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7화 - 매드 사이언티스트 (3) >
“네 놈은 누구냐?! 여길 어떻게··.”
들어왔지? 라는 말은 쏙 들어갔다. 그런 말을 해봤자 아무런 의미도 없으니까.
대신 빠르게 신호를 보내 바깥을 지키고 있던 인형들을 체크했다. 다행히 신호가 잡혔지만 과연 이 자에게 의미가 있을까 생각이 들었다. 여러 곳에 인형들을 분산 배치를 하느라 막상 이곳을 지키는 것들은 A등급 하나와 B 등급 둘이 고작인 것이다.
때문에 매드 사이언티스트는 즉각 인형을 움직이는 대신 영민과의 대화를 시도했다.
“날 알고 있나?”
그럴 리가. 영민이 그에게 오랜만이라 이야기한 것은 강태성의 기억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의 입장에서는 혹시 정말로 그와 만난 적이 있던가 생각하게 만드는 대사였다.
영민도 그 반응이 재미있었는지 빙긋 웃어 보일 뿐, 별 다른 대꾸를 하지 않았다.
“네가 날 아는 것보다는 훨씬 많이 알고 있지.”
오히려 골려주려는 듯 의문만을 증폭시켰다.
“····여기까지 찾아왔다면 다 알고 왔다는 거 겠군.”
그 말 뜻을 모두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매드 사이언티스트는 마음의 준비를 했다. 이미 A등급 헌터 수준의 인형 열을 동시에 상대하고도 살아남은 영민이다.
그 후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가 자신의 앞에 나타났다면 역추적 당했다는 것을 인정해야했다.
여전히 ‘어떻게?’라는 의문이 있기는 하지만 지금 이 순간, 그것이 중요하지는 않았다.
“그래.”
영민도 많은 말을 하지는 않았다. 그가 앞으로 벌일 악행과 살육에 대해 언급할 수도 없는 일이니까.
다만 이번에는 그 비참하고 처참한 상황들이 발생하지 않도록 미리 고리를 끊어놓겠다는 생각으로 은근히 몸 속의 마나를 휘돌렸다.
“그럼 내가 S등급 헌터라는 것도 알고 있겠지?”
스르릉
매드 사이언티스트가 자세를 잡자 그의 몸에 심겨진 수많은 마도공학 장치들이 밖으로 드러났다.
과학과 마력을 결합한 최첨단이 무기들.
물론 강태성의 시절에 비하면 구식 무기라 부를만한 것들이지만 그 파괴력 만큼은 눈 아래로 볼 것이 아니었다.
“당연히 알지.”
영민이 하압 소리와 함께 기운을 발출하자 냉정하던 녀석의 표정이 크게 일그러졌다.
몸에서 돋아난 마력포와 진동마력칼날은 훼이크고 진짜 공격은 방안 곳곳에 설치해둔 공격무기들이었는데, 영민이 자신을 똑바로 쳐다본 채 그것들을 몽땅 망가뜨린 것이다.
“젠장··!”
서둘러 조작계의 마나를 움직여보지만, 이미 망가질 대로 망가진 장비들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것들로 할 수 있는 것은 이제 염력처럼 쇳덩이를 집어던지는 것이 고작. 그런 걸로는 영민을 간질이는 것도 무리였다.
우우우웅-!
어쩔 수 없이 놈은 차선을 택했다.
장비한 마도공학 무기들을 시동한 것.
마력포에 S등급 헌터 특유의 밀도 높은 마나가 공급되고 진동으로 적을 분쇄하는 특수한 칼날들이 영민을 향해 곡선을 그리며 뻗어나갔다.
“만나서 더러웠고, 다시는 만나지 말자.”
서겅
단단한 강화계 헌터의 몸에도 파고들어 힘줄과 신경을 잘라버릴 수 있는 위력이건만, 영민은 그저 단 한 번의 검격으로 모조리 분쇄했다.
진동이건 진공이건 +13 봉인의 드래곤 슬레이어에 닿자마자 박살이 나버리는 것이다.
때문에 칼날들이 모이는 방향과 타이밍만 잘 맞춰 휘두르면 일격에 박살을 내는 것도 가능했다. 아니 영민은 그것을 넘어 마력을 모으면 마력포까지 베어버렸다.
콰과광!!!
모여들던 마나가 충격을 받아 흩어지며 대폭발을 만들었다. S등급 헌터가 작정하고 모든 만큼 중간 차단의 여파도 보통이 아니었다.
방 전체를 넘어 층 전체가 흔들리고, 까딱하면 건물이 무너지게 생긴 것이다.
“······.”
다행히 최악으로는 치닫지 않은 것을 다행이라 여기며 영민이 걸레조각이 된 매드 사이언티스트의 몸을 살폈다.
