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1화 - 경험치 2배 (1) >
더 놀라운 것은 진지한을 아무도 막지 못했다는 것이다. A등급까지 파죽지세로 치고 올라간 진지한은 이제 아리랑의 핵심 멤버라 불러도 손색이 없는 만큼, 아리랑과 전쟁을 벌일 생각이 아니라면 죽일 각오로 덤벼들 수 없는 것도 있었지만 기본적으로 그가 너무 강한 탓이었다.
그가 소환하는 ‘발키리’라는 이름의 빛의 기사들은 하나하나가 A등급에 필적하는 능력을 지녔고 심지어 그들에게도 진지한의 버프가 유효했다.
거기에 스스로의 마나 조작 능력도 최상위 수준이라 거의 A등급 강화계 격투가만큼의 전투력을 발휘하니 어지간한 이들로는 막을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 것이다.
어디 그 뿐인가? 그가 사라진 것을 뒤늦게 알아차린 아리랑의 정예들이 그를 보호하기 위해 뒤따라 밀고 들어오니 강철대오로서는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다.
머리를 숙이거나, 전쟁을 하거나.
결과적으로 안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어떤 이야기가 오갔는지는 공개되지 않았지만 강철대오가 영민에게 사과하고 앞으로 그를 향한 어떠한 위해도 가하지 않을 것이라 공표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두 길드의 전력이 비등했지만 윈드 엘리멘탈을 얻은 이후, 좀 더 정확히는 윈드 엘리멘탈을 이용해 바람의 거신을 쓰러뜨리고 ‘선풍환’을 얻은 이후 차이가 상당히 벌어진 것이다.
굴욕적이지만 어쩔 수 없다. 그것이야 말로 그들이 평소에 펼치던 ‘힘의 논리’였으니까. 그들 역시 격변의 계기를 얻어 크게 성장할 때까지, 일단은 숙여야했다.
‘다행이다.’
속보로 올라오는 기사들을 읽으며 영민은 안심했다. 자신 때문에 진지한이 다치거나 난처해지는 것은 원하지 않는 것이다.
가뜩이나 그에게는 받기만 했는데, 이 이상 신세를 질 수는 없었다. 아니, 어쩌면 이번에도 신세를 진 셈이긴 했지만.
“근데 형, 뭘로 받을 거에요?”
“응? 그게 무슨 소리야?”
“여기, 여기. 강철대오가 사과의 의미로 등급에 상관없이 원하는 아이템 하나를 주겠다고 하잖아요.”
민호의 말에 기사를 자세히 살피니 확실히 그런 얘기가 있었다. 강철대오에서 피해보상의 의미로 자신들의 창고에서 럭키맨이 원하는 아이템 하나를 골라 가질 수 있게 해주겠다고 이야기한 것이다.
물론 핵심이 되는 아이템은 몽땅 빼돌린 뒤겠지만 보는 눈들이 있으니 A등급용 아이템 정도는 남겨두지 않았을까 싶긴 했다.
‘의외의 보물을 발견할 수도 있고 말이야.’
큰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이 시기에 아직 가치를 인정 받지 못한 아이템들이 적지 않았기에 호기심이 일었다. 창고를 개방하는 거라면 그런 물건들을 찾을 수도 있지 않을까?
‘뭔가 잊고 있는 것 같은데··.’
한 가지 아쉬운 점은, 강태성의 기억 속에서 강철대오가 가지고 있던 ‘무언가’가 희미하게 아른거린다는 것이다. 꽤나 중요한 것 같기도 한데, 좀처럼 떠오르지가 않는다.
아마도 강철대오가 나중에 망해버렸기 때문인 듯 하다.
강철대오가 망한 뒤 재고정리 하듯 팔아치운 아이템들 중 ‘그것’이 끼어있었고, 나중에야 빛을 발하게 된다는 식의 이야기라는 것은 떠오르는데 정작 그게 무엇인지가 아리송했다.
‘보면 기억이 나려나?’
영민은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봐도 떠오르지 않자 더 이상 생각하는 것을 멈추었다.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다. 정말 중요한 거라면 언젠가 떠오르겠지.
“대충 정리가 되가는 것 같은데··.”
꺼두었던 휴대폰을 다시 켜보니 진지한에게 전화가 몇 통이나 와있었다. 아무래도 전화를 안 받으니 무슨 일이 났구나 싶어서 더 분노 했던 듯 하다. 먼저 전화를 걸어 사정을 설명하고, 무사하다는 사실을 알리자 진지한도 그제야 좀 진정이 되는 모양이었다.
원래는 S등급이고 뭐고 박살을 내버리려고 했는데 아리랑의 길드장인 강중만이 나서서 사태를 수습하는 바람에 그러지 못했다나? 진지한도 참 은근히 대책 없는 행동을 할 때가 많았다.
