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1화 - 기계 골렘 (2) >
시간만 끌면 이긴다. 하지만 상황이 좋지 못했다. 태엽의 힘이 아직 가득 남아 있는 기계 태엽 골렘을 피해 다니는 것도 쉽지 않은데 십여 마리의 미니 기계 골렘까지 쫓아다니니 운신의 폭이 더욱 좁아졌다.
‘꼬마 폭탄들만 아니었어도··.’
사실 쫄이 몇 마리 나타난 것은 큰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미니 기계 골렘들에 ‘자폭’ 기능이 내장되어 있다는 것.
잘못 건드리면 터지고, 재수 없으면 가까이만 가도 터져대는 통에 ‘꼬마 폭탄’, 또는 ‘움직이는 지뢰밭’이라고도 불리는 놈들이다.
인원이 많다면 기계 태엽 골렘의 시선을 끈 뒤 원거리 공격을 통해 수를 줄여가겠지만 혼자인 영민으로서는 그조차 쉽지 않은 상황. 서둘러 꾀를 내야 했다.
‘돌면서 화살을 쏠까?’
일단 이 작은 폭탄 덩어리들부터 해결하는 게 낫지 않을까? 놈들을 기계 태엽 골렘의 발 밑까지만 유인을 하면 일타이피를 노려볼 수 있을 텐데··.
‘아!’
그때 어떤 생각이 영민의 뇌리를 스쳤다.
“유령마 소환!”
놈들을 향해 덤벼들며 유령마를 소환했다.
“히이잉!”
유령마가 실체 없는 몸을 도약해 기계 태엽 골렘을 희롱했다. 희끄무레 한 것이 눈 앞으로 날아들자 도끼를 휘둘러보지만 속성 인챈트나 마나가 실리지 못한 공격으로는 아무리 강맹한 위력을 보여도 허공을 가를 뿐이다.
생각 같아서는 유령마가 놈의 몸 속으로 침투해 핵을 부숴버렸으면 싶었지만 골렘의 몸체는 마나로 유지되기에 통과 할 수 없었다. 그나마 놈의 무기인 도끼에 까지는 마나가 이어지지 않기에 가능한 수작이었다.
그 사이 영민은 미니 기계 골렘들의 코앞까지 짓쳐갔다. 적의를 품고 달려드는 놈들을 한순간 힘으로 제압했다.
끼긱 끼긱
충격을 주는 대신 힘으로 억누른 것 뿐이라 놈들은 기계 장치를 억지로 돌리며 발버둥을 쳤다. 소용 없는 짓이다. 드레인과 보너스 스텟 투자를 통해 상승한 영민의 힘 수치는 이미 거대 골렘의 그것과 비슷하거나 우월한 수준이니 미니 골렘 따위가 저항할 수
있을 리 없다.
“읏차!”
그리고 영민은 그대로 놈을 집어 던졌다.
휘익
콰앙!
미니 기계 골렘은 말 그대로 포탄이 되었다. 기계 태엽 골렘이 반사적으로 도끼를 휘두르는 순간 폭발하여 시뻘건 불길을 쏟아냈다.
유령마조차 식겁하고 놀라 물러날 정도. 터진다고 한 번에 죽을 만큼의 위력은 아니었지만 영민에게도 적지 않은 타격일 터였다.
하지만 영민은 자신을 믿었다. 정확히는 운을 믿었다.
폭탄 돌리기를 하는 심정으로, 다음 놈을 잡아서 또 던졌다.
콰앙! 쾅! 쾅!
미니 기계 골렘의 자폭은 데미지도 데미지이지만 기계 태엽 골렘을 멈추어 두는 효과가 있었다. 하나가 터질 때마다 멈칫거리니 전진이 힘들 지경. 데미지는 크지 않거나 금세 핵에서 흘러나온 마나로 인해 회복이 될 수준이었지만 그것으로 충분했다.
폭발이 거듭될수록 놈의 무기는 너덜너덜해지고, 태엽 장치의 힘 또한 빠르게 사라져갔으니까.
그렇게 모든 미니 기계 골렘이 박살났을 때, 놈 역시 일반 우드 골렘보다 조금 나은 정도로 약화된 상태였다.
“럭키 펀치!”
마무리는 역시 럭키 펀치!
몸통 한 구석을 통째로 날려버리는 위력을 발휘하며 놈의 핵이 박살났다.
“응?”
자동으로 흡수되는 능력치를 확인하며 인벤토리를 연 영민이 살짝 놀라 눈을 껌벅였다.
이거, 어디서 많이 보던 아이템인데?
“오, 스킬북!”
스킬북이 드랍됐다. 표지만 봐서는 알 수 없지. 인벤토리에서 꺼내 손을 얹자 스킬북의 이름이 떠올랐다.
[골렘 제작서 : 골렘은 과학이다!][스킬]
골렘 제작의 비법이 담긴 스킬북. 사용 시 골렘 제작에 대한 지식을 습득한다.
