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3화 - 슈퍼 루키 (3) >
정작 중요한 두 명이 사라졌지만 영민은 서두르지 않았다. ‘원시의 광기’가 발동했다는 것은 우탕의 체력이 10%이하로 떨어졌다는 것. 굳이 다시 체력을 회복하도록 놔두기보다 이참에 잡아 경험치는 먹는 쪽을 택했다.
일단은 한 마리. 속사와 연사 등 궁술 스킬을 마구 날려 한 놈을 잡자마자 귓속말을 날렸다. 귓속말 혹은 메시지 기능이 없는 줄 알았으나 같은 ‘게이머’ 능력을 가진 이에게는 사용이 가능하다는 것을 파악한 덕이다.
[권영민 : 어때, 경험치 들어와?]
[김민호 : 네. 형. 들어와요.]
영민은 이 정도 거리까지는 경험치 분배가 이루어진다는 것을 확인하고 나머지 놈들을 처리했다.
전멸한 미믹 길드원들이 해치운 다섯 마리를 제외하고도 아직 서른 가량의 우탕이 남았지만 영민의 상대는 아니었다.
“광폭화.”
스스로에게 온갖 버프를 건 영민은 마지막으로 광폭화까지 걸어 모든 능력과 공격력을 극대화시켰다.
재미있는 것은, 광폭화로 인해 하락한 방어력 따위는 다른 방어력 향상 스킬로 인해 전혀 영향을 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아니, 오히려 광폭화로 인해 하락한 방어력보다 다른 스킬들로 상승한 방어력이 더 높았다. 거기에 온갖 버프와 공격력 증가 스킬까지 더해지니, 영민은 그야말로 괴물이 되었다.
“크허헝!”
아예 워 크라이까지 내뱉었다. 자신보다 수준이 낮은 적의 능력치를 하락시키고, 차이가 클 시 경직 또는 스턴 효과까지 주는 함성 스킬.
괴물보다 더 괴물 같은 그 흉성에 우탕들의 기세가 일시적으로 수그러들고 몸이 축 늘어졌다.
그 사이로 영민이 덤벼들었다. 덩치가 작은 놈이 3m는 되다보니 자살하러 들어가는 꼴 같아 보였지만 결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영민이 검을 휘두를 때마다 우탕의 가죽이 크게 베이고, 제대로 걸릴 경우 팔 한쪽이 날아가기도 했다. 반면 우탕의 공격은 방
패에 가로막히거나 오히려 힘을 쓴 영민에 의해 튕겨져 나가기도 했으니 학살에 다름 없었다.
마치 벽을 때리는 느낌. 주먹질을 하던 우탕들이 본능적인 두려움에 대경하며 물러서보지만 이미 가슴 깊숙한 곳까지 영민의 검이 파고드는 중이었다.
“휘유!”
끌고 왔던 우탕들을 모조리 도륙한 영민이 깊은 숨을 내쉬었다. 숨을 고르고, 무두질을 하며 몇 분을 보내자 리바운드가 찾아왔다. 10분이 지나고 광폭화의 후유증이 찾아온 것이다.
모든 능력치가 30% 하락하니 몸이 물먹은 솜 같아졌다. 온갖 버프 덕분에 여전히 움직임은 날렵했지만, 상실감 때문인지 적응하기는 쉽지 않았다. 이 상태에서 전투를 벌인다면 제 실력을 내기 어려울 듯 싶었다.
때문에 영민은 천천히 주변을 정리하고 유령마에 올라 그들을 느긋하게 쫓기 시작했다.
시간은 자신의 편이었다.
‘쳇, 알아 차렸나.’
표식을 따라 이동하기 시작한지 1분도 되지 않아 그들의 위치를 훤히 보여주던 표식이 사라졌다. 자신들도 사용하던 방식인 만큼 알아차리고 해제한 듯 했다.
아쉽기는 하지만 상관은 없다. 기동력이라면 자신 있는 영민이고, 상대는 우탕을 피해 다니느라 행동 반경이 제약될 테니까.
샅샅이 훑어서 찾아내닌 것은 시간 문제다.
일단은 그들이 있었던 위치부터. 유령마가 날 듯이 나무 사이를 스치며 목적지로 이동했다.
‘없군.’
그러나 그들도 바보는 아닌 모양이다. 표식이 있던 자리에 도착했지만 흔적조차 남기지 않고 달아난 상태였다.
어떻게 할까. 코인 상점에서 추적 스킬이라도 하나 구입해야하나? 추적 스킬은 은근 비싼데··.
잠시 고민하던 영민은 수색꾼을 풀기로 결정했다. 바로 이동속도 상승효과를 부여한 미니 골렘들. 우탕에게 걸리면 여지없이 박살이 나고 말겠지만 몸집이 작으니 잘만 숨어 이동하면 걸리지 않고 숲의 곳곳을 누빌 수 있을 것이다.
“미니 골렘 소환. 부여 : 민첩.”
동시에 십여기의 미니골렘이 몸을 일으켰다. 추노꾼처럼 전방위로 퍼져나가 사람의 흔적을 찾았다.
“찾았다.”
