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행운 MAX-96화 (96/177)

< 96화 - 기적의 연금술사 (1) >

긍정을 뜻하는 영민의 끄덕거림에 철우는 몇 번이나 예쓰, 예쓰를 외쳤다. S등급으로 모두에게 경외의 눈빛을 받고 있지만, 엄청난 체력과 방어력으로 A등급 탱커 십 수 명분의 탱킹을 홀로 해내고 있지만 공격력이 극악하다 할만큼 낮다는 것에 심각한 콤플렉스가 있던 것이다.

그래도 이들과 팀을 꾸리고 나서는 탱킹만 충실히 해도 몬스터들이 휙휙 나자빠졌지만 강력한 일격에 대한 갈증은 가슴 속 깊은 곳에 여전히 남아 있었다.

그런 것을 영민이 비로소 채워주겠다 선언했으니 기뻐 날뛰지 않는 것이 이상했다. 그런 철우의 마음을 두 사람도 이해하고 있었는지 함께 축하를 해줬고, 영민은 매정하게 그들을 제지했다.

“기뻐하긴 아직 이를텐데? ‘그 스킬’을 얻으려면 아프리카에 있는 7레벨 던전을 클리어해야 하거든.”

“괜찮습니다. 괴질 그 까짓 거, 생명력으로 이겨내지요!”

“헐. 형은 괜찮겠지만 우리는 안 괜찮거든요? 질병은 공간 왜곡도 안 먹힐 텐데!”

“으음, 대장이 가자면 가기야 하겠지만 아이와 아내에게는 뭐라고 해야 할지··.”

철우는 여전히 신이 난 상태였지만 다른 두 사람은 표정이 어두워졌다. 몬스터라면 두렵지 않지만 정체도 밝혀지지 않은 질병에 대해서는 막연한 두려움이 들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가지 않겠다는 말은 하지 않는 두 사람을 보며 피식 미소를 지은 영민은 간단한 해결책을 내놓았다.

“그건 문제 없어. 내가 질병 면역 물약을 줄 거니까.”

“오오, 그런 게 있어요?”

“그래. 연금술 마스터 찍었거든.”

“헐. 노가다 쩐다. 그거 아직 85% 찍은 사람도 없지 않아요?”

민호가 질렸다는 듯 고개를 내저었다. 그게 얼마나 엄청난 노가다인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영민은 이왕 가는 김에 질병 면역 물약을 대량 생산해서 풀 생각이었다. 일반 질병은 물론 질병 계열의 디버프까지 무효화시키는 질병 면역 물약. 그 거창한 능력에 비해 들어가는 약초의 종류는 그다지 비싼 것이 아니었는데 이미 보유한 재료로도 수천병 정도는 즉시 생산이 가능했다.

어디 그 뿐인가, 최상급 질병 치료 물약도 대량으로 찍어내서 물에 풀어 나누어주면 당장 고생하는 이들의 해독도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일반인에게는 무료로, 헌터들에게는 유료로.

한 몫 제대로 챙길 수 있는 플랜까지 세운 영민은 세 사람에게 휴식을 취하게 하고 모종의 조치를 취한 뒤 다음 날, 아프리카로 향했다.

명색이 대한민국 10대 길드의 장이다. 전용기로 이동한 덕에 기자나 기타 잡스러운 시선이 따라붙지는 못했지만 영민이 한국에 없다는 사실은 오래지 않아 밝혀졌다.

영민이 아프리카에서 일을 벌여서? 그런 이유도 있지만 헌터 전문 대응 기관인 헌터 특수과에서 백인엽을 긴급 체포한 까닭이다.

죄명은 ‘불법 비자금 조성 및 은닉’.

백인엽은 억울해하며 ‘길드장의 지시’를 주장했지만 아무도 믿어주는 이는 없었다. 그를 고소한 이가 바로 길드장인 영민이었으니까.

더불어 드러난 서류도 모두 그가 범인임을 가리키고 있었고, 그 밖에 영민이 제출한 증거자료들까지 더해지니 옴짝달싹 할 수 없는 처지가 된 것이다.

강태성의 처리 능력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빌어먹을 자식, 결국 뒤통수를··!!”

백인엽이 눈빛으로 사람을 잡아먹을 듯 분노했지만 거친 반향을 하지는 않았다. 명색이 A등급 헌터인 그가 날뛰면 애를 먹을 수도 있었지만 결국 잡히게 될 것이고, 죄가 더해질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자신은 잡히지만 이미 현물화 해둔 비자금은 찾지 못할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몇 년 쯤 감옥에서 썩다 나오겠지만 그 이후에는 이 더러운 꼴을 보지 않고 해외로 나가 떵떵거리며 살리라 다짐한 그는 주문처럼 영민을 욕하고 저주하며 순순히 잡혀갔다.

