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8화 - 럭키 박스 (2) >
“럭키 박스?”
기뻤지만 한 편으로는 몹시 당황스러웠다. 내심 럭키펀치가 주먹으로만 사용 가능한 것이 불만이라 검으로 사용 할 수 있는 강력한 공격 스킬이 나왔으면 싶었는데 럭키 박스라니? 이름만 봐도 예상과는 다르다는 것쯤은 예상할 수 있었다.
‘박스를 들고 패라는 것도 아닐 테고··.’
행운에서 파생되어 나온 스킬인 만큼 믿어보고 싶은 간절한 마음을 담아, 스킬 설명을 확인했다.
[럭키 박스]
어떤 것이 나올지 모르는 박스. 무엇이 나올지는 오직 당신의 운에 달려있다.
- 소모품부터 장비, 스킬, 소환물, 몬스터에 이르기까지 모든 종류의 것들이 나올 수 있다.
- 운이 나쁠 경우 저주받은 아이템이나 당신을 공격하는 몬스터가 등장할 수도 있다.
- 럭키 박스를 통해 나타난 것은 10분 후 사라진다.
- 숙련도 증가를 통해 지속시간이 증가한다.
- 럭키 박스에서 등장 할 수 있는 등급에는 제한이 없다.
- 사용 마나 : 1,000
‘역시 애매하군.’
애매했다. 럭키 펀치는 ‘공격 스킬’이라는 범주라도 있지, 럭키 박스는 정체를 종잡을 수 없는 스킬이었다.
무엇이 나올지 모르는 상자를 소환한다니? 대체 어떤 시점에서 사용을 해야한단 말인가.
절체절명의 순간 엘릭서라도 튀어나오거나 전투 전 에픽 등급의 아이템이라도 튀어나온다면 모를까 상시로 사용하기에는 문제가 많은 스킬이었다.
몬스터나 저주받은 아이템 따위가 등장할 수 있다는 것을 보면 아예 사용하지 않는 편이 속 편할 지도 몰랐고.
물론 자신의 넘치는 행운을 믿긴 했지만 그때그때 럭키 박스에 맞춰 사냥법을 바꾸느니 애초에 없다고 생각하는 편이 나을 수 있었다.
‘일단은 눈 앞의 일부터 처리해야겠어.’
영민은 속으로 깊은 한숨을 쉰 뒤 당장의 일들을 해결하기 위해 움직였다.
골목에서의 일이 있은 후, 쉽게 진정하지 못하는 민호를 달래고 등급 테스트를 다시 받는 일이다.
민호를 생각하며 가만히 생각하던 영민은 생각을 바꿔 조금 요란을 떨기로 했다.
원래는 조용히 등급 테스트만 받고 빠져나올 생각이었지만 울트라맨 가면을 눌러쓰고, 유령마까지 소환해서 대로를 통해 움직였다. 시선을 끌고 말을 만들어내기 위함이다.
그에게 집중되는 시선이 많을수록 어설픈 수작을 부리기는 더 어려워진다. 영민이 노린 것은 바로 그것이었다.
“마나량 5180. B등급!”
그리고 당당히 얻어낸 B등급 헌터의 타이틀.
그것은 또 한 번의 소란을 만들어 냈다.
영민, 즉 팀 럭키맨이 슈퍼 루키로 불리는 민호와 사실상 한 팀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둘을 영입하기 위한 경쟁이 시작된 것이다.
가장 핫한 슈퍼루키 둘을 동시에 잡을 수 있는 기회. 수많은 길드들이 그들에게 러브콜을 보내왔다. 10대 길드 중에서도 여섯이 경쟁에 끼어들 정도였다.
그 중에는 정상적인 이들도 있었지만 크레이지 독처럼 비정상적인 방법을 통해 족쇄를 채우려는 놈들도 없지않았다.
