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2화 - 현상금 미션 (3) >
“이게 뭡니까?”
“좋은 거니까 마셔.”
이미 지칠 정도의 아이템 제작 노가다로 더 설명할 기운이 없는 영민이 손 사례를 치자 민호는 꺼림직한지 두 손가락으로 슬쩍 포션을 집더니 포션들을 하나씩 확인했다.
[힘의 비약][소모]
힘을 3~5만큼 영구적으로 상승시켜주는 비약. 최대 5개까지 중복 효과를 볼 수 있다.
“헉!”
이런 것이 종류별로 열 개씩이다. 가람과 나눈다 해도 복용 한계치인 5개를 꽉 채울 수 있었다. 물론 영민이 그렇게 맞춰서 내어준 것이었지만 두 사람은 얼떨떨한 기분을 지울 수 없었다.
각 능력치가 최소 15씩, 최대로는 25씩이나 상승 할 수 있다고? 게이머 능력이 아니라 상태창을 직접 볼 수 없는 가람은 정확한 의미를 몰랐지만 민호만큼은 그 의미를 정확히 알고 있었다.
“헉. 정말 그런 겁니까?”
그리고 가람에게 대신 전달을 해줬다. 가람 스스로는 자신의 상태창을 열어 볼 수 없지만 그들과 파티를 맺은 민호와 영민은 그의 상태창을 열어 볼 수 있는 것이다.
민호는 영민을 대신해 현재 가람의 능력치와 이 비약들이 올려 줄 수 있는 능력치를 하나씩 설명해주었다.
그러나 여기에는 민호도 모르는 한 가지 비밀이 숨어 있었다. 바로 ‘제작 시 랜덤’ 수치다. 비약 종류의 경우, 총 2번의 랜덤이 작용하는데 제작 할 때 한 번, 복용 할 때 한 번 각각 작용했다. 복용 시에만 랜덤이 작용하는 것 뿐 아니라 원래 제작 시에도 1~5의
능력치 상승폭을 랜덤하게 정하도록 되어 있는 것이다.
여기에도 영민의 행운이 작용했다. 덕분에 만들어진 비약은 모두 3~5의 스텟을 올려주는 최상급의 옵션을 달고 나왔고 그들은 영민과 파티를 맺은 상태에서 비약들을 연거푸 들이켰다.
“아싸! 대박!”
영민의 행운이 전염된 것일까? 3이라는 수치는 아예 나오지도 않았다. 비약마다 4 또는 5의 스텟이 상승하며 그들의 능력을 한 순간에 증폭시켰다.
“자, 이것도 받아둬.”
“오오, 이건 또 뭐에요?”
[최상급 마력의 포션][소모]
일시적으로 마력을 10% 상승시키는 포션
뭐긴, 버프용 포션이지.
연금술 숙련도가 90%를 찍으면서 제작이 가능해진 최상급 포션들이었다. 체력과 마나 회복 포션은 말할 것도 없고, 도핑용 포션도 잔뜩 만들어둔 상태다.
무려 퍼센트 증폭률을 가진 포션들. 하수들에게는 차라리 고정적으로 스텟을 일시 증가시켜주는 중급이나 상급 도핑 포션이 나을 수 있지만 상위 헌터로 갈수록 퍼센트가 붙은 장비나 포션의 가치는 어마어마하게 증가했다.
이 역시 ‘제작 시 랜덤’의 단서가 붙는 것들. 그러나 이번에도 7~10%의 우수한 품질들만 쏟아졌다.
물론 능력이 뛰어난 만큼 제작에 필요한 원재료 값도 만만치가 않았다. 하지만 그 딴 거 알 게 뭔가? 돈이라면 넘쳐났고, 당장 공급을 독점 할 수 있는 이상 영구 스텟 상승 포션 하나에 수십 수백억을 받아먹어도 사겠다는 사람이 줄을 설 텐데.
그렇게 포션으로 두 사람을 강화시킨 영민은 이번엔 게이트 키퍼가 제공한 던전이 아닌, 물색해둔 헌터협회의 다른 던전으로 향했다.
