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8화 - 생명의 돌 (1) >
“대장, 여기입니까?”
벌써 다섯 번째 던전 출입. 하지만 어딘가 ‘다르다’는 느낌을 받은 철우가 한껏 흥분한 모습으로 물었다.
“그래.”
뭐랄까, 생명력이 충만하다고나 할까?
단지 지형과 분위기 뿐만 아니라 말 할 수 없는 그 무언가가 다르다는 것이 피부로 느껴졌다.
[미션 ‘생명의 돌을 찾아서’가 부여됩니다.]
[미션을 달성하면 보상으로 ‘생명의 돌’을 획득 할 수 있습니다.]
미션 역시 평범하지 않은 현상금 미션. 이름부터 거창한 생명의 돌을 찾아내는 것이 목표였다.
던전 내부는 하나의 거대한 산맥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자칫 일행을 놓치거나 길을 잃으면 답이 없겠다는 생각이 들만큼 비슷비슷한 나무가 울창하게 솟아 주위를 분간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덕분에 일행들은 살짝 겁을 먹은 듯 침착하게 움직였지만 오직 영
민 만큼은 거침없이 산을 타고 오르기 시작했다.
“엇, 같이 가요!”
그 뒤로 나머지 셋이 바짝 따라붙었다.
‘방향은 잡았고, 길은··만들어야지.’
빠르게 달려나간 그들의 앞을 가로막은 것은 몬스터가 아닌 수풀과 나무. 길이 없음을 시위하듯 막혀 있는 지형지물을 확인하자마자 영민은 힘을 끌어올렸다.
“뚫는다! 뒤처지지마!”
그리고 그대로 힘을 분출해 강제로 길을 만들어냈다.
“키에에에엑-!”
수풀이 헤쳐지고 나무가 부러지는데 소리는 괴수의 울음소리가 났다. 그것은 바로 이 산맥의 모든 것들이 ‘생명’을 가졌기 때문. 생명의 기운이 풍부한 이 산맥 내에서는 나무 한 그루, 돌멩이 하나까지 생명을 갖고 있었다.
“헉! 이게 뭐에요?!”
“뭐긴 뭐야, 몬스터지. 상대하자면 끝도 없으니까. 뛰기나 해!”
가만히 놔둔다면 위협이 되지 않지만 ‘생명의 돌’이 있는 곳에 다가가려 하면 할수록 저항은 심해진다. 그야말로 온 산맥이 한 뜻으로 뭉쳐 이방인에 대적하는 것이다.
그것은 이 산맥 내에 자리 잡은 모든 부족과 몬스터들도 마찬가지여서 ‘미션’을 달성하려면 이들 모두를 상대하거나, 폭풍 결사단 미션 때처럼 ‘돌파’를 택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핵심 미션 지역인 생명의 동굴에는 동굴 밖의 존재들이 들어오지 않는 다는 것. 물론 그 안에서 또 다른 위험이 도사리고 있지만 양쪽에서 덮쳐오지 않는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한 일이다.
콰과과광-!
“와씨, 이걸 버텨?!”
그때, 재빨리 캐스팅을 끝내고 큰거 한 방을 날린 민호가 멀쩡하게 쫓아오는 ‘생명체’들을 보며 기겁을 했다. 타격이 없는 것 같지는 않지만, 전혀 기세가 줄지 않은 모습으로 추격을 이어오는 것이다.
아무리 7레벨 던전이라지만, 어지간한 6레벨 던전 몬스터도 일격에 눕힐 공격력을 멀쩡히 버텨내는 모습은 두렵기까지 할 정도였다.
“쓸데 없는 짓 하지 말라니까. 이 놈들 ‘철우’랑 비슷한 놈들이야. 피통이 엄청나니까 그냥 무시하고 뛰어!”
영민의 핀잔에 모두가 입을 다물었다. 저 많은 놈들이 다 철우와 비슷한 과라고? 이길 수 있고 없고를 떠나서 싸울 의지조차 꺽이는 말에 달음질치는 다리의 힘을 더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선두를 뚫는 영민의 공격은 통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아마 전진하는 것조차 어려움을 겪다가 꼼짝없이 포위당해 체력과 마나만 쏟아 붓고 탈진해버렸을 것.
세 사람은 놈들의 무지막지한 체력에 한 번, 무시무시한 영민의 파괴력에 또 한 번 혀를 내두르며 어미를 쫓는 아기새처럼 영민의 뒤를 쫓아 이동했다.
“휴!”
그렇게 한 시간 여를 달리고 나서야 겨우 숨을 돌릴 수 있었다. 보다 농도 짙은 생명력이 충만한 동굴 내부에 들어서자 소모된 체력과 스테미너가 급격히 차오르고 쫓아오던 생명체들은 닭 쫓던 개처럼 동굴 밖에 멀찍이 서서 으르렁 댈 뿐이었다.