엄청난 조건을 내걸어놓고 계약서 뒷부분에 장난을 쳐놓는 일 쯤은 예사였고, 뒷조사를 하거나 협박을 일삼기도 했다.
하지만 불행 중 다행인 것은 영민과 민호 모두 약점 잡힐 만한 요소가 없다는 것이다.
두 사람 모두 볼모잡힐 가족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금전적으로 부담을 안고 있거나 장비가 부족한 것도 아니었으니까.
거기다 영민이 B등급 헌터로 이름을 올리면서 강제력을 발휘하기도 어려워졌다. 귀하디 귀한 B등급 이상의 헌터는 협회에서도 주목하기도 했고, A등급 이상이 나서지 않는 이상 적지 않은 피해를 감수해야 제압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게이트 키퍼의 소중한 고객님이니 던전 내부로 따라 들어가서 수작을 부릴 수도 없었고, 그를 지켜보는 시선이 많으니 대놓고 일을 벌이기도 어려웠다. 때문에 며칠 동안 그들을 귀찮게 구는 것은 크게 위협적이지 않은 잔챙이들 뿐이었다.
“게이트 키퍼에서 나왔습니다. 잠시 시간 좀 내어주실 수 있을까요?”
“그러죠.”
그러던 중 게이트 키퍼에서 사람이 찾아왔다.
게이트 키퍼는 명성 그대로, 미믹에 대한 복수를 철저하게 해줬다. 붙잡은 증인을 심문해서 배후를 찾아내고, 길드를 거의 해체 지경까지 몰고 갔다.
그 과정에서 반협박으로 뜯어낸 거액의 배상금 중 일부를 영민에게 분배해주기도 했다. 그 금액이 게이트 키퍼와의 계약 금액보다 높을 정도다.
물론 영민의 재산에 비하면 별 것 아니기는 마찬가지였기에 영민은 오히려 금액을 더 보태 그들과의 계약을 장기로 연장시키는데 써버렸다.
그렇게 계약도 갱신 했겠다, 더 볼일은 없을 텐데 찾아온 것이 의아스럽기는 했지만 거절할 이유는 없었기에 대화를 수락했다.
그러자 그의 입에서 의외의 말이 나왔다.
“저희 이사님께서 뵙기를 청하십니다. 괜찮으신가요?”
“이사님? 흠, 좋습니다.”
게이트 키퍼의 이사가 둘을 만나기를 원한다는 것이다. 영민조차 당황스러웠지만 별로 꿀릴 것은 없었다. 이사쯤 된다면 A등급의 헌터일 터, S등급까지 올라갔던 강태성의 기억이 있으니 과도하게 경직되는 일은 없었다.
민호는 그렇지 않은지 이동하는 내내 발을 동동 굴러댔지만.
“어서 오십시오. 여러분. 소문이 자자한 분들을 뵙게 돼서 영광입니다. 저는 게이트 키퍼의 이세종 이사입니다.”
안내를 받아 게이트 키퍼의 지부장 방으로 들어가자 만남을 요청 했던 이세종 이사가 환히 웃으며 그들을 반겼다.
그러면서 은근히 마나를 내뿜는 것이, 묘한 위압감을 풍겨 모르는 이들은 저절로 위축되게 만든다.
보통이라면 영문을 모르겠지만 영민은 다르다. 마나에 대한 감각이 다방면에서 써먹을 수 있다는 것을 알기에 비싼 코인을 주고 최상급의 관련 스킬까지 구입한 상태였으니까.
“대화하자고 부른 것 맞습니까?”
그것이 불쾌한 영민이 찡긋 인상을 쓰며 대꾸하자 주변을 장악하던 마나의 기운이 한순간 사라졌다.
“불쾌하셨다면 죄송합니다. 너무 반가운 나머지··.”
생글거리며 대답을 하지만 진실이 아니라는 것쯤은 당연히 알고 있었다. 반가워서 마나를 통제하지 못할 정도라면 이사 자리에 앉힐 게 아니라 정신병원에 쳐넣어야지.
