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1화 - 고급 강화 (1) >
영민은 아마도 생명의 동굴 바깥에서 얻은 것으로 보이는 장비들을 수백개나 얻었지만 누가 보아도 더 큰 이득을 얻은 것은 여인, 루티 커틀렛 쪽이었다.
생명의 돌을 손에 넣은 것은 물론, 최종 보스인 자이언트의 시체까지 손에 넣었으니까.
하지만 영민은 그녀가 그것을 이용해 원하는 바를 이루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기존의 미래에서도 그녀는 생명의 돌을 탐냈었고, 손에 넣었으며, 실패했으니까.
그 덕에 힘이 떨어진 생명의 돌이나마 철우가 얻을 수 있었던 것이기도 했으니 결국 다시 자신의 손에 돌아올 것이라는 것을 영민은 알고 있었다.
“좋은 거래였어. 동생. 그래도 내가 먼저 들어와 있던 던전에 동생들이 들어온 거니까 너무 서운해 하진 마~.”
역시 그들의 던전 진입이 ‘난입’으로 표시된 것은, 그녀가 먼저 들어와 있었기 때문이었던 듯 하다.
영민이 여전히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웃는 얼굴로 당연한 말씀이라 맞장구를 치자 루티는 씽긋 웃고 돌아서려다가, 돌아서서 물음을 던졌다.
“아, 동생. 이름이 뭐지?”
“영민입니다. 권영민.”
“권영민. 좋아. 기억했어. 다음에 또 만나길 바랄게. 내 이름은··.”
“루티 커틀렛. 알고 있습니다.”
영민이 먼저 그녀의 이름을 말하자 놀랍다는 듯 눈을 크게 떴지만 이내 웃어보이며 손을 흔들고 사라졌다. 그 많은 언데드들을 모두 아공간에 되돌리고서.
“후아.”
현상금 미션 완료로 인해 던전이 붕괴되고, 그녀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진 것을 확인한 영민은 식은 땀으로 축축이 젖은 모습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쉽게 적을 만드는 성격이 아니라는 것은 알지만, 자신의 목적에 반하거나 적대 의사를 내비친 자들에게는 잔혹할 만큼 냉정한 그녀의 본모습을 알기 때문이다.
“대장, 괜찮습니까?”
“대체 무슨 일이에요, 형?”
“이게 어떻게 된 영문인지··.”
그녀를 알지 못하는 세 사람이 시끄럽게 떠들어댔지만 영민은 당장 대꾸해줄 기력이 없었다.
이때 그녀가 이곳에 있었던가? 그런 얘기는 들은 적이 없는데. 아니, 그녀가 제대로 힘을 썼다면 아프리카를 정리하는 건 일도 아니었겠지. 그럼 미래가 또 바뀐건가?
복잡한 생각들을 정리하느라 정신이 다 없었다.
다만 확실한 것은, 좀 더 빠르게 힘을 키울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규격 외의 A등급? A등급이지만 전력을 다하면 S등급도 이겨먹는 실력? 그 따위 것은 무의미했다. 철우나 루티처럼 출발점부터가 S등급의 끝자락인 이들에게 비벼보려면, 또 그들의 연합으로도 승부를 장담 할 수 없는 존재들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더 이상 여유를 부릴 수 없는 노릇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
잠시 그 자리에서 생각을 정리한 영민은 굳은 표정으로 그 자리에 캠프를 차렸다. 몬스터의 접근을 막는 ‘안전지대’가 설정되는 텐트를 치고 잠시 눈을 붙인 뒤 두 가지 아이템을 꺼내들었다. 두 가지 모두 민호, 가람, 철우가 잘 알고 있는 아이템들이다.
세계수의 축복, 그리고 다크니스 오러.
그 두 가지를 망설임 없이 사용한 영민의 주위로 거무튀튀한 기운이 맴돌다가 원형으로 크게 퍼져나갔다.
“버티기만 해. 나머지는 내가 처리할 테니까.”
경험치가 분배되는 파티 따위도 없었다. ‘피부 접촉’이 필요하긴 하지만 이제 힐러의 능력까지 발휘 할 수 있게 된 철우와 민호, 가람은 서로 파티를 맺었지만 영민 만큼은 오롯이 혼자였다.
경험치를 독식하기 위함이다.
파티 사냥이 더 빠르다는 것은 상식이지만, 그것도 비슷한 수준에서의 이야기일 뿐이다.
지금의 영민은 확실히 다른 세 사람과 차이가 났다. 철우가 극적인 스펙업을 했다지만 주력 공격인 ‘황홀한 강타’에 쿨타임이 있는 이상 영민의 사냥속도를 따라 갈수는 없었다.
“··신성한 광휘, 성역 선포.”
저 멀리 광기에 물든 눈으로 달려드는 몬스터들을 보며 영민이 버프를 마쳤다. 스킬은 물론 강화 포션까지, 두를 수 있는 모든 보조 효과들로 무장을 한 뒤 놈들을 향해 먼저 몸을 날렸다.
그래봐야 6레벨 이하의 몬스터들이다. 설사 7레벨 던전 몬스터가 나와도 기죽지 않을 그인데, 일말의 망설임도 두려움도 없었다.
