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7화 - 럭키 박스 (1) >
‘강화’라는 능력은 사실 영민만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일부 ‘대장장이’, ‘공학자’, ‘마법 부여사’ 형태의 고유능력을 가진 이들 중에도 아이템을 강화하는 능력을 가진 이들이 있었고 저마다 다른 대가를 지불하며 아이템을 강화할 수 있었다.
때문에 간간히 경매장에 강화 아이템이 올라오기도 했고, 최상위 대형 길드의 경우 자체 인력으로 묶어둬서 외부에 강화 아이템이 흘러가지 않도록 단속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럼에도 헌터 시장의 대세가 강화 아이템이 되지 못한 이유는 의외로 간단했다.
효율성이 낮다.
여러 종류의 능력이 있지마 그 중에서 확실하게 좋은 카드는 몇 없었다. 직접 장비를 개조해 강화하는 타입들은 실수하거나 조금 잘못 생각할 경우 오히려 장비를 망가뜨릴 위험이 있었고, 강화를 한다해도 한계가 명확했다.
그런 면에서 영민의 강화와 같이 마법적인 효과로 강화를 하는 쪽은 상황이 나은 편이지만 ‘파괴 확률’이 너무 높았다.
낮은 단계의 강화야 높은 확률로 성공한다지만 그 만에 하나라도 적용되서는 곤란한 것이 상위 헌터의 세계였다.
그만큼 장비 하나하나가 값 비싸고 희귀성이 높기 때문이다. 언제고 대체할 장비가 많은 B등급 이하의 헌터들이야 모험을 걸어볼만 했지만 그들은 아니었다. 목숨과도 같은 장비를 높은 파괴 확률에 맡기는 도박 따위는 상상도 할 수 없었다.
미친 척 도전하는 이들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대부분 큰 손해를 보거나 장비를 구할 돈이 없어 수준에 맞지 않는 장비를 들고 앵벌이에 나서는 비참한 결과를 맞이하니 강화 능력자 개인이 일확천금을 노리고 강화를 시도하거나 길드 차원에서 투자하듯 강화에 도전하는 경우가 아니면 상위의 강화 아이템이 나타나기는 어려웠다.
‘이걸로 작업만 해도 떼 돈을 벌텐데.’
반면 영민은 일정 수준까지 장비가 파괴되거나 다운 그레이드 되지도 않고 한 발 더 나아가도 실패하는 꼴을 보는 것이 더 어려울 지경이니 되팔이만 해도 무지막지한 돈을 벌 수 있을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두 가지 이유에서 잠시 보류했다.
첫 번째는 강화를 할 경우 코인 상점에 판매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내구도가 닳는 것 정도까지는 상관이 없었지만 강화나 개조, 마법 부여 따위의 행동을 하는 순간 판매 불가로 바뀌는 것이다. 그렇다면 사람들에게 판매를 해야한다는 소리인데 그 또한 문제가 있었다.
바로 날파리가 많이 꼬인다는 것이다.
자잘한 하위 등급 아이템이야 강화를 해봤자 얼마 돈이 되지 않았고, 영민이 만족할 만한 가치를 지닌 아이템은 세상에 내어 놓는 순간 소란이 일어날 것이 분명했다.
게다가 돈을 벌자면 그런 것들이 꽤나 많아야 할텐데, 유통의 흐름을 추적하면 그것들이 영민에게서 나왔다는 것은 어렵지 않게 파악 할 수 있을 터였다.
그것은 곤란했다.
어지간한 B등급 헌터들은 상대도 되지 못할 만큼의 능력을 갖췄지만 그 정도로 먹음직스런 먹잇감으로 보인다면 A등급 이상의 헌터들이 끼어들 가능성이 높았다.
오롯이 혼자일 수 있는 훗날의 일이라면 모를까, 지금은 시기상조였다.
때문에 영민은 일단 강화 능력을 감추고 민호와 둘이서만 써먹기로 했다.
어차피 돈이야 썩어날 만큼 많았고, 욕심은 기이할 정도로 적었다. 남들처럼 아이템이나 스킬북을 구입하는데 전재산을 탕진할 필요도 없다.
단 둘이서 4레벨 던전을 터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양의 코인이 쏟아졌고 그 과정에서 얻는 아이템들까지 팔아치우면 제법 괜찮은 장비나 스킬을 몇 개 쯤 구입할 수 있었기 때문에 당장 돈이 급할 이유는 없었다.
차라리 숨기고 있다가 제대로 된 파티가 꾸려지면 그때 강화 좀 해서 돌리지 뭐.
그렇게 마음을 먹고 다시 날뛰기 시작했다.
“꼬리가 붙었다.”
