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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행운 MAX-108화 (108/177)

< 108화 - 성녀 아리스 (4) >

다행히도 아렌이 그에게 보이는 관심은 ‘두근거림’과는 거리가 멀었다. 정말로 별종을 보았다는 듯한 즐거움. 그 이유는 영민도 잘 알고 있었다.

‘그래. 난 네 동생한테 관심 없으니까 가라 좀!’

아렌의 정체가 ‘죽은 아리스의 언니’이기 때문이다. 죽은 뒤 동생의 몸에 깃들어 있다가, 헌터 각성과 함께 깨어난 것이다.

그것도 S등급 헌터의 강력한 고유 능력을 몸에 지닌 채로.

누군가 주장했던 ‘고유 능력’은 ‘영혼의 능력’이라는 말처럼 한 몸에 두 개의 영혼이 깃들자 각자의 영혼이 몸을 차지할 때마다 고유 능력을 바꾸어 사용 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다른 한 쪽의 고유 능력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나중에 아리스는 이것을 ‘능력 동결’이라 불렀다. 한 쪽의 영혼이 몸을 차지하는 순간 다른 한 쪽의 능력이 동결되는 것이다.

아리스와 아렌의 이 사례를 두고 ‘영혼 주입’이라는 끔찍한 연구도 진행이 되기는 했지만 보통의 방법으로는 동시에 두 가지 고유 능력을 사용 할 수 없었다.

아렌이 아리스의 고유 능력을 제 것처럼 사용 할 수 있는 이유. 그것은 바로 아리스가 지닌 고유 능력의 특수성 때문이었다.

신성력을 제 멋대로 제어할 수 있는 능력. 심지어는 ‘권한 설정’까지 가능해서, 아리스가 아렌에게 자신과 동일한 제어 권한을 부여했던 것이다.

그렇기에 아리스가 아렌의 능력을 사용하지는 못하지만, 아렌은 아리스의 능력을 마음대로 사용했다.

물론 아렌일 경우 회복보다는 버프 쪽에 중점을 두고 능력을 사용하는 경향이 있기는 했지만 결코 회복 능력이 부족한 것은 아니었다.

강화계와 지원계. 상성이 좋은 S등급의 고유 능력을 두 개나 한 몸에 지녔으니 전투력에서 엄청난 시너지가 나는 것은 당연했다.

가히 최강에 근접했다 할 수 있을 정도로.

때문에 자연스럽게 ‘회귀 대상자’ 명단에도 올랐지만, 망령의 군주를 상대하는 과정에서 아렌의 영혼이 심각한 손상을 입으면서 제외되었었다.

빛 속성의 극에 달한 그녀가 있기에 용제보다 ‘망령의 군주’를 제 1 목표로 삼았던 것인데 놈의 영혼 공격에 하필 그녀의 강점이자 약점인 ‘두 개의 영혼’을 공격 당한 것이다.

전력의 핵심이었던 그녀가 큰 타격을 받으면서 공략에도 실패한 것은 말 할 것이 없었다.

아니, 그 불완전한 상태에서 용제 공략에 합류한 것도 용하다 할 수 있던 상황. 드래곤 슬레이어를 다섯 자루나 갖춘 덕분에 가까스로 용제를 처치하는 것에는 성공을 했지만, 영혼의 상처는 더욱 벌어져버렸다.

그렇게 영혼이 소멸되어가는 마지막 순간에도 아렌은 자신보다 동생의 앞날을 걱정했었다. 어차피 자신은 한 번 죽었던 몸이고 자신이 깃든 이 몸 역시 동생의 것이라는 사실을 무엇보다 강조하면서.

혹시나 자신이 참견하는 일이 많을수록 몸의 소유권이 반대로 넘어와버리는 것이 아닐까 무던히도 걱정했던 모양이었다.

‘그게 니 동생을 위하는 길이야, 임마!’

영민이 그녀와 엮이지 않으려는 이유 중 하나도 같은 이유였다. 이번만큼은 그녀와 그녀의 동생이 세계를 위해 희생하지 않도록, 영민이 짜놓은 팀의 구성에서 이름을 빼버린 것이다.

그녀의 회복 능력과 전투력이 아쉬운 것은 사실이지만, 그녀가 아니라도 충분히 대체 할 수 있는 인력은 존재했다.

요한과 진지한.

아리스와 마찬가지로 신성 계열 S등급 헌터가 될 두 사람만 챙기고 살려놓는다면 그녀의 빈자리 쯤은 충분히 커버할 수 있으리란 계산이다.

“좋아. 너라면 믿을 수 있겠어.”

그녀의 고유 능력의 파생 기술인 ‘진실 탐지’라도 한 것일까? 영민은 한참이나 가만히 바라보던 아렌은 씨익 시원한 미소를 지으며 악수를 청했다.

뭔가 찝찝하지만, 잡지 않는 것도 이상한 상황.

그녀의 작고 하얀 손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던 영민은 한쪽 눈썹을 살짝 찡그리며 슬쩍 손 끝만 잡았다.