만약의 만약을 위해 부품 하나, 나사 하나까지 난도질을 하려다가 움직임을 멈추었다.
‘이 새끼··.’
못 볼 걸 봤다는 듯 고운 눈썹이 뒤틀렸다.
‘그것’은 ‘놈’이 아니었다.
‘이걸 벌써 만들었을 줄이야··.’
놈의 형상을 하고 있기는 했지만, S등급의 마나를 보유하고 있기는 했지만 매드 사이언티스트 본인은 아닌 것이다.
매드 사이언티스트치고는 마나량이 조금 적게 느껴진다 싶기는 했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강태성도 이 당시의 놈을 만나본 것은 아니었으니까.
그런데 정말로 S등급의 인형이었을 줄이야? 더구나 생긴 것도 판박이였으니 속지 않는 것이 이상할 정도다.
‘이게 그거인가 본데··.’
생긴 것은 비슷하게 빚어 놓을 수 있다쳐도 표정이며 근육의 움직임이 너무 생생했다.
덕분에 영민은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바로 매드 사이언티스트의 쌍둥이 형. 동생과 다르게 A등급의 헌터로 각성 했지만 동생의 ‘재료’가 되며 억지로 S등급으로 끌어올려졌다는 그의 친 형이 분명했다.
‘벌써 중계기 역할을 하는 놈이 만들어졌다니··.’
매드 사이언티스트를 해치우지는 못했지만 결과적으로 놈이 나중에까지 가장 강력하게 써먹던 카드 하나를 부숴놓았으니 조금은 좋아해도 될 법 했지만 영민의 표정은 다시 어두워졌다.
결과적으로 매드 사이언티스트는 여기 없었으니까.
그리고 그를 대신해 그의 형이자 인형인 이 놈이 ‘중계기’ 역할을 하며 다른 인형들을 조작하고 있었다. 단순히 기기 조작 뿐 아니라 그의 조작계 능력을 부여받아 제법 세밀하게.
아직은 초급의 단계로도 볼 수 있지만 놈의 본체를 찾기 어렵도록 만드는 ‘중계기’의 등장은 꽤나 심각한 것이었다.
이 중계기가 더 만들어지고 발전할수록 놈의 위치는 더욱 잡아내기 어려워질 테고 그만큼 인류의 피해는 더 커질 테니까.
영민은 새삼 ‘던전 쇼크’며 ‘고레벨 던전 브레이크’, ‘다섯 군주’를 막기 전에 앞으로 해가 될 녀석들을 미리 쓸어버리는 것이 중요 할지 모른다는 생각을 떠올렸다.
언제고 나설 생각이기는 했지만 그 시기를 조금 앞당기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다.
자신에 의해 뒤바뀌고 있는 미래에 그 자들 역시 엮여있었으니까.
당장 매드 사이언티스트만 해도 이 시기에 대한민국은 거들떠보지도 않던 인물이다. 그런 인물이 아예 한국에 거점을 만들고 테러를 계획하다니? 여러모로 위험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원래대로라면 하나 둘씩 몰래 헌터며 민간인들을 납치해서 비밀리에 조심스럽게 연구를 했을 놈까지 튀어나왔다는 것은 아직 수면 아래에 있어야 할 위험들이 빠르게 드러나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했으니까.
‘정말 처치해야 할 놈들은 죄다 잡기 어렵다는 문제가 있기는 하지만··.’
물론 그 과정이 쉽지는 않다는 것이 문제이긴 했다.
당장 매드 사이언티스트만 해도 중계기가 없다면 범위를 특정 할 수 있지만 중계기를 갖추고 있다면 지구 반대편에 있을수도 있는 노릇이니 본체를 찾아내기 어려우니까.
‘그 놈들도 잠잠한 것이 수상하고.’
영민의 머릿속에 몇몇의 얼굴이 떠올랐다 사라졌다. 그나마 가장 잡아내기 수월한 것이 거점을 알고 있는 ‘이슬람 무장 세력’들인데 지난 던전 쇼크 이후로 조용한 것이 어째 찜찜한 기분도 들었다.
“에휴. 추적과 감지에 능한 사람을 영입해봐야하나?”
생각을 하면 할수록 답답함만 더해지니, 한숨을 푹 내쉬는 영민을 위로하는 것은 오직 퀘스트 알림 뿐이었다.
[퀘스트 미친 과학자의 음모를 완료하셨습니다. 보상을 수령하십시오.]