[미션 ‘고대 던전의 비밀’이 부여됩니다.]
[미션을 달성하면 보상으로 ‘지도 : 신벌의 대지’를 획득 할 수 있습니다.]
“어, 형. 이거··?”
던전에 진입하자 미션 알림이 평소와 조금 다르게 나타났다.
미션 성공에 따른 보상이 시작부터 정해져 있는 것.
대게 이렇게 보상이 정해져서 나오는 경우는 미션이 아주 어렵거나 난해해서 오버 스펙을 가지고도 클리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대신 그만큼 보상 자체가 특별해서 ‘보상 아이템’에 현상금이 걸리는 경우도 많았다.
그래서 붙은 별명이 ‘현상금 미션’, ‘현상금 던전’이다.
헌터협회에서 현상금을 걸기도 하고, 해당 아이템이 필요한 누군가가 직접 현상금을 걸기도 하는데 현상금을 받지 않고 해결한 사람이 직접 소유 할 수도 있어 대체제가 없다면 배짱을 부려 가격을 더 올려 받을 수도 있었다.
물론 영민에게는 돈이 그다지 필요하지 않았지만.
“이거, 5레벨이었어요?!”
그러나 민호가 놀란 것은 다른 이유에서였다. 현상금 미션이 나타나는 것은 5레벨 던전부터였기 때문이다.
아무리 4레벨 던전을 그들 한 명 한 명이 솔로 플레이로 클리어 할 수 있는 경지에 이르렀다지만 마음의 준비도 없이 5레벨 던전이라니? 당혹스럽기 짝이 없다.
원래는 그들 셋만이면, B레벨이 포함된 팀 3개 정도로는 입장조차 거부 당했겠지만 중간에서 영민이 손을 쓴 덕분에 문제 없었다. 게이트 키퍼에게 이름만 빌린 것이다.
당장 던전에 입장 할 계획이 없는 B등급 헌터 다수의 명의만을 빌려 던전 출입 허가가 나게끔 던전 예약을 했다. 그 과정에서 게이트 키퍼가 안전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를 내기는 했지만 영민은 단호히 그들의 도움과 간섭을 거부했다.
정말로 도움이나 걱정 따위는 필요가 없었으니까.
여러 가지 능력의 도움을 받는다면 스스로를 A등급 헌터의 수준까지 끌어올릴 수 있게 된 영민은 두 사람의 불안 따위는 무시하고 앞장서 나갔다.
‘여기가 이때부터 있었군.’
현상금 던전의 또 다른 특징은 ‘횟수 제한’이 없다는 것이었다. 굳이 따지자면 단 한 번. 미션이 클리어되는 순간까지라고 할 수 있었다. 만약 미션을 클리어하지 못한다면 몇 번이고 반복해서 진입 할 수 있는 것이다. 심지어 던전 쇼크 때도 현상금 미션들만큼
은 멀쩡했다.
재진입 때마다 던전이 초기화되는 것을 노리고 ‘작업’을 하려는 이들도 있었지만 안타깝게도 ‘재도전 시간’이라는 것이 있어 동일한 인원이 재진입을 하는 것에는 제한이 있었다.
여러모로 특이하고 특별한 현상금 던전.
마지막까지 그 비밀을 완벽히 푼 사람은 없었지만 강태성과 최후의 인원들은 한 가지를 의심했다.
‘이곳의 보상들이 다섯 군주를 해치울 열쇠가 될 거야.’
현상금 미션의 보상들이 최후를 대비 할 핵심적인 열쇠가 된다는 것이다. 증거라고는 영민이 게이트 키퍼의 창고에서 이미 취한 ‘드래곤 슬레이어’가, 정확히는 봉인된 드래곤 슬레이어가 현상금 미션의 보상으로 나온다는 것 뿐이지만 ‘완성되지 않은 조각
들’을 살폈을 때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문제는 어떤 게 진짜냐라는 건데··.’
