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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행운 MAX-103화 (103/177)

< 103화 - 습격 (1) >

‘곧 접촉해오겠군.’

영민은 속으로 칼을 갈았지만 당장 거창하게 날뛰지는 않았다. 그래봐야 상대는 몸을 감출 뿐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대신 다른 계획을 세웠다.

놈들이 직접 자신에게 찾아오도록 만들기 위한 계획을.

먼저 선행한 것은 자신의 귀환을 알리는 일이었다. 갑자기 사라져버린 ‘기적의 연금술사’가 돌아왔다는 소식은 이미 아프리카에 은밀히 퍼진 상태였지만 아예 대로를 돌아다니고 병들고 상처입은 일반인들을 치료해주면서 ‘성자’ 행세를 하고 다녔다. 괴질만 아니라면 굳이 최상급 포션을 사용할 필요도 없어서 부담이 큰 것도 아니었다.

동시에 한국에도 돈을 써서 기획 기사를 몇 개 띄웠다. 떡밥만 있다면 수백, 수 천개의 유사한 기사를 찍어내는 유사 언론사들 덕분에 영민의 존재는 다시 한 번 소란의 중심에 설 수 있었다.

‘자, 이래도 안 나타나나 볼까?’

거기에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

보란 듯이 ‘비약’과 ‘최상급 질병 치료 물약’을 비롯한 연금술 마스터 전용의 포션들을 마켓에 등록했다.

비약이야 헌터들이 눈에 불을 켜는 물건이지만 모든 병을 치료시키는 ‘최상급 질병 치료 물약’은 헌터가 아닌 이들도 환장할 물품이다. 특히 각국의 재벌들. 불로장생의 비약을 구할 수는 없어도, 가지고 있는 크고 작은 질환을 말끔히 씻어내는 것만으로도 수명을 크게 늘릴 수 있었기 때문에 수백, 수천억을 들여서라도 그것을 손에 넣으려는 자들은 얼마든지 있었다.

정작 필요하고 간절히 원하는 이들은 불치병, 난치병 환자들과 그 가족들 이겠지만 천문학적인 가격 때문에 결국 재벌들이나 최상위 헌터들의 손에 들어갈 확률이 높았다.

하지만 그들까지 모두 구원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재료가 되는 약초는 제한적이었고 영민은 그것을 통해 많은 것을 얻어 다섯 군주와 그 위의 존재에게 대항할 준비를 해야했기에.

그렇게 대량의 ‘연금술 결정체’들이 시장에 풀리자 전세계의 이목이 영민에게로 집중되었다.

‘그리고 생각하겠지. 모든 [물건]을 저 놈이 갖고 있구나라고 말이야.’

영민이 노리는 것은 바로 그것이었다. 고작 A등급 헌터라고만 생각하고 있는 적들이 한국을 탈탈 털고도 발견하지 못한 [물건]들을 탈취하기 위해 자신에게 직접 찾아오는 것.

영민은 마냥 기다리기만 하지 않고 아예 전세기를 움직여 한국으로 향했다.

하루 빨리 놈들과 대면하기를 바라면서.

그렇게 영민이 아프리카를 떠나기로 결정하자 크게 두 가지 반응이 일어났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싸랑해요!”

한 쪽은 영민에게 치료 받아 살아난 이들이었고

“내 아들 살려놓고 가든지, 나를 죽이고 가라!”

다른 한 쪽은 아직 치료받지 못한 이들이나 그 가족들이었다.

그들 역시 영민이 아무런 연고도 없는 아프리카에 행한 기적 같은 은혜를 알고 있지만 그보다는 혜택을 받지 못한 ‘자신들의 사정’이 더 중요하게 느끼는 것이다.

그런 이들 중 몇몇은 활주로에 드러 누으며 영민을 막아섰지만 곧 그의 추종자가 된 다른 주민들에게 강제로 끌려나왔다.

영민도 굳이 그런 이들까지 신경 쓰지는 않았다. 대신 아프리카에서 경매를 통해 벌어들인 막대한 수입 중 일부를 떼어 구호기금으로 기부했다.

그렇게 하지 않아도 이미 영웅 중의 영웅이었지만, 이게 다 나중을 위한 밑밥이었다.

고작 한국인들만으로 ‘기원’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정말 말도 안되는 괴물들이 출현할 나중을 위해서는, 다섯 군주조차 우러러보는 ‘그’에 대적하기 위해서는 전 세계인들의 ‘기원’이 필요했다.

“길드장, 이번에는 미국의 ‘쉴드’에서 연락이··.”

“일 없다 그래.”

아프리카에서 다시 모습을 드러낸 때부터 한국으로 돌아오는 그 순간까지, 아니 돌아온 공항에서까지 오라는 범인은 안 나타나고 세계의 수많은 유명 길드에서 러브콜이 쏟아졌다.

