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7화 - 버스? NO. 총알 택시! (3) >
두 번째 결계 기둥을 지키는 몬스터는 자이언트 스네이크라 불리는 종이었다. 조금 전 상대했던 고목인간과는 정 반대의 특징을 지닌 놈들이다.
고목인간의 경우 단단한 외피 때문에 날붙이 무기보다 둔기류를 이용한 타격이 효과적인 것에 비해 자이언트 스네이크는 대부분의 둔기 타격력을 유연한 몸으로 흡수해버리기에 일격에 비늘과 피부를 베어낼 수 있는 날카로움이 필요했다.
“삼단 베기.”
물론 영민의 압도적인 공격력 앞에서는 어느 쪽도 소용이 없었지만.
‘자이언트’라는 이름이 붙을 만큼 커다란 몸집으로 상대를 옭아매고 숨통을 조이는 자이언트 스네이크의 조르기 공격은 영민에게 전혀 통하지 않았다. 애초에 조르기를 시도할 만큼 가까이 다가가지도 못했고, 비슷하게 접근이라도 했다가는 네 동강으로
썰려 토막이 나고 말았다.
“쩝. 이게 다 돈인데··.”
때 지난 달력 찢어내듯 가볍게 자이언트 스네이크를 썰어버리면서도 영민은 슬쩍 아까운 기색을 비쳤다. 무두질을 하면 이게 다 돈인데, 이렇게 훼손이 심해서야 제대로 된 가죽을 얻기 힘든 것이다.
그래서인지 삼단 베기의 사용 횟수는 줄어들고 찌르기의 사용 횟수가 늘어났다.
“와. 진짜 찍었네··.”
쿠르르릉
두 번째 결계 기둥이 무너지는 순간, 상호의 레벨은 정확히 30를 찍었다. 마나량은 1,740. 이제 레벨 업 몇 번이면 마나량 2,000을 돌파해 C등급 헌터로 인정 받을 수 있을 터였다.
비록 한 대만 스쳐도 빈사에 빠질 저질 체력에 코볼트에게서도 도망치기 힘든 느림보긴 했지만 말이다.
“형 진짜 쩔어요.”
D등급도 아니고 C등급이라니? 이런 초고속 등급 상승은 듣도 보도 못했다.
“에고고고. 잠깐 좀 쉬자.”
양 손의 엄치를 치켜들고 쌍 따봉을 날려대는 민호를 보고 있자니 어쩐지 억울한 감도 있었지만 자신이 아니었다면 민호 역시 모진 고생을 하면서 성장했을 것이라는 것을 알기에 그저 머리를 쓰다듬고 말았다.
‘녀석··.’
신이 나서 웃고 있지만 민호의 이면에는 작지 않은 슬픔이 자리하고 있었다.
헌터라고는 하나 아직 소년의 티를 벗지 못한 그가 단신으로 영민을 따라다닐 수 있는 이유. 그것은 바로 지난 던전 쇼크 당시 던전에서 풀려난 몬스터들에게 그의 가족들이 모두 죽었기 때문이다. 일가족 몰살. 그 와중에 간신히 헌터 각성의 충격파로 몬
스터들을 쫓아버린 민호만이 어렵사리 살아남았지만 예전 강태성이 그러했던 것처럼, 초반 성장이 극악한 게이머의 능력으로는 좋은 꼴을 보기 어려웠다.
몬스터들을 떼몰살 시켜서 가족들의 복수를 하고 말겠다는 일념 하에 모질게 살아가긴 했지만 정말 죽을 고비를 몇 번이나 넘기고 나서야 간신히 힘이라 할 수 있는 것을 얻은 민호는 엄청난 재능을 드러내며 빠르게 성장했다고 했지.
그래서 강태성과 더 쉽게 어울릴 수 있었고, 던전 쇼크 당시 강태성의 기억이 구하러 갈까 고민하던 것이기도 했다.
회귀 전 김민호는 구하지 말라고, 차라리 그때 죽은 것이 더 편히 죽는 방법이었다며 씁쓸하게 말렸지만 말이다.
“레벨은?”
“30찍었어요. 이제 조금만 더 올리면 C등급도 받을 수 있어요!”
그 말에 영민이 고개를 끄덕였다. 계획대로다. 민호의 레벨을 최대한 빠르게 성장시키고, 마력을 집중적으로 올려 C등급으로 만든 뒤 개인 팀을 구성하게 한다. 그리고 2개 팀이 지원한 것으로 꾸며 4레벨 던전도 독식한다.
민호와 경험치를 나누는 것이 단기적으로는 손해처럼 느껴질지 모르지만 일단 C등급만 달성시켜서 4레벨 던전 하나를 통째로 독식할 수 있다면 손해가 아니라 몇 배는 이득이 될 터였다.