위력 시험을 성공적이었다. 파츠별로 강화된 장비들은 오묘한 시너지를 이끌어내며 두 사람의 전투능력을 극적으로 끌어올렸다. 100레벨 보너스로 모든 스텟이 크게 상승한 영민은 말할 것도 없고 민호의 경우도 강화 과정에서 추가로 붙은 체력과 민첩 스텟 덕분에 마력에 올인한 것에서 오는 치명적인 단점을 어느 정도 커버해준 것이다.
특히나 영민은 능력치 상승을 고려하더라도 생각보다 몸이 무척이나 가벼워서 몬스터를 몰살시키고 난 뒤 휴식도 없이 다름 무리를 몰고 올 정도였다.
그렇게 가뿐하게 던전을 클리어하고 나왔을 때, 잔뜩 예민해진 영민의 감각에 무엇인가가 걸렸다.
“뒤 돌아보지마.”
민호에게 주의만 준 채로 일부러 골목 쪽으로 움직였다. 상대가 나타나기 쉽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김민호씨 되십니까?”
“예? 그런데요···.”
예상대로, 아무도 없는 골목에 들어서자 약 1분 뒤에 누군가가 접촉을 해왔다.
“C등급 헌터가 되신 것 축하드립니다. 전 이런 사람이었다.”
사람 좋은 웃음을 짓는, 그러나 그 속에 오만함을 숨긴 남자가 명함을 건네는 모습에 영민은 혹시나 하고 긴장했던 자신이 우스워졌다.
“크레이지 독?”
길드의 스카우터였다.
“서울 쪽에서 활동하고 있죠. 이름은 들어보셨을 것 같은데?”
“아, 네. 들어본 적 있어요.”
대답하는 민호의 표정이 어째 떨떠름했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크레이지 독에 대해서는 좋은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으니까.
“그럼 한번 찍은 먹잇감은 결코 놓치지 않는다는 소문도 들어보셨겠군요.”
“네, 뭐··.”
어째 대화가 흘러가는 것이 이상하다. 나서서 제지해야하나? 영민이 잠시 고민하는 사이, 놈이 본격적으로 이빨을 드러냈다.
“저희 길드에 들어오시죠. 미믹 같은 지잡 길드 따위에 곤란한 일을 겪는 일은 없을 겁니다. 우리는 동료가 곤란한 꼴은 못 보니까요.”
“그건 좀··.”
민호가 거부의 뜻을 밝히자 이번엔 혜택을 들고 나왔다. 각종 장비 지원과 던전 입장 및 등급 상승을 위한 아낌없는 지원, 그리고 억 단위의 연봉이다.
일반적인 C등급 헌터에게는 과분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제안이지만 이미 +5강 풀세트를 맞추고 수익의 20%씩 정산을 받아 억 소리나는 수입을 올린 민호에게는 택도 없는 소리였다.
물론 장비 값을 갚는 명목으로 수중에 들어온 돈은 거의 없었지만 말이다.
“말씀은 감사하지만··.”
때문에 민호는 몇 번 그랬던 것처럼 정중하게 거듭 거절하며 자리를 뜨려했다.
“거참, 등급 좀 오르니까 자기가 뭐라도 되는 줄 아나.”
“····.”
마치 들으라는 듯, 대 놓고 떠드는 놈. 가입을 권유할 때는 언제고 돌아서는 순간 뒷말을 늘어놓았다.
그 정도는 참을 수 있다. 시기든 질투든 아니꼬와서든 충분히 할 수도 있는 말이니까. 그러나 그 다음 말이 두 사람의 발목을 잡았다.
“본인의 선택으로 주위 사람이 힘들어 질 수 있다는 생각은 안 해봤나?”
“뭣?”
민호가 굳은 표정으로 놈을 돌아봤다.
그러자 걸렸다는 듯 팔짱을 끼고 놈이 이죽거렸다.
“요즘 세상이 흉흉해서 말이야. 하룻밤 사이에 부모든 친구든 죽어나가도 몬스터가 그랬나보다 한단 말이지?”
명백한 협박.
몬스터에게 눈 앞에서 가족을 모두 잃은 민호에게 이 따위 소리라니?
놈은 해서는 안 되는 말을 지껄였다. 협박을 해서라도 강제로 길드에 들어 앉히겠다는 소리. 그러나 상대를 잘못 골라도 한참 잘못 골랐다.
“이 새끼가!!”
민호의 양손에서 불꽃과 번개가 치솟았다. 분노를 참지 못하고 마력을 폭사했다.
“그 알량한 실력으로··. 헛?!”
하지만 그 역시 B등급의 헌터. 민호에게 무력함을 느끼게 해주겠다는 듯 손을 들어 마법을 흩어버리려 했지만 순간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이미 민호 또한 규격 외의 존재였으니까.
민호가 천재성을 발휘한 것은 단순히 계산 영역만이 아니었다. 어쩌면 그 이상으로 뛰어난 것이 바로 ‘마나 컨트롤’. 본래의 마법이 요구하는 최소치보다 많으면서 최대치를 넘기지 않는 마나량의 완급조절은 같은 마법도 다른 능력을 발휘하도록 만들었
다.