자신이 감춰둔 비자금들이 이미 모두 영민의 손아귀에 들어갔으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한 채.

“음, 누가 내 욕을 하나?”

그 난리가 일어나는 동안 영민은 편하게 아프리카에 도착해 귀를 후비고 있었다.

지금쯤 아마 한국에서는 난리가 났겠지만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실세를 거머쥐고 있던 백인엽이 사라졌다고 해서 골든 크로스가 와해되거나 즉시 내분으로 빠지지는 않을 거라 확신하는 것이다.

이전이라면 모를까, 이미 자신의 버프를 맛본 A등급 헌터들이라면 감히 딴 생각을 품지 못하리라.

‘거의 마약 같은 거니까.’

A등급 헌터쯤 되면 마약도 그리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그 까짓 중독 성분은 해독주문이나 포션 한 방에 날려버릴 수 있기에 잠시 기분을 즐기는 용도로 애용하는 이들도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버프는 다르다. 본래의 3배에 이르는 강대한 힘을 얻었을 때의 쾌감, 그리고 버프가 사라졌을 때의 상실감과 허무함. 또 갈증. 그것을 맛본 이들은 절대 자신에게서 등을 돌릴 수 없었다.

‘한시적으로나마 등급을 넘어서 본 놈들이라면 더 그렇지.’

만약 A등급의 끝자락에 위치해 S등급의 경지를 어설프게나마 엿본 이들이라면 말할 것도 없다. 또 다시 그 경지를 맛보기 이해 영민에게 충성을 다하겠지.

설사 무슨 일을 벌이려는 멍청이가 있다고 해도 먼저 그들을 상대해야 할 판이었다.

“형, 이제 어디로 가요? 우린 딱히 가이드도 없는데.”

“나만 믿어.”

무사히 아프리카에 도착하기는 했지만 문제는 시작부터 생겼다. 극비리에, 그 흔한 통역이나 가이드조차 달고 오지 않았기에 당장 어느 방향으로 움직여야 할 지조차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심지어 가람과 민호, 철우는 하나 같이 영어 울렁증까지 있어서 그저 마시고 남은 질병 면역 물약의 빈병만 꼼지락거리며 영민만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영민은 망설임이 없이 방향과 길을 선택했다.

미리 빌려둔 렌트카를 몰고 네비게이션도 없이 신나게 엑셀을 밟아댔다.

영민은 처음 와 보지만 강태성은 지긋지긋하게 쏘다니던 곳이니까.

그때는 도로와 공항도 파괴되어 훨씬 열악한 상황에 처하기도 했었으니 대충 지형만 봐도 위치와 방향을 가늠 할 수 있을 정도였다.

“아, 도시다.”

네 사람은 한참을 달려 도로가 파괴된 지역까지 도착했다.

이럴 줄 알고 고급 세단이나 스포츠카 대신 오프로드에 적합한 놈으로 렌트를 했지.

거기서 멈추지 않고 도로가 아닌 곳으로 핸들을 꺾은 영민은 다시 한참을 달려 도시를 찾아냈다.

아니, 도시라고 하기에는 이미 한바탕 포화를 맞은 것 같은 폐허였지만 움직이는 형체나 마나 반응으로 봐도 사람들이 꽤나 몰려있는 것이 확인 되었다.

몬스터들에게 한 번 파괴되었던 도시를 인간들이 다시 수복해서 쓰고 있는 것이다. 대부분의 시설이 못쓰게 되었지만 임시든 아니든 새롭게 건물이나 구조물을 올리는 것보다는 훨씬 수월한 선택이었기에 머물며 천천히 복구하기로 한 것이다.

실제 복구가 시작되는 것은 대부분의 지역을 수복한 이후라는 것은 아직 영민만 알고 있는 일이지만 말이다.

“남쪽 지역부터 가자.”

인간인 것이, 헌터라는 것이 확인되는 이상 출입에 제한이 걸리지는 않았다. 어찌되었든 지금 아프리카는 작은 힘이라도 필요한 상황이고 이럴 때 등장한 A등급과 S등급 헌터들이 원하는 그 무엇이라도 들어줄 필요가 있는 것이다.

“조심하십시오. 그쪽에는 병에 걸린 자들이 많습니다.”

세계는 떨고 있지만 실상 이곳에 머무는 자들은 정체불명의 질병이 전염병이 아니라는 사실을 짐작하고 있었다. 전혀 접점이 없는 자들 중에 발병하는 자들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그들이 환자들을 모아둔 지역에 들어선다해도 간단한 주의를 주는 게 전부였다.