게다가 어차피 민호는 강태성이 마지막까지 믿고 등뒤를 맡겼던 천재 데미지 딜러이자 ‘동료’가 아니던가. 치열하게 밑바닥부터 기어올라오는 것도 의미는 있지만 그 ‘재능’만은 진짜이기에 강제로 성장시킨다 해서 나쁠 것은 없었다.
“운 좋으면 한 두 바퀴만 더 돌면 되겠군.”
그 뿐만이 아니다. 조금만 더 성장한다면, 마력 뿐 아니라 체력과 민첩까지 어느 정도 받쳐주게 된다면 적어도 ‘1인분’의 역할을 할 수 있을 터였다. 강태성이 괜히 천재라고 떠올리는 것이 아니었으니까.
“이제 우린 어떻게 해요? 처음 자리로 돌아가나요? 아니면 옆 구역으로 넘어가요?”
C등급 달성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일까? 민호는 상당히 들뜬 모습으로 영민을 재촉했다. 영민이 다른 팀의 영역으로 넘어가 몬스터를 쓸어버리기를 바라는 눈치. 그러나 영민은 굳이 약속을 어겨가면서 그럴 생각이 없었다.
“아니. 다른 팀들이 정리하거나 포기 할 때까지 기다려야지.”
“음, 하지만··.”
영민의 말에 민호는 뭔가 할 말이 있는지 우물거렸지만 딱히 본인이 할 수 있는 것도 없으니 포기했다.
단 한 번의 던전 입장으로 이 정도까지 성장한 것만 해도 어마어마했다. 아니 1, 2레벨 던전 정도라면 지금 당장 간다해도 환영을 받을 만큼 마법 콤보만 잘 활용하면 충분한 데미지 딜링이 가능할 것 같았다.
당장 이곳에서는 시험해볼 엄두가 안 났지만 저레벨 던전에서라면야··.
마음을 고쳐먹고 영민을 대신해 나섰다.
“형은 좀 쉬고 계세요. 약초 채집은 제가··.”
탁!
그때, 벌떡 일어난 영민이 민호의 손등을 찰싹 때렸다. 들고 있던 모종삽을 빼앗으며 단호히 이야기했다.
“숙련도 노가다는 내거야.”
키워주는 것과 퍼주는 것은 다르다. 영민은 결코 숙련도 노가다 기회까지 민호에게 양보할 생각이 없었다. 스킬이며 숙련도는 결국 더 깊게 체득할수록 본인에게 남는 영역이기 때문이다.
결국 민호는 금세 자리를 털고 일어나 채집에 열중하는 영민의 모습을 손가락 빨며 지켜보는 것 밖에 할 것이 없었다.
4레벨 던전 답게 약초며 열매 따위의 것들이 많기도 했고, 일단은 사냥에 집중하느라 챙기지 못했던 고목인간과 자이언트 스네이크의 가죽을 벗기는 작업도 필요했기에 할 일은 많았다.
아마도 다른 팀들이 할당된 구역을 정리하기까지는 빨라도 하루 이틀 쯤 더 걸릴테니 여유는 있는 편. 영민은 아예 내친 김에 채집 뿐 아니라 제작 숙련도까지 작업했다.
“헐. 형 제작도 올려요?”
자이언트 스네이크 가죽으로 만든 가방 세 개를 넘겨 받은 민호가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전투력도 이만큼이나 강한데 채집에 제작까지 수준급이면 이거 사기 아니야? 질렸다는 표정으로 인벤토리에 집어넣자 인벤토리의 용량이 확장되었다.
공간 확장이니 경량화니 그딴 마법적인 요소가 덧붙여지지 않은 몬스터 가죽 가방일 뿐이지만, ‘가방 아이템’을 사용하자 인벤토리와 결합되며 확장된 것이다.
공간확장 마법이라도 걸린 가방이 있다면 훨씬 더 크게 확장되겠지만 이 정도로도 꽤 쓸만했다.
“넌 제작이 없다고 했지?”
“네. 저는 강화나 제작은 따로 없어요.”
강태성의 기억에도 민호가 강화나 제작을 할 수 있지는 않았다. 그 때문에 항상 그를 찾아와 온갖 아양을 떨어가며 부탁을 하곤 했었지.
아무래도 민호가 각성한 게임 능력에서는 NPC를 통해 강화와 제작을 하는 모양인데 NPC를 소환하는 능력까지는 없으니 두 가지 콘텐츠는 삭제가 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이것도 받아라.”
다음으로 넘겨준 것은 가죽갑옷이었다. 고레벨의 몬스터 가죽으로 만들어서 레벨 제한이 걸릴 수 있다는 것을 고려해 그가 알고 있는 제작 레시피 중 가장 허접한 것으로 만들었다.
“오오!”
