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1화 - 현상금 미션 (2) >
영민의 요구는 아주 심플했다. 게이트 키퍼가 확보 했고 확보 할 수 있는 모든 던전에 대한 우선 출입 권한과 아이템 창고의 개방이다. 아이템 창고 개방의 경우 영민과 민호, 가람이 각각 원하는 아이템 하나씩을 가질 수 있는 것으로 협의했지만 아쉽지는 않았다. 제 아무리 10대 길드의 아이템 창고라 한들 이미 거의 모든 아이템을 레전드 등급으로 무장한 영민을 만족시키기는 어려웠으니까.
혹시나 해서 들어가보는 것 뿐이고, 여차하면 민호와 가람의 선택 권한까지 사용해서 차지해 버리면 그만이다.
‘정 안 되면 몰래 들어가 훔쳐와도 되고.’
정말 꼭 필요한 것이라면 거래를 하거나, 몰래 잠입해서 빼내 올 생각도 있었다.
“가볼까?”
한가람이 이사를 끝마치고 가족과 함께 서울로 올라왔을 때, 영민은 축하선물을 겸해 그를 이끌고 게이트 키퍼의 아이템 창고로 들어갔다.
“저, 정말 아무거나 가져도 되는 겁니까?”
“그래요. 그러니까 사양 말고 좋은 걸로, 이왕이면 레전드 등급으로 골라봐요. 창은 등급 높은 장비 구하기도 어려울 텐데. 아, 뭔지 모르겠으면 민호한테 감정해달라고 부탁하시고요.”
민호야 한 번 영민이 장비를 맞춰준 적이 있어서 덜했지만 평생 고급 아이템과는 담을 쌓고 살아온 한가람은 그야말로 눈이 돌아갔다. 영민이나 민호처럼 ‘아이템 창’ 등의 감정 능력은 없었지만 혹시나 대단한 무기를 구할 수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잔뜩 들뜬 것이다.
뭐, 그가 당장 사용하는 창이 허접하기 짝이 없는 매직 등급의 무기라는 것을 고려할 때 아무거나 골라잡아도 지금보다는 훨씬 강력할 테지만 말이다.
“오, 민호도 감정이 가능한가?”
“그 정도는 껌이죠. 맡겨주세요. 형 무기는 제가 책임지고 골라 드릴게요.”
그 들뜬 마음에 민호도 적극적으로 나섰다. 가족들을 모두 잃은 민호이다보니 가족을 위해 모든 것을 바쳐 일하던 가람의 과거에 크게 반응하며 급격히 친해진 것이다. 형 동생이라기 보다는 삼촌과 조카 같은 모습이었지만 일단은 사회(?)에서 만난 것이다보니 나이를 초월해 형 동생을 하기로 한 둘이다.
“시간 제한은 없으니 천천히 둘러보십시오.”
게이트 키퍼의 문지기는 아주 친절하게 그들을 창고 안으로 인도한 뒤 밖에서 문을 닫았다. 편하게 둘러보라는 의미였다. 어차피 창고 안에 있는 것은 굴러다니는 돌멩이 하나까지 모두 세어둔 상태일 테니 몰래 슬쩍 몇 개쯤 더 가지고 나가는 것을 염려하지도 않았다.
“그럼 우리도 시작합시다.”
“예~!”
세 사람의 아이템 감정은 무려 다섯 시간이 넘게 계속됐다. 어떤 것이 의외로 대단한 물건일지 모르니 일일이 짚어가며 감정한 것이다.
그 결과, 일단 한가람이 선택한 것은 무기였다. 그것도 무려 레전드 등급의 창, ‘빙룡의 일격’이다. 사용자의 조작에 따라 단창이 되기도, 장창이 되기도 하는 빙결 속성의 무기. 상대와의 거리와 속도를 계산해 서서히 무너뜨리는 한가람의 창술과 아주 잘 맞는 무기였다. 그냥 싸워도 속이 터질 정도로 아슬아슬하게 피해낼텐데 계속해서 자신은 느려지니 미치고 팔짝 뛰겠지.
아무래도 게이트 키퍼에서 나중에 창을 사용하는 헌터를 영입하면 쥐어주려고 가지고 있던 모양이었지만 이제는 한가람의 소유가 되었다.
‘생각보다 후한데?’
그런 물건이 창고을 창고에 둔 채로 그들을 맞이했다는 것이 꽤나 놀랍기도 했다. 아니, 그 밖에도 레전드 등급의 장비는 몇 개나 더 발견된 것이다.
당장 강철대오만 하더라도 등급만 레전드일 뿐인 허접한 쓰레기 몇 개를 제외하고는 상위 아이템들을 모조리 치운 상태에서 영민을 맞이했었는데.
뷸탄의 왕관이라는 에픽 등급의 장비를 얻어서인지, 더 뽑아먹을 것이 있다고 생각해서인지 인심이 후하다는 느낌이다.
‘그렇다면 사양 않고.’