거기에 +5강까지 막강한 강화 장비로 무장하기까지 했으니 동급의 헌터들과 다른 위력인게 당연하다.
그것을 알 리 없는 놈은 당당히 마법을 상쇄하려다가 그대로 마법을 뒤집어 쓰고 말았다.
“아, 젠장.”
골목의 한쪽 벽이 무너지고 폭음이 주위를 뒤흔들었다. 순간의 분노를 참지 못하고 과하게 손을 쓴 것. 그나마 민간인이 말려들지 않은 것이 다행이었다.
던전이 아닌 공간에서 헌터들 간의 다툼도 문제였지만 민간인을 해할 경우 처벌의 수위가 크게 상승하는 것이다.
“으윽. 이 새끼가.”
그때 폭염 속에서 거친 목소리가 들려왔다.
마지막 순간 방패가 되어줄 무언가를 구현해 낸 것이다. 급하게 만들어내긴 했어도 B등급인 터라 치명상은 면한 듯 했다.
“조져서 질질 끌고 가 주지.”
먼지를 잔뜩 뒤집어 쓴 놈이 빠르게 손을 놀려 공격 수단을 구현해냈다.
마나로 이루어진 새의 형태.
구현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자폭하는 구현체였다.
“마나 웹! 포그!”
그것을 아는 건지 모르는 건지 민호는 감각적으로 그것을 막아냈다. 마나로 된 그물을 펼쳐 마나 새를 요격하는가 하면, 놈의 주위로 안개를 펼쳐 시야를 제한하고 다음 공격을 위한 환경을 만들었다.
포그가 깔린 지역에 전격 마법이 떨어지면 위력이 증폭된다는 것쯤은 기본적인 사항이다.
“젠장!!”
덕분에 그 역시 준비하던 능력을 취소하고 재빨리 불꽃을 구현해냈다. 주변의 수분을 날려버리기 위함이다.
하지만 그 순간, 그의 발밑에서 솟구친 것은 전격이 아니라 질긴 나무줄기였다.
속박 마법 바인딩. 포그를 깐 것은 그가 불꽃을 일으키게 만들기 위한 함정이었다.
화르르륵!
“끄아아악!!”
몸부림을 치던 놈으로부터 불꽃이 옮겨 붙었다. 서로 꼬이며 더욱 질기고 단단해진 나무줄기가 불타오르며 더 강하게 놈을 옥죄였다.
“빌어먹을 새끼들아!!!”
그 순간 강렬한 마나가 폭발했다.
동시에 놈의 몸 위로 거인의 모습이 나타났다. 필살기라도 되는 듯, 강대한 마나를 내뿜으며.
보유한 마나 만큼이나 ‘상상력’이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는 구현화계 능력으로 놈은 ‘강림’이라는 수단을 택한 듯 보였다.
“럭키 펀치!”
그 심판과도 같은 거인의 주먹이 내리꽂히는 순간, 영민이 뛰어들어 주먹을 마주 내질렀다.
쩌적!
거인의 주먹이 박살 났다. 경악으로 물드는 놈의 목에 검 끝을 들이밀었다.
“미친 개한테는 매가 약이라고 했지. 미친 개고 똥 개고 간에 덤비고 싶으면 덤벼봐. 누가 후회를 하게 될지 알게 해줄 테니까.”
“으어어··.”
강림이 깨진 여파로 반쯤 정신을 놓은 놈에게 한 마디 던져주고 영민과 민호가 빠르게 자리를 피했다. 걸리면 골치가 아파진다.
다행히 놈이 미리 손을 써두었던 것인지 한바탕 소란에도 한 동안 경찰이나 다른 누군가가 나타나지 않았다.
민간인이 휘말리지 않았으니 걸렸다해도 까짓거 벌금 좀 물면 될 일이지만.
“형, 미안해요.”
“미안은 무슨. 그런 놈 가만히 두면 내가라도 두들겨 팼을 거다.”
“하지만··.”
“하지만은 무슨. 걱정 하지 마. 같은 B등급한테는 떼로 몰려와도 질 생각 없으니까.”
“네? 형 혹시··.”
“미처 생각 못하고 있었는데, 마나량이 5천을 찍었네? 나도 아무래도 능력 테스트 다시 받아야 할 것 같다.”
“오오!!”
뜬금 없지만 영민이 B등급 조건을 달성했음을 고백했다. 그 자신조차 미처 인식하고 있던 것. 레벨이라는 기준이 있는 만큼 등급이 올랐다고 특별할 것은 없었지만 딱 한 가지 변한 것이 있었다.
바로 스킬창. 럭키 펀치 뿐이던 탭에 한 가지 스킬이 더 추가 되었다.
럭키 박스.
그것이 새로운 스킬의 이름이었다.
< 57화 - 럭키 박스 (1) > 끝
ⓒ 갈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