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3화 - 7레벨 던전 (3) >
“우와아아!!!”
생기를 잃어가던 눈에 활력이 가득 차오르고 사기가 하늘을 찌를 듯 솟구쳤다.
이 넘치는 힘이 영민으로부터 비롯되었음을 확인한 몇몇은 그 자체만으로도 영민은 인정하는 눈빛을 띄었다.
그나마 그들의 체력이 바닥인 지금이라 체감이 덜 할 뿐이지, 3배로 증가한 힘을 제대로 써볼 수 있다면 인정이 아니라 충성을 하게 될 터였다.
실제로, 과거 이 콤보를 처음으로 익혀낸 요한이 길드를 만들고 이끈 것도 같은 방식이었다.
더불어 강제적인 능력의 상승이기는 하지만 A등급을 벗어나는 경험을 한 이들은 성장 속도까지 잠재적으로 빨라지기에 누구든 머리를 숙이고 들어갈만 했다. 어떤 식으로든 한 번 밟아본 길을 다시 걷는 것은 홀로 헤치고 나아가는 것보다 쉬운 것이다.
하지만 영민은 요한처럼 늘 전투의 후방에 있을 생각 따위는 추호도 없었다.
그에게 어울리는 자리는 가장 앞선 그곳.
그것을 증명하듯 다시금 힘을 폭발시켰다.
“끄허어엉!!”
영민이 내지른 표효에 산속에서 맹수를 만난 것처럼 모두의 몸이 쭈뼛거리고 솜털이 바짝 솟았다.
상태이상을 일으키기 위해 대기하던 일부 몬스터들은 한순간 정신이 나갔고 버틸 수 있던 나머지들도 적지 않은 능력치 하락을 겪어야 했다.
그것은 대부분의 아군도 마찬가지였다. 파티를 맺지 않은 상태이기에 그들도 워 크라이의 영향을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3배로 증폭된 능력 때문에 하락 폭은 적었지만 온몸의 전율로서 영민의 강함을 깨달아야 했다.
“럭키 펀치!”
짧은 멈칫거림. 그 한 순간 적의 보스를 감지해낸 영민은 망설이지 않고 파고들었다.
다른 일체의 것들은 필요 없다. 위력을 과시 할 수 있는 한 방! 영민의 주먹에 럭키펀치와 치명적 일격의 특성이 깃들어 놈을 꿰뚫어버렸다.
비장한 일격 치고는 조금 모양 빠지는 이름이지만 아무도 듣는 이는 없어 다행이었다.
“헉!”
일격.
최소 A등급 중상의 능력을 지닌 보스 몬스터가 영민의 단 일격에 머리가 터져 죽어버렸다.
그것도 주먹질 한 방에.
과연 자신들이라면 할 수 있을까? 지금처럼 힘이 넘친다면 이기는 것은 어렵지 않겠지만 일격은 좀··. 더구나 럭키맨의 주무기는 따로 있다는 것을 들어 알고 있는 이들로서는 경외감 어린 눈으로 바라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도 전투력 만큼은 인정했던 전 길드장 강정오처럼 뒤가 없는 극단적인 강화능력도 아니었다.
다른 10대 길드들을 바라보며 느꼈던 열등감과 부러움이 가슴 속에서 씻은 듯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길드장이 보스몹을 처치했다!!”
“우와아아!!!!”
누군가의 외침에, 보스의 생명이 꺼지는 순간 지리멸렬하여 흩어지는 몬스터들의 모습에 모두가 하나 되어 사기가 치솟았다.
“무리하게 쫓지말고 주변만 정리해라. 회복을 마친 뒤 하나씩 정리한다.”
“예!”
이제는 자신들의 몸상태를 고려해 추격을 명하지 않는 모습마저 감동적일 지경이다.
한계에 가깝게 몰아붙여졌던 이들이기에 감성이 꽤나 충만해져 영민의 한마디 한마디에 반응했다.
“회복을 마쳤습니다. 추적을 맡겨주십시오!”
