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행운 MAX-64화 (64/177)

< 64화 - 던전 강화 (2) >

던전이 변화를 마치고 완전히 안정되자 영민은 주저 없이 몸을 날렸다.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하기 위해 마나를 끌어올리고 변화하는 풍경에 빠르게 적응했다.

[던전 강화로 인해 미션이 변경 됩니다.]

[미션 ‘숲의 존재를 몰아내라’가 부여됩니다.]

[미션을 달성하면 보상을 획득 할 수 있습니다.]

‘좋았어.’

사실 반쯤은 도박이었다. 영민이 원하던 이 미션은 ‘숲’을 베이스로 몇 가지 키워드를 포함한 던전 중 랜덤하게 나타나는 것이었다. 물론 일정한 조건이 갖춰지면 더 높은 확률을 보이기도 했는데 다행히 단번에 성공을 한 것이다.

하기는, 영민이 맞춰놓은 조건만 해도 발생 확률이 30%는 되는데 특유의 행운이 작용하면 성공하지 않는 것이 이상하다.

“이봐, 신입. 빨리 가자고! 늦으면 또 한 소리 거하게 들을 거야!”

그렇게 성공을 속으로나마 작게 자축하고 있을 때, 어디선가 영민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중세 병사의 차림을 한 사내. 게임으로 따지면 NPC로 볼 수 있는 그가 영민에게 손짓을 하며 익숙하게 불렀다.

처음 겪는 이들이라면 당황할 법한 상황이지만 영민은 달랐다. 이미 강태성의 기억을 통해 이유를 알고 있으니 능청스럽게 그들의 틈으로 섞여 들어간 것이다.

병사들과 똑같은 취급을 받지만 그렇다고 장비나 외형이 자동으로 변한 것도 아니다. 단지 그들이 그렇게 ‘인식’하고 있을 뿐. 영민은 군기 바짝 든 신입처럼 행동하며 열과 오에 맞춰 움직였다.

“지금부터 우리는 태초의 숲을 정복하러 떠난다. 황제 폐하와 영웅왕의 가호가 우리를 지킬 것이니 모두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고 싸우도록 하라!”

“와아아아-!”

이어진 것은 뻔하디 뻔한 일장 연설이었다. 병사들을 도열해놓고 군대를 이끄는 장군들이 한 마디씩 하니 시간은 금방 지나갔다. 전장에서 굴러먹던 자들이라 말이 길지는 않았지만 수가 제법 되다보니 잡아먹는 시간 또한 상당한 것이다.

영민은 그것을 잠시 듣고 있다가 은신 스킬을 발동시키며 슬쩍 뒤로 몸을 빼냈다.

‘A등급이 다섯, B등급이 서른, 나머지는 C나 D등급인가.’

그리고 부대의 전력을 파악했다. 병사들의 대부분이 D등급 이하의 허접한 수준이지만 그 수가 무려 수천에 달한다. 단순히 인해전술로만 밀어 붙어도 상대의 진을, 마나를 빼놓기에 충분할 정도. 거기다 전투 계열 능력을 지닌 B등급 수준이 서른이나 되

고 A등급이 다섯이나 되니 만약 이곳이 던전 밖이라면 어지간한 중견 길드의 전체 전력에 필적할 정도다.

이 정도면 가만히만 있어도 낙승이지 않을까?

그렇다. 실제로 이 방법은 ‘꿀 빠는’ 방법으로 널리 알려지기도 했었다. 적당히 죽지 않을 정도로만 몸을 사리며 싸워도 미션 성공 확률이 80%정도는 되었기에 적당히 채집이나 하고, 남이 잡은 몬스터에게서 드랍된 아이템이나 습득하며 시간을 보내면 되

는 던전이었으니까.

NPC인 병사나 장군들은 드랍되는 아이템들을 보지 못하는 것인지 따로 챙기지 않았기에 소득도 제법 나쁘지 않은 편이었다. 병사들이 몬스터를 죽일 경우 아이템 드랍률이 크게 하락하는 것 같다는 체감이 있긴 하지만 어디까지나 불로소득에 가깝기에

투정을 부릴 것은 아니었다.

다만 시간이 좀 걸린다는 것이 문제일까.

‘제대로 된 출정은 내일.’

영민은 이들이 지금 당장이라도 전투에 나설 것처럼 연설 중이지만 실제 전투는 내일이 되어서야 일어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시야가 제한되는 저녁은 상대에게 유리하기에 해가 뜨는 즉시, 그때는 연설 따위도 생략하고 밀고 들어갈 터.

따라서 영민이 몸을 빼내고, 행동을 취해야 할 시간은 지금이었다.

‘어디보자, 장군의 거처가 어디더라?’

미션이 가리키는 목표와 달리 영민은 자신의 목적을 위해 그들을, 인간측을 배신할 생각이었다.

‘어차피 진짜 인간도 아닌데 뭐.’