결계 같은 것이 있거나, ‘변이’가 두려워 다가오지 못하는 것이거나.
이유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확실한 것은 숨을 돌리고 재정비를 할 여유를 얻었다는 것이다.
‘괜찮겠지?’
하지만 영민의 표정은 그리 밝지 못했다. 앞으로 나타날 적들이 염려스러워서? 그런 것도 있지만 던전에 입장하기 전 확인했던 사항이 못내 마음에 걸려서이기도 했다.
‘일단 먼저 진입한 대형 길드가 없기는 한데··.’
던전의 상태가 ‘난입’이었던 것이다. 누군가 먼저 던전 내부에 들어온 자가 있다는 뜻. 알아본 바로 아프리카에 지원을 온 어떠한 대형 길드도 무려 7레벨 던전인 이곳에 진입할 예정이 없었으니 모르고 진입한 개인이거나 팀, 파티 수준이지 않을까 예상이 되
었다.
7레벨 던전부터는 던전 진입 시 스타팅 포인트가 항상 같지 않으니 뭐라 단정 할 수는 없지만 산맥의 어딘가에 떨어져 헤매고 있거나 잘못 건드려서 혼쭐이 나는 중이지 않을까?
전자라면 탈출석을 쓰든, 자신들이 던전을 클리어 할 때까지 기다려서 무사히 빠져나갈 수 있겠지만 후자라면 설사 S등급의 헌터라도 목숨을 장담하기는 어려울 터였다. 길을 모르는 이가 이곳에서 안전지대를 찾아낸다는 것은 기적에 가까웠으니.
‘왜지? 뭔가 기분이 찜찜한데··.’
목숨을 잃을지 모르는 그들이 불쌍해서? 그럴 리가. 고작 그런 이유일 리는 없다는 것은 분명했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계속해서 불안하고 찜찜한 마음이 들었다. 뭔가를 놓치고 있는 기분. 영민의 ‘촉’이 무언가를 계속해서 경고했다.
‘최대한 빠르게 클리어 하는 수밖에.’
답이 나오지 않는 불안감에 잠시 머뭇거리던 영민은 곧 휴식을 마치고 전진을 지시했다. 불안 요소가 나타나기 전에 최대한 빠르게 던전을 클리어 해버리겠다는 것이다.
“저, 저게 뭐에요?!”
안으로 들어가자 처음부터 무시무시한 놈이 튀어나왔다.
머리가 둘 달린 트윈 헤드 오우거인 것도 놀라운데, 팔이 두 개가 아닌 네 개나 되었다.
심지어 그 팔에는 각기 다른 무기까지 쥐어져 있다.
검, 창, 지팡이, 도리깨.
크기부터 생김까지 모두 다른 그것들의 위용에 일행의 얼굴에는 낭패의 빛이 어렸다.
“뭐긴 뭐야. 1인 4역이지. 마법도 쓰니까 조심해!”
영민이 선두로 튀어나가며 방패를 높이 들었다. 강태성의 기억을 통해 알고 있는 것과 얼마나 차이가 있는지 몸으로 느껴보려는 것. 순식간에 빛의 힘으로 휘감은 영민의 방패와 놈의 도리깨가 부딪혔다.
“으음.”
한껏 강화된 힘과 방어력 덕분에 튕겨나가지는 않았지만 충격이 제법 묵직했다. 영민이 이럴 정도면, 정면으로 받아낼 수 있는 헌터는 극히 소수라고 보는 것이 맞았다.
그것도 고작 네 개의 팔 중 하나를 사용했을 뿐이니, 놈에게 다가가서 한 방을 먹이려면 어지간한 능력으로는 어림도 없겠다는 생각이 스쳤다.
‘확실히 앞서고 있다.’
그래도 결과가 나쁘지만은 않았다. 차후 상당한 스펙업을 한 강태성과 생명의 갑옷이 완숙 단계에 이르던 미래의 철우마저도 놈에게는 몇 걸음이나 물러서야 했던 것.
적어도 힘과 방어력 면에서는 영민이 그 때의 둘을 넘어서고 있다는 뜻이었다.
“체인 라이트닝!”
살짝 미소를 지은 영민은 놈의 거대한 몸을 향해 먼저 전격을 뿌렸다. 그러나 거의 동시에 휘둘러진 지팡이가 놈에게 보호의 빛을 뿌리며 공격을 상쇄시켰다.
폼으로 지팡이를 들고 있는 것이 아니라 최소 7써클 이상의 마법을 쓸 수 있는 강력한 마법사이기도 하다는 뜻이다.
