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행운 MAX-114화 (114/177)

< 114화 - 퀘스트 (2) >

“응?”

가볍게 날 듯이 뛰어올라 누군가가 있던 자리에 도착한 영민은 화들짝 놀라 달아나는 상대의 뒷모습을 보고 의아한 듯 갸웃거렸다.

평범한 감시역인가 했는데, 뒷태가 어딘가 남다른 것이다.

‘여자?’

적어도 자신이 S등급의 헌터라는 것 쯤은 알고 있을 텐데 여성 헌터라니?

여성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지만 통계적으로만 봐도 여성 헌터 중 두각을 드러낼 만큼 뛰어난 이는 별로 없었다. 그 중 감시에 특화되는 은신이나 감지 계열은 더 적었는데 이는 애초에 은신과 감지 계열의 고유 능력이 나타날 확률이 적은 것과 연관이 있

었다.

뭐, 그것까지는 이해 할 수 있다. 하지만 상대에게서 느껴지는 마나의 크기가 고작해야 B등급에 불과하다는 것이 의아했다.

S등급의 헌터를 감시하려면 최소한 A등급 쯤은 붙어야 한다는 게 상식이 아니던가?

그래야 몰래 지켜보거나 유사시에 몸을 뺄 수라도 있지, 그 이하로는 영민이 무시하더라도 제대로 관찰하지 못하거나 단숨에 발각 될 수 있었다.

또한 헌터가 다른 헌터를 동의 없이 감시하거나 관찰하다가는 시비가 붙거나, 최악의 경우 붙잡혀 감당 할 수 없는 던전에 던져 질 수 있는 일이다.

일단 던전에서 실종되면 경찰이고 헌터협회고 증거를 찾을 수 없으니 손 쓸 방법이 없는 게 사실이고.

‘일단 잡아볼까?’

이상한 것 투성이라 영민은 이 사람이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했다. 자신을 감시했다고 보기에는 민망할 정도로 약하고 허술해서 괜히 생사람을 잡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든 것이다.

그렇게 망설이는 사이, 상대도 영민의 추적을 알아차렸다.

“앗··!”

슬쩍 고개를 돌리는가 싶더니 다급히 손을 놀렸다.

“····어?!”

그리고 빛무리에 감싸여 사라져버렸다. 귀환 계열의 아이템을 사용한 모양. 능력의 차이가 월등한 만큼 잡으려면 잡을 수도, 귀환을 저지할 수도 있었지만 그녀가 완전히 모습을 감출 때까지 영민은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았다. 아니, 할 수 없었다.

‘정말 그 애라고?’

상대가 고개를 잠깐 돌리는 순간 스친 그 얼굴에 몸이 굳어버렸기 때문이다.

잊지 못할, 잊을 수 없는 그 얼굴.

아무 것도 아닌 자신을 위해 차에 대신 뛰어들었던 첫사랑 그녀였다.

‘말도 안 돼··.’

영민은 금방이라도 터져버릴 것 같은 심장을 다독였다. 심호흡을 하고 천천히 마음을 가다듬었다.

정말 그녀일까? 정말? 진짜로?

생각해보면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자신을 대신해 큰 사고를 당해 심각한 상황까지 갔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죽었다는 이야기를 듣거나 장례식을 직접 본 것은 아니었으니까.

‘그래도 상태가 심각하다고····.’

거기까지 생각하던 영민은 부질없음을 깨달았다. 어째서인지 계속해서 부정하고 싶어하고 있지만 모두 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스스로도 알고 있었으니까.

헌터로 각성하며 회복했을 가능성, 치료계 헌터의 도움을 받았을 가능성, 그리고·· 애초 그 정도로 심각한 사고가 아니었을 가능성.

가능성도 많고 현실성도 넘쳤으니까.

‘마지막·· 가능성일 수도 있겠군.’

자신은 재수 없는 아이였으니까. 가까이하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에게 불행을 가져다주는 이였으니까. 자신을 가까이 한 이후 사소한 상처를 입었을 때도 자신과 떼어놓으려 무진 애를 쓰던 그녀의 가족들이다.

그만한 사고를 당했고, 목숨이 위험할 뻔하기까지 했는데 계속해서 어울리도록 두는 것이 이상했다.

어쩌면 자신에게도 거짓말을 하고, 그녀에게도 거짓말을 해 떼어놓은 것인지도 몰랐다.

‘어쨌든 나는 죄인이니까.’

그러나 서운하거나 화가 나지는 않았다. 오히려 죄스러울 따름이다. 잊혀진 죄를 다시 들추어 낸 것처럼 속이 쓰리고 얼굴이 화끈거렸다.

영민은 그 자리에서 그대로 침묵했다.

‘왜 이제와서 나를 찾은 거지?’

