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4화 - 습격 (2) >
영민은 현존 최강, 그리고 아마도 앞으로도 최강일 +13 봉인의 드래곤 슬레이어를 자신 있게 빼들고 짓쳐들어갔다.
이제는 익숙해진 자기 강화 주문들을 거의 동시에 일으키고 마지막으로 이곳을 성역으로 선포했다.
층 전체가, 건물 전체가 환한 빛과 함께 성스럽게 물들어간다.
빛 속성의 능력을 지닌 이들이라면 약간의 버프 효과를 받겠지만 영민과 친구 등록, 파티 등록이 되어 있지 않은 이상 제대로 된 버프 효과를 받는 것은 무리. 그 효과를 온전히 받는 것은 오직 영민 혼자 뿐이었다.
“죽여!!”
상대도 만만치는 않았다. S등급 헌터의 막대한 힘을 개방하며 부딪혀왔다.
S등급 헌터의 기준이 되는 최소 마나량은 3만. 그러나 S등급 헌터들 중에는 8만이 넘는 마나량을 보유한 이도 있었다.
그 어느 등급보다도 동일 등급 간의 격차가 큰 구간이 바로 이곳이었다. 다시 한 번 마나의 질적 향상이 일어나는 SS등급은 아직 나오지 않았지만, S등급 내에서의 격차는 상당하다.
이들 역시 그런 이들 중 하나인 모양이다. 스스로 장담했듯이 왕 첸을 눈 아래로 볼만한 마나를 내뿜으며 영민에게 협공을 가해왔다.
쩌엉!
“컥?!”
중국인인 주제에 일본도 형태의 무기를 사용하는 놈과 부딪힌 순간, 녀석이 팔이 꺾이며 튕겨졌다. 뿐만 아니라 강하게 내리친 놈의 무기에 가느다란 실금까지 그어졌다.
능력치의 차이도 차이인데다 무기의 성능 차이가 월등했고, 놈은 능력에 자신하며 정직하게 내리그었지만 애초에 일본도라는 것이 힘 싸움에 적합한 물건이 아니다.
“리홍!”
영민은 그 여세를 몰아 놈을 베어버리려 했지만 또 다른 S등급 헌터가 개입을 했다. 덤벼든 것은 동시였지만, 탱커의 포지션인지 무거운 갑옷와 방패를 착용한 탓에 반박자 느리게 도착한 것이다.
방패를 철퇴처럼 휘둘러오는 놈의 공격에 영민은 반사적으로 몸을 빼려다가 그냥 들이받아 버렸다.
놈은 힘과 체력이 중심인 전형적인 스타일이지만, 자신 또한 드레인으로 능력치를 고루 올린데다 드래곤 슬레이어의 추가 스텟을 획득하고 신체강화까지 끝마치지 않았던가? 굳이 힘 싸움이라고 마다할 필요가 없었다.
“억!”
효과는 대단했다.
자신 있게 휘두르던 놈의 금속 방패와 영민의 발차기가 부딪히자 숨이 턱 막히는지 소리도 제대로 내지 못하고 튕겨져 쳐박힌 것이다.
그야 말로 압도적인 스펙.
모르는 이들이 봐서는 황당하기까지 한 전투력의 차이에 유기적으로 맞물려 움직이던 다른 A등급 헌터들의 움직임이 순간 멈춰버렸다.
“리커버리!”
“다들 정신 차려!!”
그러다 냉정을 되찾은 누군가의 외침에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지만 처음과 같은 자신감 넘치는 움직임과는 거리가 있었다.
아니 이미 눈은 공포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때 그들도 저랬을까.’
도저히 항거할 수 없는 강자를 앞에 두고도 절대로 물러설 수 없는 자들의 눈빛. 물론 최후의 결사대와 같은 비장함이나 결의 같은 것은 느껴지지 않았지만 영민은 강태성이 기억 속 그때를 생각하며 더욱 독하게 손을 썼다.
“단공검!”
빛을 머금은 드래곤 슬레이어가 허공을 가르니 일직선 상에 검은 선이 그어졌다. 공간이 찢기고 그 방향의 모든 것들이 베어진 것이다.
그 한 방에 일곱이나 되는 인원이 허리가 동강나 죽음을 맞이했다.
“죽어라!!”
그 순간 나머지 세 방향에서 온갖 무기들이 찔러왔다. 그런 큰 기술을 썼으니 빈틈이 생길 거라 생각한 모양인데 어림도 없는 소리다.
“공아승룡각!”
제자리에서 회전하며 떠오른 영민의 발차기에 오히려 공격한 다섯이 나가 떨어졌다. 그저 발차기 한 방이었지만, 타격 부위가 함몰되고, 무기로 막은 자들도 무기가 반파되는 미친 공격력이다.
여기서 끝내면 섭하지. 영민은 떠오른 김에 천장을 박차는가 싶더니 처음 자신을 공격한 S등급 헌터에게로 쏘아졌다. 꺾였던 팔을 회복 주문들로 간신히 되돌리던 녀석이 두 손으로 힘을 모아 대적해보지만 어림도 없는 일이다.
