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0화 - 2차 던전 쇼크 (2) >
지난 던전쇼크로 부모를 잃은 민호가 겪었던 바로 그 상황이었다. 저열한 헌터들의 돈 벌이로 보호 받지 못한 부모님은 자신을 숨기고 스스로 미끼가 되어 희생했다.
그 후 민호는 헌터로 각성을 하며 어떻게든 살아남긴 했지만 아직도 가끔 그 순간을 꿈으로 꿀 만큼 강한 트라우마로 남아있는 상태였다.
놈들의 행동은 바로 이런 민호의 역린을 건드렸다.
“뭐, 뭐야?!”
다짜고짜 A등급 헌터 특유의 강렬한 마나를 내뿜으며 달려드는 민호를 보자 놈들이 당황했다. 뒤편에서 동료들의 수작질을 보며 모르는 척 의뭉을 떨고 있던 A등급 헌터 하나가 즉시 반응하며 그 앞을 가로 막았다.
“흡!”
헌터들로 타격 범위를 한정하며 약화된 마법.
그럼에도 상대는 상당한 힘을 쓰고서야 상쇄해낼 수 있었다.
“저 새끼 뭐야?!”
놈들은 빠르게 뒤로 물러서며 민호에 대응할 채비를 갖추었다. 딱 봐도 인간형 몬스터로 보이지도 않는데 왜 자신들을 공격한단 말인가?
자신들에게 무슨 억하심정이···.
“··있을 만한 놈들이 많지. 젠장. 전투 준비!”
찔리는 구석이 많은 자들이었기에 곧장 대응 할 준비를 마쳤다. 던전 쇼크와 같은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누구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 한들 누구도 신경 쓰지 않을 터였다.
“괜찮으세요?”
“누, 누구··.”
“걱정 마세요. 이 동네는 제가 지켜드릴게요.”
하지만 놈들의 예상과 달리 후속타는 없었다. 민간인 가족들을 확보한 민호는 그들을 안심시키며 안전한 곳으로 피신 시켰고 알 수 없는 정적과 긴장감이 주위를 삼켰다.
“조져!!”
그 사이 무언의 대화가 오갔던 것일까. 민간인을 보호하기 위해 민호가 잠시 등을 돌린 사이, 몇 개나 되는 능력들이 한꺼번에 쏟아졌다.
함께 있는 민간인 가족 따위는 함께 휘말려도 상관없다는 듯한 난사. 민호가 있던 자리가 터져나가며 순식간에 폭연으로 뒤덮였다.
“건방진 새끼! 여기가 어디라고··.”
승리를 확신한 놈들이 비열한 웃음으로 민호를 조롱했다. B등급 다섯에 A등급 하나가 작정하고 쏘아낸 힘이니 무사하지 못할 것이라 확신한 것이다.
그러나, 잠시 후 폭연 속에서 노기가 서린 민호의 음성이 들려왔다.
“····형, 미안해요. 나 못 참을 것 같아요.”
A등급까지 소속되어 있다면 작은 길드는 아니라는 뜻인데, 자신으로 인해 그들과 척을 지게 될 수 있어 최대한 억누른 것이다. 민호는 만약 이것으로 영민에게 피해가 간다면 책임을 지고 홀로 그들에 대적할 생각까지 했다.
“참지 마. 참으면 병 된다.
하지만 정작 영민은 별 것 아니라는 듯, 가볍게 대꾸했다.
콰앙!!
그 말이 기폭제가 되었다. 민호가 모든 힘을 개방하자 강력한 마나 폭풍이 놈들을 덮쳤다.
마법도 아니고 고작 힘을 개방한 것만으로 이 정도라니?
놈들은 그제야 뭐가 잘못 되었음을 깨달았지만 너무 늦어버렸다.
“니들이 사람의 도리를 져버렸으니 사람으로 대우 받을 생각은 하지 마라. 이 개자식들아!!”
그렇게, 민호의 폭주가 시작되었다.
“막아! 막으라고. 새끼들아!!”
“내가 빠질 동안, 아니 지원이 올 때까지 버티란 말이다!!”
