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행운 MAX-66화 (66/177)

< 66화 - 던전 강화 (4) >

숲을, 세계수를 차지하려는 불순한 의도를 가지고 덤빈 자들에게 냉철한 응징을 가하는 엘프들. 그들 사이에서 가장 열심히, 가장 신이 나서 시위를 당기는 것은 다름 아닌 영민이었다.

[하이 엘프의 궁술 스킬 숙련도가 0.4% 상승했습니다.]

이미 노력가의 알약까지 복용한 상태다.

새로운 능력을 발휘하는 재미, 숙련도를 올리는 재미.

30%에서 막혀있던 하이 엘프의 궁술 스킬 숙련도가 다시 쭉쭉 치고 올라가자 흥이 나서 시위를 당기는 손이 더 빨라졌다.

“끄아아악!!!”

“막아라! 방패를 들고··꺽!”

하이엘프의 궁술을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이거였다.

정령 융합.

정령의 힘을 화살처럼 압축해서 쏘아내서 관통시키고, 충격을 주고, 폭발시킨다. 심지어는 내부에서 폭발을 일으켜 육편으로 만들어버리기도 했다.

마나를 담아내는 엘프들의 궁술보다도 더 윗줄에 있는 능력. 엘프의 궁술로 따지자면 상급에 해당하는 위력이 고작 중급 단계에서 발휘되고 있었다.

‘무조건 숙련도를 많이 찍어야 해.’

강태성의 기억 속에서도 하이 엘프의 궁술을 상급까지 익힌 인원은 없었다. 그것만으로도 최상급의 능력으로 인정 받기는 했지만, 동일한 던전을 몇 번이고 돌아도 어째서인지 상급까지 전수를 받는 것은 무리였다.

그렇기에 영민은 더 탐이 났다. 하이엘프가 한 약속이 있으니 만약 중급 단계 숙련도를 한계까지 찍고 가면 상급도 가르쳐주지 않을까?

조바심에 행동이 더 빨라졌다.

“위치 유지. 계속 공격하세요.”

하지만 무리를 할 생각은 없었다. 부대가 뒤로 물러서는 것을 쫓는 대신 사거리를 늘렸다. 적들을 혼란시키기 위해 보냈던 정령들의 도움을 받으니 간단했다. 마나를 조금 더 쏟아붓고, 바람의 정령들이 옆에서 도우니 달아나는 이들을 앞질러 화살이 도달

했다.

“끄아악!!”

“사, 살려··.”

그렇게 짧은 순간 죽어나간 숫자만 수백에 이르렀다. 고작해야 C나 D등급 수준인 그들로서는 반격은커녕 방어조차 변변하게 하기 어려운 것이다.

“이놈들~!”

그때, 고함과도 같은 호통 소리와 함께 뒤편에 있던 장군과 수하들이 몰려왔다. 사거리를 최대로 만들며 적잖이 힘이 빠진 화살로는 어찌하기 어려운 수준들. 영민은 그들의 등장과 함께 주저없이 명령을 내렸다.

“퇴각합니다.”

애초에 그들이 노린 것은 상대의 전멸이 아니었다. 그저 유의미할 정도의 견제와 숫자 줄이기였다. 고급 전투인력끼리의 전투에서는 해볼만 하니, 인해전술을 펼치지 못하도록 수만 줄여놓겠다는 것이다.

영민의 미니 골렘과 독이 더해지며 생각보다 시간을 끌고, 많은 수를 줄여내기는 했지만 결코 본래의 목적을 잃지 않았다.

“거기 서라!!”

적들이 악을 쓰며 달려오지만 숲속으로 사라진 엘프를 잡는다는 것은 이미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숲의 어둠속으로 몸을 숨긴 영민과 엘프들은 뒤쫓는 자들에게 몇 발의 화살을 더 날려주고 완전히 어둠에 동화되어 버렸다.

“잠시 정비. 1시간 후에 다시 갑니다.”

적들이 방심하고 혼란한 틈을 노려 펼친 기습이었다고는 하나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다. 이 정도면 ‘견제’라 하는 말이 무색할 정도. 그러나 영민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그들이 한 것이라곤 팔이 뻐근할 정도로 빠르게 활 시위를 당긴 것이 고작이라 체력

적인 부담도 없으니 연속해서 기습을 노리는 것이다.

보통 한 번 기습을 당하면 경계를 강화하기는 하지만 다음 공격까지 시간이 있을 것이라 지레 생각하기 마련이었다. 영민이 노린 것은 그 심리적인 허점. 이쪽은 초장거리 사격이 가능한 활의 명인들이니 괴롭힐 수 있는 한 최대한 만져줄 필요가 있었다.

