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1화 - 슈퍼 루키 (1) >
“어디부터 보시겠습니까?”
영민은 민호와 함께 임승재를 한 번 깔아봐주고 플로어 마스터와 동행해 자리를 옮겼다. 임승재가 아니라 그의 길드 마스터라 한들 과연 신라 마켓의 VVIP가 될 수 있을까?
소소한 복수에 은근히 즐거워하며 이동한 곳은 일종의 명품관이었다. 기본 가격이 억대를 넘어가지만 성능 또한 일품인데다 없는 옵션의 아이템이 없는 곳.
영민이 찾은 것은 발현 계열 헌터용 아이템이었다.
발현 계열이라고 하면 마법 뿐 아니라 아주 다양한 능력들이 있었지만 그 중에서 ‘마법’으로 정의되는 카테고리는 따로 모여져 있었다.
헌터라는 개념은 생겨난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마법’이라는 개념은 판타지 세계관을 통해 익숙한 까닭이다.
“형, 진짜 다 사도 되요?”
“필요한 거라면.”
방랑 상인의 만물 보따리를 통해 얻은 대박 아이템들을 직접 쓸 것만 빼고 모두 매물로 내놓은 덕에 돈은 넉넉했다. 아니, 차고 넘쳤다. 워낙 사려는 사람이 많아 아직까지 주인을 정하지 못한 아이템들이 몇이나 있었지만 이미 영민의 통장에는 700억 이상의 거금이 잠들어있었다.
던전 쇼크로 인한 마나석 과잉 공급 현상이 지속되는 동안 아이템 판매 금액으로 마나석을 받아 다시 방랑 상인의 만물 보따리를 몇 번이나 더 써먹은 덕이었다.
필요에 따라서는 민호의 아이템도 겜블을 통해 장만 할 수 있었지만 그보다는 당장 민호에게 맞는 옵션들이 붙은 것들을 골라서 구입하는 것이 더 나아보였다.
“형, 이거 봐요. 진짜 쩐다!”
덕분에 민호는 이곳저곳 옮겨가며 물건들을 건드려보고 감탄하는 중이었다. 원래는 그렇게 멋대로 행동 할 수 없지만 직원들은 영민의 신경에 거슬리지 않기 위해 실실 웃으며 지켜보기만 할 뿐이다.
“그건 안 돼.”
“당장 화력만 높여서 뭐하려고.”
“부족한 스텟을 커버해야지.”
“방어나 회피기가 붙은 것도 찾아봐.”
뭐든 오케이긴 했지만 어디까지나 민호에게 적합한 아이템에 한해서였다. 그런 면에서 영민의 아이템 선별은 꽤나 까다로웠다.
마력을 제외하고는 일반인보다 조금 나은 수준인 민호의 육체는 4레벨 이상의 던전에서 아차 하는 순간 찢겨나가기 딱 좋았다. 아이템은 그러한 불상사를 방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다. 공격력이야 마법의 화력이 워낙 좋으니 스테프 하나만 잘 구해도 1인분 이상은 할 테고, 그 천재적인 계산 능력을 기반으로 한 데미지 딜링이 더해지면 데미지 걱정은 사라질 테니까.
때문에 영민은 체력과 민첩 스텟이 붙은 장비 위주로 민호의 장비를 대신 골랐다. 거기에 방어와 회피 스킬이 붙은 것들을 추가해 생존 능력을 높였는데 비싼 것들이라 그런지 기본적인 방어력도 상당했다.
“이 정도면 되겠군.”
대신 악세서리는 민호의 뜻을 일부 반영했다. 3써클 이하 마법을 저장했다가 언제든 사용 할 수 있는 반지를 양손에 하나씩 끼고 비 전투시 마나 재생력을 크게 높여주는 목걸이를 골랐다. 이 목걸이에는 체력을 소모해 마나를 회복하는 [마력 치환] 스킬이 붙어있어 가뜩이나 낮은 체력을 더 불안하게 만들수도 있었지만 민호의 계산 능력을 믿고 선물했다.
포션이야 인벤토리에 가득하니 달리 필요가 없고, 만약을 위한 방어와 이동 계열 주문서, 보조 무기 등을 추가로 구입했다.
그렇게 사용한 금액만 10억 정도. 그나마 이전 던전에서 보상으로 얻은 스테프가 쓸만해서 무기를 제외한 금액이다. 생존기라 할 수 있는 방어와 회피 스킬이 붙은 아이템 가격이 상당한 탓이었다.
C등급 헌터 한 명의 장비를 맞추는 것 치고는 과했지만 십억이든 이십억이든 영민에게 큰 의미는 없었다. B등급에 올라 장비를 맞추려면 그 열배 이상은 줘야 할텐데 뭐.
가볍게(?) 쇼핑을 마친 영민은 정확히 1시간 뒤 마켓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마켓의 후문에서 약속한 상대를 기다렸다.
‘역시 안 오나.’