그 결과는 엄청났다. A등급에 오르고, 비약을 최대치까지 사용한데다 최상급의 장비에 강화까지 모조리 +7로 맞춘 민호다. 상대 쪽에서 A등급의 헌터가 끼어있다지만 상대가 되질 않았다.
발작처럼 날려대는 능력이 간혹 위협적으로 다가오기도 했지만 가람과 호흡을 맞추며 어깨 넘어로 배운 ‘간격 파악’과 ‘공간 왜곡’으로 전혀 데미지를 받지 않고 놈들을 몰아붙였다.
이건 싸움의 수준이 아니었다. 일방적인 폭력과 그에 대한 최소한의 저항이었다. 공격이나 반격은커녕 당장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서는 눈앞이 공격부터 막고 봐야했다.
일대다의 전투이건만 시간이 지날수록 곤혹스러워하는 것은 다수인 상대들 쪽이었다.
“헌터인 주제에, 그깟 돈 몇 푼으로 사람의 목숨을 사고 팔아?! 너희 같은 놈들 때문에, 너희 같은 놈들 때문에!!!”
그마저도 오래가지는 못했다. 분노에 찬 민호의 일격 일격이 쏟아질 때마다 꼭 한 사람 이상이 죽거나 전투불능에 가까운 타격을 입었다.
초고열의 불꽃은 장비까지 녹여버렸고 신벌 같은 번개는 내장까지 태워버렸으며 혹한의 빙결은 호흡마저 얼려버렸다.
이미 B등급 이하는 휘말리는 것만으로 목숨을 빼앗길 마법들이 연속해서 펼쳐지자 놈들이 무너지는 것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나마 여력이라도 남아 바닥을 기어 도망치려하는 것은 A등급의 헌터 뿐. 그마저도 이미 눈에 공포가 각인되어 전의를 상실한지 오래였다.
여전히 노기가 사라지지 않은 민호를 피해 슬금슬금 도망치다 벽을 등지게 된 녀석은 마지막으로 자신이 할 수 있는 마지막 제안을 던졌다.
“자, 잠깐! 우리가 잘 못 했어. 잘못 했다고! 돈도 다 돌려주고 이 근처의 몬스터는 한 놈도 빠짐없이 해치울게. 우리가 없으면 그 많은 몬스터들을 피해 없이 처리할 수가··!!”
제안이자 협박에 다름없었다.
시간을 두고 처리할 수는 있겠지만 수백에 달하는 몬스터를 단 몇 명으로, 민간인의 피해 없이 해치운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니까.
민간인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그의 말처럼 ‘협력’하는 것이 최선인 것은 분명했다.
“다 처리했습니다. 대장.”
물론 그것도 다 ‘일반적인’ 이야기일 뿐이다.
어느새 사라졌던 가람이 피를 흠뻑 뒤집어 쓴 모습으로 영민의 곁에 다시 나타났다.
딱 한 방울.
영민에게 넘겨받은 다크니스 오러를 사용해 주변의 몬스터를 끌어 모은 가람이 놈들을 몽땅 도륙한 뒤 돌아온 것이다.
이제 적어도 이 동네에는 몬스터가 남아있지 않았다.
“그렇다는데?”
영민의 빈정거림에 상대도 상황을 퍼뜩 파악했다. 믿기는 힘들지만, 저 피가 몬스터들의 피라는 것쯤은 알아차릴 수 있는 것이다. 당장 민호의 강함만을 보아도 허세는 아닌 듯 했다.
“보, 복수. 복수할 거다. 나를 그냥 놔주지 않는다면 우리 길드에서 복수를··컥!”
이번에는 진짜 협박이었다. 길드에서 복수를 해줄 것이라는.
그러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놈의 복부를 걷어찬 영민은 하얗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한 번 찍은 먹잇감은 절대 놓지 않는다지?”
“큭. 그걸 안다면··끄억!”
아직도 악에 받쳐 소리치는 놈에게 영민은 다시 한 번 발길질 한 뒤, 놈의 갑옷 한편에 그려진 문양을 발로 짓뭉갰다.
“그런 거라면 환영이야. 나도 그 쪽에 풀어야 될 게 좀 있거든.”
붉은 눈의 사냥개 문양.
놈의 길드 이름은 영민도 인연이 있는 크레이지 독이었다.