그 다음 민호가 택한 것은 공간 왜곡의 망토. 하루에 10회까지 착용자 주변의 공간을 왜곡시켜 모든 공격을 무효화시켜주는 최고의 생존계열 장비였다. 아예 위급할 때는 이 망토를 착용한 자가 순간적으로 탱커를 대신할 정도였으니 그 효과는 말해봐야 입이 아플 정도다.
마지막으로 영민이 고른 것은 다소 볼품 없는 검 한 자루였다. 제법 튼튼하고 예리하지만 당장 영민이 가진 [불꽃 혼령의 저주 장검]에도 한참이나 미치지 못하는 [고대의 신성을 담은 저주받은 바이킹 소드]. 이름과 달리 딱히 신성의 힘을 가지지도, 저주를 받지도 않았지만 괜시리 찜찜한 이름 때문에 아무도 사용하고 있지 않은 물건이었다. 쓸데없이 착용 제한이 높기도 했고.
‘이게 여기 있었네.’
물론 그것은 아직까지 아무도 그 진가를 알아보지 못해서이기 때문이었다.
조건을 갖추고 봉인을 풀 수만 있다면 전혀 다른 세계의 무기로 탈바꿈하게 된다.
강태성이 활동할 당시에도 전 세계에 다섯 자루가 고작이었던 무기. 다른 이름으로 ‘용살검’ 또는 ‘드래곤 슬레이어’라 불리던 물건이었다.
강태성이 다섯 군주 중 하나인 용제를 죽일 때 사용했던 무기이기도 했다.
기본 공격력 자체도 뛰어났지만 용족을 상대할 때 특별히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용족 전용 무기랄까. 용제를 상대하려면 필수적으로 갖추어야 할 무기 중 하나를 여기서 발견한 것이다.
‘봉인을 풀려면 시간이 걸리겠지만, 어차피 나도 시간은 필요하니까.’
각자 원하는 장비를 모두 고른 세 사람은 바깥에 대기하고 있던 문지기에게 확인을 마치고 게이트 키퍼의 아이템 창고를 나섰다.
“형, 우리 어디가서 테스트라도 해봐야하는거 아니에요?”
“흠흠, 저는 아무래도 상관없습니다만··. 나중에 강한 몬스터를 상대할 때를 대비해서 무기의 정확한 성능을 파악할 필요는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창고를 나서자마자 신상 장비에 신이 난 민호와 ‘은인’ 또는 ‘사장님’이라 부르며 영민이 편하게 대하라고 아무리 이야기를 해도 깍듯이 대하는 가람이 좀이 쑤신 모습을 보였다.
영민이야 당장 봉인을 해제할 것이 아니니 테스트 해 볼 것도 없지만 그들은 당장 실험해보고 싶어서 온몸이 근질거릴 지경인 것이다.
“물론 해야지. 하지만 두 사람 다 각오를 해야 할 거야. 원래 그런 건 빡쎄게 해야 의미가 있는 거거든.”
씨익
그때까지만 해도 두 사람은 알지 못했다. 그들이 원하기 이전부터 두 사람의 지옥훈련은 계획되어 있었다는 것을.
그렇게 ‘훈련’을 빙자한 ‘굴리기’가 시작되었다.
* * * * *
“으아아아, 죽겠다.”
“어후, 너는 움직일 수나 있지. 형은 몸살, 아니 근육이 파열된 것 같다. 손가락 하나 까딱할 기운도 없어.”
두 사람이 영민에게서 풀려 난(?) 것은 훈련이 시작된 지 꼬박 석 달이 지난 뒤였다. 졸지에 다시 기러기 아빠 신세가 된 가람이지만 던전을 옮기는 사이 잠시 아이와 아내의 얼굴을 보고 오는 정도만이 허용 될 뿐, 다른 편의나 배려는 일절 없었다.
훈련 방법은 간단했다. 먼저 각자 새롭게 얻은 장비에 익숙해지는 것이 시작이었다. 그래서 가람에게는 ‘한 대도 맞지 않고 4레벨 던전 솔로 클리어’ 미션이, 민호에게는 ‘반격하지 않고 4레벨 던전 보스 몬스터에게 10대 버티기’가 미션으로 주어졌다. 한가람이 몬스터를 모조리 정리해놓으면 민호가 보스에게 달려들어 공간 왜곡으로 버텨내는 구조였다. 상대적으로 민호 쪽이 더 쉬워보이지만 공간 왜곡의 쿨타임 동안은 알아서 피해야했기 때문에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거기에 한 가지 더. 실패 시 ‘처음부터 다시’라는 조건이 주어졌다. 더불어 연대책임까지. 두 사람 모두 단 한 차례의 실수도 용납되지 않아야 했는데 둘 중 한 사람만 실패해도 두 사람 모두 처음부터 다시 도전을 해야했다.
누가 들었다면 미친 짓이라 소리쳤겠지만 과연 천재 중의 천재들답게 딱 5번만에 성공했다.