영민이 다시 사고(思考 )를 하기 시작한 것은 한참 뒤의 일이었다. 민호가 보았다면 석화(石化) 된 것이 아니냐며 호들갑을 떨만큼 한참을 멈춰있던 영민은 오랜 옛날부터 지금까지를 모두 쭉 떠올리고 난 뒤에야 정신을 차렸다.

그녀가 왜 자신을 찾았을까. 아니, 왜 자신이 있는 곳을 알면서도 찾지 않았을까. 먼 발치에서 바라보기만 한 것일까.

사실 영민을 정확하게 보았다고 생각하기도 어려웠다. B등급 헌터의 수준으로 그 먼거리를 꿰뚫어본다는 것은 특수한 능력이 있지 않는 한 어려운 일이니까.

‘얼굴이 팔렸기 때문인가?’

이미 몇 번의 사태로 인해 영민의 얼굴은 전국에, 전 세계에 팔린 상태였다. 조건부 특수능력인 ‘기원’의 활용을 위해서라도 마다하지 않은 영민은 어느 순간부턴가 울트라맨 가면에서 벗어났고 이제 영민의 얼굴을 모르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정도였

다.

물론 그로 인한 부작용도 있었다. 마나 활성화로 인해 피부가 뽀얗고 깨끗해지기는 했지만 애초에 워낙 흔하게 생긴 얼굴이라 그를 사칭하는 사람도 적잖이 나타났던 것이다. 게이트 키퍼와 모델 계약을 했을 때는 그들이 알아서 잡아내고, 지금에 와서는

헌터협회와 국가가 나서서 막아주고 있지만 아직도 그의 행세를 하며 사람들의 등을 쳐먹는 인간들이 꽤나 있다고 들었다.

그렇기 때문인지 아무에게도 별다른 답신을 보내지 않기 때문인지 그에게 직접적으로 연락을 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설마하니 그 재수 없는, 악마의 자식 같던 그 소년이 기적의 연금술사이자 대한민국 10대 길드 중 하나인 힐름의 수장이며 S등급의 헌터인 영민일 것이라고는 상상하기 어려운 것도 있을 테고 아니면 아직도 ‘가까이 하면 해를 당하는’ 천형과도 같은 저

주가 있을까 걱정이 되어 연락을 하지 않는지도 모른다.

그런 상황이지만 아마 알아볼 사람들은 알아보았을 수도 있었다. 애초에 소문을 접하고 그에게 다가오지 않았던 이들이라면 모를까 어떤 식으로든 그와 엮였던 이들이라면 끔찍한 기억으로나마 아직 그를 기억하고 있을 테니까.

‘그래. 그럴지도.’

만약 정말 그녀라면,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정말로 자신이 아는 영민이 맞는지 확인을 해보고 싶었는지도 모르지.

도망을 친 것이 이상하긴 했지만 그 또한 당황하면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그 밖에 안 좋은 생각들도 잔뜩 떠올랐다.

이제 자신은 대한민국 최고의 유명인 중 하나이고, 최고의 재벌 중 한 명이니 무언가를 바라고 접근하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때는 그렇게도 자신과 그녀를 떼어놓으려 했던 이들이 그녀의 등을 떠밀어 보냈을 확률도 낮지는 않다.

옛 인연과 감정을 빌어 비약이나 기타 다른 무언가라도 얻어낼 수 있다면 평생을 놀고 먹을 수 있을 테니까.

그리고, 그렇게 해줄 생각도 있었다. 자신을 위해 그런 희생까지 했던 그녀라면 얼마든지 기쁜 마음으로 충분한 보상을 해줄 수 있었다.

그런 것 쯤 내어준다고 해서 자신의 잔고에는 티도 나지 않을 테니까. 그런 걸로 갚을 수만 있다면 원하는 만큼 해줄 생각이었다.

호구 잡힐 생각은 없지만 합당한 보상과 도움 쯤은 얼마든지, 원하는 만큼 해줄 수 있는 능력과 위치에 있었으니까.

일단은 그녀인지도 확실하지 않기는 하지만.

‘인연이 닿는다면, 다시 만나겠지.’

잠시 그녀가 사라진 자리를 바라보던 영민은 등을 돌려 자신의 처소로 돌아왔다.

그녀가 다시 나타날지 어떤 이유로 나타났는지는 알 수 없지만 만난다면, 또 만나지 못한다면 그것도 다 운명이라고 생각하며 마음을 접었다.

희한하게 다시 잘해보고 싶다거나 하는 마음이 튀어나오는 건 아니었다.

강태성의 기억으로 점점 성격과 행동이 바뀌어가듯 마음까지 바뀌어가고 있을 것일까. 갑작스러운 등장에 놀랐을 뿐, 생각보다 가슴이 담담히 뛰고 있었다.

