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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행운 MAX-50화 (50/177)

< 50화 - 소문 (2) [2권 끝] >

“얼마나 남았어?”

“2레벨이요. 한 바퀴만 더 돌아도 35레벨 찍겠는데요?”

마력 스텟 올인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으로 어쩌면 ‘망캐’가 된 것일 수 있음에도 민호는 희희낙락 그저 신이 나 있었다. 밸런스는 망가졌지만 그래도 C등급 헌터라는 호칭이 코앞까지 온 것이다.

2레벨. 레벨 업을 하면서 갈수록 필요 경험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는 것을 생각할 때 한 바퀴로는 안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아무래도 상관은 없었다. 한 바퀴로 안 되면 두 바퀴, 세 바퀴를 돌면 되니까.

이미 4레벨 던전의 몬스터들이 자신을 어쩌지 못한다는 것을 확인한 뒤였으니 영민도 여유만만이었다.

“다음 던전 예약은 모레로 잡았으니까, 일단 오늘 내일은 푹 쉬자.”

태블릿을 조작해 예약을 마친 영민은 휴식을 선언했다. 굳이 하고자 한다면 1, 2레벨 던전 쯤은 구할 수도 있겠지만 벌 수 있는 경험치도 고만고만한데 무리할 필요가 없었다. 차라리 컨디션을 회복하고 다음 번 던전을 빠르게 클리어하는 편이 좋겠지.

한 번 레벨 업의 맛을 본 민호가 아쉬운지 입술을 달싹 거렸지만 영민이 카드를 한 장 내밀자 입이 귀에 걸릴 만큼 벌어졌다.

“이걸로 먹고 싶은 거 먹고, 친구들도 만나고 그래. 숙소는 알지?”

“오오오오!!!”

민호는 생긴 것부터 예사롭지 않은 카드에 눈을 반짝이더니 낚아채듯 받아서는 저만치 뛰어갔다.

“10시까지는 들어갈게요!”

10시면 설마 PC방에 가려는 건 아니겠지? 영민은 피식 웃으며 이동했다. 먼저 숙소로 돌아갈까 했지만 돌아가봤자 제작 노가다 밖에 할 것이 없어서 정보도 얻을 겸 근처 헌터협회를 찾았다.

‘영웅들이라··.’

헌터협회는 아직도 새롭게 나오는 헌터 각성자들로 붐비기도 했지만, 사람이 많은 만큼 말도 많았다.

이런 저런 소문과 호사가들의 이야기들.

그 중에서 요즘 가장 핫한 이슈는 바로 ‘던전 쇼크의 영웅들’이었다. 아직 던전 쇼크로 인한 혼란이 완전히 가라앉지 않은 지금, 가장 혼란했던 시기에 활약했던 몇 명의 헌터들을 영웅으로 부르며 스타로 만든 것이다.

그 이름들은 영민에게도 상당히 익숙했다. 정확히는 강태성에게 더 익숙한 이름들이지만.

기존 10대 길드의 에이스들 열 한 명과 새롭게 각성한 A등급 헌터 셋, 그리고 정체불명의 헌터 하나가 더해져 총 열 다섯의 영웅들이다.

그리고 그 중 마지막에 해당하는 ‘정체불명의 헌터’의 다른 이름은 ‘울트라맨 가면’이었다.

무력면으로 따지자면 가장 낮을 것으로 판단되지만 반대로 가장 많은 인원을 구원한 인물.

정체가 밝혀지지 않은 탓에 비슷한 가면을 쓰고 흉내를 내거나 본인임을 자처하는 이들이 나타나기는 했지만 목격자들의 증언과 많이 다른 모습에 아직까지 진짜로 인정을 받은 인물은 없는 상태였다.

영민은 진실이 서서히, 그리고 스스로 퍼지기를 원했다. 애초에 눈에 띄지 않기를 원한 이유는 아직 준비가 덜 되었기 때문일 뿐, 시선이 부담스럽다거나 부끄러워서가 아닌 것이다.