굳이 임승재를 기다린 것은 반쯤의 오기와 반쯤의 조롱이었다. 대체 어떤 자신감인지 알아보기 위함. 쇼핑을 하는 동안 플로어 마스터에게 슬쩍 물어보니 임승재가 속한 길드 ‘미믹’은 B등급 헌터 열 명이 간부로 있는 중형 길드였다. 덧붙여 질이 별로 좋지 않으니 가급적 엮이지 않으시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조언이 있었다.
B등급 헌터 열이면 지방 도시에서 수위를 다툴만큼 굉장한 힘이지만 영민은 자신 있었다. 능력만으로 따지자면 자신 역시 B등급 정도의 힘은 갖고 있지 않던가? A등급이 있다면 어렵겠지만 B등급 뿐이라면 설사 싸움이 붙는다 해도 두렵지 않았다.
“쫄보 새끼.”
20분을 기다려도 임승재가 나타나지 않자 영민이 비웃음을 흘리며 더 이상 기다리기를 포기했다. 생각해보니 그때도 그랬다. 다른 학교와 싸움이 붙었을 때 한 판 붙기로 한 장소에 임승재만 나타나지 않았다고 했지. 어차피 전력에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고, 결과도 승리도 끝이 나서 제법 많은 돈을 일진들에게 갖다 바치는 것으로 끝나긴 했지만 쫄보라는 별명이 졸업 할 때까지 그를 따라붙었다.
영민은 민호를 데리고 다시 숙소로 돌아와 휴식을 취했다. 휴식이라고는 해도 새롭게 장비를 장만한 민호는 좋아서 어쩔 줄을 몰라하며 보고 또 보느라 피로가 더 쌓일 지경이었지만 말이다. 아직 착용 제한에 걸려 착용하지도 못할 아이템들임에도 인벤토리에 넣었다 뺐다를 반복하여 애지중지하는 모습에 웃음이 났다.
덕분에 배고픔도 잊고 있는 민호를 억지로 끌고 나가 든든하게 식사를 하고 인벤토리 정리도 하니 하루가 금세 지나갔다.
그리고 다음 날, 예정된 4레벨 던전으로 일찌감치 나가 대기하던 영민과 민호는 낯익은 얼굴을 만났다.
“푸핫.”
세상에. 이런 우연이 있나.
팀 럭키맨과 함께 던전 공략에 지원한 다른 팀에서 발견한 것은 다름 아닌 어제 만났던 임승재였다. 정확히는 임승재와 일당들. 미믹 길드에 속해있는 헌터들이었다.
“너 이 새끼 잘 만났다.”
그를 발견하자마자 웃음을 터트린 영민의 모습에 임승재가 발끈하고 나섰다. 영민이 울트라맨 가면을 쓰고 있긴 했지만 민호를 보고 그가 누구인지 유추한 듯 했다.
꼬리 말고 도망갔던 어제와는 다른 모습. 이상하다는 생각에 미소를 머금고 주위를 둘러보자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런 거로군.’
오기로 한 나머지 두 팀이 모두 미믹 소속이었다. 그것도 한 팀당 헌터만 7명씩, 모두 14명. 채집꾼까지 더하면 스물이나 되는 대인원이다.
한 팀에 헌터가 다섯을 넘으면 안 된다는 법은 없었지만 조금 미묘한 상황이다. 헌터 열 넷이면 능력의 조합이 엉망이 아닌 이상 두 팀만으로도 던전 공략이 가능한 최소 수준은 된다. 그런데 굳이, 다른 팀과 함께 던전에 입장을 한다고? 불순한 의도를 의심해 보는 것이 당연하다.
그리고 영민은 강태성의 기억을 통해 이것이 어떤 수작질인지 알고 있었다.
‘질이 나쁘다더니 양아치 짓을 하는 놈들이었군.’
영민의 눈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둘 뿐인가?”
그때 리더로 보이는 헌터 하나가 임승재를 가로막고 나섰다. 영민은 퉁명스럽게 그렇다라고 답했고 그쪽 역시 그렇군 하고 말을 받았다.
지난번과 같이 말로 떠드는 일은 없었다. 어차피 던전 공략은 그들로 충분하다는 듯, 개의치 않고 던전에 입장했다.
[미션 ‘식인 고릴라로부터의 생존’이 부여됩니다.]
[미션을 달성하면 보상을 획득 할 수 있습니다.]
“민호야, 물러서.”
영민은 던전에 진입하는 즉시 그들과 거리를 벌렸다. 미리 만들어 둔 골렘의 핵을 꺼내 손에 쥐고 언제든 유령마를 소환해 도주할 준비까지 마쳤다.
그러나 뭔가가 바로 일어나지는 않았다.
둘 뿐이라면 언제든 제압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인지 여유만만이었다.
오직 임승재만이 얍삽한 미소를 띄며 그들을 노려보고 있을 뿐이다.
“미션은 확인 했겠지?”