같은 인간의 모습을 한 녀석들을 죽이는 것이 달갑지는 않지만 망설여질 것도 없다. 어디까지나 놈들은 몬스터와 마찬가지로 반쯤 허상인 존재들이고, 이 던전을 나서면 사라질 존재들이니까.

빠르게 지형을 스캔한 영민은 기억을 더듬어 장군들의 처소로 잠입했다. 전군 집합을 명하기는 했어도 군데군데 경계를 서는 병력들이 있기는 했지만 영민을 잡아내기에는 수준이 한참이나 떨어졌다.

‘여기 있군.’

장군의 처소에서 영민이 찾아낸 것은 작전 명령서. 그 황제라는 작자의 직인이 찍힌 문서였다.

보통이라면 사라진 것을 바로 알겠지만 작전 시간까지 얼마 남지 않은 지금이라면 알아차리는 것이 늦겠지.

생각 같아서는 장군들의 전용 무구라도 빼돌려서 전력을 약화시키고 싶지만 이미 전장의 코앞까지 도착한 그들이 무구를 떼어 놓는 일은 좀처럼 없어서 빠르게 포기했다.

‘그리고 제법 소란도 있을 테니까 말이야.’

그리고 한 가지 더. 영민이 인벤토리를 뒤져 무언가를 한 웅큼 꺼냈다.

‘빙고! 찾았다.’

부대가 머무는 곳은 인근의 마을과 그 주변이었다. 수천이나 되는 병력이 머물기에 충분치는 않았지만 야영을 하는 것보다는 나았기에 나누어 머무는 것이다.

때문에 제법 넓게 펼쳐진 야영지 전체에 불을 지른다거나 하는 일은 할 수가 없다. 크게 상승한 육체적 능력을 이용해 날뛴다해도 무척이나 제한적이었고, 뭔가를 제대로 해보기도 전에 적의 정예들에게 가로막힐 것이 분명했으니까.

그래서 영민이 택한 것은 바로 ‘물’이었다. 대규모 병력을 움직일 때 군량은 넉넉히 싣지만 단위 면적당 무게가 상당한 물은 넉넉히 싣기가 쉽지 않다. 특히나 이번처럼 자국 영토 내의 마을들을 거치고 거쳐 도달하는 경우 해당 마을의 우물을 최대한 이

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이 정도면 되겠지?’

퐁당

영민은 마을 곳곳의 우물에 연금술로 제작한 독을 풀었다. 한 가지도 아니고 여러 가지 독들을 자신도 알 수 없을 만큼 여러 개를 쏟아 부었다. 그것도 우물마다 다르게.

그런 다음 군량 창고로 숨어들어갔다.

딱 한 칼.

물이 저장된 통에서 서서히 내용물이 줄어들도록 딱 한 칼만큼의 틈만을 만든 뒤 빠져나왔다.

마지막으로 소란을 피우거나 하는 일도 없었다. 그런 짓을 했다가는 ‘의심’을 하게 될 테고 점검을 하게 될 테니까.

거기까지 행동을 마친 영민은 한 발 먼저 태초의 숲으로 잠입했다.

숲으로 들어가자마자 풍부한 마나의 기운이 느껴졌다. ‘태초의 숲’이기 때문인지, 던전을 강화했기 때문인지는 알 수 없으나 그 기운을 바탕으로 숲의 몬스터들 역시 조금 더 강해진 듯 했다.

그래봐야 영민에게 상대가 되지 않기는 마찬가지이지만.

‘마지막으로··. 이게 필요했지. 구입!’

자신을 감지해내지 못하는 몬스터들을 나무 위로 뛰어넘으며 스쳐가던 영민은 코인 상점을 열어 마지막 준비를 마쳤다.

[기초 정령술 스킬을 습득하셨습니다.]

[당신의 속성 친화도를 확인합니다.]

[속성 친화도에 따라 계약 가능한 정령의 종류가 결정됩니다.]

바로 정령술 스킬을 익히는 것이다. 지금부터 대면할 ‘그들’은 인간에게 매우 박한 대접을 하지만, 정령술사에게는 극히 예외적인 대우를 하니까.

스킬북을 사용하자 전신을 스캔 당하는 듯한 찌릿한 기분이 들며 속성 친화도가 체크됐다.

‘속성은 순전히 운빨이랬지.’

그래서 정령 계열 능력자는 재수 없으면 한 종류의 정령 밖에 사용하지 못하고, 운이 좋으면 여러 종류를 한 번에 다룰 수 있다고 했다. 그 기준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소문이 그렇게 돈 것이지만, 영민은 루머에 가까운 그 말을 믿어보기로 했다.

‘운이라면 빠지지 않으니까.’

[불의 하급 정령 ‘살라만다’와 계약하셨습니다.]

[물의 하급 정령 ‘운디네’와 계약하셨습니다.]

[땅의 하급 정령 ‘노움’과 계약하셨습니다.]

[바람의 하급 정령 ‘실프’와 계약하셨습니다.]

아주 짧은 버퍼링이 있은 후, 결과가 나왔다.

‘대박!’