그리고 잠시 후, 미니 골렘 중 하나가 사람이 이동한 흔적을 찾았다.
‘급했나보군.’
처음에는 흔적을 지우며 움직였지만 어느 순간부터 오직 속도를 내는 것에만 집중한 듯 했다. 들켜도 상관없다는 듯, 오직 속도에 집중해 급히 이동한 흔적이 보였다.
‘이상한데.’
시야 공유를 통해 그것을 확인하고 따라 움직이던 영민의 표정이 굳어졌다.
아무래도 이상한 것이다. 마음이 급한 것은 이해하지만 함정이 아닌가 생각 될 정도로 흔적이 적나라하다. 그들이 함정을 파봤자 크게 위협으로 다가오기는 어려웠지만 함정을 만들거나 매복을 하기에도 좋은 지형이 아닌데다 그렇다고 그들의 방향이 귀
환석을 내놓을 보스의 영역으로 향한 것도 아닌 것이다.
‘설마 이 방향은··.’
순간, 영민의 머릿속을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설마하긴 했지만 그림이 얼추 맞아 떨어졌다. 그때, 쐐기를 박는 메시지가 날아왔다.
[김민호 : 형, 이쪽으로! 빨리 좀!!]
“젠장.”
설마가 현실이 되는 그 짧은 외침에 영민은 혼령질주까지 발동하며 내달렸다. 민호의 위치야 데려다 준 유령마가 알고 있으니 방향이 틀어질 일은 없다.
가로막는 모든 장애물들을 통과해 최단 거리로 달리자 몇 분이 되지 않아 민호가 있는 곳에 도착했다.
“빌어먹을 새끼야. 내가 탐지 능력이 있는 건 몰랐지?”
“······.”
그리고 최악의 상황이 벌어져 있었다.
“자, 전세 역전이다.”
이미 민호가 제압되어 상대가 목을 틀어쥐고 있는 것이다. 가뜩이나 육체 능력이 떨어지는 민호인데 B등급 강화계 헌터에게 잡혔으니 살짝만 힘을 줘도 목이 부러져 죽게 될 터였다.
“형, 미안해요.”
숨이 막히는지 컥컥 대며 힘겹게 말을 하는 민호. 영민은 그들을 가만히 바라보며 어떻게 민호를 빼내야 할지 머리를 굴렸다.
“눈알 굴리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린다. 새꺄. 일단 꿇어!”
잔뜩 흥분한 임승재가 콧김을 뿜어대며 위협하자 리더가 호응하듯 민호의 목을 잡고 흔들었다.
민호의 연약한 몸이 종이인형처럼 흔들리고 영민의 눈은 더욱 차갑게 가라앉았다.
그냥 확 다 죽여 버릴까? 강태성의 기억을 따라 위험한 생각까지 들었지만 고쳐먹었다. 민호는 나중을 위해서라도 중요한 인재다.
대체 불가의 천재 데미지 딜러.
포기하기엔 부담이 컸다.
‘응? 이거 봐라?’
어쩔 수 없이 일단은 임승재의 요구에 응하며 시간을 벌기 위해 몸을 숙이려는 순간, 영민의 감각이 무언가를 발견했다.
그리고 낮추던 몸을 다시 일으켰다.
“민호야. 너 뭐하냐.”
“큭. 예?!”
갑작스러운 말에 민호조차 당황해서 되물었으나 이미 영민의 표정은 평온을 되찾은 상태였다.
“너 35렙 찍었잖아.”
“··아.”
둘은 영문을 몰라 했지만 민호는 제대로 알아들었다.
영민이 몰이해온 우탕을 몰살시키면서 민호의 레벨이 올랐던 것. 아이템의 효과까지 더해 35레벨에 도달하자마자 마나량이 2천을 돌파한 민호는 영민이 알아 차릴 수 있을 만큼 한층 더 농도 짙은 기운을 뿌리고 있었다.
“개수작부리지 말고 꿇어!!”
뭔가 이상함을 느낀 임승재가 발악 같은 외침으로 응수했지만 민호는 이미 자신이 해야 할 것을 깨친 상태였다.
“이스케이프.”
민호의 몸에 갑자기 가죽 갑옷이 둘러지는가 싶더니 리더의 손아귀가 허전해졌다. 장비에 내장된 탈출기를 이용해 몸을 빼낸 것. 변화를 느낀 순간 무기를 빼들고 자세를 취했지만 이미 민호 또한 모든 계산을 마친 상태였다.
“너넨 죽었어!”
투웅
어느새 손에 들린 스테프가 불과 물, 전기와 바람의 화살을 연달아 쏘아냈다.
하나 같이 관통력을 지닌 매서운 공격.
“이렇게 된 이상, 둘 다 죽여주마!”
하지만 B등급의 헌터답게 갑작스런 기습에도 침착히 대응했다. 고작해야 1써클 마법 따위, 검을 들어 힘으로 분쇄하며 두 사람을 눈빛만으로 죽일 듯이 노려봤다.
“마나 웹!”
