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9화 - 생명의 돌 (2) >
팀 럭키맨은 정말 오랜만에 입에서 단내가 나올 정도로 열심히 싸웠다. 아무리 패도 체력이 줄어들 줄을 모르고, 조금만 시간을 주면 주변에 충만한 생명력 덕분에 금세 차올라버리는 생명력을 조금이라도 줄이고 붙들어두기 위해 총력을 다해 각자의 능력을 발휘했다.
그리고 그것은 영민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미 A등급 헌터를 뛰어넘은 전투력이지만 상대의 체력 역시 S등급 강화계 헌터 이상으로 높았다. 생명의 동굴 안 쪽으로 들어갈수록, 또 더 많은 ‘생명력 과포화’ 몬스터들이 나타날수록 영민 또한 조금씩 힘에 부치는 것을 느꼈다.
꿀꺽 꿀꺽
“후아.”
그나마 연금술로 만들어둔 체력과 마나 포션, 그리고 스태미너 포션이 없었다면 훨씬 더딘 진입속도였을 것이다.
각종 포션과 버프가 육체적 피로는 모두 해소해주었지만 정신적 피로만큼은 어쩔 수가 없었다. 놈들은 철우와 달리 강력한 공격력 또한 가지고 있기 때문에 결코 방어와 회피에 소흘 할 수 없는 것이다.
정타를 허용하지 않고 이쪽은 수십, 수백 번의 공격을 적중시켜야 하니 피로가 누적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영민도 ‘돌파’를 선택하지 않았다. 미션 완료 조건이 ‘생명의 돌’을 획득하는 것인 만큼 은신을 하든 돌파를 하든 얻어내기만 하면 클리어가 가능했지만 영민의 진짜 목적은 생명의 돌이 아니라 ‘드랍 아이템’이기 때문이다.
‘스킬북 아니랄까봐 드랍률은 상당히 낮군.’
정확히는 ‘스킬북’이었다. 철우에게 약속한 바로 그 공격용 스킬 북. 그것은 생명력이 충만한 공간일수록 드랍률이 높았기 때문에 생명의 돌을 탈취하기 보다 가만히 놔둔 상태에서 사냥을 하는 편이 더 드랍률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이었다.
‘그래도 장비는 잘 나오네.’
대신 철우의 전용 장비들은 꽤 건졌다. ‘생명력’에 특화된 던전인 만큼 관련 특성을 지닌 장비들이 다수 등장했는데 그 중 철우가 착용 가능한 장비들도 일부 끼어있는 것이다.
“나왔다, 투구!!”
강태성의 미래에서도 철우가 착용하던 세트 아이템.
등급은 유니크와 레전드가 섞여있지만 완전한 세트를 갖추면 생명력과 방어력, 마법방어력, 생명 회복량, 생명 회복속도를 크게 상승시키는 탱커 전용의 최상급 무구였다.
다른 탱커가 사용해도 훌륭하지만 철우가 사용한다면 에픽 등급 부럽지 않은 효율을 자랑하는 녀석. 여기에 생명의 돌을 박아넣는다면 그야말로 금상첨화요, 화룡점정이다.
최대 생명력에 비례하여 방어력이 상승하고, 다시 방어력에 비례하여 공격력이 상승하는 중복 효과가 적용되는 것이다.
오직 생명력만 올리면 모든 것이 해결되는 신박한 능력이 아닐 수 없다.
다만 그때는 완전한 세트 아이템을 습득하지 못했는데, 영민의 행운은 벌써 그에게 6가지 방어구 중 5개를 선물한 상태였다.
이제 바지 방어구만 나오면 세트가 완성되는 상황.
철우가 바지 없이 중요부위가 두드러지는 팬티 한 장을 덜렁거리며 싸우고 있는 것이 꽤나 민망하기는 했지만 곧 해결이 되리라 믿으며 전투에 집중했다.
‘가만, 이럴게 아니라··.’
그러다 문득, 한 가지 생각이 들었다.
파티를 맺고 사냥하면서도 운수대통이라 할 만큼 드랍률이 좋기는 하지만, 어쩌면 파티를 맺으면서 자신의 행운이 분산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Max에 달한 행운이 파티원의 수만은 N분의 1로 나뉘어 지고 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
아직까지는 사냥을 통해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해본 적이 없던 만큼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을 떠올리며 가만히 손가락을 움직였다.
[파티에서 탈퇴하셨습니다.]
파티에서 탈퇴를 한 뒤 다시 한 번 힘을 폭발시켰다.
“헐.”
그 결과, 수십 마리를 사냥할 동안 코빼기도 보이지 않던 스킬북이 무려 세 권이나 동시에 드랍됐다.
