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4화 - 철우 (3) >
“끄어어억!!”
“그만! 그만 때려요!!”
“으헝헝~.”
무기를 버렸다지만 기본적으로 여느 A등급 강화계 헌터보다 강력한 신체 능력을 갖춘 영민이기에 가해지는 충격은 무시무시했다.
맨손 공격력만 따지자면 어지간한 S등급 헌터보다도 높을지 모를 정도. 그것이 연타로 내리 꽂히자 철우가 꽥꽥 소리를 질러댔다.
6레벨 던전 몬스터들의 공격을 막는 것이 차라리 나았다. 무자비하게 내리꽂히는 영민의 주먹질에 철우는 진짜 ‘죽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느꼈다.
하지만 그럼에도, 철우는 좀처럼 의지의 갑옷을 구현해내지 못했다.
원래대로라면 오랜 시간에 걸쳐 개발해내었을 능력을, 각성한지 얼마되지 않아 단기간에 형성해내려니 쉽지 않은 것이 당연한 것인지 몰랐다.
‘이걸로도 안 되나?’
얼마 동안 더 두들겼을까. 평범한 주먹으로는 안 된다는 것을 확인한 영민은 얼마 전 얻어둔 ‘둔기’를 착용할까 하다가 생각을 고쳐먹었다.
‘주먹으로 할 수 있는 게 한 가지 더 있었지.’
아직 한 가지. 그에게 위기감을 느끼게 만들 기술이 있었다.
“힘 조절. 럭키 펀치.”
“헉!”
영민의 오른 주먹에 마나가 실리자 철우가 헛바람을 집어삼켰다. 단순히 마나량으로만 보자면 그가 이 정도로 반응할만한 것은 아니었지만 왠지 모를 공포감이 머릿 속에 경종을 울린 것이다.
이건 안 된다. 이걸 허용하면 정말 죽을 수도 있다. 무조건 피해야한다. 만약 그럴 수 없다면··.
온 몸의 털이 곤두서고 피부가 저릿하게 떨렸다. 생존에 대한 강한 의지가 그의 온 몸을 지배했다.
살아야 한다. 살고 싶다. 제발 살려줘!!!
생존 욕구가 거대한 의지를 일으켰다. 내부를 충만하게 채운 생명력이 식은 땀처럼 배출되며 그의 전신을 뒤덮었다.
아직은 어설펐지만, 그걸로 충분했다.
이후는 ‘숙련’의 문제일 뿐이니까.
“끄어어억··.”
털썩
철우는 그대로 정신을 잃고 말았다.
“‘힘 조절’을 쓰길 잘했군.”
쪼르르르
그 위로 영민이 상급 체력회복 포션을 가만히 부어주었다.
그나마 살아남은 것은 한계를 넘어선 타격을 주어도 1의 체력을 남기는 ‘힘 조절’ 스킬 덕분이다. 아직 럭키 펀치의 한계를 확인해보지 못한 영민이었기에 이 기회를 빌어 철우의 체력을 가득 채워 놓은 뒤 실험을 해보고 싶은 생각도 들었지만 그보다는 당장
철우의 각성이 먼저였다.
‘그건 나중에도 해볼 수 있는 거니까.’
철우가 들었다면 까무러칠 소리였지만 영민은 조용히 혼자서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으음··.”
철우는 기절한지 불과 10분도 되지 않아 다시 정신을 차렸다. 죽음의 문턱까지 다녀온 사람치고는 무척이나 빠른 회복력이지만 그 경이적인 생명력 회복 속도를 생각하면 이해가 될만 했다.
영민이 포션과 회복 주문을 아낌없이 퍼부어댄 탓도 있었다.
“히익!”
간신히 눈을 뜬 철우는 트라우마라도 생겼는지 영민을 보자마자 기겁을 했지만 몸에 가해지는 타격이 없자 곧 천천히 마음을 진정시킬 수 있었다.
영혼에 아로새겨진 공포만큼은 어쩔 수 없었지만, 영민은 그것대로 괜찮은 일이라 생각했다.
물론 그럴 일은 없겠지만 설사 철우가 자신을 넘어선다 하더라도 깊게 각인된 공포는 감히 그에게 반기를 들 의지를 꺾어줄 테니까.
“어때, 감이 좀 잡혔어?”
“으음. 글쎄요.”
몸과 마음을 추스른 철우가 이리저리 몸을 움직여보지만 성공한 듯 싶었던 의지의 갑옷은 어째 좀처럼 구현이 되지 않았다.
“그래? 그럼 어디 한 번 더··.”
“됐어요! 됐습니다!!”
영민은 다그치는 대신 가만히 주먹을 끌어당겼다. 그러자 마나가 모이기도 전에 의지의 갑옷을 발현하며 손을 내저었다.