3배나 뻥튀기 된 능력치 덕분에 회복에 필요한 시간은 전보다 길었지만 실제 회복에 걸린 시간은 그보다도 짧았다.
영민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그의 눈에 들기 위해 따로 챙겨온 개인용 상급 포션까지 아낌없이 써가며 회복에 열중한 것이다.
“그럴 것 없다. 놈들이 알아서 찾아올 테니까.”
꿀꺽 꿀꺽
정신적 피로는 있겠지만 모두가 체력과 마나 만큼은 90% 이상 회복한 것을 확인한 영민은 추격대를 편성해 각개 격파를 하는 대신 거무튀튀한 포션 하나를 들어 목구멍에 넘겼다.
바로 몬스터를 불러모으는 다크니스 오러.
한 병을 몽땅 비우자 스산한 검은 기운이 몸 주위를 한 번 휘돌더니 순식간에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모두 전투 준비!”
이대로 끝내기에는 성역 선포의 지속시간이 너무 많이 남은 것이다.
그리고 잠시 후, 깨끗하게 주위를 정리했다던 보고가 무색할 만큼 몬스터들이 새까맣게 몰려왔다.
* * * * *
돌파를 하던 어느 때보다 많은 수의 몬스터들이 일시에 덤벼들었지만 정리하던 것은 더 없이 간단했다.
3배 능력치가 된 이들이 경쟁하듯 힘을 발휘하니 A등급 수준의 몬스터들도 별다른 힘 한 번 써보지 못하고 바닥에 몸을 뉘이는 것이다.
그 동안의 고생이 무색해질만큼 간단한, 그리고 일방적인 전투에 헌터들은 묘한 자괴감을 느낄 정도였다.
영민이 말하던 ‘시험’이 무엇인지 알 것 같은 것이다.
이 정도의 강화 능력이라면 사실 자신들의 수준까지도 필요 없었다. A등급에 갓 오른 이들만 모아놓고 강화시킨 뒤 마지막에 몬스터들을 미쳐 덤비게 만들었던 그 포션만 사용해도 그 자리에서 모든 몬스터의 씨를 말려 버릴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굳이 돌파를 선택하고, 자신들을 한계까지 몰아넣은 것은 정말로 ‘시험’이라 말 할 수밖에 없었다.
“공략법도 완벽했지····.”
거기에 폭풍 결사대의 신발을 준비한 것까지.
이쯤되면 인정하고 자시고 할 게 아니라 제발 머물게 해달라고 바짓가랑이라도 잡고 늘어져야 할 판이었다.
그렇게, 영민은 단 한 번의 던전 공략으로 길드의 핵심이 A등급 헌터들의 마음을 사로잡아 버렸다.
“수입도 엄청나겠던데?”
던전을 빠져 나온 이들은 흥분이 가라앉지 않는 가슴으로 저마다 한 마디씩을 했다.
그 수많은 몬스터들을 쓸어버린 뒤 한데 모은 아이템들도 정말이지 대단했다. 보스 몬스터가 ‘거지’였던 것은 아쉽지만 괜히 7레벨이 아니라는 듯, 일반 몬스터들이 내놓은 아이템만 해도 6레벨 던전 몇 개 분량은 되었고 품질 또한 월등했다.
던전의 특성상 채집꾼들이 진입하지 못해 모든 것을 긁어모으지 못했음에도 그랬다.
시험 때문 만이 아니라도 자신들 전원이 투입될 만한 가치가 있는 던전이었다.
“자, 이제 모두 자기 자리로 돌아가도 좋다.”
던전을 나온 이들은 재진입을 기대했지만 아쉽게도 그런 행운은 없었다. 영민은 단호히 제자리로 돌아갈 것을 명했고 의욕은 넘치지만 적지 않은 정신적 피로를 느끼던 헌터들은 저마다 충성 맹세와 비슷한 소리를 내뱉으며 흩어졌다.
애초에 영민의 버프가 아니라면 희생이 없는 것은 고사하고 클리어 가능 여부조차 불투명한 던전이었으니까.
