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9화 - 던전 쇼크 (3) >
드드득 드르르르
굉음과 진동. 첫 번째와 동일한 현상에 모두의 신경을 곤두섰다. 그저 평범한 지진일수도 있지만 이미 던전 쇼크의 첫 번째 진동을 통해 죽도록 고생하고 있던 이들이기에 여느 때보다 예민하게 반응하고 짜증을 부렸다. 공포에 질렸다.
단 한 사람. 영민만을 제외하고.
‘왔구나!’
그것은 알림이었다. 새로운 던전의 생성을 알리는 알림.
첫 번째 진동이 기존 던전의 폭파를 의미하는 것이었다면 이번 진동은 새로운 던전의 생성을 의미했다.
동시에 경고이기도 했다. 던전을 클리어할 생각은 하지 않고 소위 꿀을 빨기 위해 방치하고, 억지로 유지기간을 늘리고 있는 인간들을 향한 경고.
인류가 그 사실을 알기까지는 앞으로 두 번의 던전 쇼크가, 6년의 시간이 더 필요하겠지만 이번에는 어떻게든 앞당겨야 했다. 그렇게 안일하게 대처했다가는 강태성의 기억 속 미래처럼 멸망을 피할 수 없을 테니까.
영민이 홀로 준비한다 한들 분명히 한계는 있을 터였다. 문제는 당장 사회적으로나 헌터 세계에서나 영향력을 발휘 할 수 없다는 것이지만.
‘강해져야해.’
어차피 사회적으로 성공을 하기는 어렵다. 또한 제한적이다. 될 수도 없겠지만 설혹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된다한들 국제사회를 긴장시키고 준비 시킬만큼 큰 영향력을 행사하기도 어려운 게 현실이었다.
그렇다면 강해지는 수밖에 없다. 오히려 헌터로서 성장을 하고, A등급 이상으로 인정을 받는다면 대한민국은 물론 국제적 발언권도 꽤나 커진다. 또한 비슷한 수준의 헌터 몇 명만 납득을 시키고 증명해 보인다면 피해를 최소화 해 현대 병기의 화력을 최대한
보전하고 던전 쇼크에 대비 할 수 있을 것이다.
만약 S랭크에 오른다면? 거의 미국 대통령 수준의 발언권과 실행력을 거머쥘 수 있다. 세계에서 단 몇 명 밖에 존재하지 않는 거의 전략병기 수준의 힘을 지녔으니까.
하다못해 전폭적인 지원과 협조를 조건으로 미국에 망명하기라도 한다면 원래 일어날 피해를 절반 이하로 줄일 수 있을 터였다.
“어디 어디 있나··.”
마음을 다잡은 영민은 인근 가장 높은 아파트 옥상으로 올라가 주위를 살폈다. 육안으로 구분이 되는 곳도, 아닌 곳도 있었지만 대충 몇 개의 던전 위치를 확인 할 수 있었다.
영민이 노리는 것은 그것이었다. 모두가 던전 밖으로 풀려나온 몬스터들에 정신이 팔려 있는 지금이, 던전을 독식하기 가장 좋은 때였다.
‘이 시기의 던전에 보너스가 그렇게 많다고 했었지.’
비용을 지불하지 않고, 기록에도 남지 않는 던전 공략 기회. 그 뿐 아니라 이 시기의 던전에는 유독 이중 던전이 많이 생겨있다고 했다.
세간에 알려지는 것은 꽤나 이후의 일이다 보니 강태성도 구전을 통해 알고 있을 뿐이지만 던전 쇼크로 고생시킨 보상이라도 되는 건지 ‘신입’들을 위한 말 그대로의 보너스인 건지 이중 던전이 꽤나 많아서 정보를 독점한 일부 인원과 길드들이 단물을 제대로
빨아먹었다고 했다.
이 정보가 풀린 것은 초기에 생긴 대부분의 던전이 클리어되고 주워 먹을 것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기는 했지만.
그렇지만 이번에는 영민이 가장 먼저 빨대를 꽂을 터였다.
“어디보자, 2레벨인가? 오케이.”
영민은 더욱 빠르고 원활한 사냥을 위해 코인을 털어 ‘감지의 눈’ 스킬을 추가로 구입했다. 아이템 뿐 아니라 눈으로 확인 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것들을 감정 할 수 있는 감지 계열 스킬이었다. 이것을 통해 던전의 레벨을 감정하고, 2레벨 이하 던전부터 즉시
입장을 하려는 것이다.