‘머리가 두 개라 연산이 빠른 건가?’
오우거를 멍청하다고 알고 있는 이들의 편견을 가볍게 짓밟듯 위력을 과시한 놈은 오히려 영민을 향해 먼저 덤벼들었다.
‘어쭈.’
도리깨를 휘두르면서 창을 내지르고, 창을 내지르면서 검을 횡으로 휘두른다. 그러면서도 전혀 머뭇거림이 없는 대쉬를 이어가니 각 무기가 가진 리치가 절묘한 시간차를 만들어냈다.
그렇다고 힘이 빠졌나하면 그것도 아니다. 도리깨는 바위로 된 바닥을 박살냈고 창은 공간에 구멍을 냈으며 검은 공기를 찢어발겼다.
하지만 그 뿐이다.
놈의 패턴 쯤이야 이미 예상하고 있던 영민은 오히려 놈을 향해 돌진해 품으로 파고 들었다.
도리깨와 창은 제법 거리가 필요한 무기. 그 둘이 힘을 쓸 수 있는 거리를 주지 않으면 조심해야 할 것은 검 뿐이었다.
그마저도 덩치의 차이가 있으니 조금만 자세를 낮추면 될 일이다.
“방패 찍기!”
퍼억!
주변의 모든 것을 빨아들일 듯한 검압을 버텨낸 영민은 방패를 가로로 세워 놈의 왼쪽 무릎을 후려쳤다. 연골이 파괴되고 무릎이 어긋나버렸다. 순간 한 쪽 무릎이 무너지듯 꺾였다.
그 틈을 놓치면 헌터의 자격이 없다. 다른 한 손에 들린 바이킹 소드의 예리함으로 간신히 지탱하는 오른 발목의 아킬래스건을 잘라버렸다.
놈이 다리를 세로 찢기하듯 쭉 벌리며 바닥에 내려왔다.
그 순간 모든 무기가 영민을 향했다. 지팡이는 다시 빛을 발하며 회복 주문을 준비했고 나머지 무기는 자신에게 고통을 선사한 벌레를 찍어죽이기 위해 짧게 휘둘러졌다.
영민은 그 방패를 등으로 돌리고 그 모든 공격을 몸으로 받아냈다. 속이 울렁거리는 충격이 전해졌지만 버티지 못할 정도는 아니다.
대신 양 손의 자유와 공격의 기회를 얻었다.
몸을 하늘을 향해 뒤집으며 높게 솟구쳐올랐다.
“헤븐즈 드라이브!”
변종 오우거의 가슴이 쩍 벌어지는가 싶더니 순식간에 8번의 검격이 더 이어졌다. 도합 9번의 베기. 쾌속의 베기였지만 그에 실린 힘은 전혀 약해지지 않았다.
“끅··.”
아홉 번의 베기는 놈의 두 목을 베어냄과 동시에 사지의 근맥을 철저히 절단해냈다.
검에 실린 기운이 성스럽기까지 한 신성의 기운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만큼 잔인한 손속.
영민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한 가지 힘을 더 발현했다.
“크리티컬 운즈!”
상처를 더욱 벌어지게 만드는 디버프 스킬.
회복의 여지를 남기지 않는 잔혹한 마무리까지 더하고 나서야 영민은 숨을 몰아쉬었다.
“이 정도면 회복하지 못하겠지.”
이 던전의, 이 동굴의 특성 때문이다.
조금이라도 회복할 여지를 남기면 ‘부활’에 가까운 재생이 이루어지는 생명력 충만한 동굴의 특징을 이해하기에 행한 잔혹한 손속. 영문을 모르는 일행이 찔끔거렸지만 영민은 단호히 ‘확실한 죽음’을 선사할 것을 지시했다.
“이거··. 곧바로 실습을 해야 할 것 같군.”
그리고 잠시 후, 실습의 시간이 돌아왔다.
조금 전 상대한 녀석과 비슷한 트윈 헤드 오우거가 둘이나 동시에 나타난 것이다.
아니, 그 뿐이 아니다. 이번에는 ‘활력의 오우거’라는 부하들까지 열이나 이끌고 나타났다.
이들만으로도 A등급 헌터 스물이 붙어도 장담할 수 없는 괴랄한 난이도다.
‘문제는 이제 시작이라는 거지··.’
이제야 동굴의 초입에 불과하다는 것이 문제였지만.
늘 그렇듯, 영민은 팀을 두 조로 나누었다. 영민이 홀로 한 조, 나머지 셋이 한 조를 이루었다.
“광역 도발!!”
철우의 도발을 시작으로, 고난한 전투가 시작되었다.
< 98화 - 생명의 돌 (1) > 끝
ⓒ 갈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