그렇게 영민은 2차, 3차, 4차 기습을 시간차로 펼쳤다.

“기다리기만 해서는 상대에게 기회만 줄 뿐이다. 전군 돌격!!”

결국, 장군들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을 강요당했다.

멀리서 화살비를 쏘아내고 사라지기를 반복하는 엘프들이니 모든 것을 수습하고, 회복한 뒤 공격하려고 해서는 답이 없는 것이다.

이미 큰 타격을 입었고, 병사들의 상태도 말이 아니긴 하지만 방법은 돌진, 그리고 난전으로 몰고 가는 수밖에 없었다.

“으아아악!!!”

하지만 그 또한 만만치는 않았다. 숲에 들어서려는 순간, 땅이 푹 꺼지고 발 밑에서 강력한 폭발이 일어나는 것이다.

영민과 엘프들이 준비한 함정이다.

정령을 이용한 구덩이 함정에 파이어 마인 마법을 통한 마법 지뢰와 땅 속에 숨겨놓은 미니 골렘들이 엇박자로 그들 사이에서 터져나갔다.

덕분에 살기를 뿌리며 달려들던 선두가 멈칫 제자리에 서버렸다. 그리고 뒤에서 밀려오는 아군과 엉켜 바닥을 굴렀다. 사방에서 치솟는 영문 모를 불길들이 숲 안으로 진입하기도 전, 아비규환을 만들었다.

“뒤다! 적이 뒤에 있다!!”

마지막으로, 영민과 엘프들이 은밀히 우회하여 그들의 뒤편에 나타났다.

“정령 융합, 그랜드 파이어!”

이번에도 가장 신이 난 건 영민이었다.

하이 엘프의 궁술 숙련도가 오르면서 새로운 스킬들이 튀어나온 것. 불과 바람, 땅과 물 속성처럼 서로 더해져 강화 할 수 있는 속성끼리 융합하여 더욱 강력한 위력을 낼 수 있게 된 것이다.

덕분에 마나 소모가 상당하기는 했지만 영민에게는 인벤토리 가득 쌓인 마나 포션이 있었다.

‘히히. 잘 탄다.’

[레벨 업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폭격에 가까운 화살 세례가 적진을 파괴할 때마다 상당한 경험치가 쭉쭉 차올랐다.

마리당 경험치로 따지자면 엘프들 쪽이 월등하겠지만, 인간측의 숫자가 수천을 헤아린 덕분에, 오히려 레벨 업에는 이쪽이 나을 정도였다.

‘게다가 인간측에 붙었으면 내가 나설 일도 별로 없었겠지.’

인간측의 전력과 작전대로 갔다면 이리저리 날뛴다 해도 엘프 십수마리 정도를 사냥하는 게 고작이었을 테니 따지고 보면 훨씬 이득이라 할 수 있었다.

“전진! 전진하라! 물러서는 자는 내가 목을 벨 것이다!!”

‘쳇.’

혹시나 퇴각을 명하지 않을까 기대했지만 적장이 내린 명령은 계속해서 밀고 들어가는 것이었다. 함정이랄 것들이 준비 된 영역은 숲의 초입이 고작. 모든 함정을 밟아 없애겠다는 생각으로 밀고 들어간다면 결국 뚫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때문에 위기감을 고조시키고 적의 주력을 뒤쪽으로 돌리게 만들기 위해 재차 기습을 감행한 것인데, 이렇게 나오면 영민으로서도 그들의 뒤꽁무니만 보는 수밖에 없었다.

“우리도 퇴각하죠.”

도망자처럼 숲 안으로 진입한 그들을 쫓기 위해 영민과 엘프들이 걸음을 서둘렀다.

숲으로 돌아간 그들이 향한 곳은 다름 아닌 엘프들의 마을이었다. 인간들을 쫓아 더욱 공격에 박차를 가할 수도 있지만 먼저 상황 보고를 하고, 함께 대비토록 하려는 것이다.

생각 같아서는 숙련도도 올릴 겸 혼자 쓸고 다니고 싶지만 어쨌든 중요한 것은 아군의 승리였기에 보고를 하고 증원을 요청했다.

“좋습니다. 마을을 지킬 최소한의 인원을 제외하고 모두 데려가세요.”

덕분에 200명의 엘프 부대라는 어마어마한 전력이 편성되었다.

[타이틀 ‘엘프 부대의 지휘관’을 얻으셨습니다.]

[타이틀 효과로 엘프 부대의 전투력이 상승합니다.]

