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6화 - 버스? NO. 총알 택시! (2) >
곧 나머지 팀들도 같은 행동을 했다. 마음에 안 드는 것은 안 드는 것이고, 지금은 자신들의 역할을 할 때였다.
각자 채비를 마치고, 할당된 두 가지 방향 중 하나를 선택해 나아갔다.
“영민이 형, 정말 괜찮을까요?”
모두가 사라지자 채집꾼으로 보이는 소년이 마스크맨 가면에게 물었다. 헌터로 각성은 했지만 E등급에 불과한 자신을 무시하고 구박하던 헌터들로부터 구해주고, 키워주겠다며 데려온 사내. 영민을 믿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고작해야 1레벨 던전에 채집꾼으로 돌던 그가 갑자기 4레벨 던전에 들어왔으니 겁이 나지 않는 것이 이상하다.
“너는 뒤쪽에 있다가 경험치만 먹으면 돼.”
영민이 가면 속에서 가볍게 웃었다. 그가 찾아낸 소년, 김민호는 자신과 비슷한 ‘게이머’ 능력을 지닌 아이었다.
뭐랄까, 각자 게임의 시스템은 다르지만 그처럼 경험치를 쌓아 레벨을 올리고 그를 통해 강해지는 것이 가능한 대기만성형 고유 능력이다.
바로 강태성의 기억 속에서 조금 더 성장한 모습으로 만났던 인물. 그때는 자신감을 찾아 장난기 가득한 천방지축의 모습이었지만 그 실력 하나만큼은 탁월했다.
정확한 데미지 계산과 찰나를 수십으로 쪼갠 듯이 물 흐르듯 이어지는 스킬 콤보, 거기에서 나오는 엄청난 화력!
최강의 데미지 딜러 중 하나가 될 재목을 찾아 이곳까지 끌고 온 이유는 단 하나였다. 파티를 맺고 그를 성장시키기 위해서.
그리하여 그를 제대로 부려먹기 위해서.
“나만 믿어.”
[권영민 님과 김민호 님이 파티를 결성하셨습니다.]
[경험치 획득 : 동일 분배를 선택하셨습니다.]
영민은 그 동안 쓸 일이 없던 파티 기능을 처음으로 사용했다. 경험치 획득 방식을 동일 분배. 안타깝게도 자신보다 레벨이 높은 이와 파티를 맺을 때는 불가능하지만 낮은 이와는 동일 분배가 가능한 기능이었다.
소위 ‘쩔’ 또는 ‘버스’를 남에게 해주는 것은 가능하지만 본인의 성장을 남에게 의존하지는 못하는 조금 치사한 시스템.
비슷한 파티 기능이 민호의 게임 시스템에도 있는 모양이지만 영민의 것이 상위 호환이라는 것인지 영향을 받지 않았다.
“이쯤이 좋겠군. 거기 가만히 있으라고.”
민호를 안전한 곳에 세워둔 영민은 스스로에게 각종 버프를 걸기 시작했다. 생각 같아서는 안전을 위해 이번에 습득한 장비들을 입혀놓고 싶었지만 영민의 그것보다 까다로운 민호의 게이머 능력은 장비 착용의 제한이 철저해서 별도의 아이템을 대여해주지는 못했다.
대신 유령마와 골렘을 소환해 그를 지키게 했다. 골렘과 유령마라면 어지간한 잡몹쯤은 싸워 이길 수도 있을 테고, 여차하면 그를 태우고 도주라도 할 수 있을 테니까.
“간다.”
겁먹은 민호가 떨고 있는 동안 준비를 마친 영민은 몬스터들이 기다리고 있는 숲으로 뛰어들었다.
“키에락?”
나타난 것은 고목인간. 단단한 나무 껍질 같은 피부가 갑옷이자 무기인 놈이었다.
까다로운 상대지만 영민은 전혀 당황하지 않았다. 오히려 기다렸다는 듯 스킬을 발동했다.
“광역 도발.”
찌르르 몸을 관통하고 흐르는 악의가 놈들을 자극했다. 마주한 놈들 뿐 아니라 주변을 배회하던 십여 마리가 동시에 영민을 적대했다.
“케레레렉!!”
온 몸이 무기인 고목인간 십여 마리가 짓쳐드는 살벌한 모습에 멀리서 지켜보는 민호가 오줌을 지릴 지경이었지만 영민은 태연하기만 했다. 바라던 바다.
“삼단 베기.”
숙련도를 100%까지 채운 삼단 베기는 이미 예전의 그것이 아니었다. 레벨의 차이가 있을 뿐, 강태성이 사용하던 것과 큰 차이가 없는 이해도로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베기가 이어졌다.
원샷 원킬!
무려 레전드 등급의 검이 가진 압도적인 공격력까지 더해지자 단단하고 탄력있는 놈들의 피부가 만두피처럼 쉽게 갈라졌다.
화르륵!
