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행운 MAX-68화 (68/177)

< 68화 - 또 다른 천재 (1) >

한가람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는 따로 수소문 할 필요가 없었다. 이미 강태성의 기억 속에 그 위치가 있었으니까.

다만 준비는 약간 필요했다.

영민은 증거를 남기지 않기 위해 코인 상점에서 필요한 물품들을 구입하고, 즉시 이동을 시작했다.

그가 있는 곳은 전라남도 신안. 예전에는 천일염과 관광으로 먹고 살았지만, 어떤 사건이 터지고 난 뒤 찾는 이가 사라져 섬이 통째로 팔려버린 상태였다.

그곳 뿐 아니라 주변의 섬들의 경우 통제와 감시가 쉬워서 몬스터 작업에 많이 이용되고 있었다. 꼭 던전 브레이크가 있는 장소에서 작업장을 해야한다는 법은 없었으니까.

충분한 힘이 있는 이들인 만큼 납치에 가까운 몬스터의 강제 이주도 가능했다.

‘그러니까 사고가 나지.’

그렇다보니 부작용도 적지는 않았다. 자칫 수중호흡이 가능한 몬스터가 나타나거나, 섬의 인원이 몰살을 당했는데도 대응이 늦는 경우가 나타나곤 했었으니까.

그리고 뭍으로 흘러들어간 몬스터들은 이번과 같은 소동을 만들어내곤 했다. 심할 경우 소동으로 끝나지 않고 마을 하나의 전멸 수준까지도 가곤 했지만.

‘경계가 제법 강화되긴 했을 텐데··.’

조기에 잘 마무리 되기는 했지만 청주에서의 탈출 사건이 있었으니 모든 몬스터 작업장에 보다 강한 경계 명령이 내려졌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몬스터들의 탈출’에 대한 경계일 뿐이다. ‘밖에서의 침입’에 대한 부분은 상대적으로 취약 할 터.

사실 항구만 잘 살피면 누가 들어오고 나가는지가 한 눈에 보이는 섬이다 보니 외부에서의 침입에 대해서는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는 편이기도 했다.

어차피 이미 잠입에 특화된 몇 가지 능력들을 갖춘 영민에게는 모두 의미 없는 것들이지만 말이다.

‘드디어 도착인가?’

이미 사유지로 변해버린 섬이었기에 영민은 보급을 위해 운행하는 배에 숨어드는 대신 유령마를 이용했다. 실체가 없는 ‘유령’마이기 때문에 지면 뿐 아니라 ‘수면’ 위까지 달릴 수 있는 덕분이다.

이래저래 유용한 탈 것이지만 영민은 슬슬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슬슬 바꿀 때가 되기는 했는데··.’

한 단계 윗 등급의 탈 것으로 교체를 고려하는 것이다. 유령마의 장점을 모두 가지고 있으면서도 스스로 B등급 헌터를 압도 할 만큼 강력하고, 써먹기 좋은 스킬까지 보유하고 있는 탈 것. 더구나 조건부이기는 해도 ‘성장’까지 가능한 녀석이라 슬슬 구입

해서 키워두는 것이 좋았다.

‘잘만 키우면 A등급도 찜쪄먹는 녀석이니까··.’

문제는 역시 비싸다는 것이지만.

‘수준은 B등급 이하. 숫자는··꽤 많군.’

쩝하고 입맛을 다신 영민은 일단 눈 앞의 상황에 집중했다. 마나를 읽어보니 대략의 수준들은 나왔다. 어느 하나 영민을 막아내기는 어려운 수준. 그도 그럴 것이, 단순히 ‘사육’과 ‘도축’만을 하는 곳이라 굳이 A등급 이상의 고급 인력이 필요치는 않은 것

이다.

이 정도면 낙승.

하지만 문제는 단순히 작업장을 무너뜨리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는 것이다.

‘어?’

일단은 동태부터 살폈다. 은신을 유지한 채 돌아다니며 건물의 구조와 경비의 위치, 동선 따위를 파악했다.

그런데, 더 안쪽을 들여다보는 순간 영민은 이상함을 느꼈다.

‘저게 왜 여기 있어?’

사육되고 있는 몬스터가 예상의 범주를 벗어난 것이다.

현 시점에서 ‘사육’ 되고 있어야 할 가장 높은 수준의 몬스터는 3레벨 던전. 그러나 지금 눈앞에 있는 녀석들은 명백한 4레벨 던전 몬스터였다.

‘또 미래가 바뀐 건가?’

한가람에게 들었던 것도 3레벨 던전 몬스터의 사육이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미래가 바뀌었다고 밖에 생각 할 수 없다.

뭐지? 대체 무엇이 영향을 준 거지?

나비효과라는 말이 있듯, 미래를 변화시키는 것이 단 한 가지 요인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혼란스러운 마음을 쉽게 진정시킬 수 없었다.

“오늘은 세 마리만 하자고!”

