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5화 - 신벌의 대지 (3) [3권 끝] >
“가볼까?”
천둥의 구슬을 만지작거리며, 영민이 은신을 유지 한 채 던전 안으로 슬쩍 들어갔다.
예약이나 요청, 승인 따위의 절차는 없었다. 그런 짓을 해봤자 승인이 떨어지기도 어려울뿐더러 괜한 의심의 소지만 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어차피 들어오는 사람은 없겠지.”
바로 이 던전에 도전하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미션 ‘신벌의 대지 돌파’가 부여됩니다.]
[미션을 달성하면 보상으로 ‘뇌신의 인장’을 획득 할 수 있습니다.]
이유는 간단하다. 클리어가 불가능한 미션이니까. 이름부터 거창한 ‘뇌신의 인장’을 획득하기 위해 수많은 헌터들이 도전을 했으나 ‘신벌의 대지’로 들어가기 위한 ‘문’조차 열지 못했다.
그저 던전 안에 진입한 뒤 스타팅 지점인 건물 안을 기웃거리다가 몬스터 몇 마리를 해치우고 탈출석을 얻어 나오는 것이 고작이었다.
대체 신벌의 대지가 무엇인지. 어떻게 생겨먹은 곳인지조차 확인한 이가 단 한 명도 없었다.
그게 벌써 꽤 된 이야기이다.
미션 진행은커녕 몬스터도 몇 마리 없고 채집도 불가능한 지역이니 찾는 이가 점점 줄어들고 종국에는 아예 찾는 이가 없는 지경인 것이다.
‘물론 문을 연다고 뭐가 달라지는 건 아니지만 말이야.’
때문에 영민은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빠르게 건물 내부를 정리해갈 수 있었다.
5레벨 몬스터 너댓이 막아섰지만 동시에 협공을 하는 것도 아니고 한 마리씩 나타났기에 상대하는 것이 어렵지는 않았다. 순식간에 도륙해버리고 목적지인 1층에 도달하자 막혀있는 거대한 문과 마주 할 수 있었다.
영민은 그 크고 단단한 문의 한쪽을 만지작거리더니 곧 작은 홈을 찾아냈다. ‘열쇠’인 천둥의 구슬이 들어갈 자리였다.
주저없이 그곳에 천둥의 구슬을 꽂아 넣자 덜컹거리며 기계장치가 작동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다시 잠잠해졌다.
‘슬슬 시간이 된 것 같은데··.’
쿠르르릉-!
잠시 후, 굉음과 함께 천둥의 구슬에 노오란 광채가 모여들었다. 한 번, 두 번, 세 번, 네 번. 정확히 열 번이나 동일한 소리가 나고 빛이 강해지면서 변화가 일어났다.
끼리릭 끼릭
쿠구구궁
아무리 강력한 힘을 가해도 꿈쩍 않던 벽인지 문인지 모를 한쪽 면이 열리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영민은 그 까닭을 알고 있었다. 바로 천둥의 구슬이 ‘바깥’의 힘을 흡수해서 기계 장치인 문에 전력을 공급한 것이다.
이렇게 열려진 문은 미션이 클리어 되지 않는 이상 영민이 나가고 난 뒤에도 닫히지 않을 터였다.
‘만약 이 소식이 알려지면 또 다시 사람들이 몰려들겠지.’
그리고 수많은 희생자를 낼 테고.
열려진 문 너머로 빗줄기처럼 내리치는 벼락들을 보며 영민이 씁쓸하게 미소 지었다.
강태성의 기억 속에서 무수히 많은 희생자를 냈던 것이 바로 이 던전인 것이다. 무작위로 떨어지는 벼락들을 피해 육안으로 보이지도 않는 어딘가에 도착해야하는 이 무모한 도전에 자신있게 도전하고 통구이, 전기구이가 된 이들이 어디 한 둘 이든가.
나중에 알려진 사실이지만 이 신벌의 대지를 안정적으로 통과하기 위해서는 또 다른 현상금 던전 두 개를 클리어하고 보상 아이템을 조합해야했다.
물론 꼭 그래야만 가능한 것은 아니고 반대로 조합된 아이템을 가졌다한들 100% 성공하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후우. 시작해볼까.”