숙련도에 따라 보다 상위의 골렘을 제작 할 수 있다.
사용 제한 : 마력 100이상 / 대장술 숙련도 30% 이상
골렘 제작서. 강력한 골렘을 만들기 위해서는 천문학적인 비용이 투자된다는 단점이 있지만 한 번 만들어두면 파괴되기 전까지 반영구적으로 활용이 가능하다는 점이 매력적이었다.
그렇다면 익히지 않을 이유가 없다.
[골렘 제작 스킬을 습득하였습니다.]
스킬북을 사용하자 머릿속으로 골렘 제작에 대한 지식이 떠오른다.
가장 간단한 것은 마나 핵 만들기.
이것만 익혀도 단순한 명령을 부여 할 수 있는 일꾼 골렘의 제작이 가능했다. 거기에 한 가지 더. 대장술의 숙련도가 인정되어 한 가지 제작법이 더 공개됐다.
조금 전 폭탄처럼 써먹었던 미니 기계 골렘. 새로운 사실은, 이 미니 기계 골렘에 자폭이 아닌 다른 기능들을 심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더 자세한 정보를 확인하고, 다양한 능력을 부여하기 위해서는 골렘 제작 스킬의 숙련도가 더 올라야했지만 써먹을 수 있을만한 재미난 생각들이 마구 떠올랐다.
“좋았어.”
살펴보니 이중 던전은 없었다. 하지만 더 큰 것은 얻었다고 생각했다.
3레벨 던전에 대한 자신감.
3레벨 던전 내에서는 동급 최강이라 불리는 골렘도, 태엽만 풀 차지 상태라면 3레벨을 넘어 4레벨 던전의 보스보다도 강력하다고 알려진 기계 태엽 골렘도 해치웠으니 더 이상 3레벨 던전 입장에 거리낄 것이 없는 것이다.
도깨비 감투를 착용하고 귀환석을 사용한 영민은 사람들의 눈을 피해 나머지 3레벨 던전을 공략해갔다.
그 과정에서 반가운(?) 나르할도 만났고, 판타지 세계관에서 유명인사인 오크도 만났다. 제법 쓸만한 전투력을 지녔지만 영민에게는 한참이나 모자랐다. 맘 먹고 화살만 날려도 어지간한 놈들은 닿기도 전에 다 죽어나갈 정도였다. 그야말로 노다지. 일단 전주
내에 있는 3레벨 던전을 모두 한 번씩 돌며 확인한 영민은 그 중 가장 상대하기 쉽고 몬스터의 숫자도 많은 오크 던전 한 곳을 집중적으로 공략했다.
이왕 털어먹은 거, 한 번 도나 열 번 도나 티가 나게 던전이 사라지지만 않으면 된다는 생각이었다.
나중에 들어온 이들이 단 한 번의 공략으로 소멸되는 던전에 당황하겠지만 그것은 영민이 알 바가 아니었다.
덕분에 스텟도 차곡차곡 쌓이고, 코인도 제법 쌓였다.
행운 Max인 영민의 특성 덕분에 몬스터를 잡을 때마다 랜덤하게 들어오는 코인의 양이 항상 최고 수준으로 들어오고, 원래는 높지 않은 아이템 드랍율에도 인벤토리 가득하게 아이템이 들어차니 모이지 않을 수가 없다. 아이템을 코인 상점에 판매하는 것은
효율이 좋지 않았지만, 그 양이 상당하니 제법 많은 양의 코인이 되었다. 박리다매 혹은 질보다는 양이랄까.
그렇게 모은 코인으로 영민은 스스로를 강화했다.
하나에 1,500 코인짜리 최하급 스킬북이 아닌, 최소 3,000 코인 이상의 값나가는 스킬들이다.
일단 변수 확보 차원에서 무려 1만 코인을 들여 ‘1써클 마법 총론’부터 구입했다. 이것 하나만 익혀도, 1써클에 해당하는 모든 마법을 사용 할 수 있다. 이를 테면 스킬북 모음집 같은 것이랄까.
1써클의 마법은 잡다하지만, 그만큼 다채로운 변수를 만들 수 있어서 강태성도 곧잘 써먹고는 했다.
이외에는 모두 육체 강화 스킬이었다. 힘 스텟을 강화시켜주는 ‘끓어오르는 힘’과 체력과 방어력을 동시에 강화시켜주는 ‘아이언 바디’, 체력과 마력 재생능력은 물론 모든 저항력을 상승시키고 몸의 피로까지 회복시키는 ‘내면의 빛’, 방패 방어에 한해 데미지
를 50%로 줄여주는 ‘지키는 자의 방패’와 1회에 한해 모든 종류의 공격을 100% 방어해주는 신성한 가호까지. 공격력은 충분하니 방어에 모든 초점을 맞춘 셈이다.
여기에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 스킬이자 매크로인 한 가지 스킬북을 더했다. 바로 ‘오토 포션’이다. 사용자가 설정한 비율 이하로 체력이 떨어질 시, 자동으로 설정된 포션을 사용하는 자동 발동 스킬. 예상치 못한 순간 큰 피해를 입더라도 최소한의 체력을 보
전 할 수 있는 구명책이었다.