통화를 마치자 이번에는 이세종 이사가 사람을 보냈다. 사태가 정리되어 가니 잠깐 이야기를 나누자는 것. 그의 방으로 가니 이후의 촬영이나 얼굴을 비쳐야 하는 행사 스케줄이 적힌 스케줄표를 꺼내놓았다.
당연히 모두 참석할 생각은 없다. 계약한 내용이 있으니 지면 촬영 등 홍보용 소스를 만드는 것에는 최대한 협조하겠지만 잡다한 행사는 모두 거절했다.
다행히 그들도 크게 기대는 하지 않았던 듯 강요하지는 않았다. 거기에 모두 참석하면 유명인사가 되기야 하겠지만 그만큼 일거수일투족이 노출되고 행동에 제약이 생긴다.
그것은 당장 유명세나 돈벌이 따위에는 관심이 없는 영민에게 결코 좋은 일이 아니었다. 유명세 따위야 어차피 차후에 일이 벌어지면 자연스럽게 얻게 될 것. 당장은 언젠가 사람들이 떠올릴 수 있을 만큼의 인지도만 만들어놓아도 그것으로 충분했다.
‘난 아직 약하다.’
모든 조정을 마치고 다시 방으로 돌아온 영민의 표정이 차갑게 굳어졌다. 요 얼마간 꽤나 흥이 나있던 것이 사실이지만, 이번 일을 통해 아직 한참이나 멀었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자각한 것이다.
어찌됐든 상황이 잘 정리되기는 했지만 그것은 자신의 힘이 아니었다. 강태성이었다면 아직 자신의 발치에도 미치지 못했을 것이라는 건 그다지 위안이 되지 않았다. 그는 직접 바라보지도 못했던 ‘누군가’와 마주하기 위해서는, 쓰러뜨리기 위해서는 지금의 격차도 결코 크다고 말하기 어려웠다.
‘적어도 A등급 수준까지는 끌어올려야 해.’
무엇이든 뜻대로 하기 위해서는 최소 A등급까지는 수준을 맞춰야 했다. 이제 갓 B등급의 인정을 받았는데 A등급이라니, 누군가 듣는다면 허무맹랑한 이야기라 하겠지만 영민이기에, 게이머이기에 불가능한 이야기만은 아니었다.
‘아이템은 충분하고, 결국은 스킬과 레벨. 둘 뿐이군.’
영민이 잠시 생각에 잠겼다. 강태성의 기억을 뒤져 두 가지를 모두 충족 시킬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
‘결국은 코인이군.’
방법은 있다. 다만 문제는 코인이었다. 일부러 코인을 아끼고 익혀둔 스킬에 최소한의 몇 가지만 더해 레벨을 올려나갔지만 이제는 다시 코인을 투자할 시기가 된 것이다.
그나마도 C등급에서나 써먹을만한 스킬들로 여기까지 온 것은 순전히 영민의 극에 달한 행운 덕분이었다.
모자란 위력과 효과를 숙련도의 상승과 스킬 진화로 커버하고, 그래도 부족한 공격력 따위는 아이템빨로 커버해버리니 굳이 중간 단계의 스킬들을 구입할 필요가 없던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한계였다. 천천히 한다면 5레벨 던전에서도 어떻게든 통할 듯 싶었지만 A등급과 B등급이 뒤섞이는 5레벨 던전부터는 특출난 모습을 보이기 어려운 수준이기도 했다. B등급 중에서는 최강급이지만 A등급에 비해서는 손색이 있으니까.
영민은 순순히 그것을 인정하고 오랜만에 코인 상점을 열었다.
[코인 상점이 열립니다. 즐거운 쇼핑 되시기 바랍니다.]
오랜만에 열어 본 코인 상점에는 꽤나 많은 것들이 새롭게 자리잡고 있었다. 레벨이 오르고 조건을 충족시키면서 여러 가지 아이템들이 해금된 것이다.
눈이 돌아갈 만큼 거창한 것들도 많았지만 영민은 강태성의 기억에 따라 원하는 것들만 딱딱 짚어냈다. 그렇지 않으면 충동구매를 하게 될 것이라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우리가 음식의 맛을 이미 알고 있어도 그것을 또 먹고 싶듯 이미 강태성이 써봤던 기억을 가지고 있더라도 막상 살피다보면 사고 싶어지기 마련일 테니까.
일단 가장 먼저 구입한 것은 주력으로 삼는 성기사 계열의 스킬이다.
방어력을 극대화 시키는 [철벽]과 모든 속성 방어력을 높여주는 [빛의 갑주]를 구입하고 강력한 한 방을 책임질 [빛의 심판]과 항시 공격력을 강화시킬 [빛의 검]을 익혔다. 광역 공격으로는 [홀리 노바]와 [파이어 레인]을 선택했다. 데미지 자체는 ‘마법’계열이 더 우수하지만 홀리 노바의 경우 노바가 퍼져나간 영역을 ‘성역화’ 시켜주는 효과가 있어서 부가 강화효과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거기에 보조 계열로 종합선물세트 같은 버프 능력의 [블레스]와 시간 가속 능력인 [헤이스트], 그리고 [그레이트 힐], [리제너레이션], [하이 큐어]와 같은 회복 능력도 강화했다.