“이봐. 무슨 일··.”
“왠 놈들이냐!”
그때, 또 다른 인물들이 나타났다. 놈들과 한 패인지 다치고 죽은 놈들을 알아보는 모습. 자세히보니 크레이지 독의 문양도 가지고 있었다.
아무래도 자신들이 상대하던 몬스터들까지 몽땅 가람에게 달려간 탓에 이상함을 느끼고 돌아온 모양이다.
‘A등급이 다섯? 많이 컸네··.’
슬쩍 기감을 열어보니 A등급의 헌터도 다섯이나 더 있었다. 얼마나 더 보유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미 박살난 녀석까지 더하면 무려 여섯 이상의 A등급 헌터를 보유한 셈이니 중견 이상에 해당하는 큰 규모의 길드였다. A등급의 수가 열을 넘어가면 대형
길드로 분류하니 말이다.
‘악역이라 별 것 없다고 생각 했는데 말이야.’
대놓고 ‘악당’ 같은 느낌의 길드라서 무시했는데 세가 제법 되는 모양이다.
하긴, 강철대오 같은 놈들도 10대 길드씩이나 해 쳐먹고 있는데 이 정도면 양호한 건가?
“감히 우리 애들을 건드렸단 말이지!”
영민이 혼자 피식거리는 사이, 놈들은 잔뜩 화가 난 모습으로 힘을 개방했다. A등급만 다섯에 B등급이 수십. 몬스터들을 정리하기 위해 나갔던 전투조들인 만큼 기세가 상당했지만 마찬가지로 화가 난 민호와 가람, 영민이 그 정도에 위축될 일은 없었다.
아니, 오히려 전의를 불태웠다.
“흠. 민호야. 시간 없다.”
막무가내로 위협하고 다가오는 듯 싶으면서도 각자의 역할에 맞춘 포지션을 잡는 놈들을 보며 영민이 민호에게 툭 말을 던졌다. 민호의 표정이 움찔 굳는다. 이미 제법 많은 마나를 사용한 상태에서 A등급 헌터 다섯이 포함된 길드와 부딪힌다? 스스로도 은근
한 부담을 느끼고 있었는데 영민이 그를 말리는 듯한 말을 던진 것이다.
그러나 민호는 적어도 이번 만큼은 무슨 일이 있어도 물러날 생각이 없었다.
“제가 벌인 일이니 제가··.”
“아니. 민호 동생. 그런 짓을 하는 걸 봤는데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한 아이의 아빠로서 가만히 있을 수는 없지.”
그러자 가람이 민호와 어깨를 나란이 하며 거들고 나섰다.
자신이 약했다면, 자신이 돈 벌이에 집중하느라 아내와 딸을 그냥 두었다면. 어쩌면 자신의 가족에게도 비슷한 상황이 벌어졌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가람의 속 역시 활활 타오르고 있던 것이다.
영민의 지시가 있었기에 주변 몬스터를 정리하고 온 것이지, 아니었다면 민호 대신 그가 뛰쳐나가 놈들을 도륙했을 터였다.
그것도 아주 잔인하게.
“다들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 거야? 시간 없으니까 후딱 정리해버리자고. 던전 쇼크는 이제 시작됐고 아직 잡아야 할 몹들이 많아.”
무슨 잠꼬대를 하냐는 듯 심드렁하게 대꾸하며 놈들에게 걸어나가는 영민의 모습에 두 사람의 표정이 활짝 피었다.
둘이었다면 쉽지 않다. 어쩌면 위험한 순간을 맞이했을 지도 모르지. 세상에는 강자도, 특별한 고유 능력을 지닌 헌터도 많으니까.
하지만 영민이 함께라면, 걱정을 하는 자신이 우스워졌다.
“미친개는 몽둥이가 약이라지?”
화아악-
영민이 힘을 개방하자 놈들의 안색이 파랗게 질렸다. 서, 설마 S등급? 한순간 착각을 할 만큼 강대한 힘의 파동에 몸을 움찔거렸다.
“밟아주마.”
“죽여!!”
덤벼드는 세 사람과 달리 크레이지 독의 A등급 헌터들은 몸을 뒤로 뺐다. ‘탐색전’이라는 명목 하에 B등급 헌터들이 먼저 그들을 맞이했다.
