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1화 - 7레벨 던전 (1) >
길드장의 이름으로 내려진 소집 명령은 어떠한 일보다도 우선시 되었다. 던전 공략을 준비 중이던 자들은 일정을 딜레이 시켜야 했고 해외에 파견되어 있는 인원들도 아주 특수한 사항을 제외하고 모두 불러들여졌다.
일백에 이르는 A등급 헌터들이 전부 다.
누군가 안다면 전쟁을 일으키려는 것이 아닌가 의심해볼 수도 있을 만큼 어마어마한 전력이었다.
물론 그 안에서도 힘의 격차에 따라 계급이 나뉘어지기는 했지만 누구든 헌터력이 약한 나라에 간다면 손에 꼽히는 실력자로 인정 받을 수도 있을 만큼 강력한 능력의 소유자들이었다.
그렇다보니 소집에 응하기는 했어도 품은 생각들은 제각각이었다. 영민이 골든 크로스에 쳐들어오던 그때 본사에 머물던 헌터들은 순종적이었다. 그의 강대한 힘을 직접 목격했으니 감히 대항할 의지를 버린 것이다.
대외적으로는 A등급으로 알려져있지만 실제는 S등급일 것이라 추측하고 있기도 했고.
그러나 그때 외부에 있던 인물들은 전혀 달랐다. 고작 전 길드장의 유언 따위로 이 큰 길드의 수장이 결정된다는 것도 못 마땅했고 본인의 능력에 자신이 있는 만큼 조건만 맞으면 언제든 같은 A등급은 거꾸러뜨릴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는 것이다.
때문에 한 자리에 모이면서도 각기 음흉한 생각을 품은 이들이 상당히 많았고 수작을 부리려는 자들도 많았다.
문제는 그 모든 계획들이 영민이 있는 회의실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말썽을 일으킨다는 것이었다.
“억?!”
살짝 굳은 표정으로 동시에 회의장에 들어오던 이들이 서로 부딪히며 각기 비명을 내질렀다.
평소 은근히 라이벌 의식을 가지던 두 사람인데 눈앞에 좁은 문을 보자 지기 싫은 마음이 들어 동시에 입장을 하려 했던 것이다. 스스로가 품고 있는 위험요소들은 생각지도 않은 채.
“끄르르륵!”
부딪히는 순간 품었던 무기에 찔리고 감싸던 약병이 깨진 그들은 그 자리에서 거품을 물고 쓰러졌다.
‘이 것만 있으면 누구든’이라고 생각하던 무기와 독이 제 스스로의 목숨을 위협하는 것이다.
“하아, 또야?”
이제는 익숙한 듯 철우는 바닥에 널브러져 간질 환자처럼 부들거리는 두 사람을 집어들고 한 편에 휙 던져 쌓아두었다.
회복? 무기 소지를 금지시킨 회의장에 저런 물건들을 가져오는 놈들에게 그런 걸 해 줄 이유가 없다.
‘모두가 무기를 소지하지 않는 곳’에 홀로 무기와 독을 소지하고 들어서려 했던 자들의 목적이 무엇이겠나? 모두를 한 번에 잡을 수 있는 자리라는 점을 이용해 또 한 번 권력의 이동을 꿈꾸었다고 보아야 하는 것이다.
영민은 ‘스스로 살 수 있다면 목숨은 보전해주겠다’라고 천명한 뒤 철우를 시켜 그런 놈들을 자신의 곁에 인간 탑처럼 쌓아두었다.
만약 죽는 놈들이 있다면, 드레인의 반경 내에 두어 알아서 스킬이 흡수되도록 한 것이다.
혹시나 깨어난 뒤 지척의 거리에서 공격을 해오는 자가 있을 지도 모르지만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왕 첸의 덕분에 심장을 뚫려도 곧바로 죽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고, 그 정도 기척을 감지하는 것은 일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제 대충 다 모인 것 같으니 시작하지.”
허튼 마음을 품는 순간 스스로 나자빠지는 동료들을 보며 회의장 안에 남아있는 헌터들이 착잡한 표정을 지었다.
그들 중에도 다른 생각을 품은 이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수십에 달하는, 무려 A등급 헌터가 제 풀에 넘어가 사경을 헤매는 모습을 보니 영민이 무언가 수작을 부렸을 것이라 짐작하지만 아무도 그것이 단지 ‘행운’ 때문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덕분에 영민에 대한 은근한 두려움이 그들의 마음 속에 피어났다.
“모두 알다시피, 내가 새로 길드장의 자리를 맡게 되었다.”
“와아아아!!”
“······.”
가만히 자리에 앉은 채로 일을 뗀 영민의 첫 마디는 두 가지 반응을 이끌어냈다. 하나는 영민의 힘을 목격한 이들의 열렬한 환호였고, 다른 하나는 그렇지 못한 자들의 무반응이다.
애초에 말 한 마디로 이 커다란 길드를 넘겨받은 자신에게 그들이 호의적이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했던 영민이기에 그런 반응은 당연하다는 듯 넘기고 다음 말을 이었다.