영민은 놈들을 향해 자신의 모든 것을 퍼부었다.
* * * * *
학살에 가까운 몬스터 사냥을 시작한 지 불과 오일.
스스로 불나방처럼 뛰어드는 몬스터만 잡았을 뿐인데 남아있던 몬스터의 70%이상이 사라졌다. 포션을 아끼지 않고 쏟아부었을 뿐 아니라 각 지역을 돌면서도 중요 스팟에 성역 선포를 함으로써 지형적 이점을 십분 발휘한 덕이다.
덕분에 레벨은 2계단이 더 올라 250을 달성했다.
[250레벨을 달성하셨습니다.]
[달성 보상으로 능력치가 대폭 상승합니다.]
[신규 기능이 오픈 됩니다.]
[고급 강화 기능이 오픈 됩니다.]
‘됐다!’
그 많은 몬스터를 죽였는데도 고작 2레벨이라니. 필요 경험치가 정말 지독히도 많았다.
그나마 7레벨 던전이 끼어있었는지 월등한 경험치를 주는 놈들이 끼어있었기에 망정이지 아니면 250레벨 달성이 어려울 뻔 했다.
그 과정에서 드레인이 한 차례 성장해 흡수 범위가 대폭 늘어나고, 드레인을 통해 흡수한 스텟의 양이 상당했지만 영민은 그것보다 새롭게 오픈된 기능에 집중했다.
고급 강화!
그 신묘한 능력을 이미 알고 있는 만큼 기대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고급 강화.”
나름대로 성장을 했지만 피곤에 찌들어 있는 민호와 가람, 철우를 놔두고 영민은 마지막 남은 스테미너 포션까지 써가며 몸을 일으켰다.
새롭게 개방된 고급 강화의 설명을 확인했다.
[더 다양한 종류의 물건을 강화 할 수 있습니다.]
[최대 강화 횟수가 +13으로 증가했습니다.]
[고급 강화석과 강화 보호석의 구입과 습득이 가능합니다.]
[고급 강화석을 사용하면 일정 확률로 강회 횟수가 +2 이상 증가합니다.]
[강화 보호석을 사용하면 강화 실패 시 장비가 파괴되지 않습니다.]
[신체 강화가 가능합니다.]
‘바뀐 건 없군.’
역시나 바뀐 것은 없었다. 혹시나 게이머 능력을 흡수하면서 일부의 유실이 있지는 않은지 걱정이 되어 매번 새 기능이 오픈 될 때마다 확인과 실험을 해왔지만 다행히 이번에도 달라진 것은 없었다.
고급 강화는 쉽게 말해 기존 강화 능력의 확장판이었다. 보다 업그레이드 된 강화 기능을 사용 할 수 있는 것인데 기능은 크게 강화 범위 확대, 최대 강화 횟수 증가, 고급강화석과 강화 보호석의 등장, 그리고 신체 강화였다.
‘이거라면 해볼만 하다.’
먼저 강화 범위가 광범위해졌다. 사실상 강화하지 못하는 것이 거의 없을 정도. 기존에는 ‘무기와 방어구 아이템’에만 국한 되었지만 이제는 악세서리 강화는 물론 아이템이 아닌 것들에까지 강화가 가능했다.
추가로 아이템이 아닌 것을 강화할 경우, 능력의 상승 뿐 아니라 대상이 ‘아이템 화’되는 특징을 가졌는데 총기류 등 일부 화기의 경우 아이템화를 통해 던전에 가지고 들어갈 수는 있지만 오히려 위력 자체는 약화되는 경우도 있어서 신중해야했다.
그 다음으로 최대 강화 횟수 증가는 표현 그대로다. 기존 +10까지만 강화가 가능하던 것이 +13까지 강화가 가능해진 것이다. 강화 성공률이 위로 갈수록 극악해지는 만큼 위력 역시 급격히 상승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엄청난 스펙 업도 가능하다는 소리였다.
그리고 고급 강화석과 강화 보호석. 이것들이 가지는 의미도 대단했다. 기존 코인과 마나석만 가지면 강화가 가능했던 것에 고강화를 돕는 요소들이 추가된 것인데, 이 둘은 영민처럼 행운 Max가 아니라도 노오력을 통해 누구나 +13강 장비들을 갖출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물론 그에 따른 코인 소모가 천문학적이었지만.
마지막 기능은 신체 강화다. 타인에 대한 강화는 불가능하지만 자신의 신체를 강화하여 개조할 수 있는 능력. 힘줄과 근육을 강화해 힘을 상승시키고, 신경을 강화해 민첩성을 상승 시키며 뇌를 강화해 지능과 정신력을 상승시키고, 마나홀을 강화해 마나를 상승시키는, 사실상 스텟 강화라고도 할 수 있는 능력이다.
물론 그 밖의 것들도 가능했다. 남성성을 강화해 ‘대물’이 된다든지, 여성성을 강화해 ‘거유’가 된다든지, 페로몬을 강화해 유혹 능력을 얻는다든지 하는 식이다.
지식과 창의력만 있다면 그 활용도가 무궁무진한 기능.
