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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행운 MAX-54화 (54/177)

< 54화 - 슈퍼 루키 (4) >

“너, C등급이 아니구나.”

그러나 임승재의 기대와 달리 미믹 길드의 이사 중 한 명인 이철훈은 쉽사리 움직이지 못했다. 고작 C등급에 불과한 민호의 마법 센스도 놀라웠지만 자신의 검을 수월히 막은 영민에 대한 견제 때문이다.

고유 능력이라는게 천차만별이라 잠깐 사이 상대의 능력을 완전히 파악 할 수는 없었지만 조작계나 부여계, 변화계 따위로 수작을 부리거나 강림 계열로 순간 능력을 강화한 것 같아보이지도 않았으니까.

그렇다면 강화계라는 것이 가장 유력한데, 모든 고유 능력의 계열 중에 등급 간 힘의 차이가 가장 여실히 드러나는 것이 바로 강화계였다.

다른 계열이야 활용 능력이나 능력의 종류에 따라 등급 차이를 극복하거나 어떻게든 변수를 만들 수 있지만 강화계 만큼은, 등급 차이가 절대 기준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한 껏 힘을 끌어올린 공격이 어렵지 않게 막혔다? 상대가 등급을 속이고 있다는 이야기밖에 되지 않았다. 혹은 아직 갱신을 하지 않았거나.

“그래서 기고만장 했었군.”

조금 전 몰이를 당한 기억에 빠득 이를 갈았다. 자신들도 비슷한 짓을 하기는 했지만 이 정도로 많은 수를 끌어오지는 않았다.

물론 그들이야 적당히 구해주고 등골을 뽑아먹을 생각이니 그런 것이지만 사람은 자기 기준으로만 생각하기 마련이었다.

“이제부터 경험의 차이가 뭔지를 보여주마!”

샤르르륵!

달려드는 이철훈의 행동이 기묘했다. 검 끝을 땅에 향하고 자세를 낮춰 달려오는 것.

그러나 영민의 뒤에는 산전수전공중전까지 다 겪어본 강태성의 기억이 도사리고 있었다.

그따위 같잖은 짓 따위는 0.1초도 안 되서 간파 당했다.

“먹어라!”

“너나 쳐 먹어라!”

마지막 순간 검을 브레이크처럼 땅에 박았다가 떨치는 이철훈. 치졸한 모래 뿌리기가 시전되는 순간, 영민의 손에서도 방패가 날았다.

“컥!”

놈이 대경하며 발버둥 쳤지만 투척 스킬까지 펼친 채 가로로 눕혀 던진 방패는 사정없이 복부에 틀어박혔다. 강화계가 아니었다면 허리가 잘려 두 동강이 났을 위력.

영민은 꺽꺽 거리며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는 놈에게 달려가 그대로 턱을 차올렸다.

녀석이 눈을 까뒤집고 뒤로 넘어갔다. 곧 정신을 차리겠지만 근접 전투에서 한 순간 정신이 사라졌다는 것은 죽음이라는 단어와 매우 가까워지는 일이었다.

“삼단 베기.”

실제로 영민은 그대로 놈의 허벅지 근육을 잘라버렸다. 꽤나 질 좋아보이는 갑옷으로 가리고 있긴 했지만 이쪽은 무려 레전드 등급의 무기다. 두부 자르듯까지는 아니지만 빵 자르는 정도 느낌으로 파괴할 수 있었다.

“끄아아악!!”

그대로 다리를 완전히 잘라 버릴 수도 있겠지만 영민은 여지를 두었다. 용서하기 위해서? 그럴 리가. 예전의 영민이었다면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게이머의 정신과 강태서의 기억을 받아들인 지금은 달랐다.

“끄윽··!”

고통에 몸부림치던 이철훈이 무언가 생각난 듯 주머니를 뒤져 유리병 하나를 꺼냈다. 외상 치료에 탁월한 체력 회복 포션이다. 그러나 마개를 따보기도 전에 영민에게 강제로 압수당했다.