“어이, 들었지?”

“네.”

그때 작업을 시작하려는지 내부에서 작은 움직임이 일어났다.

그러나 움직이는 것은 단 한 사람 뿐.

주섬주섬 무기를 집어들고 움직이는 사내를 보자 영민은 확신할 수 있었다.

‘저 녀석이 한가람이군.’

일단 창이라는 무기부터가 그렇다. 아무리 헌터들 중에 특이한 무기를 들고 다니는 자가 많고, 성능 좋은 아이템의 습득에 따라 주무기를 바꾸는 자들이 많다고는 해도 창을 다루는 자가 많은 것은 아니었다.

무기 중 그나마 기초 병기술 습득이 쉽다는 말에 초보 헌터 중에는 사용하는 자가 제법 있지만 어느 정도 실력을 갖추는 B등급 이후부터는 급격히 사용자를 찾아보기 어려워지는 것이다.

아무리 봐도 들고 있는 무기의 등급이 높아보이지는 않으니 아마도 그가 한가람이겠지.

몬스터들을 가두어 둔 케이지로 성큼성큼 다가간 사내는 아주 미세한 움직임으로 거리를 두고 섰다.

휘익

그 순간 케이지 안에서 뻗어나온 손길이 그를 움켜쥐려 했지만 고작 몇 cm 차이로 닿지 않았다. 아무리 끙끙거려봐도 그 뿐. 오히려 사내의 응징만을 받을 뿐이었다.

푸욱!

사내의 창술은 간결했다. 쓸데없는 힘도 실리지 않았고 의미없는 복잡한 변화도 보이지 않았다.

나와 상대의 거리. 나의 길이와 상대의 길이가 보이니 그저 힘을 주어 찔러 넣을 뿐이었다.

누군가에게는 단순해보이는 동작이겠지만 누군가에게는 소름끼치도록 정확한 계산.

영민도 그 깔끔한 일격에 잠시 말을 잊었다.

‘저 녀석을 설득 시킬 방법은 역시 돈인가?’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는 어떻게 해서든 그를 손에 넣어야겠다는 생각만이 머릿속을 지배했다.

한가람이 스스로 이야기 했던 과거를 떠올리니 해법은 간단했다. 바로 돈. B등급 헌터 씩이나 되는 그가 지금 이런 작업장에서 구르고 있는 이유는 단 하나, ‘돈’이었다.

사기를 당하고 빚더미에 앉은 바람에 상대적으로 많은 돈을 주는 이곳에 쳐박혀 재능을 썩히고 있는 것이다.

그의 천재성이 발휘되는 ‘간격’에 대해서는 그저 전투 센스 정도로 인정이 되지, 특별한 능력으로 판단하지는 않는 까닭에 기여도 인센티브는커녕 던전 입장시 우대를 받지도 못하는 것이다. 인맥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대형 길드에는 들어가지도 못하고

개인 팀을 꾸리기에는 초기 자본이 너무 많이 필요했다. 그렇다고 용병으로 뛰거나 일반 팀원, 파티원으로 들어가자니 수입이 불안정했고.

그렇기에 상대적으로 많은 돈을 주는 이곳까지 흘러들어온 것이다.

‘문제는 어떻게 접근을 하느냐인데··.’

그가 회유를 당할지 안 당할지 따위는 고민하지 않았다. 강태성의 기억속 그라면 당연히 받아들일 테니까.

그만큼 영민이 제시 할 조건이 대단하기도 했고, 그의 상황이 절박하기 때문이었다.

한 가정의 가장. 한 여자의 남편이자 한 아이의 아버지.

그 이름이 그가 못 할 일이 없도록 만드는 이유이자 원동력이었다.

‘역시 처음 생각대로 가야하나.’

몬스터들의 수준이 예상과 달라 조금 위험 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달리 떠오르는 생각이 없었다.

즉시 몬스터 사육장 쪽으로 다가간 영민은 미리 준비한 흥분제를 안쪽으로 뿌려넣었다.

‘걸렸다가는 아리랑과도 빠이빠이겠군.’

한가람이 일하고 있는 이 작업장은 아리랑의 소유였다. 10대 길드 중에서는 그나마 합법적인 사업과 명분 있는 일들만 하는 아리랑이지만 대기업과 연계하는 사업들이 있는 만큼, 몬스터 작업장 사업을 포기 할 수는 없는 노릇인 것이다.

그나마 나은 점이라면 다른 일부 악덕 길드들이 ‘기밀 유지’라는 명목하에 염전 노예처럼 작업장 인원들을 부리는 것과 달리 아리랑은 인간적인 대우와 충분한 보상으로 이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 쯤일까.

때문에 영민도 어지간하면 위약금 따위를 물어줘 버리고 당당하게 데려오고 싶었지만 그놈의 ‘기밀 유지’가 문제였기에 이와 같은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다.

“크르르르륵.”

“커헝! 컹! 컹!”