일부는 대리인을 통해, 일부는 거액의 현물을 가지고, 또 일부는 엉덩이 무거운 길드장이 직접 찾아왔는데 자신들과의 독점 공급 계약을 맺자는 이들도 있었고, 대부분은 자신들의 길드에서 제대로 밀어줄테니 몸을 의탁하라는 것이었다. 영민을 ‘서포터’ 형태의 고유 능력 각성자로 생각하기에 내밀 수 있는 같잖은 제안들. 그러면서 은근히 협박을 하려는 자들도 있어 확 엎어버릴까 하는 생각도 여러번이나 했다.

하지만 진범이 나타날 그때를 기약하며 거절하고, 모른 채 했다. 그럼에도 러브콜은 끊이지 않았고 어떻게 알았는지 전용기 내에 설치된 전화를 통해서까지 영민과 연결되어 보려는 시도가 나타났다.

아예 앞장서서 이제는 망가진 골든 크로스의 복수를 하겠다 나서는 이들도 있었다.

어떤 식으로든 영민을 어르고 달래서 자신들의 길드에 영입하려는 수작들이다.

어차피 말린다고 될 일도 아니기에, 영민은 신경을 쓰고 일단 한국에 도착할 때까지 잠을 청했다.

“휘유~. 대장, 공항이 난리인데요?”

이미 영민이 한국으로 향하고 있다는 소식은 퍼질 대로 퍼져 공항이 시장통이 되어 있었다. 기자들이며 일반인 환영인파가 터질 듯 밀집했고 그와 연결이 닿지 않자 직접 공항으로 먼저와 기다리고 있는 세계적 길드의 인사들도 적지 않았다.

심지어 청와대에서도 영민과의 만남을 원한다며 차량을 대기시켜둔 상태였다.

“알아서 정리하고 와.”

“예엣?”

“형, 설마 혼자 도망가려는 건 아니죠?”

그러나 영민은 그런 것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팬 서비스 차원에서 모습을 보이는 것도 방법이겠으나 꼭 그럴 필요는 없었다.

더군다나 지금은 무엇보다 먼저 확인해야 할 것이 있는 상황.

영민은 대답 대신 유령마를 소환해 내달렸다.

‘세계수의 잎사귀 하나만 건드렸어봐라.’

혼령질주를 사용하자 누구의 시선에도 걸리지 않고 빠르게 공항을 벗어날 수 있었다.

그리고 향한 곳은 세계수의 씨앗을 심어둔 옛 골든 크로스의 사옥 터. 일부러 인천이 아닌 김해 공항으로 돌아 온 것도 세계수의 안전을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휴, 다행이다.”

은신 능력까지 십분 발휘해 아무도 모르게 목적지로 접근한 영민은 은밀의 장막을 들춰 세계수를 확인했다.

이제 묘목이라 할 수 있을 만큼 자라있는 모습.

은밀의 장막 덕분인지 다행히 골렘이 파괴되는 동안에도 피해를 입지 않은 모습이었다.

아니, 오히려 제법 성장을 잘했는지 은밀의 장막으로 봉해놓은 지역 내에는 마나가 충만한 상태였다. 이 정도면 거의 5~6레벨 던전에 들어간 것과 같은 기운이니 ‘역시’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이제 그놈들만 족치면 되겠군.’

안도와 함께 다시금 분노가 솟구쳤다. 이제는 온전히 복수에만 신경을 쏟을 수 있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던전을 좀 돌아야하나.’

일단 미끼는 몇 개 던져두긴 했지만 놈들이 제대로 물지는 알 수 없었다. 어쩌면 그들과 또 다른 이들이 습격을 시도했다가 덤탱이를 쓸 수도 있겠지.

그것도 나름대로 의미는 있지만 영민은 이왕 하는거 확실히 하고 싶은 마음에 던전에 들어가 코인을 좀 더 모을 생각도 했다.

코인 상점에서 판매하는 ‘대지의 기억’과 ‘기억 추적자’를 연계해서 사용하면 범인을 잡는 것은 일도 아닐 테니까.

그러나 고급 강화를 하느라 코인을 모조리 탕진한 탓에 그것들을 구입하기 위해서는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릴 터였다. 장비를 구입한 뒤 코인 상점에 되파는 것도 마찬가지다. 현금은 충분했지만, 구입과 판매에 시간이 제법 필요한 통에 당장 잡아내기는 어려움이 있었다.

“진작 추적 스킬 좀 익혀놓을 걸.”

아쉬움이 남았지만 어쩔 수 없다. 세계수가 무사한 것에 만족한 영민은 일행들의 위치를 파악한 뒤, 다시 그들과 합류했다.

다시 모습을 드러낸 영민은 굳이 은밀함을 추구하지 않았다. 오히려 혹시나 세계수를 알아차릴까 싶어 자신에게 관심이 집중되기를 원하는 듯 행보했다.

