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3화 - 던전 강화 (1) >
“던전을 달라?”
영민의 당당하고도 황당한 요구에 이세종이 멍한 표정을 지었다. 영민이 요구한 것은 ‘게이트 키퍼가 보유하고 있는 어떤 던전’에 대한 소유권의 완전 양도였다.
소위 대형 길드의 경우 적게는 한 개에서 많게는 십수 개까지 따로 관리하는 던전이 있다. 헌터협회에 등록은 되어 있되, 해당 던전으로부터 어떠한 피해도 발생하지 않도록 책임을 진다는 조건과 함께 소유권을 넘겨받아 관리하는 던전들.
대형 길드들에서 눈독을 들일 만큼 어느 하나 특별한 점이 있는 던전들이다 보니 구입을 하기 위해 꽤나 거액을 들인 바가 있는 곳들이다.
그런데 그곳 중 하나를 달라? 공짜는 아니라도 꽤나 맹랑한 말이 아닐 수 없었다.
“내가 왜 그래야 하지?”
이세종이 두 손을 깍지 끼며 몸을 앞으로 당겼다. 황당하기는 하지만, 관심이 있다는 증거였다.
일반 헌터가 그런 말을 했다면 혼쭐을 내서 내쫓았겠지만 그 말을 한 이가 영민이기에 관심을 보인 것이다.
다른 것을 떠나서 지금 영민의 태도가 비굴하거나 부탁을 하려는 자세가 아니기 때문에 더욱 관심이 갔다.
“그래야 하는 게 아니라 그러실 수 밖에 없을 겁니다.”
“?”
“제 제안이 마음에 드실 테니까요.”
역시 뭔가 있군. 가만히 경청할 자세를 갖추자 영민이 은근하게 말을 던졌다.
“화염의 성채 공략법을 드리죠.”
“뭣?!”
화염의 성채라면 게이트 키퍼 뿐 아니라 대한민국의 모든 대형 길드가 노리고 있는 던전 중 하나였다. 과거 아리랑 길드에서 공략에 성공한 ‘바람의 거신’처럼.
무려 6레벨 던전인 까닭에 나오는 아이템들도 어마어마해서 모두가 눈독을 들이고는 있지만 마땅한 공략 방법을 찾지 못해 침만 삼키던 녀석. 바로 그 화염의 성채 공략법을 영민이 제시한 것이다.
‘어차피 내가 먹기 전에 끝장날 놈이니까.’
생각 같아서는 자신이 슥삭하고 싶지만 시기상으로나 능력상으로나 무리가 있기에 거래 조건으로 내 건 것이다. ‘성채’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강력한 6레벨 던전 몬스터를 부대 단위로 상대해야하는 이곳은 대형 길드처럼 그에 걸맞는 인원이 있는
곳들만이 공략 가능하기도 했고.
‘그 놈들이 먹는 꼴도 못 보겠고.’
또 한 가지. 만약 이대로 미래가 흘러갈 경우 화염의 성채를 집어먹는 것이 강철대오이기 때문이기도 했다. 최소 반년 이상 지난 뒤의 일이기는 하지만 가장 먼저 공략법을 찾고 ‘뷸탄의 왕관’을 획득하는 것은 다름 아닌 강철대오였다.
강태성의 기억에서도 꼴 보기 싫었지만 지금은 아예 같은 하늘 아래 있는다는 것이 불쾌해진 놈들. 그런 놈들이 먹게 놔두느니 게이트 키퍼에게 빚을 지우고 두고두고 써먹는 편이 낫다고 판단했다.
“자네가 그걸 어떻게 안 다는 거지?”
“영업비밀. 이라고 해두죠.”
워낙 충격적인 발언이었는지 이세종은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10대 길드 사이의 힘의 균형이 좀처럼 깨지지 않고 있는 요즘, 선풍환을 손에 쥔 아리랑이 무시무시하게 치고 나가는 모습을 보았으니 혹하는 것이 당연했다.
게이트 키퍼가 가지고 있는 ‘지킨다’라는 포지션은 그 어떤 이들보다 강력한 힘을 쥐고 있어야만 유지 할 수 있는 것이니까. 극소수의 대상이라고 해도 한 번 예외가 생기기 시작하면 동네북이 되는 것은 한 순간이다.
“····정보의 신뢰도는?”
“90%라고 해두죠. 나머지는 게이트 키퍼에서 채워야 할 테고.”
정보만으로 쳐줄 수 있는 최대한의 승산이다. 아무리 정보가 있다한들 본인들의 스펙과 센스가 없다면 아무것도 아니게 될 테니까.