덥썩

하지만 오히려 아렌 쪽이 적극적으로 당겨 잡더니 묘한 표정으로 한 마디를 더 이었다.

“일단 오늘은 돌아가지. 하지만 다음에 만날 때는 모른 척 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 물론 만나지 않는 것이 가장 좋겠지만.”

“······그러지.”

아리송한 말이었지만 강태성의 기억 때문인지 영민은 그 뜻을 알 것 같았다.

짧은 만남일 뿐이었지만 아렌은 영민을 ‘최후의 보루’쯤으로 판단한 모양이다. 만약의 상황이 되었을 때, 아리스를 믿고 맡길 수 있는 인물로 생각한 것이다.

강태성의 미래에서도 비슷한 생각과 행동들을 하던 아렌이니 얼추 짐작 할 수 있었다.

‘곁다리 영혼’인 자신이 언제 사라져도 동생에게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여러 가지를 준비했었지.

그 마음이 갸륵해서 일단은 알겠노라고 이야기 했다.

뭐, 자신이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만들 생각이니까.

그 길로 아렌은 ‘아리스’와 체인지를 한 뒤 기사단을 이끌고 물러났다. 이왕 온 김에 관광도 좀 하고, 인사들도 좀 만나겠다는데 아마 속내는 대한민국의 안전도를 점검하려는 의도일 것이다. 과연 유사시 아리스를 보내도 괜찮을지 파악해두려는 것이겠지.

‘위험한 던전을 좀 남겨 둘 걸 그랬나?’

7레벨 던전이 몇 개쯤 더 있다면 후순위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는 했지만 어쨌든, 기피대상이던 그녀와 만난 것 치고는 제법 무난한 결과였다.

포로도 넷이나 더 잡았고.

“형, 괜찮아요?!”

“대장. 괜찮습니까?”

아리스가 돌아가자 기다렸다는 듯 민호와 가람, 철우가 영민에게 뛰어왔다. 안에서 전투의 충격음은 들리는데, 성녀를 위한 기사단이 옆을 지키는 바람에 허투루 움직이지 못하고 있던 것이다.

그들이 뛰어들면 기사단 역시 뛰어들게 뻔하기에. 알게 모르게 서로를 견제하고 있다가 아리스가 나서자 뛰어 들어왔다.

“어? 저 놈들은?”

그리고 정신을 잃은 채 구속되어 있는 네 명의 헌터를 발견했다. 반쯤 시체에 가까운 몰골이지만 아무도 걱정하는 눈빛은 아니다. 헌터라는 족속들이야 목숨만 붙어 있다면 포션이든 회복 능력을 통해 부활 할 수 있는 자들이니까.

다만 둘 뿐이던 공간에 알 수 없는 존재들이 있다는 사실 자체에만 주목했다.

“설마 성녀가 암습을?!”

“에엑? 설마요! 그 예쁜 얼굴로?! 말도 안 돼!!”

철우가 호들갑을 떨며 의심을 펼치자 민호가 말도 안 된 다며 난리를 쳤다. 예쁜 것과는 무슨 상관인지는 모르겠지만.

“가만, 그렇다고 보기에는 생김이 많이 다른데? 이목구비가 동양적이야. 대장, 이놈들 혹시?”

그나마 이성을 갖고 상황을 파악한 것은 역시 가람이었다.

“그래. 중국 놈들이야.”

중국 놈들. 그 한 마디로 모든 것이 이해가 됐다.

영민의 언질로 내내 기다려오던 놈들이 아니던가? 자신들 모르게 이 안까지 숨어들었다는 사실에 섬짓하기는 했지만 한 편으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은신에 특화된 고유 능력을 지닌 상위 헌터가 많은 것은 아니었으니까. 어쨌든 큰 위험 요소 하나가 제거된 셈이다.

“이제 어쩔 겁니까, 대장?”

그들의 처우와 그들을 보낸 흑사회에 대한 입장을 묻자 영민은 빙긋 웃어보일 뿐이었다.

그리고 다음 날.

대한민국이, 전 세계가 난리가 났다. 분노로 들끓었다.

영민이 발표한 한 가지 뉴스 때문이었다.

또 다시 힐름 길드에 쳐들어온 ‘암살자’들이 영민과 ‘성녀’를 노렸다!

사실은 영민을 노리려 왔는데 성녀가 있던 것 뿐이지만 뉴스는 의도적으로 ‘성녀의 습격’을 큼지막하게 다루었다. 그래야 더 뉴스꺼리가 되기 때문이다. 그 전략은 바로 들어맞았다.

유재한과 친분이 있는 기자의 독점 기사가 나간 이후 관련 기사들이 쏟아져나오는 것은 물론 해외로 번역되어 실시간으로 퍼져나갔다.

감히 성녀를 공격하다니? 흑사회가 아니라 전 세계의 그 어떤 길드라 해도 용서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녀를 사랑하는 모든 일반인과 길드들이 들고 일어나 이 ‘용서 할 수 없는 테러 행위’에 대해 규탄했다. 흉수를 반드시 찾아내 줄 것을 길드 힐름에 부탁해왔다.