대로를 활보하고, 사람들이 많은 장소를 지나가는 등 다른 이들의 이목을 즐겼다.

어차피 습격자들이 대낮에 쳐들어오지는 않을 테니 낮에는 자신을 노출시키고 밤에 만나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어디 그 뿐인가? 일부러 보라는 듯 옷 안쪽에 포션 몇 병을 주렁주렁 달고 움직이기까지 했다.

걸을 때마다 쩔렁쩌렁 거리는 소리는 인간들의 탐욕의 목소리처럼 들렸다.

‘왔군.’

그리고 밤이 되자, 기다리던 이들이 영민의 앞에 나타났다.

“겁도 없군.”

부산의 한 호텔 스위트룸 층 전체를 빌린 영민은 오히려 그들이 접근하기 쉽도록 직원들과 경비들까지 물려두었다. 유재한을 포함해 어차피 A등급 헌터만 넷에 S등급 헌터까지 한 명이 있으니 경비 따위가 의미 없음은 호텔측도 인정하는 바라서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 침입자들이 나타났다.

“겁이 없다라··. 호랑이 굴에 들어온 너희들을 두고 하는 말 같은데?”

영민의 방에 나타난 침입자만 무려 열 명. 밖에서 느껴지는 기척만도 수십이다.

반면 영민은 혼자였다. 다른 네 명은 그의 지시로 나가서 놀다가 새벽 늦게나 각자의 방에 들어올 테니까.

그럼에도 영민의 표정에는 변화가 없었다. 그들이 등장하기 전부터 지금 이 순간까지. 시종일관 기분 좋은 미소가 사라지지 않았다.

마치 빨리 나타나줘서 고맙다는 듯이.

“허세를 부리는 군. 용건은 알고 있겠지? 네가 가진 ‘비약’과 ‘포션’들을 모두 내놓아라. 그러면 목숨만은 살려주지.”

그러나 침입자들은 그것을 허세라고 판단했다.

이곳에 있는 이들 중 A등급 아래인 자가 없고 S등급 헌터도 둘이나 포함된데다 고유 능력도 조화롭다. 근거리 물리 공격부터 버프, 디버프, 마법 공격 사용자까지. 은신이며 탱커 등 균형 잡힌 포지션으로 S등급 헌터조차 피해 없이 잡아낼 수 있을 만큼 탄탄한 조합이었기에 설사 영민이 예상 밖의 능력을 발휘한다 해도 순식간에 제압 한 뒤 목적을 이루고 도망 갈 수 있을 것으로 여기는 것이다.

사실 그 하나를 제압하기 위해서 온 것 치고는 너무 과도한 인원이었다. 다만 뒤처리며 흔적까지 모두 지우고 완벽히 사라지기를 원해서 확실히 하기 위해 동원한 것일 뿐, 방 안으로 들어온 자신들만 나서도 10분, 아니 5분 안에 제압이 가능하리라 판단했다.

그것이 희망사항에 가까운 착각이라는 것도 알지 못한 채.

“역시 너희들이 맞는 건가? 골든 크로스 소속의 헌터들을 죽이고 건물을 파괴한 것이.”

“그렇다. 모두 과분한 물건을 가진 네 놈의 탓이지.”

그러면서 비릿한 웃음을 짓는다.

강태성이었다면 저도 모르게 면상에 주먹을 쳐박았을 법한 표정.

하지만 영민은 놀라운 인내심으로 한 번 더 물었다.

“너희들의 정체가 뭐지? 흑갈파인가?”

“흑갈파? 아, 왕 첸을 죽인 게 너인가? 허세를 부릴만 하군. 하지만 그런 녀석과 나를 똑같이 생각하면 안 될 거야. 녀석은 같은 S등급이라고 부르기 민망할 만큼 허접한 놈이었으니까.”

가장 유력한 후보였던 흑갈파가 아니라는 사실이 의외이긴 했지만 아무래도 상관은 없었다.

“그럼?”

“궁금증이 많은 녀석이군. 그 궁긍즘을 해결하려면 목을 내놓아야 할텐데, 괜찮겠나?”

알려줄 수 없다는 뜻이었다. 하긴, 영민에게서 물건만 강탈해간 뒤 두고두고 찾아와 괴롭힐 모양인데 소속을 밝히는 것은 부담이 있겠지.

‘그렇다면 이쪽도 볼 일은 끝이군.’

찰칵

고개를 끄덕인 영민은 숨겨둔 녹음기와 카메라를 각각 정지시키고 인벤토리 속으로 던져버렸다. 전투 중에 혹시나 망가지면 안 되니까.

그 모습을 본 놈들의 표정이 싸늘하게 굳는다.

“그럼 직접 확인해보면 되겠군. 참고로 말해두는데 나는 딱 한 놈만 살려둔다. 근데 그게 너는 아닐 것 같군.”

전투가 시작됐다.

< 103화 - 습격 (1) > 끝

ⓒ 갈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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