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5화 - 너냐? (1) >
불행인지 다행인지 다른 10대길드는 꽤나 정신이 없는 모습이었다. 두 번째 던전 쇼크의 영향으로, 지난 번에도 난리였던 ‘몬스터 작업장’ 문제가 불거진 것.
비교적 잘 막아내기는 했어도, 급작스러웠던 만큼 적지 않은 사상자를 낸 터라, 사람들이 언제든 던전 밖으로 나올 수 있는 몬스터들에 대해 무척이나 예민해진 것이다.
이 와중에 몇몇의 헌터 팀이 던전 쇼크 중 몬스터 작업장을 보았다는 발언을 하고, 일부 몬스터 학자들이 ‘몬스터 작업장’과 ‘던전 쇼크’의 상관 관계에 대한 논문을 발표하면서 일이 커졌다.
통제 불능의 몬스터를 지구상에 풀어놓은 ‘몬스터 작업장’을 강력하게 규제해야한다는 움직임과 함께 몬스터 작업장 운영 기업과 길드에 대해 불매운동을 벌이고 나선 것이다.
헌터들의 경우 일반 시민을 대상으로 하지 않기 때문에 무시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단순히 헌팅에 있어서는 맞는 말일지 모르나, 현재 ‘대형 길드’의 카테고리에 속한 이들 중 일반 시민을 대상으로 하는 사업체 한 둘쯤 가지고 있지 않은 곳이 없었다.
또한 간혹 극렬한 반응을 보이는 이들 중에서는 그들이 판매한 일반인용(비헌터용) 대 몬스터 무기를 가지고 본사 테러를 벌이는 이들도 있어 조심하는 편이 좋았다.
출력이 좋은 물건들 중에는 난사할 경우 C등급 이하의 헌터들까지 죽일 수 있을만한 것들이 제법 있는 까닭이다.
여전히 대한민국에서 일반 총기 소지는 제한 되고 있지만 대 몬스터용 무기가 인간에게 듣지 않는 것은 아니기에 벌어지는 아이러니였다.
때문에 지난 던전 쇼크에서 뭇매를 맞은 아리랑은 아예 몬스터 작업장 사업을 잠정 중단한다는 기자회견을 재빨리 내놓았다.
이미 선풍환이라는 엄청난 무기를 얻은 그들에게 하위 던전 몬스터를 양식하는 몬스터 작업장은 계륵과 같은 존재이기 때문이기는 했지만 덕분에 제법 괜찮은 이미지를 계속해서 유지해갈 수 있게 되었다.
뒤를 이어 몇몇 길드들이 따라서 중단 선언을 하기도 했고, 몇몇은 묵묵부답. 무대응으로 대응하기도 했다. 대표적인 예는 강철대오였다. 이미 욕을 먹을 만큼 먹고 있는 그들로서는 굳이 수익사업을 포기할 이유 따위가 없는 것이다.
아니 오히려 몬스터로부터 대중을 지키는 헌터들을 공격하는 행위는 인류에 대한 테러다! 라고 주장하며 자신들을 향한 어떠한 행위들에 적극적이고 강경한 대응을 할 것이라는 입장을 내놓기도 했다.
몬스터 작업장으로 일반인들을 잠재적 위험에 노출시킨 이들이 할 말은 아니었지만 워낙에 강하고 당당하게 나오니 뒤에서 욕하는 이들만 무성해질 뿐이었다.
영민은 그 틈을 노려 새롭게 생겨난 상위 던전 공략에 나섰다. 이제 막 생겨난 신생 던전이라 던전 브레이크까지는 시간이 제법 있었고, 처리 할 수 있는 집단은 제한되어 있는 상위 던전들.
6레벨 던전만 되도 10대 길드나 그에 준하는 규모를 지닌 대형 길드가 나서야만 처리가 가능했는데 당장 그들이 처리해야 할 일들이 많아 움직이기 어려운 틈을 노린 것이다.
규모가 크고 벌려놓은 일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다독이고 수습해야 할 일도 많다는 뜻이기도 했으니까.