“오호, 중급이네?”

아이템 창을 확인하니 무려 중급의 포션이었다.

찰랑거리는 포션을 품에 넣은 영민이 그들을 보며 씨익 웃었다.

“가진 거 다 내놔.”

어느새 분풀이 하듯 민호가 다져놓은 임승재까지 꿇어앉히고 영민이 내뱉은 첫마디였다.

마치 애초에 자신의 것이었다는 듯 당연하게 요구하는 모습에 이철훈은 고통마저 잠시 잊을 정도였다.

“그럼 살려주지.”

이미 전투력을 상실한 두 사람은 눈 앞을 왔다갔다 거리는 영민의 검 끝에 뭐라 반발을 할 수도 없이 눈알만 굴렸다.

“정말··입니까?”

역시 목숨보다는 돈을 잃는 것이 낫다. 당장 착용한 장비만 한 두 푼이 아니긴 하지만 목숨을 구할 수 있다면야.

“믿기 싫으면 믿지 말던가.”

까딱거리던 검이 미간 위에 멈추는 순간, 이철훈이 고통도 잊고 낑낑대며 장비를 벗기 시작했다.

전혀 대항의 의사가 없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무기부터 끌러놓고, 방어구며 악세서리 따위를 하나하나 쌓아놓은 뒤 빈 두 손을 들어 항복의 의사를 비쳤다.

임승재 역시 마찬가지다. 놈이 가진 거라고 해봐야 별 것이 아니긴 했지만 꼬깃꼬깃한 쌈짓돈까지 몽땅 추려 내놓았다.

“장난하냐?”

그 모습을 무심히 지켜보던 영민이 툭 하고 말을 던졌다. 얼음 화살 같은 그 눈빛과 말에 이철훈이 움찔 몸을 떨더니 주섬주섬 숨겨 가지고 있던 작은 주머니 하나를 꺼내놓았다.

영민과 민호에게 ‘인벤토리’가 있듯 그에게도 공간 확장 능력이 담긴 주머니가 있던 것이다.

주머니 자체로도 워낙 비싼 탓에 임승재 따위의 인물은 구경하며 침을 흘리는게 전부이지만 무려 B등급 헌터이자 길드에서 이사 씩이나 되는 직함을 맡고 있다보니 그는 하나 챙겨가지고 있었다.

“이게 전부입니다. 진짜입니다!”

“그래. 수고했다.”

서걱!

그가 비로소 모든 것을 내놓은 순간, 정신이 아득해지고 시야가 암전되는 것을 느꼈다.

모든 방어구가 사라진 그의 육신이 형편없이 쓰러져 싸늘하게 식어갔다.

“히익!!”

반신반의하기는 했지만 이렇게 쉽게 죽일 줄은 몰랐는지 임승재가 기겁을 했지만 영민의 개의치 않았다.

그들이 그 동안 해왔던 짓을, 아니 그건 아무래도 상관 없다.그러나 자신에게 한 짓을, 하려한 짓을 생각하면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사, 살려줘. 우, 우, 우리 친구 잖아?”

“친구? 그렇군. 그래. 그럼 우리 오랜만에 우정을 나눠볼까?”

영민은 웃는 낯으로 주먹질을 하기 시작했다. 그 시절 그가 당했던 것처럼.

죽이지 않으려면 힘 조절을 위해 꽤나 힘을 빼고 때려야했지만 영민은 그를 위해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코인 상점에서 [힘 조절] 스킬을 구입한 것이다.

언제든 온오프 할 수 있는 이 스킬을 사용하는 중에는 어떠한 데미지로도 상대를 죽일 수가 없었다. 체력 잔량을 훨씬 오버하는 데미지를 입혀도 상대는 ‘1’의 체력을 유지한다.

보통은 테이밍 스킬 같은 제한적인 능력을 사용할 때 이용하지만 영민은 그것을 더한 고통을 주기 위해 사용했다.