던전을 클리어하고 나서 [폭풍 결사대의 신발]과 세트를 이루는 [폭풍 결사대의 외투]가 드랍되기는 했지만 고작 그 정도의 강화 효과로는 만족 할 수도, 완벽 공략을 자신할 수도 없었다.
그들이 사라진 뒤 전리품은 모두 길드 창고로 우선 옮겨지고, 백인엽은 골치아픈 뒤처리를 하기 위해 움직였다.
이미 그들의 7레벨 던전 도전 소식이 은밀하게 돈 상황에서 공략 사실까지 알려지는 것은 시간 문제인 만큼 언론 대응과 다른 길드들의 수작을 파악해야 하는 것이다.
특히 콧방귀를 뀌며 탈퇴를 선언한 이들의 복귀에 대해서도 처리해야했다.
7레벨 던전 공략 성공 사실이 알려지면 마음이 흔들려 다시 돌아오려는 자들이 많을 터. 영민이 그들에 대한 복귀 불가 방침을 내걸었기에 그 과정에서 생기는 실랑이와 계약 팀에 단단히 주지시키는 일 등 할 일이 너무나도 많았다.
“우리는 정산 좀 해볼까?”
그러는 동안 영민은 가람, 민호, 철우와 함께 따로 방에 모였다. 그리고 인벤토리에 쌓인 아이템들을 와르르 쏟아냈다.
게이머의 특성상 드랍되지 않고 바로 인벤토리에 들어온 아이템들을 확인하려는 것이다.
수는 많지 않았지만 영민의 행운 덕분인지 등급은 하나같이 대단했다. 가장 낮은 등급이 유니크이고, 레전드 등급도 몇 개나 되었으니 그 수준을 짐작할 수 있으리라.
“오, 전 이거 찜!”
아이템의 선택은 가장 필요한 사람, 그리고 우선 선택을 하는 순서대로였다.
물론 단순한 욕심으로 선택했다면 영민에게 커트를 당하지만 납득이 된다면 그 사람에게 우선권을 부여하는 것이다.
사실 각자의 전투 스타일에 개성이 워낙 뚜렷해서 겹치는 일은 별로 없었다.
“좋았어!”
결론적으로 영민을 제외한 모두가 장비를 교체했다.
가람도 창을 제외한 모든 방어구를 교체했고, 민호는 무려 에픽 등급의 지팡이를 얻었다. 보스의 무기였던 것으로 보이는 것이 드랍된 것이다. ‘한 방’에 죽일 수 있던 것에는 아무래도 놈이 전사 타입이 아니라는 점도 포함이 된 듯했다.
지팡이는 에픽 치고 스펙이 좀 낮은 편이었지만 기존에 사용하던 레전드 등급의 지팡이보다는 확실히 공격력이며 옵션이 좋았다.
철우는 마땅히 오래 걸칠 만한 장비를 얻지는 못했지만 한동안 두를 수 있는 내구도 높은 장비와 스킬북 [금강불괴]를 얻었다.
탱커들이라면 무슨 일이 있어도 갖고 싶어하는 스킬북 중 하나. 퍼센티지로 방어력을 상승시켜준다는 것이 무엇보다 매력적인 방어력 증가 패시브 스킬이었다.
영민도 이득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누구의 차지도 되지 않은 모든 장비가 그의 것이 되었으니까.
어느 하나 A등급 헌터에 어울리지 않는 것이 없었지만, 영민은 그것을 세상에 내놓는 대신 코인상점에 팔아치웠다.
어찌 생각하면 장물에 가깝기도 한데다 이들이 새로 얻은 장비를 강화해주는데만도 적지 않은 코인이 소모되기 때문이다.
‘그래도 얼마 안 남았다.’
마지막 장비까지 강화를 마친 영민은 남은 코인과 레벨을 확인하고 다시 한 번 의지를 다졌다. 온전한 S등급에 오르기까지는 제법 시간이 걸릴 테지만 버서크나 신성 폭발, 성역 선포를 쓰지 않고도 그에 준하는 능력을 발휘 할 수 있게 해주는 다음 단계의 능력, 고급 강화가 오픈되는 것도 이제 몇 레벨 남지 않았다.