“두 번 반가우면 스킬도 날리시겠습니다.”
게이트 키퍼에 악감정은 없지만 첫 인상이 이러니 좋은 말이 나올 리 없었다. 강태성의 기억을 통해 게이트 키퍼가 감정에 휘둘리는 집단은 아니라는 것쯤은 파악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했고. 불편한 속내를 가감없이 내비치자 상대는 의외라는 듯 재미있는 표정을 지었다.
“좋습니다. 제가 무례했던 것을 인정하죠. 솔직히 시험해보고 싶었습니다. 소문의 ‘럭키맨’, 아니 ‘정체불명의 영웅’을 말이죠.”
영민이 등급 테스트를 받으러 가며 선보인 퍼포먼스 덕분에 ‘던전쇼크의 영웅’ 중 정체가 밝혀지지 않은 단 한 명의 사내가 ‘럭키맨’이라는 사실이 들불처럼 번진 상태였다.
가장 많은 사람을 구했던 만큼, 오히려 일반인들 사이에서 더 큰 인기와 관심을 끄는 인물이라 요 며칠 사이 언론사들에서는 확인되지 않은 기사를 쏟아내고 있었고 덕분에 루머와 논란이 있긴 했지만 적어도 ‘정체불명의 마스크맨 가면 영웅 = 팀 럭키맨’이라는 것쯤은 거의 확실해지고 있었다.
더불어 팀 럭키맨이 다수의 인원으로 구성된 것이 아니라 단 한 명으로 구성된 단독 팀이라는 것도. 때문에 럭키맨이라는 팀 명은 영민의 별명 또는 닉네임처럼 불리고 있었다.
이들 역시 그 사실을 확인 한 듯, 아니 아마 확신 이상의 정보를 모았을 것이다. 명실상부 대한민국 10대 길드 중 하나이니까 말이다.
“그래서, 합격입니까?”
“일단은, 그렇습니다.”
영민과 그는 속을 알 수 없는 미소로 서로를 바라보며 자리에 앉았다.
“길게 끄는 걸 좋아하지 않으시는 듯 하니 바로 말하죠. 저희 길드에 들어오실 생각 없습니까?”
이 또한 의외의 질문. 영민이 눈을 가늘게 뜨더니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얼굴 마담을 하라, 이겁니까?”
고작 C등급의 능력으로 스스로 안전지대를 찾아온 이들까지 포함해 무려 일만 명이 넘는 사람들을 구한 영웅이 길드에 소속되어 있다는 것은 이미지 개선에 큰 도움이 된다. 실제 전력으로 투입이 되지 않더라도 말이다.
철저히 돈에 움직이기는 하지만 ‘신뢰’에 대한 부분만큼은 확실한 아이덴터티를 가지고 있는 게이트 키퍼라면 굳이 영민이 필요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영민 하나로 대중적인 이미지까지 구축할 수 있다면 얻을 수 있는 것은 꽤 많을 수 있었다. 게이트 키퍼가 벌이는 사업이 던전을 지키는 일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헌터가 아닌 일반인들을 지키는 경호 사업을 벌이기도 하고, 일반인들도 마나석만 넣으면 쉽게 다룰 수 있는 대몬스터용 호신 무기를 생산하기도 한다. 따라서 그 하나의 영입으로 이미지 재고를 할 수 있다면 충분히 투자를 해볼만한 가치가 있을 터.
영민은 그 의미를 알아채고 팔짱을 끼었다.
“아니라고는 말 할 수 없겠군요.”
이세종 이사도 숨기지 않았다. 그가 둘을 초대한 것은 ‘비즈니스’를 하기 위함이지 속여먹기 위함이 아니었으니까.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거절합니다.”
조건 따위는 들먹일 시간조차 주지 않았다. 영민의 단호한 대답에 느긋함을 유지하던 이세종 이사의 표정에 처음으로 변화가 생겼다.