다만 모든 현상금 미션의 보상이 ‘완성품’은 아니라는 것이다. 드래곤 슬레이어의 경우 다른 무기의 형태로 봉인된 채 나타났는데, 어떤 현상금 미션에서는 이 봉인을 해제하는 방법에 대한 정보를 단편적으로 주었고, 또 다른 현상금 미션에서는 봉인 해제를
위한 재료 아이템을 주기도 했다. 물론 아무런 정보나 맥락 없이 보면 쓰레기 아이템 또는 그 자체로 쓸만한 아이템처럼 보인다는 것이 문제였지만.
‘일단은 모아 보는 수밖에 없나?’
때문에 강태성의 기억 조차도 정확히 어떤 미션들을 클리어하고 보상을 연계해서 사용해야하는 지에 대해 일부의 정보만 가지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니 어쩔 수 있나. 일단 부딪혀 보고, 닥치는 대로 모아보는 수밖에.
‘그래도 지도면 양반이군.’
그런 의미에서 이번 던전의 보상인 ‘지도’는 꽤 쓸만한 것이었다. 지도의 끝에 무엇이 있을지는 모르지만 보통은 ‘중요한 물건’인 경우가 대부분이니까.
“자, 시작한다.”
생각을 정리한 영민은 두 사람에게 경고 아닌 경고를 하고 던전의 한 편에 있는 장식용 고리를 잡아당겼다.
[그대여, 강해질 준비가 되었는가?]
[그대여, 강함을 증명할 준비가 되었는가?]
[시련을 통과하여 그대의 자격을 증명하라.]
쿠구구궁
그러자 어디서 나오는 지 모를 목소리와 함께 기관이 작동하는 듯한 굉음이 던전 전체를 뒤흔들었다.
[첫 번째 시련이 시작됩니다.]
[현재 층에 존재하는 모든 적대적 대상을 제한 시간 내에 처치하십시오.]
“헉.”
“이거 설마····.”
어디선가 본 듯한 제한시간에 두 사람의 몸이 움찔 떨렸다.
“뭐해? 준비해!”
제한 시간은 두 시간.
카운트 다운은 이미 시작 됐다.
“뭐, 뭘요?”
“어떻게 하면 되는 겁니까?”
영문 모를 상황에 당황해하는 두 사람에게 영민이 씨익 웃으며 검은색 포션 한 병을 들어보였다.
보기만 해도 물들어버릴 것 같은 칠흑 같은 어둠.
그 어둠의 정체는 바로 ‘다크니스 오러’였다.
마시는 것만으로 반경 몇 킬로미터 내에 존재하는 모든 몬스터들의 적의를 이끌어내는 최고 최악의 어그로 물약. 원래대로라면 일일이 놈들을 찾아다녀야겠지만 연금술을 통해 수고를 덜려는 생각이었다.
문제는 조절이 안 된다는 것이지만··.
“까딱하면 죽을 수도 있으니까 잘 막아. 한 번 뚫리면 바로 포위 당한다.”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원샷을 해버렸다.
파츠츠츠츠츳-
영민을 중심으로 검은 오러가 뱀처럼 휘감았다. 그리고 수백, 수천 마리의 새끼 뱀 같은 기운들이 쭉쭉 뻗어나가 자취를 감추었다.
고오오오오-
기묘한 울림과 함께 저릿하고 섬뜩한 기운이 피부를 자극했다. 금방 귀신이라도 튀어나올 것만 같은 기분.
“끼에에에에엑-!”
그 기분은 곧 현실이 되어 그들을 들이닥쳤다.
“자리 잡아! 얼른!”
비명과 발구름 소리가 한데 어우러지며 몬스터들이 떼를 지어 몰려왔다. 종족, 영역 따위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러기엔 영민을 향한 분노가 너무 크게 자리잡았다.
정신의 한 구석을 자극하는 검은 기운에 사로잡혀 광전사처럼 달려들었다.
“빨리 적응해야 할 거야. 그렇지 않으면 나도 책임 못 질 것 같으니까.”