준비가 완벽하지는 않지만, 이만하면 나쁘지 않았다.

‘그 스킬을 생각하면 이름을 알려두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또 한 가지. 조건부 특수 스킬 ‘기원’의 존재 때문이기도 했다. 아직도 간간이 발동되는 ‘기원’의 버프는 꽤나 쓸만한 것이었으니까. 고작 일이백명의 기원만으로도 최하급 버프와 비슷한 강화 효과가 나타났으니 제대로 확인하지 못했던 1만명의 기원은 어떤 힘을 발휘했을 것이며 10만, 100만, 1000만, 1억명 이상이 기원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생각만으로도 흥분이 됐다.

‘어쩌면 이게 열쇠가 될 수도 있어.’

강태성이 인류의 유일한 희망으로 뽑혀 회귀하기는 했지만 엄밀히 말해 뾰족한 수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조금 더 빠르게 성장을 했다면, 더 많이 강해졌다면, 그럼 어쩌면··. 하는 막연한 기대감과 희망만이 있을 뿐 더 성장한다고 해서 ‘다섯 군주’ 중 하나를 단신으로 상대 할 수 있을지조차 알 수 없었다. 그때는 파티원의 대부분을 희생시켜 간신히 용제 하나를 잡았을 뿐이니까.

그 과정에서 전력이 급감한 탓에 이후 다른 네 군주들에게는 비벼보지도 못했었다.

강태성의 참담한 기억에 고통스러워하면서도 영민은 한가닥 희망을 떠올렸다.

다섯 군주가 나타난 시점, 인류의 생존자는 3억명이 조금 넘었다. 그리고 거듭된 던전 쇼크의 영향으로 이미 몬스터를 통제할 수 없게 된 탓에 전장은 던전 내부가 아닌 지구가 될 수밖에 없었다.

달리 생각하면 ‘중계’가 가능한 것이다. 과연 그때까지 방송을 송출 할 수 있는 환경이 남아있을 것인가는 알 수 없지만 TV든 라디오든 어떤 방식으로든 생존자들에게 소식을 전하고, 그들의 염원을 하나로 모을 수만 있다면. 어쩌면 상상도 하지 못할 만큼 거대한 힘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물론 그런다고 해서 신과 같았던 다섯 군주나 그 뒤에 도사리고 있는 ‘그’를 쓰러뜨릴 수 있다는 보장이 없는 것은 마찬가지이지만 말이다.

무엇을 해도 장담 할 수 없다는 것은 알지만 무엇이라도 해서 확률을 높여야 했다.

영민이 던전 쇼크의 소란이 끝난 뒤에도 울트라맨 가면을 쓴 것은 그 때문이다. 자연스럽게 소문이 퍼지도록.

유령마도 있고, 다양한 능력을 사용하는 그의 전투 방식도 특이하니 그가 진짜라는 것이 밝혀지는 것은 어렵지 않으리라.

‘지한이 형··.’

그를 제외한 나머지 열 네 명의 소식을 듣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그 중 한 명인 진지한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힐러 계열임에도 막강한 무력을 자랑하는 진지한은 이번 던전 쇼크를 통해 큰 성장을 이루었다.

치열한 전투와 능력의 반복적인 사용을 통해 최대 마나량이 급격히 상승해서 B등급을 넘어 A등급 헌터로 거듭난 것이다.

이번 던전 쇼크를 통해 많은 헌터들이 성장을 이루었지만 B등급에 오르자마자 A등급으로 성장한 진지한과 같은 사례는  찾아 볼 수 없었다.

때문에 아리랑 길드에서는 선풍환을 가진 길드장 강중만과 더불어 두 명의 영웅을 배출하게 되었다. 같은 10대 길드 내에서도 입지가 크게 높아진 것. 특히나 진지한이 사람들을 회복하고 안정시키는 것에도 힘을 쏟았기에 대중의 평판은 어느 길드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이 또한 원래는 없었을 일들이다.