“맡겨주십시오.”

영민은 조금도 지체하지 않았다. ‘위험에 빠지지 않는 것’을 최우선 부대 목표로 지정하고 한창 숲의 몬스터들과 전투중인 인간들을 저격하기 위해 달려나갔다.

수천을 헤아렸던 군대의 숫자가 불과 일천 미만으로 떨어지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나마 정예병력인 장군과 장수들이 나서서 그 정도지, 계속해서 엘프들의 공격을 허용하고 있었다면 전멸을 했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였다.

“불을 질러라!”

“장수들은 나를 따르라!”

계속 되는 괴롭힘에, 그들이 내린 마지막 결론은 ‘죽기 살기’였다. 숲에서 불을 지른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알면서도, 숲을 목숨보다 아낀다는 엘프들을 상대하기에 눈 딱 감고 불을 질러버린 것이다.

그들의 예상은 어느 정도 적중했다. 불이 붙는 순간, 엘프들 중 일부가 공격을 멈추고 정령을 부려 불을 끄는데 주력했으니까.

그 틈에 공격을 해올 속셈인가? 그것도 아니었다. 적의 주력이라 할 수 있는 다섯 장군을 비롯한 장수들이 일제히 몸을 날려 어디론가 향하기 시작했다.

“젠장. 퇴각합니다! 모두 마을로!!”

뒤늦게 상대의 의도를 알아차린 영민은 그야말로 꽁지에 불이 붙은 것처럼 내달렸다. 엘프들이 순간적으로 그를 놓쳤지만 개의치 않았다. 놈들이 향하는 방향이 심상치 않았기 때문이다.

사실상 전체 전력의 반 이상이라 할 수 있는 정예들의 돌파.

그 방향의 끝에는 엘프들이 거주하고 있는 마을이 위치해있었다.

‘대가리를 치겠다는 거로군.’

적의 본진을 친다. 그럼으로 해서 전장을 자신들의 뜻대로 바꾼다.

적의 본진이니만큼 불리한 요소도 있겠지만 지금처럼 농락을 당하는 것보다는 백배 나은 선택이리라.

영민이 한 발 먼저 도착해 상황을 알리니 마을에 남은 엘프들과 하이엘프들이 전투를 준비했다.

상대는 A등급 다섯에 B등급 스물 셋.

이쪽은 영민을 제외하고 A등급 셋에 B등급이 일백이다. 발바닥에 땀이 나도록 뛰어오고 있는 엘프들이 돌아온다면 B등급의 수가 300까지 올라가겠지만 낙관할 수는 없는 상태였다.

그만큼 A등급과 B등급의 격차가 확연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게 있으니까.’

믿을 것은 단 하나. 세계수가 주는 버프의 효과 뿐이었다.

자신이 인정한 이에게만 내려주는 세계수의 가호. 그 버프의 증폭률이 어느 정도 될지는 알 수 없지만 부디 크기를 기대해볼 수밖에 없었다.

“단 번에 몰아친다!”

“흐아아압!!”

곧 마을로 들이닥친 인간들은 두말 하지 않고 무기부터 내질렀다. 애초에는 생포할 계획도 있었지만 수하들이 그렇게까지 당한 이상 살려두고 싶은 마음이 눈꼽만치도 없었다.

그들의 돌격에 맞춰 엘프들도 침착하게 대응했다. 하이 엘프 셋이 각각 장군들에게 달려들고, 검을 쓰는 엘프와 활을 쓰는 엘프가 나뉘어 각각의 역할을 수행했다.

없으면 없는 대로, 남는 장수 중 하나에게 엘프 열이 덤벼들었다. 제압할 수는 없을 지라도 하이 엘프들이 승부를 낼 때까지 시간을 끌어보려는 의도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남은 한 명의 장군은 영민의 몫이었다.

“에라, 어떻게든 되겠지!”

이미 풀도핑에 풀버프를 마친 상태. 그럼에도 힘의 차이가 있다는 것은 알지만 최후의 방법도 몇 가지는 있었다.

쩌엉!

영민이 맞선 것은 도끼를 무기로 쓰는 괴력 타입의 장군. 사람 몸통만한 도끼를 자유자재로 휘두르는 것이 퍽이나 위협적이었다.

영민조차 최초 단 한 번 검을 맞댄 이후 정면 승부를 피할 정도. 더구나 자신의 우위를 깨닫자 상대의 공격이 더 거칠고 날카로워지고 있었다.

“윽.”

광폭하다고 밖에 표현 할 수 없는 도끼술에 영민이 계속해서 밀려나갔다. 힐끗 시선을 돌려도 하이엘프들 역시 쉽게 승부를 내기는 어려워 보이는 상황.