영민이 몬스터들에게 뿌린 것은 발정제와 같은 의미의 흥분제가 아니라 광폭화와 비슷한 효과를 내게 만드는 흥분제.

몬스터들을 폭주시켜 작업장을 망쳐놓을 생각이었다.

‘일자리가 사라진다면 더 설득하기도 쉬울 테고.’

“이, 이거 왜 이래?”

“이 놈들이 단체로 미쳤나··.”

쿠웅 쿠웅 쿠웅 쿠웅

흥분제로 눈알이 뒤집힌 몬스터들은 몸과 머리를 벽과 창살에 부딪히며 난동을 피우기 시작했다.

전에는 겪어본 적 없는 이상현상에 관리하던 인원들이 당황해하며 주위의 헌터들을 불렀고, 한가람을 비롯한 헌터 여럿이 우르르 몰려왔다.

“럭키 펀치.”

콰앙!

쿠르르릉-

그때, 건물의 뒤편에서 영민이 힘을 썼다. 몬스터들을 가두고 있던 벽의 한쪽에 구멍이 뚫리며 무너져 내리고 흥분한 몬스터들이 그리로 몸을 날리기 시작했다.

물론 영민은 이미 몸을 숨긴 뒤였다.

“밖으로 나가! 바다쪽으로 가지 못하게 막아야 한다! 사살을 해서라도 빠져나가는 것은 무조건 막아!!”

그러자 안에서도 난리가 났다. 몬스터들이 외부에 노출되는 것을 막기 위해, 뭍으로 건너가는 것을 막기 위해 필사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경비원들의 수준이 최소 C등급인 만큼 보통 때라면 빠르게 정리가 되겠지만 이번만큼은 쉽지 않을 것이다. 상대 역시 무려 4레벨 던전 몬스터인데다 흥분제까지 먹어 힘이 더 좋아졌을 테니까. 더구나 사살 명령이 내려졌다고는 해도 어디까지나 ‘최후의

방법’이기 때문에 어지간 해서는 생포를 해야한다는 부담까지 있었다.

어디 그 뿐인가? 몬스터들에게는 든든한 아군(?)까지 있었다.

“오호, 이것도 은근히 재미있는데?”

영민이 몬스터들에게 각종 버프와 회복주문까지 걸어주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보니 몬스터들은 좀비처럼 쓰러져도 쓰러지지 않고, 상처를 입어도 상처를 입지 않는 기묘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이게 대체 무슨··!”

“변이라도 일으킨 건가?”

그렇다보니 상대하던 경비들만 죽을 맛이었다. 보통이라면 압도하거나 어렵지 않게 상대해야하는 상대에게 마나와 시간을 몽땅 빼앗기고 있으니 마음이 초조하고 불안감에 몸이 떨렸다.

그러는 사이, 몬스터들은 본능적으로 살길을 찾아 사방으로 흩어지고 있었다.

‘됐다.’

그것은 영민이 노리던 바이기도 했다. 경비들이 흩어져 따로 떨어지는 것. 그렇기에 버프와 힐을 적당히 유지하며 시간을 끌 뿐, 더 강하게 밀어붙이지는 않았다.

애초에 영민이 마음을 먹었다면 이 섬의 모든 인원들을 화살로 꿰어 죽이는 것도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하앗!!”

“드디어 죽네. 이 개 새끼들!”

“뭣들하고 서 있어? 난 북쪽으로 간다. 넌 서쪽, 너희 둘은 동쪽으로 가고 거기 너랑 너는 남쪽으로 가. 빨리!”

그런 이유로 경비들이 상대하던 몬스터들이 전멸하는 시점은 다른 놈들이 어느 정도 흩어져 도망가고 난 뒤였다.

인원을 나누어 찾아 나설 수밖에 없도록 유도한 것이다.

잠시 후, 한가람도 어느 그룹에 속해 수색에 나섰다.

‘헤이스트.’

“어? 어? 저 놈. 저거 도망간다. 내가 쫓을 게!”

영민은 그 그룹을 뒤쫓았다. 그리고 적당한 시점에 몬스터들의 이동속도를 증가시키는 등의 방식으로 하나 둘 꿰어내 흩어지게 만들었다.

비로소 한가람이 혼자 남게 되었을 때, 영민이 행동을 개시했다.

쉬액-

채앵!

먼저 인사 대신 가벼운 화살 한 발.

아주 작은 소리와 함께 은밀히 날아든 공격임에도 한가람은 아주 정확하게, 화살촉을 때려 무력화시켰다.

연사나 속사, 정령 융합을 통한 더 강력한 공격도 가능했지만 영민은 더 이상의 원거리 공격을 포기하고 가면 따위는 없는 맨 얼굴로 그의 앞으로 떨어져내렸다.

“실력 좀 보지.”

악동 같은 미소와 함께 검을 들어올렸다.

< 68화 - 또 다른 천재 (1) > 끝

ⓒ 갈드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