어디 그 뿐이랴, 재수가 없는 놈들은 온 몸이 불타올랐다. [꺼지지 않는 불꽃] 특수효과가 발동한 것이다. 지속 데미지와 회복능력 감소 효과가 붙어 있는 불꽃은 고목인간 특유의 회복능력까지 무력화시키며 가볍게 목숨을 앗아갔다.
터엉 텅 텅
그렇지만 영민은 결코 방심하지 않았다. 방패를 몸에 바짝 당겨 붙이고 고목인간의 위력적인 주먹질을 모조리 막아냈다.
애초에 공격력은 중간 정도인 고목인간이지만 중급에 오른 실전 방패술과 방패의 특수능력 덕분에 충격은 거의 없었다.
“회복의 손길.”
그나마 미세하게 감소한 체력도 지속 치유 효과를 지닌 신성 주문 한 방에 빠르게 차올랐다.
“방패치기.”
이내 영민이 방패를 가로로 눕히며 휘두르자 달라붙은 고목인간들이 우수수 떨어져나갔다. 이미 근력의 차이가 확연한 탓이다.
“빛의 포박.”
영민이 손바닥을 펼치자 빛으로 된 오라가 놈들을 차례로 감쌌다. 빛 속성의 속박기. 몇 초 정도 묶을 수 있을 뿐이지만 그것으로 충분했다.
“빨리 베기.”
수평을 이루고 그어진 영민의 검이 놈들의 목을 어깨 위에서 분리시켜 놓았으니까.
“····헐.”
일방적인 학살에 지나지 않는 전투를 지켜본 민호는 입을 벌린 채 다물줄을 몰랐다.
파바밧!
그와 함께 그의 내부에서 솟구치는 빛의 기운. 레벨 업이었다.
이번 던전 쇼크를 통해 각성 했지만 잡일을 통한 극미량의 경험치만을 얻어오던 그가 4레벨 몬스터가 주는 경험치의 반을 먹었으니 급격한 레벨업을 보인 것이다.
이른 바 폭렙.
이 정도면 버스가 아니라 총알 택시였다.
“어? 형, 저··.”
갑작스런 변화에 얼떨떨해하던 민호가 자신의 쪽으로 돌아본 영민에게 눈을 껌벅거리며 말했다.
“10레벨 찍었는데요.”
“그래? 그럼 전직해. 마법사로.”
무엇이든 배울 수 있고 무엇이든 될 수 있는 영민과 달리 민호의 능력은 전사, 기사, 마법사, 궁수, 도적, 사제로 나뉘는 클래스 중 한 가지를 선택해야만 했다.
대신 성장 루트 선택이 간편하고 한 가지에 집중 할 수 있는데다 위력의 상승폭이 가파르다는 것이 특징. 한 때 강태성이 부러워하던 능력이기도 했지만 개성이 뚜렷한 만큼 한계도 명확했다. 클래스가 가진 장단이 확실한 것이다.
“마법사··. 알겠어요.”
민호는 군말하지 않고 전직을 시도했다. 아직 소년인 그에게 RPG의 꽃이라 불리는 마법사는 상당히 매력적인 직업이자 능력이었으니까. 실제 영민이 개입하지 않았더라도 마법사로 전직을 했을 터였다.
가까이에서 전투를 치르기에는 몬스터들이 은근 무섭게 느껴지기도 하던 터라, 민호는 약간 들떠보이기까지 했다.
[파티원 김민호가 마법사 클래스로 전직했습니다.]
“어? 어? 으윽!”
다시 한 번 빛이 번쩍이며 전직을 마치는가 싶더니 잠시 머리를 부여잡고 고통을 호소했다. 알지 못하던 지식이 밀려드는 것이다.
이 또한 강태성이 부러워하던 부분이다. 김민호의 게이머 능력은, 별다른 비용지불 없이 레벨만 달성하면 새로운 능력을 깨우칠 수 있었다.
“형! 저 이제 마법 쓸 수 있어요!!”
“알아. 그래봐야 쪼렙이야.”
상기된 표정으로 소리치는 민호를 말 한마디로 가볍게 제압했다. 그래봐야 1써클. 영민도 깨우친 그런 수준의 마법으로는 당장 4레벨 던전에서 전력이 되기는커녕 제 목숨 지키기도 어려웠으니까.
들뜨는 거야 상관없지만 흥분하는 것은 곤란했다.
“헐. 잔인하다.”
덕분에 민호가 찬물을 뒤집어 쓴 듯 침착해졌다.
주제 파악을 한 것이다.
영민이 나쁜 의도로 한 말이 아니라는 것은 알기에 가볍게 투덜거리며 은근히 기대를 품었다.
‘영민이 형은 나를 키워 준댔어.’
더 성장 할 수 있다는 기대. 과연 어디까지 성장 할 수 있을 지는 민호 자신도 몰랐지만 지금의 영민을 보고 있자면 한계가 없는 신과 같이 느껴졌기에 가슴이 세차게 두근거렸다.
“자, 이제 속도를 올려볼까?”