“기분이 상했다면 미안합니다. 하지만 조건 정도는 들어보고··.”
영민의 매몰찬 답변이 첫인사에 대한 부정적 감정에서 비롯된 것이라 오해한 것이다.
“그런 게 아닙니다. 조건을 백번 들어도 달라질 건 없습니다. 저에 대해 얼마나 알아보셨는지 모르지만 돈은 제법 많은 편이거든요. 저희 둘만으로도 헌팅에 큰 무리는 없고요.”
“······.”
협상에서 가장 어려운 상대가 바로 욕심이 없는 자였다. 그런 상대를 움직이기 위해서는 물질적인 것이 아닌 무언가를 제시해야하는데, 당장 땅에서 솟았는지 하늘에서 떨어졌는지 이전의 행보 따위를 찾기 어려운 두 사람인지라 대안을 내놓기 어려웠다.
“그럼 이건 어떻습니까.”
잠시 숨을 죽이던 이세종이 무언가를 결심한 듯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이번 사건에서 저희가 ‘미믹’을 완전히 해체해버리지 않은 이유, 알고 계십니까?”
“····?”
“대외적으로는 밝히지 않았지만 그들의 뒤에 배후가 있었기 때문이죠.”
미믹에 배후가 있다? 의외의 주장에 영민도 잠시 말을 잃었다. 게이트 키퍼 정도 되는 이들이 그들을 해체 시키지 않고 그저 배상금만 받고 끝낸 것이 조금 이상하기는 했지만 그 이유가 배후 때문일 줄이야?
더구나 이들조차 쉽게 부딪히지 못할 정도라면 그 배후라는 작자들이 10대 길드이거나 그에 준하는 세력이란 뜻이었다.
“아직 조사 중이라 더 자세한 정보는 공유하기 어렵습니다만, 그들이 두 분을 노릴 가능성이 없다고는 말씀 드릴 수 없습니다.”
이렇게까지 나온다면 거짓은 아닐 터, 이세종은 짐짓 무게를 잡으며 마지막 한 수를 던졌다.
“저희가 그늘이 되어드리죠.”
확실히 상대가 10대 길드나 그에 준하는 정도라면 위험할 수 있었다. 던전 내부로 진입하는 것은 게이트 키퍼와의 관계 때문에라도 어려울지 모르나 일상 생활에서 함정을 파고 암습을 가하는 일쯤은 얼마든지 가능한 것이다.
당장 B등급 헌터야 일대일은 필승이고, 둘이나 셋까지도 혼자 물리칠 자신이 있었지만 A등급이라면 이야기가 달랐다. 기본적으로 A등급의 기준이 마나량 1만부터라는 것만 봐도 그랬다.
단순히 마나량으로만 따져도 약 2배 차이다. 다양한 스킬과 축적된 경험, 지식 그리고 커다란 변수가 될 행운을 생각해봐도 위태롭기 그지 없는 상대다. 요행을 바라기에는 체급차이가 너무 컸다.
물론 A등급 헌터라면 10대 길드에서도 한 자리 하는 인사일 테니 그렇게 쉽게 움직이지는 않을 테지만 가능성 자체를 무시할 수는 없었다.
위험하다.
그리고 게이트 키퍼 정도면 나쁘지 않다.
그가 투신할 경우 받아들일 곳이 게이트 키퍼 한 곳만은 아니기에 꼭 여기만을 생각할 필요는 없지만 게이트 키퍼 정도라면··. 안주를 요구하는 생각이 영민의 머릿속을 휘저었다.
결정을 내렸다.
“괜찮습니다. 아무래도 저희에게 길드는 어울리지 않는 것 같습니다. 대신, 이렇게 하면 어떻습니까?”
영민이 고심 끝에 대안을 내놓았다.
< 58화 - 럭키 박스 (2) > 끝
ⓒ 갈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