때문에 영민도 굳이 나머지 현상금 던전을 찾으려고 노력하지 않았다. 강태성의 기억에도 그 아이템들의 위치나 종류에 대해서는 정보가 없을뿐더러 어떻게든 될 것 같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영민은 저 벼락 속으로 뛰어들기 전 자신의 상태를 점검했다.
스킬 OK, 아이템 OK. 연계 타이밍 시뮬레이션 OK.
다시 한 번 심호흡을 통해 마음을 가다듬고 신벌의 대지로 몸을 날렸다.
“혼령질주!”
처음은 혼령질주였다. 이 벼락 하나하나에 마법적 기운이 스며있는 까닭에 유령마인 상태로는 한 방에 역소환을 당할 테니 ‘모든 데미지 무효화’ 능력을 지닌 혼령질주로 최대한 거리를 확보한 것이다.
쿠르르릉-
파츠츠츳
“장난 아닌데?”
혼령질주의 지속시간이 끝나는 순간 바로 옆을 때리는 벼락을 보며 영민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아무리 자신이라도 두 방 이상은 못 버틴다. 날고 긴다하는 탱커들도 자신있게 나섰다가 통구이가 된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하나하나가 8써클 마법 이상의 위력인데 그것이 소나기처럼 내리친다.
어설프게 ‘전기’니까 ‘고무’로 상쇄한답시고 나섰던 이들이 허접한 방어력 때문에 죽어나가거나 고무와 함께 녹아버린 것이 이해가 되었다.
“으랴!!”
혼령질주가 끝나고 나서도 영민은 그저 앞만 보고 계속해서 내달렸다. 천운이 따라서일까. 그가 지나간 자리마다 벼락이 내리꽂혔지만 간발의 차로 그에게 피해를 주지는 못했다.
“소환! 아이언 골렘!”
잠깐의 질주 후에는 또 다른 수가 펼쳐졌다. 인벤토리 가득 채워 온 골렘의 핵과 재료가 되는 철괴들이 차례로 튀어나온 것이다.
아이언 골렘. 가만히 있어도 절로 벼락을 불러 모으는 극상성의 소환체가 몸을 채 일으키지도 못하고 나타나는 족족 빠르게 무너져 내렸다.
단 몇 초에 불과한 시간 벌기. 피뢰침 같은 역할을 하며 영민에게 떨어질 벼락까지 모조리 불러모은 아이언 골렘의 역할은 그게 전부였다.
“소환! 소환! 소환!”
아이언 골렘을 일으키기 위한 재료값이 적지 않았지만 한 방 잘못 맞으면 골로 가게 생긴 마당에 그 까짓 돈 쯤이야.
타이밍에 맞춰 한 기씩의 아이언 골렘들이 일어나려다가, 무너져 내렸다. 골렘의 체력이 대단하니 어지간한 위력이라면 두어번은 버틸 텐데, 8써클 급의 벼락이 다발로 엮여서 떨어지니 내부의 핵이 홀랑 타버린 것이다.
그러는 사이 영민은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전진해나갔다.
‘뭐가 이렇게 멀어?!’
하지만 마냥 편안한 것만은 아니다. 타이밍이 일 초만 늦어도 벼락을 맞을 수 있으니 잔뜩 긴장을 했고, 인벤토리에 쌓아둔 골렘의 핵이 줄어갈 때마다 발걸음도 천근만근 무거워졌다.
‘누가 이기나 해보자!’
그러나 이미 기호지세. 돌아갈 수도 없다. 억지로 뚫어내던지, 벼락에 맞아 죽던지. 둘 중 하나만이 있을 뿐이다.
“으라라라라라랏!!!”
영민이 정체모를 괴상한 소리를 내지르며 가속에 가속을 더했다.
그리고 마침내, 골렘의 핵이 모조리 소모됐다.
쿠르르릉-
“크읏!”
우웅!
그와 동시에 영민을 향해 벼락 한 줄기가 내리꽂혔다. 피하기는커녕 반응조차 할 수 없는 속도. 입술을 질끈 깨물며 낙마를 할 준비를 했다.
퍼엉!
벼락의 강력한 위력에 유령마가 강제로 역소환을 당했다. 다행히 대비를 한 덕에 바닥을 구르지는 않았지만 잠시 주춤거리게 된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다만 영민이 입은 피해는 전무했다.