그런 그를 본 영민이 슬쩍 웃으며 다시 시작했다.
거침 없는 질주. 그리고 광역 도발!
사이렌을 울리듯 붉은 빛이 번쩍일 때마다 십수 마리의 고목인간들이 영민의 심장을 노리고 덤벼들었다.
그 중 영민의 몸에 닿기라도 한 것은 손에 꼽을 만큼 적었지만 말이다.
붉은 기운이 서린 영민의 검이 허공을 가를 때마다 폭죽을 터트리듯 불꽃과 함께 고목인간의 신체 부위 하나씩이 잘려나갔고 그때마다 후방에 서있는 민호의 몸에서도 빛이 번쩍거렸다.
“헐. 벌써 등급이 올랐어··!”
아예 상태창을 켜놓은 채로 자신의 성장을 확인하던 민호의 입에서 황당함과 허탈함이 뒤섞인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레벨 업 시에 상승한 마나와 보너스 스텟을 마력에 투자해 얻은 마나를 합치니 D등급의 기준점인 500 마나를 돌파한 것이다. 영민의 말에 따라 보너스 스텟을 마력에 올인한 덕분이기는 했지만 그가 마법사 클래스라는 걸 생각할 때 크게 나쁜 선택도 아니었다.
최대 체력이야 레벨 업만 해도 조금씩 상승했으니 거리와 안전만 보장된다면 마력 스텟만 찍는 올마력 법사의 길을 걸을 수도 있는 노릇이었으니까.
민첩이며 체력 따위의 다른 스텟들은 아이템으로 충분히 커버 할 수 있기도 했으니 민호는 눈을 반짝이며 마력 스텟 찍기에 열중했다.
“오오오··!”
영민은 정말이지 광폭하게 몰아쳤다. 파도처럼 밀려오던 고목인간들은 파도처럼 부셔져나갔고 4레벨 던전이 원래 이렇게 간단한 것이었나 싶을 만큼 빠르게 맡은 구역 중 한 곳을 정리해나갔다.
“속사!”
그 엄청난 박력 덕분일까. 광역 도발만으로 닿지 않을 위치까지 고목인간들이 멀어지자 영민은 이번엔 활을 꺼내들었다. 민호는 보이지도 않는 위치에 몸을 숨긴 고목인간들을 저격하기 시작했다.
‘제대로 조준은 하는 건가?’
의심이 들 정도였지만 빠르게 차오르는 경험치가 대답을 대신했다.
쿠구구궁
첫 번째 결계 기둥을 파괴하는 데까지 소요된 시간은 고작해야 반나절. 민호는 그 동안 23레벨을 달성했다.
“와, 미쳤다.”
아무리 4레벨 던전 몬스터를 잡았다지만 미친 속도가 아닐 수 없었다. 레벨 업을 할 때마다 마나량이 10씩 증가했고, 마력 스텟을 하나 찍을 때마다 다시 10의 마나가 증가했다. 민호는 몰랐지만 레벨 업을 할 때마다 랜덤한 수치로 오르는 최대 체력과 마나량에 영민의 행운이 적극적으로 작용하고 있었다.
영민과 달리 레벨 업에 의한 스텟 증가는 없었지만 레벨 업마다 5개의 보너스 스텟을 받는 민호였기에 올 마력을 찍은 지금 그의 총 마나는 1,340. 이제 640만 더 오르면 당당히 C등급 판정도 받을 수 있었다.
아직까지 헌터의 등급 평가는 마나량으로만 판단을 하니까.
설령 가진 건 마나 뿐인 깡통일 뿐이더라도 등급 판정에는 문제가 없었다.
그것이 바로 영민이 노린 바였다.
“잠깐 쉬었다 할까?”
“아니에요. 전 괜찮아요!”
비록 아무것도 하지 않았지만, 던전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것이 처음인 민호를 위한 배려였지만 민호는 손사래를 치며 사양했다. 게임을 해본 사람이라면 알겠짐나 레벨 업에 묘한 중독성이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레벨이 가파르게 상승해나가는 그 기분. 일정 경계마다 새로운 스킬을 익히고 강해져가는 그 희열은 쉽게 멈추기 어려웠다.
“좋아. 그럼 얼른 끝내고 쉬자.”
그 심정을 모르는 바가 아니기에 영민도 다시 한 번 힘을 내었다. 아니 사실 그다지 힘이 들지도 않았다. 반으로 나뉘었다고는 하나 4레벨 던전 몬스터가 주는 경험치는 영민에게도 적은 것이 아니어서 이미 도중에 몇 번이나 레벨 업을 한 것이다.
레벨 업을 할 때마다 체력과 마나, 그리고 피로도의 완전 회복이 이루어지니 영민의 컨디션 또한 어느 때보다 좋은 상태였다.
다시 방향을 잡은 영민은 다음 결계 기둥을 향해 빠르게 나아갔다.
< 46화 - 버스? NO. 총알 택시! (2) > 끝
ⓒ 갈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