반면 영민은 당장 챙길 것도, 수습할 일도 없는 고작 ‘팀’ 단위의 그룹이니 누구보다 빠르게 움직일 수 있었다.
게이트 키퍼가 다시금 영민을 내세워 긍정적 이미지 제고에 나서고자 하기는 했지만 강제 할 수는 없는 협력 관계인 만큼 꼭 필요한 몇 번을 제외하고는 거절했다.
‘가속화 되고 있는 게 맞는 것 같군.’
먼저 빠르게 6레벨 던전의 정보를 수집한 영민이 상황을 파악했다. 빨라진 것은 던전 쇼크만이 아니었다. 신규 던전의 생성 속도와 수준 역시 한 단계 올라갔다.
아주 드물게 나타나던 6레벨 던전도 이번 던전 쇼크를 통해 대한민국에만 30개 이상 나타났고, 서너 개가 고작이던 7레벨 던전도 두 자리수를 코앞에 두고 있었다.
어쩌면 다음 던전 쇼크에는 단 한 번도 출현하지 않은 8레벨 던전이 나타날지도 몰랐다.
‘이미 나타났지만 아직 발견되지 않은 것일 수도 있겠고.’
어차피 지금의 7레벨 던전이 마지막까지 7레벨인 것은 아니다. 나타나는 몬스터들이 워낙 강력해지는 바람에 인류가 차후 던전 레벨을 전체적으로 한 단계씩 낮추어 부르게 되는 것이다.
던전의 레벨이라는 것은 일종의 위험레벨과도 같기 때문이다.
7레벨은 6레벨로, 1레벨은 0레벨로 변하게 되는데 어차피 지금의 1레벨 던전은 던전 브레이크가 일어나더라도 대 몬스터 무기나 총기만 있으면 일반인도 여유 있게 죽일 수 있는 수준이니 위험등급을 낮추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현재의 7레벨과 8레벨 던전은 A등급 헌터들만으로도 어떻게든 처리가 가능하고, S등급이 참여한다면 최소한의 피해로 해결이 가능한 수준. 던전이 가속화되어 8레벨 던전이 등장했다해도 아직까지는 커버가 가능했다.
진짜 문제는 A등급 헌터조차 서포터 수준으로 전락해버리는 현 9레벨 던전과 다섯 군주와 그들의 군세가 등장하는 10레벨 던전. 그리고 그 위에 군림하는 단 한 명의 절대자가 출현하는 11레벨 던전이다.
‘그 전까지 어떻게든 능력을 끌어올려야해.’
영민은 이미 강태성이 이루었던 경지를 몇 년이나 앞당겼다. 그에 따른 나비효과일까. 강력한 에픽 아이템들이 등장하면서 던전 쇼크 역시 앞당겨져 던전의 수준 역시 그에 맞게 높아져버렸다.
과연 자신은 던전의 가속화보다 빠르게 강태성이 밟았던 경지를 밟을 수 있을까?
지금까지의 속도를 생각하면 그럭저럭 여유가 있을 듯도 싶지만 혹시 모를 변수까지 따져보면 아슬아슬할 듯 했다.
다음 던전 쇼크까지 3년 뒤가 아니라 1년, 2년 뒤로 앞당겨진다면. 과연 세상은 어떻게 변할까?
‘잠깐. 그러고 보니··.’
영민은 갑자기 섬뜩한 생각이 들었다.
던전 쇼크는 앞당겨졌지만 철우의 지역을 방어해야 할 모멘텀 길드는 역시 나타나지 않았다.
몬스터 작업장에 대한 문제가 어김없이 2차 던전 쇼크에 터져나왔으며 듣자하니 10대 길드 중 하나인 제피로스가 이번 던전 쇼크와 던전 공략 실패로 궤멸에 가까운 타격을 입었다고 한다.
이 모든 것이, 시기는 달랐지만 강태성의 기억과 유사했다.
‘설마, 결과는 바뀌지 않는다라는 건 아니겠지?’