“내 관심사는 오직 하나다. 던전을 공략하는 것. 그 외의 것을 원하는 인원은 빠져도 좋다.”
무덤덤한, 그러나 충격적인 발언에 장내가 다시 술렁였다.
빠지라고? 이제 무슨 의미지?
“길드를 탈퇴해도 좋다는 소리입니까?”
“물론이다. 어중간하게 쪽수만 많다고 좋은 길드인 것은 아니니까.”
누군가 총대를 메고 던진 질문에도 쿨하게 답했다.
허튼 생각으로 머리가 복잡한 놈들은 꼭 던전에서 실수를 하기 마련이다. 지금까지라면 모르지만 7레벨 이상의 고레벨 던전에서의 실수는 죽음 혹은 전멸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어중이떠중이 등급만 높다고 남겨두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그럼 계약서의 내용과 무관하게 탈퇴 할 수 있는 겁니까?”
“원한다면 위약금 따위는 없애주도록 하지.”
그 말이 결정타였다. 길드장의 교체가, 여전히 A등급인 길드장이 못마땅했던 이들 중 상당수가 그대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이렇게까지 나가라고 등을 떠미는데, 나가지 않을 이유가 무언가? 대체 새로운 길드장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었지만 그들이라면 다른 10대 길드에 가더라도 후한 대접을 받을 수 있었다.
“갈 사람은 다 간건가? 혹시 나중에 생각이 바뀐다면 얼마든지 나갈 수 있도록.”
빈 자리에 눈에 띄게 많아진 회의장을 쓱 둘러본 영민은 별 것 아니라는 듯 다시 말을 이었다.
음흉한 짓거리를 시도했던 이들까지 합쳐 절반은 사라진 듯 했기에 백인엽의 낯빛이 어두워졌다.
“나의 ‘자격’에 대해 의심을 품는 인원이 많을 것으로 안다. 지금 이곳에 있는 인원들은 그것을 확인해보고 싶어 남은 것이겠지. 그래서, 지금부터 ‘자격 시험’을 치르려 한다.”
자격시험이라고? 대체 무슨 생각인지 모를 영민의 발언에 술렁임이 일어나려는 순간, 긴장되는 뒷말이 따라 붙었다.
“이것은 나에 대한 평가의 자리이기도 하지만 그대들에 대한 시험이기도 하다.”
파앗-
화면이 전환되며 나타나는 하나의 지도.
더불어 수십 장의 위성 사진과 현장 사진이 보여주는 것은 하나의 던전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타나는 숫자는 7.
불과 며칠 전 대한민국에 등장한 7레벨 던전의 모습이었다.
“우리는 지금부터 7레벨 던전 공략에 들어간다.”
“뭣!?”
“말도 안 돼.”
“전혀 준비가··.”
다른 이들이 당황하는 모습에 영민이 슬쩍 미소를 지었다. 원래는 일대일 대련이라도 해야하나, 아니면 위력 시범이라도 보여야하나 고민을 했었지만 새롭게 등장한 7레벨 던전의 정체를 확인하고는 마음을 바꿔 먹었다.
“준비는 이미 길드에서 다 해놨으니 걱정 말도록.”
개인 장비야 각자 챙겼을 테고, 나머지 식량이나 기타 물품들은 이미 길드에서 다 마련해놓았다. 상당수가 빠져 나갈 것을 예상했지만 일단 준비 자체는 전체 인원에 맞춰놓았기에 물품이 부족할 일도 없었다.
다만 한 가지. 준비가 안된 것이 있다면 다른 이들의 마음의 준비였다.
“정말 가실겁니까?”
“승산이 있다고 보는 겁니까?”
‘공략법만 알고 있다면’이라는 전제가 붙기는 하지만, 7레벨 던전은 사실 A등급 헌터들 만으로도 공략이 가능하다. S등급 헌터가 합류하면 피해가 최소화 되고.
그러나 아직까지는 거의 최고 레벨의 던전이기에 두려움이 큰 것도 사실이었다.
공략이 가능한 것과, 피해 없이 공략이 가능한 것은 천지차이였으니까.
아직까지 6레벨 던전에서도 희생자가 다수 발생하는 시점에서, 7레벨 던전에 입장한다는 것은 그 희생자 중 하나가 내가 될 가능성이 적지 않은 위험천만한 일이었다.
“물론이다.”
영민의 자신만만한 모습이 더 불안하게 느껴지는 것도 그 때문이었다. 신중에 신중을 기해도 죽어나가기 쉬운 곳이 던전인에 이처럼 자신 있는 모습이라니? 자신감이라기보다는 오만함처럼 비치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1분 주지. 그때도 남아있는 자들은 즉시 던전으로 향한다.”
영민의 선언이 생각을 더욱 복잡하게 만들었다.
7레벨 던전이 공략 된 적은 정말 몇 번이 없었다. 국내에서도 한 손에 꼽을 정도가 고작이고, 그때마다 피해는 상당했다.