덕분에 힘조절을 하지 않고 힘껏, 과거의 울분과 기억까지 모두 홀가분하게 날려버릴 수 있었다.

“··사··려··져···.”

잠시 후 임승재는 침과 눈물과 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누군가 멀리서 주먹만 들어보여도 경기를 할 만큼 커다란 정신적 충격은 덤이었다.

“···으어?”

그 다음 영민은 이철훈에게 빼앗은 아이템 중 포션 하나를 꺼내 그를 치료했다.

설마 치료하고 또 패려는 건가? 임승재의 눈에 절망이 깃들었다.

“마지막 기회를 주지.”

“······?”

“우탕과 싸워 이기면 살려주겠다.”

“··!!”

그게 아니었다. 그들이 그동안 해왔던 것을 되갚아주려는 것이다. 그렇게 선언한 영민은 당장이라도 정신줄을 놓을 듯한 임승재를 놔두고 민호와 함께 자리를 떠났다.

그리고 잠시 후, 유령마가 우탕 한 마리를 끌고 놈의 앞으로 달려왔을 때 자신의 무력함을 뼈저리게 느끼며 우탕에게 산채로 뜯어 먹혔다.

“괜찮니?”

모든 상황을 정리한 영민이 슬쩍 민호를 바라보았다. 아직 어린, 헌터 생활이 얼마 되지 않은 민호에게는 상당한 충격이었을 테니까.

“그럼요. 뭐 그런 걸 가지고.”

그러나 민호는 생각 이상으로 강했다.

정말로 그런 것일까, 무서운 것을 속으로 숨기고 강한 척 하는 것일까. 잠시 생각하던 영민은 진짜 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민호가 각성했던 그날, 부모님이 몬스터에게 죽임을 당하는 것을 직접 목격했고 목숨을 구해주는 대가로 돈을 받아 챙기던 헌터에 분노하고 절망했다는 이야기가 떠오른 것이다.

“그보다 형, 여기 채집도 할 거죠?”

씁쓸하고 미안한 생각에 고개 젓던 그때, 민호가 은근하게 물어왔다. 아무래도 얼른 능력 테스트를 다시 받아 C등급으로 인정을 받고 싶은 모양이다.

“건너 뛸까?”

“진짜요? 그래도 되요?”

영민이 피식 웃으며 대꾸하자 민호가 잔뜩 흥분해서 발을 동동 굴렀다.

숲 지형이라 채집물이 꽤나 있을 것 같기는 하지만 한 번쯤은 넘기지 뭐.

영민은 과감히 채집 과정을 스킵할 것을 선언하고 곧장 남은 우탕들을 찾아 나섰다.

민호가 C등급에 오르기는 했지만 전투의 방식은 변하지 않았다. 정말 위력이 있고 넓은 범위를 타격 할 수 있는 4써클 마법은 40레벨에 익힐 수 있기 때문이다.

우탕이 마법 공격에 약하다고는 하지만 어설픈 공격으로 영민이 몰아서 상대하던 중 한 마리라도 시선이 잘못 끌리면 목숨이 오락가락 할 수 있었다.

덕분에 영민은 37레벨까지 가만히 앉아 손가락만 빨면서 수월히 올릴 수 있었다.

그리고 드디어 새로 얻는 능력치는 마력이 아닌 다른 스텟에 투자하기 시작했다.

*     *     *     *     *

마지막 우탕 한 마리까지 모조리 도륙하고 나서 귀환한 팀 럭키맨은 협회직원에게 다른 두 팀의 인원이 모두 전사했음을 전한 뒤 곧장 능력 테스트를 받기 위해 지부를 찾았다.