선풍환의 주인이 바뀌고, 10대 길드의 패권이 뒤바뀌기는 했지만 큰 틀에서는 비슷했다. 강철대오와 아리랑이 갖는 힘의 균형에 차이가 있을 뿐, 던전 쇼크가 앞당겨지고 ‘럭키맨’이 수많은 사람을 구해냈어도 어찌보면 고작 몇 만 명이 생을 더 연명해나간 것에 불과하지 않았다.
무언가 많이 바뀌었지만, 반대로 바뀌지 않은 것들도 많았다.
불안했다.
아무리 날뛰고 발버둥쳐도 결국 ‘미래’의 ‘결과’는 같은 것이 아닐까? 강태성의 기억을 통해 닥쳐올 참상을 먼저 확인한 영민은 순간 속을 게워낼 것 같은 매스꺼움을 느꼈다.
‘아니야. 아니야.’
이상 증상을 보이던 영민은 걱정스레 바라보는 세 사람의 눈빛이 느껴졌다.
강태성과 친구들이 목숨과, 미래와 맞바꾸어 일궈낸 계획.
비록 고스란히 이어지지는 못했지만 그들이 빚어낸 희망을 믿었다.
또한 스스로를 믿었다.
이전까지는 자책과 비관을 반복했을 뿐이지만 이제는 아니다. 그 자신을 믿어보고 싶어졌다.
“가자.”
힘껏 주먹을 쥐며 한 걸음 나아갔다.
* * * * *
6레벨 던전의 몬스터들은 확실히 강했다. 기존 5레벨 던전의 몬스터들이 튜토리얼 몬스터로 느껴질 만큼 한 마리 한 마리가 5레벨 보스 이상으로 강력했다.
그러나 일행의 상대는 아니었다. 세 사람이 호흡을 맞추며 각자의 역할을 철저히 하자 난공불락의 요새처럼 굳건하게 놈들을 버티고, 해치울 수 있었다.
철우가 때때로 의지의 갑옷을 일으키며 전면을 막아서고 민호가 상황에 맞춰 강력한 한 방을, 광역 공격을 병행해 날렸다. 놈들을 서서히 침몰시키는 지속공격은 가람의 몫이었다.
강력한 한 방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창에 마나를 일으켜 평균 공격력을 끌어올리는 평타 중심의 효율적 공격이 가람에게는 잘 맞았다.
그렇게 셋이 단단히 뭉치니 시간이 적게 걸리고 많이 걸리는 차이일 뿐 적의 숫자가 많든, 개체의 전투력이 강하든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마저도 점점 시간이 단축되고 있었다. 세 사람의 숙련도가 쭉쭉 오르고 있는 덕분이다. 영민이 큰 맘 먹고 코인을 털어 7일짜리 ‘노력가의 알약’을 세 사람에게 제공한 것이다.
급속 성장을 한 탓에 상대적으로 숙련도가 부족했던 세 사람이다. 그런 그들에게 강한 상대와 마음껏 능력을 퍼부을 수 있게 해주는 마나, 체력 포션. 숙련도를 2배로 쌓이게 해주는 노력가의 알약까지 더해지니 능력과 스킬을 빠르게 제 것으로 만들며 성장하는 것이다.
그 뒤편에서 영민은 오로지 제작 노가다에 매진했다. 어차피 경험치는 ‘균등 분배’로 들어온다. 굳이 자신이 나서지 않고 가만히 있어도 경험치가 굴러들어오는 것. 또한 같은 ‘게이머’인 민호가 있는 탓에 일부 아이템은 인벤토리로 곧장 들어왔고 코인 역시 마찬가지였다.
드랍되는 장비는 세 사람이 각자 나누어 가지고 있다가 전투가 끝난 뒤 자신에게 가져올 테니 신경 쓰지 않아도 좋았다.
잘 키워놓은 세 사람 덕분에 제대로 꿀을 빨고 있는 것.
어차피 다음 단계의 힘을 얻을 때까지 상당한 레벨 업을 해야하는 상황에서 레벨 업을 서두르기보다 가지고 있는 능력들을 제대로 써먹을 수 있도록 키우는 것을 선택한 것이다.
‘역시 6레벨은 다르군.’