아이언 바디에 내면의 빛, 지키는 자의 방패와 신성한 가호, 그리고 오토 포션까지. 이번 쇼핑을 통해 영민은 그야말로 좀비 같은 생명력을 갖게 되었다.
대신 이 다섯 가지 스킬 구입 비용으로만 무려 2만 8천 코인이 사라졌다. 1써클 마법 총론까지 더하면 무려 3만 8천 코인을 쓴 셈. 간신히 모은 코인이 또 한 순간에 증발했다.
“도무지 모을 틈이 없군.”
그래도 효과는 장담할 수 있었다. 겉으로 드러나는 변화는 없지만 영민 스스로도 실제 전투력은 50% 이상, 아니 어쩌면 두 배 이상 상승했다고 판단했다.
쉽게 피해를 입지 않고 죽지 않는다는 것은, 그만큼 많은 공격을 더 이어 갈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니까.
원하던 스킬들을 모두 구입한 영민은 또 한 번 결정을 내렸다.
‘떠날 때가 됐군.’
전주를 떠나려는 것이다. 마음만 먹는다면 전주의 3레벨 던전을 더 돌며 시간을 끌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럴 시간에 미개척된 다른 지역들을 돌며 산처럼 쌓인 몬스터들을 쓸어버리는 것이 효과적일 터였다.
남의 눈치를 보지 않고 독식 할 수 있을 테니까.
그리고 다행히도 전주시 주변에는 그럴 만한 곳들이 많았다. 전주는 도청 소재지이자 전라북도를 대표하는 도시였지만 그 주변 도시들은 땅은 전주보다 넓어도 농지가 많을 뿐, 인구는 훨씬 적은 군단위 지역들이 많은 것이다.
대전이나 광주 쯤까지 가지 않는 이상 완주나 진안, 무주 등 그리 발전되지 못한 곳들이 많았다.
영민이 노린 곳은 바로 그들이다.
어차피 앞으로 열흘쯤 뒤에는 광역도시를 비롯해 준 광역도시는 말끔히 정리가 되고, 주변부에 대한 공략이 이루어질 것이다. 그때가 되면 눈에 띄고 말겠지. 그 전까지 해먹을 수 있을 만큼 해먹고, 던전 안으로 숨듯이 사라져버리는 것이 베스트였다.
‘어차피 나도, 강태성도 원래는 비중이 없던 존재였으니까.’
누군가 알게 된다면 왜 더 많은 사람을 구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았느냐고 말할지 모르지만 원래는 영민도, 강태성도 이 시기에는 없는 사람이나 마찬가지였다.
강태성은 채집꾼으로 나섰다가 강원도 산골에 갇혀 고군분투를 하고 있었을 것이다. 영민 자신은 강태성의 기억에 없는 것만 봐도 헌터로서 이름을 날린 것은 아닐 테니 복권 수입이나 투자 따위로 돈을 벌어 대피하지 않았을까? 자신이 생각해도 몬스터를 잡
아죽여야하는 드레인은 당장 전투 능력이 없을 경우 대성하기 어려워서, 헌터 생활을 했을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러니 군 단위의 지역을 돌며 대피하고 숨어 있는 사람들을 일부라도 구원한다면 그 또한 의미가 있지 않을까? 도시에 사는 사람들만 중한 목숨은 아니니까 말이다.
군과 헌터 협회는 아무래도 땅 덩이만 넓고 사람의 수는 상대적으로 적은 이런 지역들보다 인구밀집 지역에 먼저 투입될 테니 그 사이 자신은 이득을 챙기면서 시골 지역의 사람들을 구원한다. 만약 직접적으로 구출을 하는 것이 어렵다면 주변의 몬스터를 정
리하고, 시선을 끌고, 생필품 또는 식음료만 제공해도 큰 도움이 되겠지.
그렇게 위안을 삼으며 유령마를 소환했다.
전주를 벗어나 신나게 내달렸다.
“꿀꺽.”
혼령질주를 이용해 몬스터 군락 두 개쯤을 건너 뛰고 도착한 완주군의 어느 지점에서 영민은 알약 하나를 삼켰다.
노력가의 알약.
하루 동안 효과가 지속되는 알약 하나가 무려 3천 코인이나 한다는 것이 속 쓰렸지만 그 효과를 생각하면 그렇게 비싼 것도 아니었다.
알약의 효과는 바로 숙련도 상승 2배.
확률과 별개로 0.1%씩 올라야 할 숙련도가 0.2%씩 오르고, 기존 한 번에 오를 수 있던 최대 숙련도 상승치가 0.5%이던 것이 1%까지로 상승했다.
여기에 영민의 행운이 더해진다면?
모든 스킬을 진화시키기 위한 영민의 노가다가 시작됐다.
< 41화 - 기계 골렘 (2) > 끝
ⓒ 갈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