‘얘들은 역시 잘 나가네.’

그러나 바뀌지 않은 것도 많았다. 강태성의 기억 속 그들 또한 전과 다르지 않게 잘 나가는 중이었다.

‘돌아가자.’

진지한까지는 몰라도 새롭게 각성한 헌터, 그 중에서 익숙한 두 얼굴을 보니 자극이 되었다.

그저 강태성의 기억을 가졌을 뿐이지만 그들에게 뒤처지고 싶지 않다는 감정이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솟아올랐다.

숙소로 돌아간 영민은 민호가 저녁 12시가 다 되어 돌아올 때까지 쉬지 않고 노가다를 계속했다.

다음 날, 푹 자고 일어난 두 사람은 가까운 헌터 마켓을 찾았다. 민호의 장비를 맞추기 위함이다. 정확히는 다음 던전을 공략하고 난 뒤, C등급에 오른 민호를 위한 장비들.

당장은 레벨 제한에 걸리겠지만 민호가 아이템을 만져보고, 아이템 창을 열어보면 언제 착용이 가능할지 확인이 가능하기 때문에 미리 사두는 것에 큰 부담이 없었다.

“이 지역에도 있었네.”

그들이 도착한 곳은 신라 마켓이었다. 헌터 전용 백화점 중에서는 가장 이름이 높은 마켓.

민호를 찾느라 경상남도 진주시까지 내려온 탓에 이곳에 무엇이 있는지도 잘 몰랐는데 다행히 신라마켓이 존재하고 있었다. 던전 쇼크로 인한 피해도 거의 없는 듯한 모습. 아니, 그만한 아이템들이 모인 곳이니 어쩌면 당연한 걸까?

피식 웃으며 안으로 들어서자 신세계가 펼쳐졌다.

“우와, 이게 다 아이템이에요?”

이미 서울에 위치한 가장 큰 신라 마켓을 방문해 본 영민에게는 별 감흥을 주지 못했지만 마켓을 처음보는 민호에게는 눈 돌아갈만한 모습이다.

“앗.”

민호는 눈을 어디다 두는지 모르게 뽈뽈 거리며 돌아다니더니, 결국 일을 냈다. 한 눈을 팔아 가만히 서있던 사람과 부딪힌 것이다.

이곳에 있다는 것은 헌터라는 뜻이기도 하니 두 사람 모두 다치지는 않았지만 육체파가 아닌 민호가 바닥에 엎어졌다 일어났다.

“쯧쯧. 그러게 시간 많으니까 천천히 보라니까.”

영민이 가볍게 고개를 저으며 민호에게 다가가는 순간, 일이 벌어졌다.

“어딜 보고 다니는 거야, 이 새끼야!”

퍼억!

제법 힘이 실린 발길질이 민호의 복부에 틀어박힌 것이다.

순간적으로 숨을 쉬지 못한 민호가 컥컥 거리며 비틀거렸고 깜짝 놀란 영민이 달려가 상대를 밀치고 민호를 살폈다.

“괜찮아? 천천히 숨 쉬어봐!”

“윽. 이 새끼는 또 뭐야?!”

또 한 번 밀쳐진 상대가 짜증스럽게 반응했지만 그 따위 것은 신경쓰지 않았다. 표정이 좋지 못한 민호의 상태에만 집중했다.

마력에 스텟을 올인한 민호였기에 육체적 타격에는 심각할 정도로 취약하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상대도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것보다만 조금 세게 걷어찼는지 부상이 크지는 않았다. 다행이다.

안도하는 그 순간, 묘한 비틀림이 있는 목소리가 영민을 자극했다.

“오호, 이게 누구야. 황금 고블린이잖아?”

황금 고블린.

그 말 한 마디에 영민의 피가 차갑게 식었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잊고 싶은 이름이자 기억.

황금 고블린은 고등학교 시절 영민의 별명이었다. 함께 어울리면 불행이 찾아오지만, 오히려 그를 괴롭힐수록 좋은 일들이 생겨난다고 해서 생겨난 별명이다.