그렇다고는 해도 6레벨 던전이다. 5레벨 던전 때처럼 몰살을 시키지는 못해도 경험치가 쌓이는 속도는 배 이상 빨랐다. 팀원이 한 명 늘어났음에도 그렇다.
몬스터들의 강함만큼이나 획득 경험치와 코인, 아이템의 질 또한 높아지니까. 영민은 만족스러운 표정과 함께 룰루랄라 노가다를 계속했다.
약초 채집이나 채광 같은 채집 계열 숙련도는 이미 100%를 찍었다. 연금술도 94.7%를 가리켰고 지금은 대장술을 집중 육성하고 있었다.
드랍되는 아이템들이 너무나 대단한 터라 ‘장비 제작’ 쪽으로는 큰 재미를 보기 힘든 대장술이지만 ‘수리’나 ‘다른 스킬과의 시너지’라는 점에서 놀라운 능력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됐다.”
그렇게 6레벨 던전을 몇 바퀴나 돌았을까.
영민은 대장술 숙련도를 95%까지 찍는 순간 미소를 띄우며 망치질을 멈추었다.
그리고 품에서 ‘강철 거인의 코어’를 꺼냈다.
“골렘 제작.”
명령어를 외치자 나타나는 선택지. 그 중 강철 거인을 선택하자 몸이 저절로 움직이며 뚝딱뚝딱 무언가를 만드는 시늉을 했다. 본래는 몇 개월에 걸쳐야 만들 수 있는 것이지만, 게이머의 능력이 제작 과정을 고작 10초로 단축시켰다.
“헉!”
예고 없이 나타난 기계 거인의 모습에 한창 전투를 벌이던 세 사람이 화들짝 놀랐다. 순간 진형이 흐트러지고 위태로워졌지만 철우가 간신히 광역 도발을 써서 안정을 되찾았다.
하지만 세 사람의 눈빛만큼은 계속해서 흔들리고 있었다.
강철 거인 열 기.
한 기로도 무시무시한 강철 거인이 동시에 열 기나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말이 강철이지 실제로는 장인들도 다루기 힘들다는 레트록이라는 금속으로 만들어진 녀석이다. 강한 항마력과 물리 저항력을 동시에 지닌 금속. 전격에는 약한 모습을 보이기도 하지만 그것도 ‘일정 수준’ 이상의 전격일 때의 이야기일 뿐이었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영민은 강철 거인의 사이즈에 맞춰 무기와 방어구를 제작하고 강철 거인의 코어와 함께 얻은 [켄타우르스의 영혼 창]을 합성, [세비지의 주술 부적]을 부여했다. 라뭄들이 꿈꿔오던 ‘최강의 병기’가 완성된 것이다.
라뭄은 고작 5레벨 던전에서 출현하지만, 강철 거인은 6레벨 던전 몬스터에 필적했던 것을 기억한 가람과 민호는 무척이나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
이 정도면 6레벨 던전 몬스터 중에서도 중간보스급은 된다. 일대일이라면 어떻게든 이겨볼 수도 있겠지만 자신들로서도 열 기가 동시에 덤비면 확실히 이길 수 있다고 장담하기 어려웠다.
“이 정도면 제법 쓸만하군.”
그러나 영민의 입에서 나온 말은 놀랍다 못해 황당한 것이었다. 그저 ‘쓸만한’ 수준이라 이야기하는 것이다.
최소 다섯 군주의 군세에 대항할 만한 병기를 만들어낼 생각이기 때문이다. 더 강력한 마나를 품은 재료로, 더 단단한 금속을 이용해 만들어낸다면 ‘강철 거신’에 필적할 수 있을까.
적어도 그런 놈 일 백 기는 만들어야 다섯 군주 중 하나의 군세에게 농성이라도 벌이고 시간 끌기라도 해볼만 할 것이다.
그런 사실을 알 턱이 없는 세 사람이지만 강철거인의 등장에 알 수 없는 위기감을 느끼며 강철거인들이 끼어들기 전에 전력으로 몬스터들을 해치워나갔다.
< 85화 - 너냐? (1) > 끝
ⓒ 갈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