“길드장님, 큰 일 났습니다.”
“····?”
그때, 백인엽이 영민을 찾아 헐레벌떡 뛰어 들어왔다.
뭐지? 다른 길드에서 쳐들어오기라도 했나?
“던전이, 던전이 붕괴되고 있습니다.”
“뭐라고?”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던전이 붕괴하다니? 3차 던전 쇼크가 곧바로 일어나기라도 했단 말인가?
영민조차 혼란스러워하는 사이, 조금은 진정이 되었는지 백인엽이 조금은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바꾸어 다시 말했다.
“전 세계적으로 1레벨 던전들이 무너져내리고 있습니다. 던전 쇼크 때처럼 몬스터들이 쏟아져나오고 있어요!”
영민은 그제서야 상황을 파악했다. 대부분의 던전이 붕괴되고 안에 있던 몬스터들이 튀어나오는 던전 쇼크가 아니라, 1레벨 던전에 한정되어 붕괴되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어떤 빌어먹을 놈이 벌써··.’
1레벨 던전 몬스터야 일반인도 처치 할 수 있을 정도로 위협적이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별 일 아니라 치부 할 수도 없었다.
2레벨, 3레벨 던전도 붕괴하는 것이 아닐까 걱정이 돼서? 다른 이들이라면 그렇겠지만 사정을 알고 있는 영민은 아니었다.
다만 1레벨 던전이 붕괴되며 새어나온 마나들이 지구의 마나 농도를 한층 짙게 만들 것이 우려 될 뿐이었다.
‘1레벨 던전의 붕괴는 어떤 던전이 클리어 되었을 때 일어나는 현상이었지. 하지만 벌써 공략 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닐 텐데··’
선풍환과 뷸탄의 왕관의 등장으로 인해 불이 붙은 상위 레벨 던전 공략 열풍 때문일까. 강태성의 기억 속 이맘때보다 확실히 수준이 높아진 탓인지 ‘클리어 해서는 안 될 던전’을 클리어하는 속도까지 빨라졌다.
이게 과연 득이 될지 독이 될지는 아직 알 수 없는 일이다.
“길드원들을 동원해서 최대한 빠르게 몬스터들을 정리해라. 이 사태가 마무리 될 때까지 던전 입장은 잠정 중단한다.”
“하지만····. 알겠습니다.”
재정이나 헌터들의 불만 등을 생각한 백인엽은 할말이 있는지 우물거렸지만 곧 머리를 숙이며 지시에 따랐다.
어차피 10대 길드쯤 되면 한 일년 던전 입장을 하지 않는다 해도 충분히 먹고 살만큼의 재력이 쌓여있는 법이니까. 또한 기존의 골든 크로스가 가지던 이미지가 ‘봉사’와 ‘희생’이었던 만큼 길드원들의 반발도 줄어들 터였다.
거기에 한 가지 더.
“또한 이번 사태로 인한 피해복구와 사망자들을 위한 위로금, 생계유지비 지원에도 아끼지 말도록.”
“알겠습니다.”
헛돈 쓰기로 유명한 골든 크로스에서도 지금까지 해 본 적 없을 만큼의 파격적인 지원. 이로인한 재정적 손해는 막심하겠지만 아무래도 상관 없었다. 어차피 제 돈도 아니고, 이번 7레벨 던전 공략으로 얻은 이득으로 충분히 상쇄하고도 남았으니까.
대신 이로인한 고마움과 긍정적인 감정들은 모조리 결정권자인 신임 길드장, 영민에게 쏠릴 것이었다.
‘기원’을 더욱 강화하고 효과적으로 사용하기 위한 포석.
골든 크로스가 언제 망하고 무너지든 상관은 없지만, 영민은 적어도 그때까지 뽑아먹을 수 있는 부분은 최대한 뽑아먹을 생각이었다.
< 93화 - 7레벨 던전 (3) > 끝
ⓒ 갈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