그리고 그 별명은 안다는 것은 그 시절의 영민을 만난 적이 있는 인물이라는 소리였다.

“누구지?”

누구더라. 고개를 돌려보지만 좀처럼 기억이 나지 않는다. 예전 같으면 그 별명을 듣는 순간 온 몸이 얼어붙어 아무것도 하지 못했을 영민이지만 지금은 그까짓 트라우마 따위에 영향을 받을 리 만무했다. 영민이 아니라도 영민의 행운이 상대를 가만 두지 않을 테니까.

“누구? 하, 이 새끼 봐라. 안 맞은지 오래되서 기억이 가물가물하지?”

아아, 기억이 났다. 임승재. 학창시절 영민을 지독히도 괴롭히던··녀석의 꼬붕이었다. 스스로는 힘이 없지만 강자의 옆에서 손바닥을 비비고 아부를 떨어서 그 힘을 등에 업고 설치는 부류.

스스로는 친구라 말하지만 모두가 똘마니 정도로 생각하던 녀석이다. 이후에 헌터로 각성하면서는 상황이 역전되었다고 했던가.

“임승재. 였던가?”

“임승재? 임승재애~? 참나. 오랜만에 보니까 니가 감을 잃었구나?”

기가 차다는 듯한 임승재의 태도에는 전에 없던 자신감 같은 것이 녹아있었다. 헌터로서도 제법 실력을 쌓은 모양. 당장이라도 그때처럼 주먹을 날릴 기세였지만 곳곳에 배치된 가드들 때문인지 함부로 손을 쓰지는 못했다.

“아오, 너 이따 보자. 토낄 생각 말고 1시간 뒤에 후문으로 나와라. 뒤지기 싫으면.”

그런 그를 무표정하게 바라보기만 하는 영민에게 으름장을 놓은 임승재는 아쉽다는 듯 손을 털고 돌아섰다.

헌터씩이나 돼서도 아직 하는 짓은 고딩 때의 그 모습 그대로다. 아니, 헌터이기 때문에 그런건가? 눈치만 보다가 갑작스레 힘을 얻었으니 힘에 취해 살았을 만도 하다.

영민은 그 모습에 피식 웃음이 났다. 여기서까지 그러는 건 대체 뭘 믿고 저러는 거지? 마켓에 들어왔다는 것은 영민도 헌터라는 뜻인데 말이다.

‘길드겠지 뭐.’

씩씩대며 돌아서는 임승재의 전신을 빠르게 훑어 문양 같은 것을 찾았다. 일단 강태성의 기억에는 없다. 영민의 기억에도 마찬가지. 전국구는 못되고 지역에서나 방귀 좀 뀌는 모양이다.

‘헌터 등급은 대충 C등급 정도겠고.’

감지의 눈을 사용하자 임승재에 대한 대략의 정보가 떠올랐다. 스스로의 등급도 C등급 정도는 되는 모양. B등급부터는 그 수가 급격히 줄어드는 것을 생각 할 때, 어깨 펴고 다닐 정도는 된다.

그때, 작은 소란과 함께 양복을 쫙 빼입은 몇 명의 사람이 빠른 걸음으로 다가왔다.

“?”

“플로어마스터를 맡고 있는 한승준이라고 합니다. 제가 모시겠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영민의 앞에서 멈춰섰다. 마켓에 입장하며 제시한 헌터증을 통해 영민이 VVIP라는 것을 파악한 모양이다.

‘그런 거군.’

영민은 깜짝 놀라 돌아보는 임승재를 향해 씨익 미소를 날려주고 그를 따라나섰다.

임승재와 같은 일반적인 C등급 헌터 따위는 생각도 못할 대우였으니 그의 얼굴이 ‘황금 고블린 따위가··.’라는 표정으로 굴욕감에 일그러진 것은 말할 것도 없었다.

< 50화 - 소문 (2) [2권 끝] > 끝

ⓒ 갈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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