그러한 자신이 조금은 서글퍼졌다.

*     *     *     *     *

그녀일지 모르는 누군가와의 뜻밖의 조우를 한 뒤, 영민은 한동안 던전 진입에 몰두했다. 정확히는 퀘스트의 종류와 발동조건, 완료조건을 알아내는 것에 맛을 들였다.

지난 번과 같이 일상생활에서도 퀘스트가 발생하기는 했지만 그런 것은 대부분 소소한 것들이고 진짜 쓸만한 것들은 대부분 던전 내에서 일어난다는 것을 파악한 까닭이다.

던전의 종류에 따라 어떤 것들은 던전에 진입하자마자 나타났고, 어떤 것들은 특정한 조건이나 상황에서만 발동했으며 ‘현상금 미션’이 발동을 하는 곳에서도 동일하게 퀘스트가 발동한다는 것을 확인했다.

아직 현상금 미션과 동일한 퀘스트가 발동하는 지는 파악되지 않았지만 하나하나 알아가는 재미가 꽤 쏠쏠했다. 덤으로 코인까지 상당량 따라오니 노가다도 겸할 수 있어 일석이조였고.

그러는 사이 밖에서는 몇 가지 변화가 있었다.

일단 던전의 레벨이 전체적으로 조정되었다. 1레벨 던전이 애초부터 입구가 오픈된 채로 등장하기 시작하면서 민간인의 자구책이 강화되고, 그에따라 민간인도 충분히 1레벨 던전 몬스터 정도는 상대할 수 있게 되면서 레벨이 격하된 것이다.

1레벨은 0레벨로, 2레벨은 1레벨로 강등되어 불리게 된 것이다. 이 또한 예정된 미래였다.

이로 인해 던전에 대한, 몬스터에 대한 경각심이 떨어질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었지만 당장 집 앞에 몬스터가 돌아다닐 수 있는 상황에서 몬스터를 허투루 여기는 이는 없었다.

오히려 일반인의 경각심은 높아지고 군과 경에 대한 신뢰도가 높아질 뿐 아니라 집권 여당에 대한 지지율도 올라가니 정부 차원에서도 반대 할 이유가 없었다.

대신 대한민국 역시 총기 소유와 마나석 무기에 대한 민간 소유를 개방했다. 군과 경에만 맡기기에는 한계가 있는 만큼 스스로 기본적인 무장을 갖추고 자경단을 조직하여 군과 경에 긴밀히 협력하도록 유도한 것이다.

이를 이용한 강력 범죄가 일부 발생하기는 했지만 그것은 그야말로 일부였다. 언제 생겨날지 모르는 던전과 몬스터 때문에 마을 곳곳에, 도시 곳곳에 무장한 군과 경이 배치되어 있는데 함부로 날뛸 자들은 별로 없었다.

연락 한 통이면 순식간에 거리와 도시가 봉쇄되는데 범죄를 일으키고 어디로 도망을 갈 텐가.

여기에 다른 10대 길드도 적극 협조를 하니 치안은 거의 완벽하게 잡혔고 그러는 사이에도 영민의 포션은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어?”

7레벨, 아니 이제는 6레벨이 되어버린 던전에서 막 귀환한 영민의 눈앞에 새로운 퀘스트 창이 나타났다.

일상 퀘스트는 실패해도 패널티가 거의 없으니 보통 같으면 손을 휘저어 치워버렸겠지만, 이번에는 특별한지 눈에 이채를 띄고 재미있다는 표정을 지었다.

[습격자를 처치하라][연]

던전 공략 후 힘이 빠진 당신을 노리는 습격자들에 대비하라.

- 완료 조건 : 습격자 처치 0 / 10

- 실패 조건 : 본인의 사망

- 보상 : 경험치 500,000. 3000 코인

누군가 그를 노리고 있음을 퀘스트 창이 알려주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퀘스트 명 옆에 붙은 [연] 표시는 연계 퀘스트를 의미했다.

일반 퀘스트보다 연계 퀘스트의 보상이 더 좋은 것은 당연지사! 습격자들의 수준이 있는지 연계 퀘스트의 첫 번째임에도 경험치며 코인의 보상이 나쁘지 않다는 것에 즐거워하며 영민은 기감을 최대한 확장시켰다.

‘이 새끼들 봐라?’

영민의 표정이 기묘하게 씰룩거렸다.

습격자로 추정되는 인물 열 명의 기운이 단박에 파악된 것은 물론 대략의 마나 운용법까지 느껴진 것이다.

그것은 한국의 헌터들이 흔히 사용하는 방식이 아니었다.

< 114화 - 퀘스트 (2) > 끝

ⓒ 갈드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