네 가지였지만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단순히 숫자 4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다. 사대원소라 불리는 모든 기본속성 정령들과 계약을 한 것이니까.

빛과 어둠, 뇌전이나 빙결 등 기타 속성 정령들은 별도의 계약 방식이 필요한 것을 생각할 때, 모든 속성의 정령과 계약에 성공한 것이다.

‘강태성은 두 가지였지.’

기억 속 강태성이 부릴 수 있었던 정령은 불과 바람, 단 두 가지 뿐이었다는 것을 생각해도 놀라운 성과였다.

‘정말 운 때문인가.’

이쯤되면 의심하지 않을 수가 없을 정도.

‘아무렴 어때.’

크게 씨익 미소를 지은 영민은 굳이 그들을 소환해내지 않고 계속해서 숲의 안쪽을 향해 달려나갔다.

이유는 간단하다.

‘너무 시끄러워.’

잠시 강태성의 기억 속에서 정령들에 대한 부분을 떠올린 영민은 진저리가 난다는 듯 고개를 휘저었다. 잘만 사용하면 그 어떤 능력보다도 편리하고 효율성 높은 정령술을 아직까지 익히고 있지 않았던 이유. 또한 강태성 역시 크게 비중을 두고 사용하지

않았던 이유.

그것은 바로 정령들의 조잘거림 때문이었다. 등급이 높아질수록 과묵해지는 녀석들도 있다지만 기본적으로 정령들은 너무 정신 없었다.

마구 날뛰며 돌아다니지를 않나, 쉴 새 없이 이야기를 떠들어대질 않나.

강태성이 게이머의 정신이 아니었다면 정신병에 걸리지 않았을까 생각했던 것만 봐도 정상적인 범주는 아니었다.

파바바밧-

그렇게 고개를 가로 젓고 있을 때, 은신을 유지한 영민의 발치로 매서운 화살이 떨어져 내렸다.

‘왔구나.’

미리 기척을 알아채고 멈추지 않았다면 몸에 틀어박혔을 상황에, 영민이 기쁜 듯 이빨을 보이며 웃었다. 이미 의미 없어진 은신도 해제하고 두 손을 들어 그들을 반겼다.

“이곳은 인간이 발을 들일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어서 썩 사라져라, 인간.”

뾰족한 귀에 이국적이면서도 아름다운 외모. 누가봐도 미인이라 칭할 만한 그들의 정체는 다름 아닌 엘프였다.

“저는 당신들의 적이 아닙니다. 당신들을 돕기 위해 찾아왔습니다.”

“인간이 우리를 돕는다? 웃기는 소리!”

그들은 코 웃음을 쳤지만 영민은 눈웃음으로 답했다.

“살라만다, 운디네, 노움, 실프. 소환.”

작게 읊조리자 방금 계약한 따끈따끈한 정령들이 튀어나왔다. 꺼내기 싫었지만, 엘프들의 마음을 누그러뜨리기 위해서는 필수적인 행동이었다.

[와아, 여기가 인간 세상이야?]

[야, 조용히 해. 촌놈처럼 굴기는!]

[이게 우리 계약자인가? 제법 멀쩡··에이, 거짓말은 못하겠다. 되게 호구 같이 생겼는데?]

[야야, 저기 좀 봐. 엘프들인데?]

동시에 튀어나오는 말말말. 머리가 지끈거리는 것 같았지만 미소를 유지한 채 얼른 소환을 해제했다.

“어디서 미약한 정령의 향기가 난다고 했더니··. 정령술사였나?”

“비슷합니다.”

정령을 보고나자 조금은 적대감이 누그러진 듯 했지만 그렇다고 호의적이거나 경계를 푼 것은 아니었다.

엘프들은 여전히 화살 끝을 영민에게 향한 상태로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좋다. 들어는 주마. 네가 무엇으로 우리를 도울 수 있다는 거지? 우리는 인간에게 도움 받을 일이 없다.”

그때서야 영민이 저항할 의사가 없음을 밝히기 위해 들었던 손을 내리고 품에서 두루마리 하나를 꺼냈다.

장군의 처소에서 훔쳐낸 작정명령서다.

그것을 꺼내 바닥에 내려놓자 엘프와 계약된 바람의 정령이 힘을 일으켜 그들에게 가져갔고, 조심스레 열어본 엘프 순찰자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이게··진짜인가?”

“계획대로라면 내일 아침 이곳으로 쳐들어 올 겁니다. 제가 약간 장난을 쳐놔서 시간을 벌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렇다고 해도 많은 시간은 아니겠지요. 그리 먼 거리가 아니니 확인해보시면 알 수 있을 겁니다.”

엘프 순찰자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너는 인간인데··. 어째서 우리에게 이런 사실을 알려주는 거지? 동족을 배신하면서?”

“인연이 있기 때문이랄까요?”

영민이 준비해둔 아이템을 꺼내 보이며 쐐기를 박았다.

< 64화 - 던전 강화 (2) > 끝

ⓒ 갈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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