상대가 S등급이기 때문인지 보상은 상당했다. 대량의 경험치 이외에 1만이나 되는 코인을 획득했으니까. 비록 그 과정에서 구입한 ‘거짓된 정신의 교감’스킬에 소모한 코인이 상당했지만 앞선 연계 퀘스트까지 따져보면 적어도 본전치기는 했으니 다행이
다.
그 밖에 ‘매드 사이언티스트’를 처치했기 때문인지 최신형 마도공학 장비 일부가 보상으로 나왔지만 영민은 큰 관심이 없었다.
그런 것을 사용하는 것보다 +13 봉인의 드래곤 슬레이어로 칼질 한 번 더하는 것이 훨씬 많은 데미지를 입힐 수 있기 때문이다.
“역시 끝이 아니군.”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것은, 이 연계 퀘스트가 끝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가만, 퀘스트 정보를 통해 놈의 위치를 찾아낼 수 있지 않을까?’
그 대목에서 영민의 표정이 확 밝아졌다. 어떤 절대적인 힘과도 같은 ‘시스템’의 영향을 받는 ‘퀘스트’의 경우 전능하지는 않아도 전지하다 말할 수 있다.
이미 답을 알고 있는 상황에서 살짝 말을 꼬아 게이머를 인도하는 느낌이랄까? 그것을 생각할 때 이 ‘퀘스트 정보’를 잘만 이용하면 찾기 어려운 사람이나 물건을 찾는 것도 충분히 가능할 것 같았다. 어떤 식으로든 관련 퀘스트를 만들 수만 있다면.
“좋았어. 차근차근 완료하다보면 알아서 놈에게 데려다 주겠지.”
영민은 추가로 생겨난 연계 케스트, [남겨진 인형 파괴]의 정보를 훑으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퀘스트를 임의로 생성할 방법을 알지는 못하지만, 행운 Max의 힘을 빌리면 적재적소에 필요한 퀘스트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였다.
그렇게 다시, 2차 테러를 위해 배치된 채 잠들어 있을 인형들을 파괴하기 위해 영민은 나이트메어에 올라 날아올랐다.
남겨진 인형의 위치는 온통 모호한 말들로 가려져있었지만 그 사이 인천공항에서 소란을 일으킨 세 사람은 공항 경비대와 함께 사태를 수습하느라 정신이 없었으니 차라리 그 쪽이 더 쉬운 일인지 몰랐다.
그러는 사이 당연히 한국에는 또 다시 한바탕 난리가 났다. 대한민국에 몇 없는 공항이자 최대의 국제 공항인 인천공항이 테러 위협을 받았으니 조용한 것이 더 이상하다. 특히나 이번의 경우 민간인 희생도 적지 않았고 살인의 현장을 목격한 이들의 수
도 상당했으니까.
경비대가 막기는 했지만 실시간으로 SNS에 생중계를 한 인원도 있어 파장은 더욱 컸다. 최소 수백만의 사람들이 공항 테러 현장을 실시간으로 지켜본 것이다.
그나마 다행히도 길드 힐름의 세 사람이 앞장서서 테러리스트들을 격퇴하고 중독된 사람들을 구해냈기에 망정이지 엄청난 희생과 국제적 문제를 낳을 뻔했다.
어쨌든 피해는 최소화 하는데 성공한 덕에 누구하나 욕을 먹지는 않은 상황이지만 상대적으로 힐름의 주가는 오르고, 나머지 길드들이 눈총을 받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이제 생겨난지 얼마 되지도 않고 인원도 적은 힐름도 파악한 테러 정보를 명색이
10대 길드 씩이나 되는 초대형 길드들이 감지해내지 못하고 막아서지 못하는 것이 말이 되냐는 투정이지만 한 둘이 아니라 수십, 수백만이 입을 모으자 상당한 압박이 되었다.
덕분에 5명이라는 팀 수준의 길드원 숫자 때문에 S등급 헌터를 둘이나 보유하고도 10대 길드 중 최하위로 평가받던 그들이지만, 이제는 사람들의 인식에서나 객관적 평가에서나 그 순위가 요동을 치려 하고 있었다.
최소 10대길드 중 중위권.
A등급 헌터이기는 하지만 다른 이들의 압도적인 무위에 치여 평가절하 받는 유재한이야 그렇다쳐도 철우와 함께 힐름의 양대 S등급 헌터인 영민이 없는 상황에서도 이만큼이나 힘을 뽐내는 그들을 보며 내린 사람들의 평가는 무려 그 정도였다.
수백명의 A등급 헌터와 셀 수도 없이 많은 B등급 이하의 헌터들. 그리고 길드장 자리를 꿰찬 S등급 헌터들보다도 고작 다섯 명에 불과한 그들을 더 윗 자리에 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는 새로운 질시를 낳았다.
< 117화 - 매드 사이언티스트 (3)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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