무기에 생겨난 실금이 더욱 선명해지며 벽으로 날아가 쳐박혔다.
‘멍청하기는.’
S등급 헌터 씩이나 되면서 너무 단순하게 싸우는 놈들의 모습에 영민이 속으로 혀를 찼다. 이래서 짱깨들은 안 된다니까.
놈들의 고유 능력이 무엇인지는 모르나 그것을 개성에 맞춰 강화해서 써야지 지금처럼 단순히 육체 능력에 의존하는 방식으로 싸워서는 자신이 아니라 누구와 싸워도 승산이 낮다. 비슷한 수준만 되어도 어려울 텐데 나중에 9레벨 이상의 던전에서 나오는 놈
들에게는 압살 당하기 쉬웠다.
그나마 그들에게 대항하는 방법은 각자의 개성이 있는 ‘고유 능력’을 제대로 개화시키는 수밖에 없었다.
‘A등급만도 못하군.’
그런 의미에서 놈들은 처음 자신하던 것과 달리 영민에게 낙제점을 받았다. S등급으로 각성해놓고 힘을 이따위로 쓸거면 차라리 고유 능력 이해도가 높은 A등급 헌터를 팀에 넣는 게 낫다.
‘하늘 아래 똑같은 고유 능력은 없다’는 말도 있지 않던가? 고유 능력이 ‘고유’ 능력인 것은 개성에 따라 다양한 활용법을 가지기 때문이다.
영민이 강태성의 미래에서 A등급을 벗어나지 못했던 가람을 영입한 것도 같은 이치였고.
실제 가람의 고유 능력은 ‘육체 강화’라는 다소 평범한 것이었지만 육체를 무기와 방어구로 확장시키고 마나를 덧입히는 강화법과 마나의 이동을 통해 한 점에 강화를 집중하는 방식으로 개량해나가면서 무시무시한 전투력을 갖추게 된 케이스였다.
물론 거기에 ‘간격’을 보는 재능이 포함되기는 했지만.
“네 놈들의 능력은 내가 잘 써주지.”
[특성 ‘예기 강화’를 흡수합니다.]
[특성 ‘절망의 벽’을 흡수합니다.]
놈들은 뒤늦게 고유 능력을 드러내보였지만 늦어도 한참이나 늦었다. 각자가 자랑하는 일본도와 방패가 박살이 나고, 무참히 짓밟힌 뒤 심장에 검이 꽂혀 목숨을 잃었다.
그리고 각자의 고유 능력을 특성의 형태로 흡수당했다.
‘날’을 강화 시켜주는 [예기 강화]와 공격을 막아낼수록 상대의 정신력을 하락시키는 [절망의 벽]은 꽤나 쓸만 했기에 죽은 녀석들에 대해 더욱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사, 살려주십시오.”
S등급 중에서도 중간은 간다고 여겨지던 두 사람이 순식간에 정리가 되어버리자 나머지 A등급 헌터들은 일제 도주를 시도했다. 당연히 성공 할리는 만무하다. 영민은 누구보다 빠르게 도주로를 차단하고 한 칼에 한 명씩 베어내며 수를 줄여냈다.
자신의 육체 능력이나 고유 능력을 믿고 창문을 향해 뛴 자들도 마찬가지다.
정령 융합이라는 하이 엘프의 궁술 역시 강화된 상태였기에 땅에 닿기도 전에 시체가 되어 축 널브러졌다.
“자, 누가 말해볼까?”
“저요! 제가 말하겠습니다!”
“아닙니다. 제가 말하게 해주십시오!”
이쯤되자 살아남은 3명의 침입자들은 서로 배신을 하겠다고 아우성을 칠 정도였다.
남은 숫자도 적은 만큼 ‘쉽게’ 죽지는 못할 것이라 영민이 엄포를 놓은 까닭이기도 했다.
“한 명씩 하자고. 한 명씩. 대신 다른 사람과 말이 다르거나 더 적게 이야기한 사람은····알지?”
“옙!!”
영민은 스마트포을 들고 가람과 민호, 철우를 불러 다른 두 사람을 감시하게 한 뒤 한 명 한 명 따로 면담을 하기 시작했다.
‘흑사회라··.’
그리고 배후를 밝혀냈다.
일단 중국인 것은 맞다. 하지만 흑갈파 따위는 아니었다. 흑갈파 역시 S등급 헌터를 보유한 강한 길드이기는 하지만 흑사회는 규모나 수준 자체가 다른 것이다.
중국 내 최고 최강의 길드라는 명성과 함께 공산당의 입김이 크게 작용하는 곳이라는 이야기도 있는데 아마도 허튼 소리는 아닐 것이다.
S등급 헌터가 마음 먹으면 한 나라의 수장이라도 목을 따는 것이 불가능하지만은 않은 일이니 차라리 미리부터 관리하고 손을 잡는 편이 좋았으니까.