단 한 차례에 한해 모든 종류의 공격을 무효화 시켜주는 ‘신성한 가호’ 스킬의 덕분이다.
이제는 그 마저도 사라졌으니 남은 카드는 단 두 장.
이 빌어먹을 대지의 끝은 아직도 보이지 않았다.
“공간 왜곡!”
눈으로 쫓으면 늦는다. 때문에 영민은 아예 민호에게서 빌려온 공간 왜곡의 망토가 가진 특수 능력을 쿨타임마다 연발했다.
공간 왜곡으로 방어를 하면 좋고, 발동과 발동 사이에 벼락을 맞으면 그 또한 자신의 운이니 어쩔 수 없다는 각오였다.
하지만 영민이 누군가. 행운 Max의 사나이가 아닌가?
영민의 생각과 각오를 읽기라도 한 듯, 벼락들은 공간 왜곡이 사용될 때마다 떨어졌고 10번의 사용 횟수를 모두 쓸 때까지 안전을 보장 받을 수 있었다.
‘드디어!’
그리고 마지막 공간 왜곡을 사용 했을 때, 저 멀리 벼락이 내리지 않는 대지를 발견 할 수 있었다.
영민은 즉시 마지막 패를 꺼냈다.
“버서크!”
바로 버서크! 능력치 상승으로 인한 이동속도가 대폭 향상되며 순식간에 목적지까지의 거리를 좁혔다.
쿠르르릉-
처음에는 잘 피했다. 아니 운 좋게도 벼락들이 알아서 피해갔다. 하지만 언제까지 그 행운이 이어지지는 않았다.
불과 10m 가량을 남기고 정수리에 정확히 벼락이 내리꽂힌 것이다.
부르르르
폭주기관차처럼 달려나가던 영민의 몸이 우뚝 섰다. 전신 세포에 찌릿한 전류가 관통했다.
내장이 모조리 타버리지 않은 것이 이상할 정도의 무시무시한 위력이다.
쿠릉 쿠르릉
어디 그 뿐인가. 멈춰있는 영민에게 몇 번이나, 아니 수십 번이나 벼락이 더 내리꽂혔다.
행운 Max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벼락은 집요하게 영민을 때려댔다.
끝인가? 이렇게 허무하게?
그 순간 영민의 몸이 유령처럼 움직였다.
빠르지는 않았다. 전신의 힘을 겨우겨우 쥐어짜낸다는 느낌으로 천천히, 아주 천천히 나아갔다. 고작 10m의 거리를 이동하는데 3분 이상 걸렸으니 정상은 아닌 것이 분명했다.
사용시간이 끝나기 전까지는 한계 이상의 데미지를 입어도 죽지 않는 버서크의 부가능력 덕분이었다.
‘빠져··나온 건가?’
정신이 몽롱한 상태에서 영민은 제3자를 바라보듯 자신을 관조했다. 어떻게든 신벌의 대지는 돌파해냈다. 하지만 이대로라면 버서크를 푸는 순간 반드시 죽게 될 것이다.
기대 할 수 있는 것은 버서크를 해제하고 난 뒤의 리바운드가 오기 전 10초의 시간. 그 안에 몸 상태를 일정 수준까지 회복해낸다면 목숨을 부지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 상태에서 체력을 10% 이상으로 끌어올린다는 것은 자신 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한 번도 아니고 수십 번이나 벼락을 맞은데다 체력 스텟도 높아 최상급 포션을 마신다한들 통구이가 된 몸이 급속도로 회복될 것 같지는 않았다.
방법이 없는 건가?
아니다. 딱 한 가지 남았다.
연금술 숙련도를 90%까지 올리자마자 도전해서 겨우 3개만을 건진 궁극의 포션. 엘릭서.
레시피가 숨겨져 있을 뿐 아니라 숙련도 90%, 100%가 되도 제작 성공 확률이 20%를 넘지 않는 통에 열 다섯 뿌리의 만드라고라를 사용해서 영민조차 고작 3병을 건졌을 뿐인 그 것이 유일한 활로였다.
강태성의 기억 때문인지 이 상황에서도 침착을 되찾은 영민이 부들거리는 손으로 엘릭서 한 병을 꺼냈다. 스킬 해제와 동시에 간신히 입으로 흘려 넣었다.