그리고 이것이라면, 레벨 업 노가다가 아니라도 당장 ‘규격 외’를 뛰어 넘어 진정한 S등급 헌터로 올라갈 수 있었다.
드레인을 갖춘 영민보다도 스텟이 크게 낮을 수밖에 없던 강태성이 S등급에 오른 것 또한 이 기능 덕분이니까.
문제라면 이 또한 ‘실패 확률’이 있다는 것인데 강화 보호석을 사용하지 않고 신체 강화를 했다가 실패할 경우, 불구에 가까운 상태가 될 수도 있었기에 신중해야 했고 필수적으로 강화 보호석을 갖추어야 했다.
“코인 상점 오픈.”
영민은 즉시 코인 상점을 열어 강화 보호석부터 구입했다. 고급 강화석도 탐이 났지만 최우선이 되는 것은 강화 보호석일 수밖에 없다.
고급 강화석과 강화 보호석을 얻는 방법은 두 가지.
사냥을 해서 극악한 확률로 드랍되는 것을 획득하거나 코인 상점에서 구입하는 것인데 당장 급한 것도 있고, 안정적인 공급을 위해 코인 상점을 연 것이다.
‘역시··모자라는군.’
다크니스 오러를 최대한 사용한 이번 학살을 통해 제법 많은 코인을 얻기는 했지만 강화 보호석의 가격 또한 자비가 없었다. 코인 상점에 장비들을 몽땅 팔아 챙겨둔 코인까지 긁어모아도 고작해야 강화 보호석 여섯 개를 구입하는 것이 고작.
영민은 아쉬움에 입맛을 다셨지만 이미 알고 있던 사항이기에 쿨하게 포기했다.
대신 강화 보호석을 다섯 개만 구입하고 코인을 조금 남겼다.
어차피 코인은 ‘강화’라는 행위 자체를 할 때에도 필요한 것이었으니까.
‘일단은 신체 강화부터.’
가장 급한 것은 ‘격’을 올리는 것이다. 영민은 주저 않고 강화 보호석 하나를 사용해 마나 홀부터 강화했다.
“마나홀 강화.”
[사용자의 마나 홀을 강화합니다.]
[강화 보호석 1개를 사용하셨습니다.]
퍼석
빛무리가 모여들더니 강화 보호석이 힘을 잃고 바스라진다. 그리고 쇼크사를 하는 것이 아닐까 걱정이 될 만큼 강렬한 충격이 심장을 때렸다.
“컥.”
한순간 숨이 막히고 눈 앞이 아득해졌다. 하지만 영민은 안다. 이걸로 죽지는 않는다는 것을.
실패할 경우 몸 안의 마나회로가 망가져 폐인이 될 수도 있지만 강화 보호석을 사용한 이상 그럴 일은 없었다.
그리고 잠시 후, 결과가 나타났다.
[마나 홀 강화에 성공했습니다.]
[마나 홀이 크게 확장되고 더욱 단단해집니다.]
[신규 스킬을 습득하셨습니다.]
“좋았어!”
결과는 성공. 역시나 행운 Max는 달랐다. 강태성의 경우 한 부위 당 최소 3회, 최대 20회 이상 시도해야 성공 할 수 있던 것을 단번에 성공시킨 것이다.
강화 보호석이 살짝 아깝기도 했지만 만일이라는 것이 있으니 보험 차원에서 사용으로 생각하면 오히려 싼 편이다.
영민은 내친 김에 남은 강화 보호석을 사용해 다른 능력들도 모조리 강화했다.
그 결과 근력과 민첩, 체력, 지능, 정신력이 모두 크게 상승했다. 행운이야 처음부터 Max인데다 마땅히 더 강화할 방법도 알 수 없었으니 상관없었고.
‘대단하다.’
모든 신체 강화를 끝마친 영민은 그야말로 신세계를 경험한 기분이었다. 강태성의 기억을 통해 어렴풋이 알고는 있었지만 아는 것과 직접 발을 들이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다.
규격 외이니, 준 S등급이니 하는 것에 만족하던 자신이 우스워질 만큼 전신에 힘이 넘쳤다.
아직 소소하게나마 더 강화할 구석들이 남아있다는 것 또한 자신감의 원천이었다.
덕분에 강화 보호석은 모조리 사용해버렸지만 모든 강화가 첫 시도에 성공해버렸기에 실제 코인 소모는 100분의 1, 어쩌면 1000분의 1 이하로 줄어든 셈이었다.
‘그럼 이제····.’
한참이나 스스로의 ‘격’을 만끽하던 영민은 이내 다른 곳으로 눈을 돌렸다. ‘신체 강화’는 어디까지나 고급 강화로 얻은 몇 가지 기능 중 하나일 뿐이다.
이제 다른 기능들을 사용할 차례였다.
그 첫 번째 대상은 파괴하기 위해 계속해서 강화를 시켰지만 끝끝내 파괴되지 않고 강화에 성공해버린, [+10 고대의 신성을 담은 저주받은 바이킹 소드]였다.
< 101화 - 고급 강화 (1) > 끝
ⓒ 갈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