“··대가는?”
자칫하면 전멸을 당할 수도 있다. 하지만 ‘탈출석’을 이용한다면 어떻게든 ‘간’을 보고 빠져 나올 수도 있었다. 5레벨부터는 굳이 던전을 닫고 전체 귀환을 하지 않아도 개인 단위로 던전을 이탈 할 수 있는 탈출석 아이템이 드랍되니까.
나름 귀하기는 했지만 5레벨 이상의 던전에 출입할 수 있는 헌터의 수가 제한적이었기에 게이트 키퍼 측에서도 제법 다량을 보유하고 있는 상태였다.
그의 말이 진실이든 아니든 한 번쯤 시도해볼만하다는 뜻이기도 했다.
생각을 마친 이세종이 영민에게 되물었다. 그가 어떤 던전의 소유권을 요구하기는 했지만 그의 말이 사실이기만 하다면 고작 그 정도가 대가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정보의 가치를 알지 못해서? 말도 안 되는 소리.
영민을 어느 정도 지켜본 이세종은 그런 순진한 생각 따위를 하지 않았다.
“‘일단은’ 이야기했던 던전을 포함해 던전 3곳만 받죠. 나머지는 공략이 완료 된 뒤 말씀드리겠습니다. 아, 그리고 특별히 민호 녀석도 ‘임대’해 드리겠습니다.”
영민은 선금 형식으로 던전 3개의 소유권을, 공략이 완료되면 나머지 조건을 협의하는 것을 제시했다. 검증되지 않은 공략법을 전제로 대가를 몽땅 요구했다가는 ‘먹튀’로 오해 받을 여지가 있으니 영민으로서도 한 발 물러선 것이었다. 물론 게이트 키퍼
가 던전 공략에 성공한 뒤 입을 싹 닦을 수도 있지만 어지간히 무리한 추가 조건이 나오지 않는 이상 그것은 황금 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는 일에 다름 없었다. 영민이 알고 있는 것은 그것 하나 뿐이 아니니까.
만약 지급을 거부할 경우 적당히 정보를 흘린 뒤 다른 배로 갈아타거나 역으로 조작된 정보를 다시 게이트 키퍼에 주어 큰 타격을 입힐 수도 있었다.
거기에 한 가지 더.
영민은 민호를 ‘임대’할 뜻을 밝혔다. 이 부분은 게이트 키퍼로서도 다소 의외였다. 뜬금없이 임대라니? 민호 자체가 B등급의 헌터로 부르기에 충분한 무력을 갖추었으니 게이트 키퍼로서도 무시 못할 전력인 것은 맞지만 A등급이면 모를까 굳이 꼭 데려
다 쓸 전력까지는 아니었다.
“임대라고?”
“뭐 스포츠 경기처럼 생각하면 됩니다. 길드 가입은 아니고, 잠시 데려다 쓰는 거죠. 제법 도움이 될 겁니다.”
“······.”
이건 또 무슨 의미일까. 이세종은 잠시 고민하다가 수락했다. 그 또한 그의 요구 조건이라 받아들인 것이다.
영민은 추가로 민호의 임대 조건에 금액과 별개의 조건을 달았다. ‘막타’를 챙겨줘야 한다는 것과 ‘화염의 성채’ 입장 시 데리고 가라는 것이다.
5써클에 도달한 민호의 화력이라면 보스급까지는 무리더라도 6레벨 던전 일반 몬스터들을 상대로는 꽤나 선전 할 것이 분명했다.
그렇게 거래를 마친 영민은 즉시 던전 입장을 준비했다. 덩달아 짐을 싸려는 민호에게 ‘임대’ 되었음을 알리고 오랜만에 단독 입장을 준비했다.
“헐. 너무해요. 절 팔아먹다니!!”
“쉰 소리 하지 말고 가서 파티 플레이 좀 배우고 와. 프리 딜 넣는 건 이제 제법 익숙하잖아?”
그 과정에서 민호의 가벼운 저항이 있었지만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영민과 함께 사냥하며 너무 편하게 데미지 딜링을 해오기만 한 민호이다 보니 파티 플레이에 대해 배울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것만큼은 영민이 채워 줄 수 없는 것이기에, 민호를 임대 보내기로 결정했다.
구박 아닌 구박을 들은 민호는 투덜댈 지언정 크게 반발하지는 않았다. 그 역시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알고 있고, 영민이 자신을 내치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 확고한 믿음이 있기에 군소리 않고 게이트 키퍼 측에 합류하기로 했다.