[황홀한 강타][스킬북]
생명의 빛에 휩싸인 일격을 내지른다. 황홀한 강타의 공격력은 사용자의 방어력에 비례하며 상대의 방어력을 무시한다.
[애정의 손길][스킬북]
애정 어린 손길로 어루만져 상대를 회복시킨다. 상대를 회복시키는 만큼 자신의 생명력이 소모된다.
단, 상대에 대한 감정에 따라 회복량이 증가 될 수 있다.
[하지 않겠는가][스킬북]
영혼의 결속을 통해 대상과 생명력을 공유한다. 영혼의 동반자가 된 쌍방의 합의에 따라 한 쪽의 생명력을 다른 한 쪽에게 전이 시킬 수 있다.
“미쳤네.”
영민이 원했던 것은 이 중 하나, 황홀한 강타 뿐이다. 기존의 미래에서 철우가 얻었던 스킬도 그것 하나 뿐이고.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스킬북이 무려 두 개나 더 드랍됐다. 그것도 하나하나가 아주 금쪽 같은 능력을 갖춘 놈으로.
생명력을 다루는 것에 익숙해지면 익숙해질수록 그 끝을 보기 어려워지는 철우의 생명력을 십분 활용할 수 있는 회복 계열의 스킬이 두 개나 되니 최강의 딜탱을 넘어 최강의 서포터로 변모할 판이다.
탐이 날 정도로 대단한 스킬들인지라 살짝 욕심이 들기도 했지만 영민은 곧 미련을 버리고 철우에게 세 권 모두를 던져주었다. 역시 이 스킬들을 가장 잘 활용 할 수 있는 것은 철우 뿐이었다.
“감사합니다. 대장!!”
철우는 그 스킬북을 신줏단지 모시듯 조심스럽게 받아들었다. 그리고 감격에 겨운 목소리로 소리쳤다.
S등급의 헌터인 주제에 공격력은 C등급 헌터만도 못해 얼마나 서러웠던가. 생명력은 끝이 보이지 않지만 방어력은 낮은 탓에, 의지의 갑옷을 사용하는 것에 완숙해질 때까지 고통은 그대로 감내해야했던 철우였기에 눈물이 날 만큼 감동했다.
“그래봐야 한 방이지만, 위력만큼은 자신해도 좋을 거야. 단, 생명의 갑옷 숙련도가 필수라는 것 잊지 말고.”
“예!”
생명력에 비례한 방어력을 획득하는 생명의 갑옷, 그리고 방어력을 공격력으로 치환하는 황홀한 강타!
능력들이 상호 연계되는 만큼 숙련도 작업은 필수였지만 그 위력만큼은 장담 할 수 있었다. 과거 그의 한 방은 헌터들 중에서도 수위에 들 만큼 강력한 것이었으니까.
그때도 그랬는데 여러모로 보다 강해질 앞으로는 어떨지, 벌써부터 기대가 되었다.
‘음, 저건 좀 찝찝한데··.’
다만 한 가지. 새롭게 얻은 스킬 중 ‘하지 않겠는가’의 설명은 좀 부담스러웠다.
능력 자체는 훌륭하다. 두 사람이 생명력을 서로 전이시켜 공유 할 수 있다니, 남는 게 생명력인 철우와 링크 시킨다면 따로 회복이 필요 없는 수준 아닌가?
하지만 남자끼리 영혼의 결속이니, 영혼의 동반자니 하는 것은··. 어딘지 어색하고 찝찝한 표현이었다.
그래서인지 영민은 체력이 낮은 민호가 적합하지 않겠느냐는 말을 던지며 선뜻 그의 대상이 되기를 꺼려했다.
철우도 한참이나 고민을 했지만 쉽게 정하지는 못했다. 영혼의 결속은 단 한 명과만 맺을 수 있는 만큼 신중하고자 하는 것이다.
일단 다른 두 스킬만 익힌 뒤, 드디어 사냥을 재개했다.
“맡겨주십시오!”
신이 나서 적진에 뛰어든 철우의 활약은 실로 대단했다. 쿨타임은 제법 길어 어쩌다 터지는 한 방일 뿐이기는 했지만, 오우거 이상의 파괴력을 자랑하는 아머드 빅 맨을 단번에 거꾸러뜨렸다. ‘방어력 무시’가 제대로 힘을 발휘한 것이다.
그러면서도 여유가 있는지 전투가 끝날 때마다 애정의 손길로 민호와 가람의 손실된 생명력을 가득 채워주기까지 하니 사냥 속도는 확실히 더 붙었다.
하지만 진짜 대박은 바로 영민이었다.
파티를 풀고 사냥하자 그 동안 팀의 성장을 위해 파티를 맺고 사냥했던 것이 아깝게 느껴질 만큼 값비싼 아이템들이 우수수 떨어진 것이다.