무시무시하게 달려드는 놈들을 보고 있자니 영민도 속이 찔끔거렸다.
그러나 어쩌랴. 이미 벌인 일이고 니가 죽은 내가 죽든 하나만 남았을 뿐인데.
영민이 선두에서 탱킹을 하고 그 뒤로 한가람이 바짝 붙어 삐져나오는 놈들을 빠르게 찔러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민호가 후방 지원 및 큰 거 한 방씩을 날려 적진 한 가운데에 구멍을 내놓았다.
5레벨 던전 몬스터는 처음 상대해보는 세 사람이지만 영민이 워낙 단단하게 틀어막고 탱킹을 해주었기에 빠르게 적응 할 수 있었다.
그렇게 쉬지 않고 싸우기를 한 시간 여.
[첫 번째 시련을 통과했습니다.]
“으갸갸갸갸갸!”
“해, 해낸 건가?”
던전 안에 남은 것은 순식간에 늙어버린 듯한 세 사람과 무수히 많은 몬스터들의 시체들 뿐이었다.
“흐흐흐흐!”
정신적으로 지친 것은 마찬가지였지만 금방이라도 뻗어버릴 듯한 두 사람과 달리 영민 만은 힘이 넘쳤다. 이번 전투로 인해 또 한 번의 진화를 이룬 것.
바로 ‘드레인’ 스킬이다.
소모값이 적지 않은 탓에 이득을 보는 것은 아주 약간에 불과했지만 없는 것보다는 낫다는 생각에 발동을 시켜놓은 것인데 상대가 고레벨의 몬스터인 까닭인지 가파른 성장을 보인 것이다.
무려 숙련도 70%.
20%의 상승을 보인 라이프 드레인과 마나 드레인은 이제야 제대로 ‘스킬’이라 할 수 있을 정도의 능력을 발휘했지만 ‘지속 효과’와 ‘대량의 몬스터’라는 조건이 갖춰지며 영민의 체력과 마나를 일정 수준으로 유지시켜 주기에는 충분했다.
그래서일까. 영민은 지체하지 않고 다음 단계로 넘어갔다.
길을 찾고 계단을 내려가는 대신 장치를 조작하자 마법진이 그들을 이끌었다.
[두 번째 시련이 시작됩니다.]
[당신을 방해하는 모든 적을 피해 제한 시간 내에 다음 시련으로 도착하십시오.]
도착한 곳은 그들이 있던 곳과 전혀 다른 곳이었다.
대형 경기장보다도 큰 돔 형태의 공간에서 그들에게 주어진 안전지대는 고작해야 직경 3m 뿐이었다. 그리고 나머지 공간에는··.
“··형, 우리 그냥 탈출석 쓰면 안되요?”
두 눈 가득 살기를 번뜩이는 몬스터들이 가득 차 있었다.
이미 흘러가고 있는 카운트 다운. 안전지대에서 그들이 몸을 빼내는 즉시 덮치겠다는 듯, 그들의 움직임 하나하나에 반응하며 수천 개의 눈알이 돌아갔다.
“걱정마. 이번에는 쉽게 갈 거니까.”
이번에 꺼낸 것은 ‘순백’이라는 단어가 어울리는 두 병의 포션. 다크니스 오러와 상반되는 능력을 지닌 ‘홀리 오러’라는 포션이었다.
능력은 말 그대로 다크니스 오러의 반대.
“몬스터가 물러난다?!”
한 병으로 다크니스 오러를 중화시키고, 두 병째로 홀리 오러의 능력을 제대로 받아들이자 몬스터들의 눈빛이 변했다.
빛에 닿으면 먼지로 변해 사라지는 뱀파이어들처럼 서로의 몸을 밀착시키며 영민을 피하기 위해 몸부림을 쳤다.
그렇게, 세 사람은 아주 천천히. 똑바로 걸어 다음 시련에 도착했다.
< 72화 - 현상금 미션 (3) > 끝
ⓒ 갈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