이대로는 위기만 쌓여갈 뿐이라고 판단한 영민은 결단을 내렸다.

“버서크!”

영민의 두 눈이 악귀처럼 붉게 물들고 전신의 근육과 힘줄이 부풀어 올랐다. 무려 50%의 능력 상승 효과. 전신에 힘, 자신감이 솟구쳤다.

“어설픈 짓을!”

제대로 맞았다간 찌그러져 죽을 것만 같은 내려찍기. 영민은 거리를 좁히며 방패로 그것을 비껴 받았다.

힘에서는 밀리지 않는다.

그것을 확인한 순간, 밀려내려가는 도끼와 함께 방패를 내던졌다. 순간적으로 도끼를 놓칠 뻔 하며 자세가 흐트러진 상대.

영민은 그를 향해 단단한 견갑을 앞세웠다.

“숄더 차지!”

끔찍한 충격이 놈의 가슴팍을 덮쳤다. 찰나의 부딪힘에 숨이 턱 막히며 놈이 주춤 뒤로 물러났다.

“빛의 일격!”

“액스 가드.”

황급히 도끼의 옆면으로 방어해보지만 급소를 간신히 피할 뿐이다. 꽤 깊은 상처가 놈의 허벅지에 새겨졌다.

“크리티컬 운즈!”

영민의 손에서 뿜어진 빛이 놈의 상처를 더욱 벌렸다. 누군가 손으로 잡고 억지로 상처를 벌리는 것 같은 고통이 놈에게 찾아왔다.

움찔 내려앉은 거체.

그 위로 영민의 일격이 재차 내리꽂혔다.

“럭키 펀치!”

“헉!”

도끼 위에 떨어진 주먹질에 손바닥이 찢어질 듯한 고통이 찾아왔다. 팽그르르 놓쳐버린 도끼가 하늘을 날고 놈의 목도 함께 허공에 떠올랐다.

“하아, 하아.”

쥐어짜듯 힘을 다해 끝장을 본 것이 주효했다. 갑작스럽게 변한 힘의 수준에 상대가 적응하기 전에 승부를 본 것이다.

그러나 이미 버서크를 쓴 상태라 다른 곳을 돕기도 쉽지 않았다. 버서크를 쓰는 순간, 아군과 적군이 사라지고 모두가 붉은 실루엣으로만 보이는 것이다.

어떻게하지? 패널티를 먹더라도 해제를 해야하나?

잠깐 고민하는 사이 1대10으로 날뛰는 실루엣들이 보였다.

‘저건 뭔지 알겠군.’

영민은 곧장 그리로 덤벼들었다. 10쪽에 가세해서 1을 몰아붙였다. 거의 동급이라 할 수 있는 상대의 등장에 결국 상대는 숫적인 열세를 이기지 못하고 무릎을 꿇었다.

버서크의 지속시간이 끝난 것도 그와 거의 동시였다.

“으음, 좋지 않은데.”

능력치 하락 패널티 때문에 좀 전처럼 날뛰기는 어려워진 영민은 한 발 물러나서 상황을 살폈다. 기본적으로는 우세하다. 그러나 문제는 하이엘프와 장군들의 전투쪽이 쉽지 않아 보인다는 것이었다.

하이엘프의 수준이 A등급 중에서도 중간 이상은 가는 것 같아 안심을 했는데, 상대쪽에 A등급 상위에 있는 놈이 있던 모양이다. 한 명의 하이엘프를 대적하는 중간중간 다른 쪽의 전투에도 끼어들어 오히려 하이엘프들이 수세에 몰리고 있었다.

‘내가 가봤자 도움이 안 돼.’

일반 엘프들에게 여유가 생기고는 있지만 A등급끼리의 전투에서는 방해나 되지 않으면 다행이다.

가만히 지켜 볼 것인가, 뭔가 수를 내볼 것인가. 어떻게든 끼어들 수 있는 것은 본인 뿐이라는 생각에 영민의 표정이 복잡해졌다.

‘내 보상을 이렇게 날릴 순 없어. 이렇게 되면 이판사판이다.’

고민은 오래가지 않았다. 하이엘프가 죽으면, 보상도 날아갈지 모른다는 걱정이 그를 움직이게 만들었다.

“럭키 박스!”

그의 손끝에서 나타난 것은 하나의 박스.

요란한 소리와 함께 상자의 뚜껑이 나타난 것은··.

“포탑?”

< 66화 - 던전 강화 (4) > 끝

ⓒ 갈드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