물론 그 역시 녹록치는 않을 것이다. 영민의 부탁 때문에 민호의 일정 역시 꽤나 빡빡했으니까. 쉬는 날이라고는 거의 없이 던전에서 던전을 옮겨다녀야 했고, 그러다 준비가 완료되면 무려 6레벨 던전인 화염의 성채에 따라들어가야 했다. B등급, 아니 A
등급 헌터들마저 잔뜩 긴장해야하는 최상위 던전. 5레벨 던전 입장조차 두려워해 4레벨 던전을 전전하는 B등급 헌터도 적지 않다는 것을 볼 때 녹록치 않다 못해 무리한 일정이라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영민이 선택한 것이기에, 민호는 의심하지 않았다.
“자, 그럼 시작해볼까.”
상황을 정리한 영민은 자신의 소유로 인정 받은 던전 중 한 곳 앞에 섰다. 일명 ‘태초의 숲’이라 불리는 던전으로, 온갖 숲 지형 몬스터가 나타나고 강력한 엔트들이 나타나는 4레벨 던전.
5레벨 던전의 소유권을 요구할 것이라 생각하는 이세종을 속이기 위해 다른 2개의 던전은 5레벨로 요구를 하고 덤처럼 추가한 던전이었다.
그러나 정작 영민의 목적인 오직 이곳에만 있었다.
“먹어라.”
던전을 마주한 영민은 곧장 던전에 진입하지 않았다. 대신 인벤토리에서 무언가를 꺼내 던전 안으로 집어 넣었다.
[던전 스톤을 사용하였습니다.]
[던전 옵션이 활성화 됩니다.]
[옵션을 선택하십시오. 1. 던전 입장 횟수 연장 / 2. 던전 강화 / 3. 던전 브레이크]
바로 던전 스톤이었다. 던전의 입장 제한 횟수를 모두 사용하고 나면 나타나는 바로 그것. 보통은 사용법을 몰라 기념품처럼 가지고 있거나, 싼 값에 팔아버리곤 하는 그것을 영민은 틈틈이 사들여 온 상태였다.
충분한 양의 던전 스톤을 입구에 던져넣자 옵션 선택 창이 나타났다. 가장 많이 사용되는 것은, 아니 사용 되는 거의 모든 선택은 1번인 던전 입장 횟수 연장이다. 이를 이용해 ‘돈이 되는’ 던전을 계속해서 연장 시키고 소위 꿀을 빨어먹는 것이 대형 길드
들의 방식이었다.
게이트 키퍼도 이에 다름이 아니었고 이 던전 역시 그와 같이 관리되던 던전 중 하나였다.
2번인 던전 강화는 좀 특수했다. 강화를 선택하는 순간 던전 내부에서 커다란 변화가 일어나고, 모든 몬스터와 미션의 수준이 크게 강화된다. 뿐만 아니라 드랍되는 아이템과 보상의 수준까지.
대신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으니, 던전의 입장 제한 횟수가 1회로 고정되어 버린다는 것이다.
다시 던전 스톤을 쏟아부어도 횟수를 증가시킬 수 없기에 이 방법을 택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봐야했다.
마지막으로 3번. 던전 브레이크. 이것은 말 그대로 던전을 파괴하는 것이었다. 던전을 파괴하고 그 안에 있어야 할 몬스터들을 현실로 불러들이는 것. 얼마 전 있었던 던전 쇼크와 같은 현상을 인위적으로 일으키는 것이다.
이 역시 거의 사용되지 않았지만, 전혀 사용 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던전 강화.”
이 중 영민이 택한 것은 다름 아닌 던전 강화였다. 아는 사람들만 아는 던전 스톤 활용법 중에서도 가장 적은 빈도로 사용 되는 그것. 강화를 통해 상승하는 보상의 수준이라고 해봐야 다름 레벨 던전보다도 크지 못해서 사실상 던전 스톤 낭비라고 여겨지는 그것을 영민은 선택했다.
파츠츠츠츠츳-
그리고 던전이 변화를 일으키기 시작했다. 던전 내부에서 폭풍이 몰아치기라도 하는 듯 마나가 폭주하는 것이 바깥으로까지 느껴졌다.
‘됐다.’
영민은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모든 소란과 혼란이 가라앉을 때까지 참을성을 가지고 기다렸다.
던전 강화. 다른 표현으로는 던전 폭주라고도 불리는 이 기능에 숨겨진 저편을 들여다 보았다.
‘보통은 강화가 되고 말 뿐이지만, 어떤 던전에서는 특수 미션을 발동 시키는 열쇠가 되기도 하지.’
< 63화 - 던전 강화 (1) > 끝
ⓒ 갈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