“좋아. 앞으로 하루. 내일까지 의지의 갑옷을 원할 때마다 발현 할 수 있도록 연습해둬. 어렵다면··내가 도와줄 테니 걱정하지 말고.”
“아닙니다! 할 수 있어요. 꼭 하게 해주세요!”
하루라는 말에 잔뜩 찌푸려지던 철우의 얼굴이 뻣뻣하게 피며 의지를 다졌다.
그 다음은 연습, 또 연습 뿐이다.
식사하는 시간을 제외하고 오직 의지의 갑옷을 발현하는 것에만 매진한 철우는 22시간 만에 의지의 갑옷을 어느 정도 뜻대로 끌어 낼 수 있게 되었다.
‘역시 훈련은 스파르타지.’
강태성의 기억에서 어쩐지 이상한 것만 배운 것은 아닌지 의심이 되는 영민이지만 그 효과만큼은 확실했다.
“하루에 300번. 의지의 갑옷을 만드는 연습을 하도록 해. 생명의 전사는 숙련도 작업이 가장 중요하니까.”
가까스로 만들어낸 의지의 갑옷이지만 사실 그것은 아무 것도 아니었다. 굳이 따지자면 어중간한 방어구를 하나 걸친 정도? 물론 S등급 기준의 ‘어중간한’이니 다른 이들의 기준으로는 상급의 방어구로 느껴지겠지만 고작 그 정도로 ‘최강의 탱커’를 논하기에
는 무리가 있었다.
‘생명의 전사’를 최고의 자리에 올려놓은 진짜배기는 그 다음. 의지의 갑옷이 숙련도를 꽉 채워 ‘생명의 갑옷’이 되는 그 순간이었다.
‘생명의 갑옷’의 효과는 생명력에 비례한 방어력 상승. 더구나 스킬이 발동형인 ‘액티브’가 아니라 항시 지속형인 ‘패시브’로 변화한다는 것이 의미가 컸다.
모든 능력이 생명력에 집중되어 어마어마한 피통을 가지는 생명의 전사인 만큼 기하급수적인 방어력의 스펙업이 일어나는 것이다.
방어력 상승의 비율로 무척이나 높고 이 또한 맞을수록(숙련도가 증가할수록) 효율이 점점 좋아져서 나중에는 에픽 풀세트로 무장을 한 탱커보다도 높은 방어력을 자랑하던 그였다. 심지어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맨몸으로 말이다.
‘아··. 걸칠 걸 찾아봐야겠군.’
거기까지 떠올린 영민은 낯빛이 파랗게 죽으며 다급하게 움직였다. 생명의 전사가 가진 최대 단점인 ‘급격한 내구도 하락’으로 인한 참사(?)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함이다.
근육질의 알몸 탱커라니. 생각하기도 싫은 그림을 상상한 영민이 서둘러 코인 상점을 뒤졌다.
그러나 조건을 만족하는 것은, 딱 한 가지 아이템 밖에 없었다.
[초형귀의 팬티][에픽]
초형귀가 착용하던 특수한 팬티. 방어력은 형편없지만 내구력 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 방어력 : 10
- 내구도 : 19921225 / 20000000
- 내구도 자가 회복 능력
내구도 2천만이라는, 거의 무한에 가까운 수치를 제외하고는 아무 짝에도 쓸모 없는 아이템이 에픽 등급 씩이나 된다는 것이 황당했지만 다행히 에픽 치고는 가격이 저렴해 색깔별로 총 3개나 구입했다. 그리고 철우에게 선물했다.
남성성(?)이 무척이나 강조되는 투박한 디자인에 철우는 잠시 영민을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쳐다봤지만, 주먹 한 방을 맛보고 나서 깔끔히 그런 의심을 지워버렸다.
이어진 설명처럼, 전투중에 갑자기 남성을 덜렁거리는 일은 그로서도 사양하고 싶은 일이었으니까.
오히려 몇 번이나 감사의 인사를 전한 뒤 영민이 선물한 ‘광역 도발’ 스킬북과 초형귀의 팬티를 사용했다.
“이제 슬슬 던전 쇼크도 정리가 되어가는 것 같은데요?”
그 다음은 실전의 연속이었다. 광역 도발 스킬을 얻으며 확실한 탱커의 포지션을 잡은 철우는 영민을 대신해 주변의 모든 몬스터들의 공격을 홀로 감내하며 버텨냈다.
그리고 영민이 이야기한 ‘불상사’가 무엇인지 확인 할 수 있었다. 정말로 그의 방어구들이 넝마가 되어 찢겨진 것이다. 나름 레어 등급의 가죽 갑옷으로 세트를 맞춰주었는데도 그랬다.
마지막에 남는 것은 ‘초형귀의 팬티’ 하나 뿐.