뿐만 아니라 [스킬 강화서]를 구입해 기존의 스킬을 업그레이드하기도 했다. 새로운 스킬, 상위 스킬이라고 꼭 좋기만 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함성 계열 스킬의 경우, 성기사 계열의 [빛의 외침]은 능력 상승량이 적은 대신 주변의 아군까지 함께 강화시키는 방식인데 영민은 그보다 상대의 능력을 하락시키고 자신을 크게 강화하는 지금의 [워 크라이]가 더 마음에 들었다.
때문에 [스킬 강화서]를 구입해 기존 스킬의 등급을 상승시킨 것이다. 스킬 강화에도 ‘성공 확률’이 존재하긴 하지만 영민에게는 전혀 고민거리가 아니었다.
“스킬 강화.”
[스킬 ‘숄더 차지’를 강화합니다.]
[스킬 강화에 성공하셨습니다. 스킬의 등급이 상승합니다.]
숙련도가 초기화 된다는 단점이 있기는 하지만 아무래도 좋았다. 숙련도 쯤이야 금방 쌓을 수 있으니까. 중요한 것은 스킬의 기본 능력이 크게 향상되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영민은 자신의 전투 스타일에 맞춰 새로운 스킬을 익히고, 기존의 스킬을 강화해나갔다.
스킬 하나에 1만~3만 코인 정도씩 하다보니 그 과정에서 아끼고 아껴 만들어 놓은 30만 코인이 몽땅 사라진 것은 상당히 속이 쓰린 일이었지만 28만 코인쯤 사라지고 나자 거의 자포자기 심정으로 코인을 펑펑 써댔다. 굳이 필요는 없으나 스킬과 스킬 사이의 연계를 위해서라며 자잘한 스킬까지 사댈 정도였으니까.
거의 정신줄을 놓고 쇼핑을 완료하자 한 가지 생각이 퍼뜩 머릿속을 스쳤다.
‘아··. 코인 잡아먹는 괴물인 ‘그 기능’이 오픈되면 정말 장난 아니겠구나.’
아직 꽤나 먼 이야기이기는 했지만 벌써부터 눈 앞이 까매지는 기분이었다.
어쨌든 대대적인 스킬 개편은 성공적으로 끝이 났다. 이제 남은 건 실전을 통해 스킬을 몸에 익히는 것 뿐.
스킬을 습득하는 순간 본능적으로 어떻게 사용해야하는지 알 수 있게 된다고는 하지만 아는 것과 행하는 것은 또 별개의 이야기였다.
‘끄응. 3일은 걸리겠군.’
그러나 마음과 달리 곧장 던전에 진입할 수는 없었다. 게이트 키퍼와 약속한 촬영과 행사 일정이 있었으니까.
이왕 이렇게 된 것, 영민은 내친 김에 게이트 키퍼를 통해 매직~레어 등급의 방어구 아이템들을 대량으로 사들였다. 무기나 가슴 방어구, 바지 방어구는 너무 비싸고 그 외에 목이나 팔, 손, 신발 부위 위주로 사들였다.
빠른 처리를 위해 이용한 게이트 키퍼 측에서 의아하게 바라보기는 했지만 ‘대장장이’ 스킬 숙련도 작업을 한다고 하니 큰 의심 없이 수긍했다.
장비를 수리하고 다시 녹이는 작업 또한 숙련도 상승 포인트이기 때문에 철괴를 구입하는 대신 장비를 사들이는 경우가 없지 않은 것이다. 특히 ‘던전에서 나온 철괴’인지 알 방법이 없어 사기를 치는 인간들을 피하기 위해 애초에 장비를 사서 직접 녹이는 일도 많았기에 주목할 거리는 못 되었다.
하지만 영민은 대장장이 숙련도 작업을 하는 대신 그것들을 몽땅 코인 상점에 팔아치웠다. 비효율적이기는 했지만, 당장 던전에 들어가 코인을 모을 수 없는 상태였기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긁어모은 코인을 바탕으로 나뭇잎 모양의 무언가를 두 개나 구입했다.
게이트 키퍼와 약속한 촬영과 몇 가지 행사 참여, 인터뷰를 끝마치자마자 민호와 함께 던전에 들어갔다.
일단은 가볍게 4레벨 던전부터.
던전에 입장하자마자 영민과 민호가 나뭇잎 모양의 아이템을 각각 입에 넣고 가만히 머금었다.
[당신에게 세계수의 축복이 깃듭니다.]
[전신에 활력이 도는 것이 느껴집니다.]
[경험치 획득률이 200%로 상승합니다.]
< 61화 - 경험치 2배 (1) > 끝
ⓒ 갈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