 자신을 향해 이런 뒷공작을 펼치는 것을 가만 두고 볼 리 없으니까.
그렇다면 그도 모르게 진행되고 있다는 것인데, 이미 들리는 소문으로도 A등급 끝자락에 올랐다고 전해지는 그가 모를 정도면 극소수의 간부만 알고 지시한 일이라는 뜻이었다.
‘길드장을 포함해서 말이지.’
꽤나 호방하던 강중만의 가면 뒤에 다른 얼굴이 있었던 것일까? 영민은 다음으로 그들이 계획 중이라는 계략이 궁금해졌다.
“근데 포션에 세금을 붙이는 법안이라니, 헌터특별법에 위반되는 거 아니에요?”
“포션의 경우는 일반인도 사용이 가능하기 때문이겠지. 헌터특별법에서 세금이 면제 되는 건 헌터들만이 사용 가능한 아이템이기 때문이잖아?”
“으음. 그렇지만 의외네요. 포션 한 병 먼저 구입해보려고 온갖 선물까지 가져다 바치던 인간들이 이렇게 정면으로 우리를 노리는 법안을 발의하고 찬성하다니요.”
“뭐, 워낙 판매 우선 순위 방식이 확고했으니까. 포기하고 뒷돈이나 좀 뜯어보려는 거겠지.”
“뒷 돈이요?”
“로비 자금. 세금을 붙는 것을 막기 위해 우리가 로비를 할 거라는 생각 아니겠어?”
역시 민호보다는 가람이 세상 물정에 대해 빠삭했다.
영민 또한 그의 생각에 동의했다. 실제 정치인이라는 놈들은 로비를 통한 뒷돈을 바라고 있을 게 뻔했고 이 기회에 자신들을 거들떠 보지도 않는 영민에게 물을 먹여보려는 속셈인지도 몰랐다. 실제로 포션에 세금을 붙이는 법안 이외에도 힐름에 불리한
몇 가지 법안들이 추가로 발의 준비 중이라는 이야기가 적혀 있었으니까.
다른 10대 길드에서도 감히 무시하지 못하고 꼬박꼬박 관계 유지를 위해 힘 쓰는 자신들에게 눈길도 주지 않는 영민이 고까웠겠지.
그러나 영민은 여전히 그들과 쎄쎄쎄하며 잘 지낼 생각은 없었다.
“냅둬. 세금이야 내면 그만이고 말도 안 되는 짓을 하면 세계 곳곳에 별장이나 사서 돌아다니면서 던전이나 클리어 하지 뭐.”
이제 곧 바뀐 던전 레벨 기준으로 7레벨 던전이 등장한다. 어지간한 S등급 헌터 하나 가지고는 피똥을 싸게 되는 난이도가 시작되는 것이다.
그런 놈을 하나 겪고 나면, 혹은 7레벨 이상 던전 브레이크가 일어나면 그때는 상위 헌터들의 값어치가 천정부지로 뛰겠지.
만약 자신들이 해외로 떠나고 그런 일이 생긴다면 이번 법안을 발의한 의원들은 자기 지역구 주민들에게 돌팔매를 당해 죽을지도 모른다.
‘아니지. 지금이 어떤 시대인데. 총을 쏘거나 마나석 무기들로 날려버리겠군.’
6레벨 던전의 등장 후 7레벨 던전의 출현까지는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는다는 것을 유일하게 알고 있는 영민이기에 부릴 수 있는 여유였다.
“형, 근데 이거는 어떻게 할 거에요?”
“어떤 거?”
“이거요. 이거. 세계 헌터 대회 한국 대표 선발전. 서류 내용대로면 이거 백퍼센트 함정이라는 소리인데··.”
민호가 지목한 것은 세계 대회로까지 이어지는 헌터들의 격투 대회의 예선격인 한국 대표 선발전이었다.
< 118화 - 세계 헌터 대회 (1) > 끝
ⓒ 갈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