결국 철우는 팬티 한 장만을 걸치고 몬스터들의 공격을 받아내야 했다. 그나마 팬티가 색깔별로 3개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면서.
덕분에 사냥 속도는 월등하게 상승했다. 영민이 탱커의 역할에서 벗어나 ‘데미지 딜러’로서의 역할에 전력을 다할 수 있는 덕이었다.
정말 중요한 순간에는, 강대한 적을 만났을 때는 영민이 메인 탱커의 역할을 맡겠지만 그 외에는 충분히 메인 탱커의 역할을 수행 할 수 있을 만큼 철우의 체력은 굳건했다.
그렇게 몇 십개의 마을, 몇 개의 도시를 더 구할 때쯤 던전 쇼크가 슬슬 마무리되어갔다.
“그래. 그런 것 같네.”
예기치 못한 타이밍에 맞은 던전 쇼크. 하지만 소기의 목적은 달성 했다. 레벨 업도 제법 했고, 아이템과 코인도 긁어모았으며 무엇보다 철우를 동료로 맞아들였다.
하지만, 뭔가 2% 부족했다.
‘슬슬 이슈가 될 때가 됐는데··.’
그 2%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영민은 계속해서 스마트폰을 힐끔거렸다.
‘그렇지.’
그러다 어느 순간, 표정이 밝게 풀리며 광대가 웃음으로 씰룩거렸다.
“형, 무슨 좋은 일 있어요?”
그 모습이 이상했던지 민호가 옆으로 와 슬쩍 쳐다보니 스마트폰의 화면이 어떤 기사에 멈춰 있었다.
“던전 쇼크의 영웅, 럭키맨. 또 다시··. 헐. 형 관종이었음? 아님 연예인병?”
퍽!
쓸데없는 소리에 뒷통수를 맞은 민호가 ‘관종 맞네 뭐··.’를 중얼거리며 사라졌다.
그 이후로도 영민은 한참이나 자신에 대한 인터넷 기사와 SNS 반응들을 모니터링했다.
이번에도 인터넷은 던전 쇼크를 통해 새롭게 떠오른 영웅들에 대한 이야기로 난리였다.
이번에는 굳이 구조까지 하지는 않았지만 지역의 몬스터들을 몽땅 쓸어버리면서 숨어있던 민간인들이 그를 확인한 것인지 독특한 가면을 쓰는 ‘럭키맨’에 대한 이야기도 상당히 많았다.
게이트 키퍼를 통해 지속적으로 이슈를 만들고, 빠르게 등급을 올리면서 이제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이름인지라 그들이 멀리서 영민을 알아보는 것은 크게 어렵지 않았다.
사실 영민이 노린 바이기도 했고.
정말 관심종자라서? 연예인병이라서? 아니다. 이름을 알리는 것은 일종의 떡밥이었다. 조건부 특수 스킬인 ‘기원’을 발동시키기 위한 장치라고나 할까.
‘그를 위한 동일한 염원’이 모아져야 한다는 조건을 보다 수월히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가능한 많은 이들에게 얼굴을 알리고 호의를 얻어두는 것이 좋았다.
‘이게 벌써··.’
[팀인가 길드인가. 팀 럭키맨, 대한민국 8번째 S등급 헌터 영입하다?!]
[S등급 한 명에 A등급 세 명. 대한민국 최정예 헌팅 팀 럭키맨. 그들은 누구인가?]
[공고하던 대한민국 10대 길드의 위치, 드디어 흔들리나?]
하지만 원하지 않던 관심들도 있었다. 철우가 팀 럭키맨에 합류한 사실이 퍼지면서 단 네 명에 불과한 그들을 10대 길드와 비교하는 이들이 생겨난 것이다.
한 명의 강자가 수십, 수백의 어설픈 헌터들을 압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게릴라 전을 펼친다면 10대 길드의 말단 정도와는 전쟁을 벌여도 승산이 있을 것 같긴 했지만 영민은 이 같은 관심이 그리 달갑지 않았다.
이런 식의 관심은, 특히 누군가와 비교를 하며 쏠리는 주목은 원치 않는 적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조심해야겠군.’
분명 이런 분위기에, 언급되는 자체에 빈정이 상한 녀석들이 있을 터였다. 불행 중 다행으로 최근 주가를 올리던 몇몇 길드들이 새로운 10대 길드 후보로 함께 이름을 올리긴 했지만 S등급 헌터를 보유한 자신들에게 좀 더 신경이 쓰이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일 테니까.
‘견제를 받기 전에 해먹을 수 있을 것들을 해먹어야지.’
때문에 영민은 놈들의 견제로 쓸데없이 귀찮아지기 전 얻을 수 있는 것들을 최대한 챙기기 위해 행동을 서둘렀다.
< 84화 - 철우 (3) > 끝
ⓒ 갈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