그나마 아이템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을 처음 착용해보는 민호가 열광했지만 사실 부가적인 효과나 옵션 따위는 없는, 허접한 것이다. 제작시에 마나석을 추가로 넣으면 매직 이상의 등급을 기대해보겠지만, 그랬다가는 레벨 제한에 걸릴 것을 염려하여 방
어력과 내구력이 전부인 노멀 아이템을 만들었다.
어차피 도망치지도 못할 거라면 한 방이라도 버티라는 의미다. 영민이 광역 도발로 몬스터들의 이목을 모조리 끌어가고, 골렘과 유령마가 지켜준다고는 하지만 눈먼 원거리 공격에 잘못 맞아 죽을 수도 있는 일이니까.
“자, 이제 연습해.”
챙길 것을 모두 챙기고, 줄 것을 모두 준 뒤에는 훈련이 시작됐다.
각성을 하고, 레벨이 오르면서 저절로 깨닫게 된 마법들.
사용법이야 머릿속에 있고, 민호의 능력에서는 스킬별 숙련도 따위가 존재하지 않았지만 반복 사용과 숙달을 통해 각 마법의 장단과 활용법, 콤보를 연습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마침 아무리 소란을 피우고 망가뜨려도 상관 없는 던전 안이고 위협이 될만한 몬스터는 모조리 사냥한 뒤였으니 주변의 모든 지형이 민호의 연습 상대가 되었다.
비록 실전이 결여된 반쪽짜리이긴 했지만 안하는 것보다야 훨씬 낫겠지라는 생각이었다. 민호의 재능이 워낙 뛰어나기도 했고.
그렇게 영민은 노가다를 하고, 민호는 마법에 대해 알아가는 이틀이 지나갔다.
“형, 뭔가 이상한 것 같지 않아요?”
영민이 딱히 마나 포션을 제공해준 것도 아니기에, 신나게 마법을 난사하고 앉아서 회복는 소위 ‘마나 탐’을 가지기를 반복하던 민호가 일꾼 골렘의 위로 오르는가 싶더니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뭐가?”
“다른 팀들요. 던전 공략에 며칠은 기본적으로 걸린다는 건 아는데, 너무 늦는 것 같지 않아요? 한 곳은 아예 결계 기둥이 하나도 파괴되지 않았는데··.”
“흠··. 그도 그렇네.”
벌써 3일째인데 결계 기둥을 하나라도 파괴한 곳은 두 팀 중 하나 뿐이었다. 다른 한 팀은 단 하나의 결계 기둥조차 파괴하지 못했다는 뜻.
물론 영민처럼 일단 쓸어버린 뒤 천천히 채집 같은 부수적인 행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사냥과 채집을 동시에 진행한다면 늦어지는 것도 이해가 됐지만, 그렇다고 해도 결계 기둥이 하나도 파괴되지 않은 것은 확실히 늦은 감이 있었다.
4레벨 던전의 규모나 출몰하는 몬스터의 수가 기존의 것들과 차이가 있는 것은 알고 있지만 적어도 세 구역으로 쪼갠 이번 던전의 경우 구역당 삼일 이상 걸릴만한 것은 아니었으니까.
물론 오버 밸런스 수준인 영민이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당장 그만 해도 두 개의 기둥을 파괴하는데 하루가 채 안 걸리지 않았나. 영민처럼 광역 도발로 주변 몬스터의 씨를 말리는 것도 아닐 텐데, 늦는 것이 조금 이상하기는 했다.
“그럼 내일쯤 집결지로 가보도록 하자.”
어차피 맡은 지역은 싸그리 정리를 했기에 영민은 결정을 내렸다. 처음의 집결지로 돌아가기로 한 것. 현 상황에 대한 정보를 얻든 기다리든 일단 가보기로 한 것이다.
“아무도 없군.”
다음 날, 집결지에 도착한 영민과 민호는 아무도 돌아오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이상 유무를 확인 할 수는 없는 노릇. 그렇다고 그들이 맡은 지역으로 들어갔다간 나중에 무슨 오해와 문제를 만들지 알 수 없었으므로 다른 수를 내야했다.
“정찰병이 필요하겠군.”
직접 들어가지만 않으면 되는 것 아닌가? 영민은 크게 고민하지 않고 스킬을 발동했다.
“미니 골렘 제작.”
자폭 능력 이외에 ‘이동속도 향상’ 능력이 붙은 미니골렘이다. 빠르기라면 유령마가 훨씬 빠르겠지만 골렘과 같은 소환체의 경우 ‘시야 공유’를 통해 상황 파악이 가능하니 정찰에는 제격이었다.
몬스터와 조우할 것을 대비해 총 여섯 기의 미니 골렘을 만들어낸 영민은 각 팀이 사라진 방향을 향해 각각 3기의 미니 골렘들을 이동 시키고 시야를 공유 받았다.
그리고 곧 문제를 파악했다.
< 47화 - 버스? NO. 총알 택시! (3) > 끝
ⓒ 갈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