미믹의 두 팀, 게다가 B등급 이사 한 명까지 끼어있는 팀이 전멸했다는 사실에 한바탕 소란이 일기는 했지만 다행히 발목을 잡히지는 않았다. 약간의 진술을 하기는 했어도 안에서의 일을 짐작 할 수 있는 방법이 없는데다가 B등급을 포함한 헌터 14명을

그들이 어떤 식으로든 해쳤다는 것이 말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때문에 미믹 길드에서 사람을 파견하겠다는 뜻을 전했어도 그들이 도착하기 전에 빠져나올 수 있었다. 그들이 도착한다면 어떤 난리가 나고 곤욕을 치르게 될지 협회 직원들도 알기 때문이다. 그것은 자신들이 골치 아파지는 일이기도 했다.

“마나량 2000. C등급!”

“아자!!”

그리고 마침내, 민호가 C등급의 헌터로 당당히 인정을 받게 되었다.

스텟 분배를 통해 딱 맞춘 2000이긴 했지만 아무렴 어떠냐. 중요한 것은 등급 기준 안에 들어왔느냐의 여부일 뿐이다.

“E등급에서··. C등급이 되셨다고요?!”

민호가 등급 갱신을 위해 서류를 제시하자 또 한바탕 예고 된 소란이 일어났다.

등급 판정을 받은지 한달되 되지 않아 한 등급도 아니고 무려 두 등급을 뛰어넘은 것이다.

최초 판정에서 해당 등급의 끄트머리에 걸쳐있다가 우연한 기회에 빠르게 성장한 경우는 더러 있지만 두 등급을, 이렇게 빠르게 올린 케이스는 아마 전국, 아니 전 세계에서 처음일 터였다.

이게 뭐지? 진짜인가? 접수계 직원이 진짜 갱신을 해줘야하는지 망설이며 시간을 끄는 동안 협회의 지부장에게 보고가 올라가고, 유력한 스카우터들에게 연락이 돌았다. 순식간에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모험 길드의 스카우터입니다. 잠시 시간 좀 내어주실 수 있을까요?”

“강철대오입니다. 얘기 좀 가능할까요?”

이번 던전 쇼크로 인해 C등급 헌터가 제법 많이 늘어나기는 했지만 여전히 C등급은 고급 인력이고, 그 중에서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는 이들은 ‘루키’로서 가치가 있었다.

하물며 E등급에서 C등급으로 고속 성장을 한 인원이라면, 더 성장할 가능성이 있다면 그냥 루키도 아니고 ‘슈퍼 루키’다. 혹시나 어떤 노하우 같은 것이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라도 섭외 대상 1순위가 될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민호의 클래스는 마법사. 마력 올인이라는 위험 요소를 갖고 있는 것은 흠이 되지 않을뿐더러 굳이 말하지 않는 이상 단점으로 인식하지도 않을 터였다.

영민은 그 꼴을 한 발 떨어진 상태로 가만히 지켜보았다.

아직 세상 물정을 모르는 민호가 그들 중 누군가의 꾀임에 빠져 품안을 벗어날 위험이 있었지만 그 또한 개의치 않겠다는 듯 지켜보기만 했다.

말도 안되는 곳에 들어가서 죽어버리지만 않으면 그걸로 됐다. 민호를 성장시킨 것은 당장 그에게 무언가를 얻기 위함이 아니라 나중을 위한 포석 같은 것이었으니까. 4레벨 던전을 독식하려던 계획이 틀어지기는 하겠지만 아주 약간 시간이 더 걸릴 뿐

이다. 변하는 것은 없었다.

그러기를 한참.

스카우터들과 실랑이를 벌이던 민호가 그들을 물리치더니 다시 접수계로 다가갔다.

“팀 탈퇴 신청 할게요.”

팀 럭키맨에서 탈퇴할 의사를 내비쳤다.

“그리고 신규 팀 생성 신청도 바로 되죠?”

영민이 사전에 이야기했던 대로, 1인 팀을 등록하고 그를 향해 찡긋 윙크를 날렸다.

< 54화 - 슈퍼 루키 (4) > 끝

ⓒ 갈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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