그 동안 제대로 능력을 보이지 못한 한 풀이라도 하듯, 행운이 미친 듯이 폭발하며 갖가지 아이템이 모습을 드러냈다.
‘됐다.’
그리고 그 중에는 철우가 기대하던 생명의 가죽바지도 있었다. ‘생명의’ 시리즈 중 마지막 부위. 마지막 한 피스까지 갖춰 입자 어쩐지 철우에게서 풍기는 느낌과 기운이 달라졌다.
“우와, 이거·· 힘이 넘치는데요?”
이미저리 몸을 움직여본 철우는 세트 효과로 좀 전과 확연히 달라진 느낌을 실감했다. 아직 전투를 치르기 전이지만 싸워보지 않아도 알 것 같은 확연함. 그 느낌은 곧 자신감으로 치환되어 결과로 나타났다.
“괜찮군.”
콰앙!
영민은 세트 아이템 중 하나인 ‘생명의 망치’를 휘둘러대는 철우를 보며 짧은 감상을 남기고 제 역할에 다시 뛰어들었다.
‘파티 플레이’로 인한 경험치 분배가 일어나지 않는 지금, 활약하는 만큼 경험치가 쌓이는 것이다.
‘앞으로 3레벨.’
다시 한 번 도약할 그 때를 기다리며 영민이 경험치와 아이템 수급에 매진했다.
파티를 맺으면 파티원들의 체력 게이지가 보이기에 리스크 관리 차원에서라도 파티를 유지하고 있었지만, 이쯤되면 별 의미가 없어 보였다. 차라리 몇 레벨 남지 않은 레벨업 구간을 경험치 독식으로 빠르게 치고 나가는 것이 나을 것이라 판단했다.
그렇게 사냥을 이어가길 꼬박 하루. 불침번을 돌아서며 꼬박 하루 동안 안으로 더 진입한 네 사람은 마침내 동굴의 마지막에 도달했다.
“와, 미친.”
그리고 가장 먼저 놈을 발견한 철우가 저도 모르게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자신도 자신이지만 이놈은 보는 것만으로도 기가 질린다.
신장 5M의 거인.
족히 3M는 될 트윈 헤드 오우거가 어린아이처럼 생각 될 만큼 거대한 존재가 안광을 번뜩이며 네 사람을 노려보고 있었다.
‘자이언트··.’
정확히는 ‘회복된 자이언트’이다. 과거 치명적 상처를 입은 자이언트가 생명력이 충만한 이곳에서 회복하고, 생명의 돌을 지키게 되었다는 설정. 때문에 과거 치명상을 입었던 상처부위가 약점이 되기는 했지만, 그런 것쯤은 의미가 없을 만큼 강력한 존재가
자이언트였다.
“조심해. 지금까지와는 ‘격’이 다른 놈이니까.”
이번 만큼은 철우보다 먼저 영민이 놈에게 도달했다. 자이언트는 이미 7레벨 던전의 규격을 벗어난 놈이다. 더구나 잠시만 쉬어도 바로 회복되어 버리는 ‘생명의 동굴’에는 절대 있어선 안되는 존재에 가까웠다.
‘할 수 있을까.’
때문에 한껏 주먹을 당겨쥔 영민의 머릿속에도 의문이 떠나지 않았다. 다른 곳도 아닌 이 생명의 동굴에서, 놈을 쓰러뜨릴 수 있을까?
강태성의 기억은 ‘무리’라고 소리쳤다.
너는 할 수 없다고. 철우를 미끼로 던지고 자신의 ‘공략법’을 따르라고.
그 과정에서 철우가 위험해질 수도 있지만, 잘못되면 녀석이 거기까지인 것 뿐이라고. 강하게 경고했다. 경종을 울렸다.
하지만 영민은 이번만큼은 그 경고를 무시해보기로 했다. 시험해보고 싶은 것이다. 자신의 힘을.
‘강태성, 나는 너와 다르다.’
그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강태성과 같아서는, 그의 기억을 넘어서지 못한다면 똑같이 멸망을 지켜볼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럭키 펀치.”
너의 기억은 정확하지만, 나는 너와 같지 않다고 되뇌이며 놈의 복부를 향해 주먹을 힘껏 내질렀다.
뻐억!
다음 순간, 자이언트가 커헉 하는 신음소리와 함께 허리가 반으로 접혔다. 하늘에 닿을 것만 같던 머리가 이제는 닿을 만한 위치까지 내려왔다.
“헤븐즈 드라이브!”
놈의 무릎을 밟고 뛰어오른 영민이 허공에서 몸을 거꾸로 뒤집었다. 그리고 숙여진 자이언트의 목을 향해 아홉 번의 검격과 함께 떨어져내렸다.
< 99화 - 생명의 돌 (2) > 끝
ⓒ 갈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