이번에도 나선 것은 리더로 보이는 자였다.
영민들은 물론 같은 길드원들까지 눈 밑으로 보는 듯한 태도가 범상한 인물은 아닌 듯 했다.
“생존 미션이더군.”
“그래. 4레벨 던전이긴 하지만 이곳에서 나오는 몬스터 우탕은 C등급 헌터 팀으로도 상대하기 어려운 놈이지.”
“그래서?”
“적당한 사례를 한다면 우리가 미션을 도와주지. 듣자하니 제법 부자인 모양인데.”
돕는다고는 말했지만 사실상 협박이었다. 생존 미션이 걸린 던전의 경우 전체 인원이 힘을 합쳐야 희생자 없이 달성 할 수 있을 만큼 난이도가 있었다. 그런데 저 말은 사실상 ‘사례금을 주지 않는다면 돕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것과 다름없었다.
제안이 아니라 협박이라는 소리다.
목숨이 걸린 일인 만큼 다른 헌터들이라면 식겁을 하며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만 할 테지만 영민에게는 어림없는 소리다.
“필요 없어.”
“··뭐?”
당장 그들이 강도로 돌변하지는 않을까 긴장하던 영민은 생각보다 순진한 요구에 피식 웃으며 대꾸했다.
그러자 당황한 것은 상대편이었다.
거절할 것이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던지 표정이 변했지만 곧 회복하고 다시 말을 이었다.
“좋아. 잘 해보도록. 우탕의 무서움을 모르면 그렇게 객기를 부리지.”
구구절절 설득을 위한 말들을 늘어놓을 줄 알았더니 의외로 쉬운 포기다. 하지만 영민은 그들의 수작이 끝나지 않았음을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을 떼어놓고 떠난 뒤 어떤 식으로든 우탕을 끌고 와서 영민과 민호의 앞에 던져놓겠지. 죽음의 문턱까지 이르도록. 그리고는 뻔하디 뻔한 방법으로 그들이 나타나 구원을 할 테고, 그쯤되면 사례금이라는 것을 내놓지 않을 수가 없게 될 터였다.
그만큼 식인 고릴라 우탕의 능력은 무지막지 했으니까.
특히나 공포감을 조성하기에도 딱 좋아서 한 번 경험하고 나면 동물원에 가서도 오줌을 지릴 만한 트라우마를 남기게 될 수 있었다.
‘표식.’
그들이 돌아서는 순간, 영민은 남몰래 1써클 마법 중 하나를 발현했다. 바로 표식 남기기. 표식이 새겨진 상대가 일정 거리 내에 있으면 대략의 위치를 표시해주는 마법적인 표식을 남기는 능력이다. 그것을 각각 임승재와 리더에게 남기고 남몰래 미소를 지었다.
‘맨날 하던 짓을 역으로 당하면 어떤 표정을 짓는지 볼까?’
영민이 판단하기에 그들이 이런 짓을 하는 것은 처음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하기에는 너무나 노골적이고, 익숙해보였으니까.
던전 입장 횟수는 제한되어 있는데 어떻게 그것이 가능한 것일까? 다른 이들이라면 의심하지 못하겠지만 영민은 아니다. 던전 입장 횟수를 늘리는 방법 쯤은 강태성의 기억 속에 기본 중의 기본으로 취급되고 있었다.
‘던전 스톤을 쓸 줄 알다니 생각보다는 제법이네.’
직접 찾아냈는지, 누군가에게 들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던전 스톤을 쓴 것이 아닐지 의심되었다. 정해진 클리어 횟수를 모두 채워 완료하고 나면 던전이 사라지며 나타나는 던전 스톤. 그것을 활용하는 방법 중 하나가 바로 기존 던전의 입장 횟수 증가였으니까.
헌터 협회에서 관리하는 던전이기는 하지만, ‘우연히’ 같은 던전이 다시 나타났다고 거짓말을 하면 그만이었다.
던전이라는 것 자체가 워낙에 비현실적이고 비논리적인 물건이니 설령 그런 일이 벌어진다고 해도 ‘특이하다’는 말 정도로 넘어갈 수 있을 테니까.
“가자.”
영민은 민호를 데리고 잰 걸음으로 그들에게서 멀어졌다. 굳이 그들에게 유령마라는 카드까지 보여줄 필요는 없으니까.
“상태창.”
그리고는 상태창을 열어 자신의 상태를 확인했다. 혹여나 자신에게도 비슷한 것이 걸려있지 않나 싶어서였다.
“역시 뻔하군.”
아니나 다를까, ‘추적 표식’이라는 능력이 발동 중이라는 것이 나타났다.
“어떻게 요리해볼까··.”
당장 제거해서 혼동을 줄 수도 있다. 그러나 반대로 역이용 할 수도 있었다.
어느 쪽을 이용해볼까. 영민이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계획을 떠올렸다.
< 51화 - 슈퍼 루키 (1) > 끝
ⓒ 갈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