처리도 아니고 확인을 요청할 뿐이다. 찾아만 낸다면 처리는 자신들이 나서서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니 찾아만 내다오! 내노라하는 길드마다 성녀의 광팬을 자처하는 강력한 헌터들이 버티고 있으니 ‘성녀 지키미 연합’이라도 만들 기세였다.

그 과정에서 성녀를 위한 기사단은 본의 아니게 욕을 많이 먹었다. 성녀의 옆에 붙어 있던 주제에, 어떻게 암습을 당하도록 상황을 방치 할 수 있냐는 것이다. 성녀가 나서서 참도록 말려 가만히 있는 것이지, 생각 같아서는 당장 흉수를 찾아내 요절을 내버리고

싶어 부글부글거렸다.

이 모든 것은 영민이 만일의 사태에 대한 ‘선불’의 개념으로 요구한 동의를 아렌이 흔쾌히 수락한 결과였다.

결국 ‘정체 모를 흉수’에 대한 국제적 관심과 여론이 뜨겁게 끓어올랐고, 영민은 준비해둔 영상을 인터넷에 풀었다.

[너는 누구지?]

[흑사회의 S등급 헌터 이셴이다. 억? 이게 뭐야?! 난 그런 말을 했어! 아니 왜 말이 제 멋대로 나오지?!]

[고유 능력은?]

[은신 이동이다. 최대 50명까지 은신 상태롤 유지하며 이동하게 할 수 있다. 아니야! 이건 진실이야! 아니, 그게 아니라··.]

[‘성녀’와 전투를 벌인 것이 맞나?]

[절대로 그렇다! 비록 조금의 위해도 끼치지 못했지만··. 미치겠네! 갑자기 말이 왜 진실만 나오는 거야?!]

[이곳에 온 것은 길드의 상부에서 지시한 것인가?]

[당연하다. 개인의 일탈이 아니다! 으아악!!]

인터뷰는 그것이 끝이었다. 원하는 대답을 이끌어 냈으니까.

일부러 질문을 교묘하게 비틀어놓은 영민은 원하던 대답들이 나오자 화면을 돌리고 놈의 입을 틀어막았다.

대신 한 병의 포션을 클로즈업해서 잡았다. 홀리 오러 만큼은 아니지만 눈부신 하얀 빛이 인상적인 그것의 옆에는 효능이 간단하게 적혀 있었다.

감지 능력을 지닌 헌터가 아이템 감정을 하면 확인 할 수 있는 기본 양식이었다.

[진실의 목소리][소모]

사용자는 10분 동안 거짓을 이야기 할 수 없다.

포로를 고문 없이 심문하거나 이성에게 속마음을 고백할 때 사용하기 좋다.

단, 예상치 못한 진실이 튀어나올 수 있으니 주의할 것

언뜻보면 아이템 홍보라고도 생각 할 수 있는 그 메모를 끝으로 영상도 종료가 되었다.

그리고 그 설명이 거짓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듯, [진실의 목소리]가 헌터넷 경매에 대량으로 등록되었다.

제작을 위한 최소 연금술 숙련도는 95%로 아주 높지만 다행히 제작 성공률도 높은 편이고 필요 재료가 비싸거나 많지 않아 대량 유통이 가능한 것이다.

제작하는 것이 노가다이긴 하지만 연금술 마스터를 찍으며 얻은 ‘대량 생산’ 스킬 덕에 시간만 조금 걸릴 뿐 힘이 들지는 않았다.

영상과 진실의 목소리.

두 가지가 동시에 세상에 드러나자 엄청난 파장이 일어났다.

흑사회라면 대한민국 10대 길드 수준의 대형 길드를 수십이나 휘하에 거느린 중국을 대표한다 말할 수 있는 초거대 길드였기 때문에 처음에는 영상의 진위 여부에 대해 말이 많았다.

합성이다, 조작된 영상이다. 악마의 편집이다 애써 현실을 부정하고자 하는 이들의 목소리가 높았다.

일반인들의 목소리를 여전히 높았지만 상대가 상대이다 보니 들끓던 개인 헌터며 길드들은 마음을 가라앉히고 신중한 자세를 취했다. 공산당과 밀접한 관계를 가진 흑사회는 달리 말해 중국 그 자체였으니까. 그들을 적으로 돌린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니 신

중해야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곧 진실의 목소리를 구입해 실험을 하는 영상이 속속 올라오고 전세계에 네트워크를 가진 ‘헌터협회’에서 성능이 영상에 적시된 것과 동일하다는 것을 인증하자 다시 분위기가 뜨거워졌다.

흑사회의 소행이 명백해졌으니 그녀와 관계된 자들이 결코 가만히 있을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폭탄의 심지에 다시 불이 붙었다.

< 108화 - 성녀 아리스 (4) > 끝

ⓒ 갈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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