그러나 그것은 미끼일 뿐이었다. 마법사 특유의 강력한 한방을 맞추기 위한 미끼. 마법을 상쇄하기 위해 멈춰선 둘의 머리 위로 거미줄 같은 마법의 그물이 쏟아져 내렸다.
“하앗!”
같은 상황이지만 두 사람은 다르게 반응했다. 리더를 믿고 있던 임승재가 어쩔 줄을 몰라하며 마나 웹을 뒤집어 쓴 반면 그는 대쉬로 도약하며 그물을 빠져나온 것은 물론 육체 능력을 바탕으로 민호를 노리기까지 했다. 다시 인질로 잡든 목을 따버리든
할 셈인 모양. 좋은 대처였지만 상대도 만만치 않았다.
“위상 변이.”
애초부터 마나 웹으로 그를 어떻게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 않았던 민호가 그를 배제시켜 버린 것이다.
약 3초 동안 상대를 그 자리 그대로, 아무런 공격을 하지도 받지도 못하는 상태로 만들어버리는 메즈기가 발동하자 기세 좋게 덤벼들던 리더가 눈만 껌벅거리는 상황이 연출되었다.
3초.
아주 짧은 순간이지만 마법사에게는 천금 같은 시간이기도 하다.
“어스 핸즈!”
쿠구궁-
그 사이 완성된 민호의 마법이 다시 그를 묶었다. 땅에서 올라온 거대한 손이 합장을 하듯 그가 있던 공간을 짓눌러버린 것이다.
“으아앗!!!”
그 단단함이 상당해서 제 아무리 B등급 헌터라지만 적지 않은 고통과 함께 몸부림을 치고서야 빠져나올 수 있었다.
“어서와. 콤보는 처음이지?”
콰과광!
그렇게 벌린 시간이 또 다른 마법을 이끌어냈다.
후끈한 열기가 먼저 그의 몸을 덮쳤다. 일반인이었다면 몸이 익어버렸을 만한 열기와 범위. 그러나 그는 강화계 헌터였다. 온 몸이 벌겋게 달아오르긴 했어도 강한 충격 정도로 넘기고 한 발을 더 내딛었다.
“윈드 커터!”
이번에는 바람의 칼날이 전신을 난자했다. 방패를 쓰지 않는 검사 타입인지라 검을 세워 급소를 가리고, 마나를 일으켜 범위를 넓혔다.
“어스 스피어.”
그때, 가장 강력한 공격이 뒤에서 날아왔다. 어스 핸즈를 파괴하고 남은 잔해들이 예리한 창이 되어 뒤를 덮친 것.
전방만을 경계하던 중이라 미처 방비하지 못하고 옆구리를 내어주고 말았다.
“이 개 같은 새끼들이!!”
민호가 처음으로 유효타를 넣은 기쁨에 젖는 그 순간, 놈의 몸이 튀어 올랐다. 전신으로 마나를 폭사하며 진정한 힘을 이끌어냈다.
“읏!!”
그 모습에 화들짝 놀란 민호가 공격 마법을 난사해보지만 소용 없다. B등급과 C등급이라는 현격한 힘의 차이는 그 모든 저항을 무력하게 만들었다.
채앵-!
그때야 비로소 영민이 나섰다.
직접 검을 들어 놈을 막아선 것이다.
아무리 까다로운 발현 계열이라고는 하나, C등급의 능력으로 B등급 하나와 C등급 하나를 이만큼이나 몰아 붙인 것은 충분히 칭찬할 만 했다. 거기다 민호는 급조해서 만든 반쪽 짜리 C등급이 아니던가.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능력을, 천재성을 내보인 셈이다.
‘그러고 보니 나도 C등급이었지.’
따지고 보면 등급 테스트 상으로는 아직 영민도 C등급 헌터였지만 그런 것은 무의미했다.
이를 바득바득 가는 녀석을 보며 영민이 가볍게 검과 방패를 들어올렸다.
“형, 저 아직 할 수 있어요.”
아직 장비에 내장된 스킬들도 남아 있어서인지 민호가 의욕적으로 나섰지만 영민은 가볍게 손을 들어 제지했다.
C등급이라고 무조건 B등급에게 진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굳이 무리 할 필요는 없었다. 이미지 트레이닝이야 수도 없이 했겠지만 어쨌든 민호는 대상이 몬스터든 사람이든 첫 전투인 셈이니까.
“이사님! 다 죽여버리세요!!”
그것을 수세에 몰린 것으로 생각했던지 여전히 마나 웹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허우적거리던 임승재가 고래고래 고함을 질러댔다.
보기 드문 B등급 헌터다 했더니 눈 앞의 사내가 미믹 길드의 간부 열명 중 하나였던 모양이다.
피식. 어쩐지 웃음이 새어나온다.
그래. 너는 예전부터 말이 많았지. 분위기 파악도 잘 못해서 꼬붕 노릇하던 일진들에게도 많이 맞았고.
그런데도 아직 정신을 못 차린 모양이구나.
그렇다면 마지막으로 가르쳐주지. 내 마지막 선물이다.
“참 교육의 시간이다.”
< 53화 - 슈퍼 루키 (3) > 끝
ⓒ 갈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