“맙소사····”

안으로 들어선 네 사람은 그 처참한 광경에 말을 잃었다. 몸이 딱딱하게 굳어가는 사람, 피부가 괴물의 그것처럼 변해가는 사람, 전신이 젤리처럼 변해 제대로 된 형체를 갖추지 못하는 사람 등 모두가 심상치 않은 상태라는 것은 같았지만 증상은 조금씩 차이

가 있었다.

질병의 원인조차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

오직 영민만이 그 이유를 대략적으로나마 알고 있었다.

“고유 능력 같은 거지. 개인의 마나 특성에 반응해 다른 반응을 일으키는 거야.”

나머지 세 사람은 표정을 굳히고 고개만 끄덕거렸다. 질병 면역 물약 덕분에 저렇게 될 일은 없다 하더라도 두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헌터라서 면역이 강할 수도 있지만, 반대로 일반인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마나를 보유하고 있기에 변이도 더 크게 일어날 수 있었으니까.

그런 그들을 앞서 휘적휘적 걸어간 영민은 그 자체로 병동에 가까운 지역의 중심에서 커다란 무언가를 꺼냈다.

저주 같은 것에 걸렸다면 성역 선포부터 사용하겠지만 아쉽게도 이것은 질병. 그가 가진 어떠한 버프나 상태이상 해제 스킬로도 치유할 수 없는 종류였다.

“물탱크?”

인벤토리에서 꺼낸 그것은 다름 아닌 물탱크였다. 갑작스레 자리를 차지하고 나타난 몇 개나 되는 물탱크에 사람들이 어리둥절해 했지만 영민은 개의치 않고 자기가 할 일을 계속 해나갔다.

방수모터가 달린 펌프를 설치해서 물탱크 안의 무언가를 뿜을 수 있게 한 것이다.

“자, 시작해볼까?”

푸화아앗-!

그리고는 대뜸 펌프를 작동시켜 액체를 뿜어냈다.

“이게 무슨 짓이냐!!”

느닷없는 물세례에 모두가 강하게 반발했다. 알 수 없는 질병에 걸려 고통 받는 이들인 만큼 신경이 예민해지고, 정체불명의 무언가에 닿는 행위를 극도로 꺼려하는 것이다.

동시에 영민이 자신의 힘을 개방해 기세를 죽여놓았기 망정이지 어쩌면 상대가 헌터고 나발이고 일단 공격해오는 자들이 있었을 지도 몰랐다.

“어? 어?!”

“이게 무슨 일이지?”

“설마··!!”

잠깐의 침묵. 그리고 다음에 터진 것은 환희요, 환호였다.

그토록 자신들을 괴롭히던, 절대 치유되지 않을 것만 같던 질병이 물에 씻겨나가기라도 하듯 빠르게 호전되고 있는 것이다.

대량의 최상급 질병 치료 물약.

확실한 효능을 입증하기 위해 물에 희석시키지도 않은 그것이 뿌려지자 몸을 조금만 움직이려해도 고통스러워하던 환자들이 벌떡 일어나는 것은 물론, 땅이며 건물까지 모조리 정화되며 이곳을 아프리카 제일의 청정 지역으로 순식간에 변모되었다.

“오오!!”

그 효과가 얼마나 극적인지 이렇게 될 것을 이미 알고 있던 민호, 가람, 철우마저 신의 사자를 보듯 홀린 것처럼 영민을 바라볼 정도다.

“우와아아!!!!!”

덕분에 몬스터의 습격이 아닌가 생각 될 만큼 지역 전체가 난리가 났다.

이것이 기적이 아니면 무엇이 기적이겠나.

멀리 있는 몬스터들이 놀랄 만큼 사람들이 환호하고, 몰려들었다.

푸슛 푸슛

사례 걸린 듯 콜록대는 펌프가 제 역할을 다 할 때까지 남김없이 최상급 질병 치료 물약을 쏟아낸 영민은 감히 자신에게 다가오지도 못하고 경외할 뿐인 이들을 보며 천천히 기다렸다.

오래 기다릴 필요는 없다. 아무도, 어떤 치유 능력으로도 호전조차 되지 않던 괴질이 단 번에 완치되었다는 소문은 들불보다 빠르게 번졌으니까.

이쪽에는 일반인들과 이렇다 할 끈도 연도 없는 헌터들 뿐이지만 지금 달려오는 이들은 달랐다.

길드에서 막대한 자금과 인력을 투입해서라도 반드시 살리려고 하는 이들. 또 그럴만한 힘과 재력을 갖춘 이들이었다.

‘자, 협상을 시작해볼까?’

헐레벌떡 뛰어오는 이들을 보며 영민이 씨익 미소를 지었다.

< 96화 - 기적의 연금술사 (1) > 끝

ⓒ 갈드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