“둔화의 술! 천지혼란의 술!”
“트리플 애로우!”
“불의 비!”
시작은 원거리 공격부터였다. 셋의 걸음을 늦추고 접근하기 전 최대한 타격을 입히기 위해 온갖 디버프와 주문 공격들이 쏟아졌다.
“등급만 높으면 단 줄 알았지? 새끼들아!”
B등급이라고는 하나 그 수만 오십이 넘는다. 고유 능력들을 교차하고 중첩해서 발현하니 그 자체로 무시 못할 공격이 되었다. 때문인지 놈들도 기고만장해 소리쳤지만 아마 영민에게만 들려온 다음 알림을 들었다면 거품을 물고 뒤로 나자빠졌을 것이다.
[둔화의 술에 저항했습니다.]
[천지혼란의 술에 저항했습니다.]
[패럴라이즈 필드에 저항했습니다.]
모두 소용 없는 짓이다. 일정 확률로 디버프에 저항하는 능력을 보유한 영민에게 통하는 것은 단 하나도 없었고 원거리 공격들 또한 민호가 던진 얼음의 구체가 뿜어낸 빙결의 힘에 모조리 잡아먹히고 말았다. 그렇게 다른 힘들을 집어삼킨 얼음 구체는 공중에
서 터져나가 놈들의 몸을 찢어놓았다.
능력의 다양성이 통하는 것도 일정한 조건이 갖추어졌을 때이지, 지금처럼 정면 승부로는 백번을 싸워도 마찬가지였다.
“소환! 킬러비, 방차른, 본 나이트!”
“야수화!”
“거대화!”
영민이 순식간에 포화를 뚫고 놈들의 앞까지 당도하자 강화계열과 강림 계열의 헌터들이 나섰다. 신체를 강화하거나 강력한 존재를 스스로에게 강림시키는 자들. 특히 강림 계열의 경우 본인의 등급보다 상위의 힘을 쓰기도 해 주의할 필요가 있었다.
“럭키 펀치!”
“꺽!”
물론 이 또한 어마어마한 힘의 차이 앞에서는 보잘 것 없었다. 야수화든 거대화든 강림이든. 영민의 일격을 버텨내지 못하고 나뒹굴었다. 뼈가 부러지고 신체가 함몰되었다.
다른 계열의 능력자들에게는 버틸 수 있겠지만 영민이 가진 능력의 기본은 강화계와 유사했다. 같은 계열에게는 허무할 만큼 연약한 ‘몸 쓰는’ 놈들은 시간조차 제대로 끌기 어려웠다.
“액체화!”
영민이 가볍게 선두를 분쇄하는 동안 한 녀석이 몸을 액체로 변화시켜 접근했다. 그리고 틈을 노려 영민의 전신을 감싸고 조였다.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생존 조건인 ‘숨’을 틀어막아 제 힘을 내지 못하게 만드는 더러운 수법.
하지만 영민은 가만히 숨을 참고 손을 들어올려 우악스럽게 놈을 떼어냈다.
“체인 라이트닝.”
자신을 중심으로 전격을 분사해 주변의 놈들까지 모조리 구워버렸다.
거기다 ‘액체화’가 된 녀석에게는 전격 데미지가 무려 6배! 단 번에 액체화가 풀리고 간질 환자처럼 부들거렸다.
“작전은 다 짜셨나?”
이미 B등급 이하의 헌터들은 전의를 상실한 상태. 남은 것은 A등급의 헌터 다섯 뿐이었다.
“끄으으으··.”
차라리 영민에게 걸린 자들은 다행이었다. 민호와 가람은 정말이지 사정 없이 손을 썼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수라와 나찰이 되어 몬스터보다 잔인하게 놈들을 죽였다.
덕분에 마나를 꽤나 사용했지만 아무래도 상관 없다. 영민이 만든 최상급 마나 포션은 얼마든지 있으니까.
영민의 뒤로 마나를 회복한 민호와 가람이 다가와 서자 일촉즉발의 대치가 시작되었다.
< 80화 - 2차 던전 쇼크 (2) > 끝
ⓒ 갈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