그러나 거기서 끝날 거면 ‘굴린다’는 표현이 아까웠다. 그들의 극적인 성공을 영민은 한 마디로 일축했다.
“이제 좀 익숙해졌나보네. 그럼 본격적으로 시작해볼까?”
그 다음은 ‘타임어택’이었다. 동일한 조건을 유지한 채 일정 시간 내에 던전을 클리어 할 것. 게다가 성공을 할 때마다 제한시간은 점점 줄어들었다. 그리고 종국에는 두 사람이 힙을 합치는 것을 조건으로 제한 시간을 극단적으로 줄여버렸다..
물론 말도 안 되는 일이라며, 이건 미친 짓이라며 반기를 들어보기도 했다. 그러나 영민이 손수 나서서 둘이 힘을 합친 것보다 압도적으로 이른 시간에 던전을 노히트 클리어 해버리니 더 이상 이의를 제기할 수 없었다.
여기서 ‘우리는 할 수 없다,’고 말하는 순간, 자신들이 영민에게 쓸모 없는 존재라는 것을 인정하게 되는 꼴이었으니까.
대신 반복에 반복을 거듭한 결과 영민이 솔로 클리어 한 시간을 아슬아슬하게 앞지르며 던전을 클리어해내고 말았다.
하지만 그들은 알까. 그 시간조차 영민이 느긋하게 상대한 결과라는 것을.
“두 사람 모두 수고했어요. 이틀 간 푹 쉬고 다음 단계로 넘어갑시다.”
“에엑?!”
“다음··단계입니까?”
간신히 뻗어 숨을 고르는 그들에게 이틀 간의 꿀맛 같은 휴식과 ‘다음 단계’라는 청천벽력 같은 말이 동시에 주어졌다.
하지만 어쩌랴. 까라면 까야지.
울어야 할지 웃어야 할지 모르는 표정을 한 두 사람은 단 이틀만이라도 푹 쉬기 위해 거의 기다시피 숙소로 흩어졌다.
그리고 그 동안, 영민은 홀로 제작 노가다에 열중했다. 두 사람이 훈련을 거치는 동안 따로 모은 약초가 제법 되었던 것이다.
그 동안 꾸준히 노가다를 해온 덕분에 이제 슬슬 약초 채집 숙련도는 100%를 가리켰고, 연금술 역시 경지를 바라보고 있었다.
[연금술 채집 숙련도 90%를 달성하셨습니다. 신규 레시피가 오픈 됩니다.]
“흐흐, 드디어!”
모아놓은 약초들을 거의 다 소진했을 때, 연금술의 숙련도가 마침내 90%를 달성했다.
100%는 아니지만 연금술 숙련도 90%는 아주 큰 의미를 지니는 것이었다. 연금술의 꽃이라 할 수 있는 특수 포션의 제작이 바로 이때부터 가능해지는 것. 일반적으로 ‘물약 자판기’ 취급을 받으며 천대받던 연금술사를 그 누구도 무시 할 수 없게 되는 시점이기도 했다.
‘생산직’ 일반 스킬인 연금술은 헌터라면 누구나 익힐 수 있는 능력이지만 숙련도 90%는커녕 70%, 50%까지 올리는 것도 요원한 일이었지만 말이다.
10대 길드에서 지원을 받는 메인 연금술사들도 고작해야 70~80%의 숙련도가 고작인 것을 생각해보면 이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 수 있으리라.
그들 중에서 숙련도 90%를 찍은 연금술사가 나오는 것은 앞으로도 몇 년은 더 지나야 했다. 그런 엄청난 일을 영민이 운빨로 달성한 것이다.
물론 쉴 틈 없는 노가다가 병행된 일이기는 했지만 그것이 가지는 의미는 무척이나 컸다.
“이거라면 시장 독점도 가능하지.”
연금술 90%에 제작 할 수 있는 기상천외한 포션들. 그것을 독점 할 수 있다는 것은 단기간이지만 시장을 독점 할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영민은 즉시 제작에 들어갈 포션의 리스트를 만들고, 그에 사용될 연금술 재료들을 무제한으로 구입하기 시작했다. 경매든 마켓이든 어디든. 가격을 조금 높이더라도 무조건 사들이는 탓에 채집꾼들이 신났다. 어찌나 대단한 기세로 매입을 하는지 당장 들어올 현금에 혹한 일부 길드들에서도 가지고 있던 약초들을 풀어 현금을 챙길 정도였다.
곧 땅을 치고 후회하게 될 테지만 말이다.
수백억을 아예 예치시켜놓고 구매 대행을 통해 지속적으로 특정 약초들을 구입하도록 요청해놓은 영민은 일단 당장 들어온 약초들을 이용해 그들이 사용할 포션들을 만들었다.
그리고 다시 만나는 날, 민호와 가람에게 내놓았다.
< 71화 - 현상금 미션 (2) > 끝
ⓒ 갈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