오히려 던전 공략에 성공하고서도 세가 기울어 휘청거린 곳도 있을 정도다.
하지만 반대로, 성공 했을 때 얻을 수 있는 보상과 던전 내에서 얻을 수 있는 아이템들이 대단했다. 몬스터들이 강력한 만큼 6레벨 던전에서 얻을 수 있던 상위 아이템들이 우수수 떨어지고, 그보다 훨씬 뛰어난 아이템들도 얻을 수 있었다.
어디 그 뿐인가. 상급의 소모품들도 심심치 않게 드랍되고 낮은 확률이지만, ‘비약’이나 최상위 제작 재료들이 드랍되기도 했다. 간단히 무기에 코팅만 해도 반등급은 상승하는 효과를 얻을 수 있는 미스릴이나 방패로 만들면 최고의 방어력과 마법 방어력을 얻
을 수 있는 아다만티움 광석이 드랍되는 식이다.
물론 7레벨에서 아이템 하나를 만들 만큼의 수를 얻기란 불가능에 가깝고 나중에 8레벨, 9레벨에 이르러야 어느 정도 만져 볼 수 있는 수준이긴 하지만 어쨌든 드랍 된다는 사실 그 자체 만으로도 수많은 헌터들의 가슴에 불을 당기기에는 충분했다.
성공만 한다면 단번에 도약 할 수 있다. 성공이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설치고 다닐 수만 있다면 장비의 스펙 업은 따놓은 당상이었다.
하물며 이미 반수의 동료들이 길드 탈퇴를 선언하고 나선 시점이라면 자신이 차지할 확률은 더더욱 높아졌다.
‘해보자.’
길드에 대한 애착이든, 아이템에 대한 욕심이든, 그도 아니면 정체된 성장에 대한 갈망이든.
어떤 이유에서든 강한 의지를 내보이며 대다수의 헌터들이 자리를 지켰다.
어차피 7레벨 던전이라 해도 ‘탈출석’을 이용하면 얼마든지 중도 포기가 가능했으니까.
물론 던전 진입 횟수가 초기화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상당한 패널티를 물게 되지만 그것은 길드가 짊어질 몫인 것이니 상관 없었다.
“그럼, 가지.”
이미 던전 예약은 끝이 난 상태였다. 아무도 안 남는다 하더라도 가람과 민호, 철우를 데리고 진입할 생각이었으니까.
다행히 7레벨 던전이 나타난 곳은 그들이 모인 장소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곳이었기에 도착하는 것은 금방이었다.
일백이 넘는 대인원이지만 A등급의 헌터들인 만큼 그 움직임은 신속했다.
던전 앞에 모여든 것도, 안으로 들어선 것도 그야말로 순식간.
그러나 던전 내부는 그들의 움직임보다 훨씬 긴박했다.
“으앗!!”
던전에 입장하자마자 칼침을 맞을 뻔한 헌터 하나가 다급히 힘을 끌어올려 방어했다. 그러고도 속절없이 뒤로 밀렸다.
A등급 헌터의 힘을 상중하(上中下)로 구분했을 때, 7레벨 던전 몬스터들의 실력은 하(下)나 중(中)에 해당하는 수준인 것이다. 대비 없이 선공을 내어준다면 어지간한 헌터들도 밀릴 수 밖에 없고 일대일로 겨루어도 제법 시간을 들어가는 것이 당연했다.
그런 놈들이 사방에서 몰려드니 나름 단단히 마음을 먹고 진입한 이들이라도 당황 할 수밖에 없었다.
“광역 도발!”
그때 철우가 나섰다.
스킬의 발동과 함께 퍼져나간 악의가 주변의 모든 적들을 자극했다, 몬스터의 종류는 유사인종. 정확한 종족은 파악 할 수 없지만 인간과 유사한 모습을 한 녀석들이었다.
일행 전체를 막아서려던 놈들이 불구대천지원수를 마주한 듯 오직 철우에게 꽂혀 마구 달려들었다.
“의지의 갑옷.”
하지만 이미 익숙한 지 철우는 마나를 끌어올리며 방어에 나설 뿐이었다.
그때, 뒤늦게 미션이 나타났다.
[미션 ‘폭풍 결사단의 돌파’가 부여됩니다.]
[미션을 달성하면 보상을 획득 할 수 있습니다.]
적들의 방해를 뚫고, 목적지에 도착하여 요인을 암살하는 미션이다. 아마 그 요인이 보스 몬스터쯤 되겠지.
“뭣들하나? 실력을 보여라!”
신나게 두들겨 맞으면서도 굳건히 자세를 유지한 채 버티고 있는 철우를 신기하게 쳐다보던 이들이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영민의 말처럼 이번 던전 공략은 영민을 시험하는 자리이면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해야 할 시험 무대였다.
사방에서 형형색색의 기운들이 솟구치고 각자의 개성을 드러냈다.
< 91화 - 7레벨 던전 (1) > 끝
ⓒ 갈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