“후아, 죽을 뻔 했네.”
10초까지도 필요가 없었다. 3초에 걸쳐 조그만 엘릭서 한 병을 모두 마시자 체력과 마나가 가득 차오른 것은 물론 벼락에 구워져 엉망진창이 되었던 몸이 환골탈태라도 한 것처럼 깨끗이 변했다.
오히려 그 전보다 전신에 활력이 넘쳤다.
괜히 궁극의 포션이라는 별명이 붙은 게 아니다.
“그때 만드라고라를 얻은 게 신의 한 수 였어.”
만약 던전 쇼크 이후 만드라고라를 캐두지 않았다면, 연금술을 90%까지 올려두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만 해도 아찔했다.
물론 또 한 가지의 보험이 있기는 했다. 1회에 한해 죽은 자를 소생시킨다는 부활의 아이템. 그러나 경험해보지는 못했던 것이라 아무래도 이것을 믿고 일을 벌이기는 어려웠다.
“여분의 생명이라는 말이 딱이네.”
비록 지금은 비약이 인기를 얻고 있지만 엘릭서가 나타난다면 어떨까? 지금 영민이 경험한 것처럼 여분의 목숨이 될 수 있는 물건인 만큼 어마어마한 가치를 지닐 것이다. 수백억이 아니라 수천억, 조단위의 가격을 불러도 거래가 성사되기 쉽지 않겠지. 죽으
면 돈이고 뭐고 다 소용 없는 것이니 말이다.
그렇게 엘릭서의 위력에 감탄을 하며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을 때, 영민의 내부에서는 또 다른 변화가 일어났다.
[라이트닝 마스터리 숙련도가 100%가 되셨습니다.]
[라이트닝 레지스트 숙련도가 100%가 되셨습니다.]
[타이틀 ‘뇌신의 후예’를 얻으셨습니다.]
“엥?”
벼락에 맞으면서 전기인간이라도 된 것일까? 50%도 채우지 못했던 라이트닝 마스터리와 라이트닝 레지스트의 숙련도가 단번에 100%로 차올랐다.
속성 관련 숙련도를 올리기 위해서는 해당 속성의 스킬을 난사하고, 또 스스로 해당 속성의 공격을 수도 없이 받아내야 하기에 영민조차 제대로 노가다를 할 엄두조차 내지 못하던 스킬들이 단 번에 마스터 단계에 오른 것이다.
“미쳤네.”
속성 마스터리가 올라가면 공격력이 증폭되고 레지스트가 올라가면 받는 데미지가 현격히 줄어든다.
당장 그 증폭률과 감소율을 확인할 방법은 없지만 나중에 스스로를 ‘일렉트로닉 마스터’라고 칭하던 녀석이 고작 숙련도 80% 수준에 불과했던 것을 생각하면 어마어마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고유 능력이 평범했음에도 녀석이 발휘하던 위력은 참 대단했었지.
생각지 못한 기연이 씨익 미소를 지으며 영민은 더 앞으로 나아갔다.
신벌의 대지. 그 끝에 있는 것은 하나의 신전이었다. 번개의 신 제우스라도 모시는 걸까? 살짝 긴장을 하며 안으로 들어서자 제단 위에 덩그러니 놓인 노란 구슬 하나가 그를 반겼다.
“이건가?”
강태성의 기억에서 봤던 뇌신의 인장과는 생긴 게 좀 다른데.
살짝 이상하다는 생각을 했지만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일단은 부딪혀보는 수밖에.
영민이 손을 올려 구슬을 집자 구슬에서 무시무시한 전격이 뿜어져나왔다.
‘아으으으. 간지러.’
그러나 이미 라이트닝 레지스트를 100%까지 올린 영민에게는 별다른 타격으로 다가오지 못했다.
그러기를 1분 여.
한참이나 전격을 내뿜던 구슬이 쩌적하고 갈라졌다.
‘빙고!’
그리고 강태성의 기억에서 보았던 뇌신의 인장이 나타났다.
[타이틀 ‘뇌신의 후예’를 확인했습니다.]
[‘뇌신의 인장’에 걸린 봉인이 해제 됩니다.]
"이건 또 뭐야?!"
뇌신의 인장이 또 한 번 변화를 시도했다.
< 75화 - 신벌의 대지 (3) [3권 끝]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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