그렇기에 대부분의 국가들이 A등급 헌터들부터는 길드와 관계없이 따로 관리하고 은밀히 조사 하고 있다는 것을 영민도 알고 있었다.
‘애매한데.’
남의 나라에서 이런 대담한 일을 벌인다면 필시 보통 놈들은 아닐거라고 생각하긴 했지만 정말 흑사회일 줄이야.
어떻게 갚아줘야 할까 고민하던 영민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흑사회라면 흑갈파니 어쩌니 하는 것들보다 몇 수는 윗줄에 있는 놈들이다. 자신을 얼마나 얕봤으면 S등급 중에서도 이런 놈들을 보낸 건가 싶기도 하긴 했지만 그들은 자신을 A등급으로만 알고 있을 테니 이해가 되는 부분이기는 했고, 진짜 흑사회에서 대우
를 받는 이들은 고유 능력 이해도가 제법 높은 놈들이었다. 일대일로는 흑사회의 회주 진동문과 붙어도 자신이 있지만 그런 놈들이 떼로 덤빌 생각을 하니 벌써 질려버렸다.
‘버서크, 신성폭발, 뇌신강림까지 쓰면 못 할 것도 없지만··.’
물론 다대일로 붙어도 승산이 없는 것은 아니다. 신성한 광휘와 성역 선포로 강화된 능력이 버서크와 신성폭발로 몇 번이나 다시 뻥튀기 된다고 생각해보라.
어쩌면 한시적으로나마 S등급의 한계를 넘어 SS등급의 격을 갖추게 될지도 몰랐다.
그렇게 되면? 진동문이고 흑사회고 손짓 한 번에 끝장을 낼 수 있을지도 모르지. S등급이 A등급을 썰어버리는 것처럼.
그러나 그것은 너무 위험 부담이 컸다.
중국이 무서워서, 혹은 중국 인구만큼이나 많은 헌터들의 물량 공세가 두려워서가 아니다. 그들이 사라짐으로서 생겨날 ‘공백’이 두려웠다.
일단 흑사회와 제대로 붙게되면 사상자가 어마어마 할 텐데. 강태성의 기억에 따르면 몇 년 후 중국과 미국, 인도, 러시아에 엄청난 숫자의 던전이 생겨날 예정인 것이다. 지금의 추이를 생각할 때 어쩌면 더 빠르게 일이 터질 수도 있었다.
아마도 그 전에 던전 쇼크가 한 번 더 와서 헌터의 수도 늘어나기야 하겠지만 그때가 되면 고양이손이라도 아쉬워지니 무작정 다 쓸어버리는 것도 현명한 처사는 아니었다.
그럼 어떻게 할까.
어떻게 하면 놈들에게 빅엿을 선물 할 수 있을까.
영민이 진득한 악의를 담아 고민하기 시작했다.
* * * * *
다음 날, 층 전체는 물론 꼭대기 층이었던 탓에 옥살까지 날아가버린 호텔측에 충분한 배상을 하고 시체 처리와 포로 신병 확보를 한 영민은 헌터협회부터 찾았다.
당연히 S등급으로 갱신을 받기 위함이다. 능력을 감출수도 있지만 A등급으로는 발언권도, 영향력도 제한적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덕분에 한바탕 난리가 났다.
대한민국의 9번째 S등급 헌터가 나타난 것이니 조용한 것이 더 이상하다. 더구나 ‘F등급부터 시작해 S등급에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이 아니던가? 스토리도 충분했고 소스도 넘쳐났다.
잘 알지도 못하는 이들의 인터뷰며 증언들이 이어지고 소설화, 영화화가 된다는 소문까지 돌았다.
단 번에 대한민국에서 가장 유명한 사나이로 등극했다.
“이것도 처리해주세요.”
영민은 S등급 헌터 자격증을 받음과 동시에 새로운 길드를 등록했다. 남에게 넘겨 받은 골든 크로스가 아닌, 영민이 세우는 새로운 길드였다.
이름은 ‘힐름’.
아랍어로 ‘꿈’이라는 뜻이었다. 강태성의 미래에서 최후의 희망인 그들의 팀을 지칭하던 말이기도 했다.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기는 해야겠는데 영어로는 너무 없어 보인다며 민호가 아랍어사전을 뒤져 만들어낸 이름.
영민은 길드 등록을 마치고 잠시 감회에 젖어 있다가, 충격적인 선언을 이어갔다.
지난 밤의 습격과 그에 대한 흉수를 조사 중이라는 것이다. 이미 배후가 누구인지는 정확히 알고 있지만 일단은 모르는 척 ‘조사 중’이라고 포장 한 뒤 조사가 끝나는 대로 엄중한 책임을 물을 것을 선언했다.
덕분에 영민에게 쏠렸던 모든 관심이 한층 증폭되어 사건으로, 습격자들에게도 돌아갔다.
‘자, 이제 미끼는 던졌고··.’
이제 물고기들이 미끼를 물기만 기다리면 된다.
< 104화 - 습격 (2) > 끝
ⓒ 갈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