투두두두-
그때 마침 생존자를 확인하고 가능한 인원들을 구조하기 위한 구조 헬기가 하늘 위로 날아갔다. 혹시 모를 비행형 몬스터에 대비하기 위해 안에서는 군인 하나가 총구를 높이 들고 긴장한 모습으로 주위를 경계했다.
이제 적어도 거점으로 삼은 곳은 어느 정도 안정을 찾았다는 뜻이었다. 다행이다. 이미 이 근방은 영민이 정리를 했으니 생존자 구조에 어려움은 없겠지.
그렇게 던전을 뛰쳐나온 몬스터와 처절한 사투를 벌이는 인류를 뒤로하고 영민은 던전 안으로 몸을 던졌다.
'있나? 없나?'
이른 바 먹튀를 시작했다. 던전에 진입해 이중던전의 존재여부만 확인하고,알맹이만 빼먹은 뒤 귀환했다. 마나석의 채취 때문에 무두질만 할 뿐, 채집 숙련도 따위는 과감이 포기했다. 지금은 시간이 무엇보다 귀중했다.
던전 클리어 횟수 11번을 모두 채울 필요는 없었다. 어차피 이중 던전은 최초 클리어 시 사라지기에 딱 한 번씩만 들어가 이중던전의 생성여부를 확인하고 클리어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던전의 종류도, 몬스터의 종류도 다양했지만 고작해야 2레벨 던전인 이상 영민에게 부담으로 작용하지는 못했다.
온갖 확률 템으로 무장을 하고 근접 전투부터 궁술을 통한 원거리 데미지 딜링, 마법 공격, 보조마법과 회복주문까지 혼자서 가능한 전천후 능력자가 된 덕분에 상황에 맞춰 얼마든지 태세 전환이 가능했으니까.
어디 그뿐이랴, 행운 Max의 효과로 크리티컬이 패시브처럼 터져대는데다 잘못 날린 공격이 지형물을 부수거나 튕겨져 뒤통수를 때리기까지 했으니 상대하는 적들의 입장에서는 죽을 맛이었다.
“가자!”
게다가 이동 속도까지 빨랐다. 소환형 탈 것인 유령마는 던전과 던전 사이의 이동시간을 극단적으로 줄여주었을 뿐 아니라 던전 내에서도 상당한 활약을 했다.
몬스터들의 곁을 스치며 잡을 수 없을 만큼 빠르게 이동하니 잠시 후면 뒤로 수십의 행렬이 생겨난다. 이른바 몰이 사냥. 혹시나 놓치는 녀석이 있으면 직접 도발 스킬을 걸어 인식하게 만드니 가히 던전 하나를 통째로 몰고 다니는 것에 다름 없었다.
“연사! 속사! 파이어 볼! 라이트닝 애로우!”
그러다 뒤쫓는 몬스터의 수가 너무 많다 싶으면 궁술과 마법을 이용해 수를 줄여냈다. 광역마법 같은 것이 있다면 좋겠지만 지금의 수준에서는 이 정도가 최선이었다.
거의 모든 마나를 쏟아 부어 수를 줄인 뒤, 말머리를 돌렸다.
놈들을 향해 정면으로 내달렸다.
“혼령질주!”
유령마와 함께 영체화가 되어, 따라오던 녀석들을 꿰뚫듯 지나갔다. 죽어나간 녀석들의 시체를 밟거나 스쳐갈 때마다 기분 좋은 알림이 나타났다.
[키노스의 힘을 흡수합니다.]
[키노스의 마력을 흡수합니다.]
[키노스의····.]
1m 내의 시체로부터 원격으로 능력을 흡수하며 실시간으로 능력이 상승했다. 이미 그것이 아니라도 오버 스펙에 가까운 위력을 발휘하고 있지만 전신에 활력이 넘쳤다.
“삼단 베기!”
숫자가 얼마 남지 않았을 때는 거침없이 파고들어 칼춤을 추었다. 고작해야 2레벨 던전 수준인 놈들의 공격력으로는 검은 개미 세트의 방어력을 뚫어낼 수 없었다.
결국 일곱 개의 2레벨 던전을 들락거리는 동안 쌓아둔 최하급 포션 하나 사용하지 않을 수 있었다 .
이러한 양상에 변화가 생긴 것은 네 번째 이중 던전을 클리어 했을 때였다. 이중 던전이 2레벨 이상에서만 발생한다는 것을 생각할 때, 유독 이 시기 던전에 이중 던전이 많다는 강태성의 정보는 정확한 것으로 보였다.
물론 영민의 행운도 무시 할 수 없겠지만.
[해당 몬스터의 능력을 더 이상 흡수 할 수 없습니다.]
[더 높은 수준의 몬스터를 사냥해주세요.]
2레벨 던전의 몬스터에게도 드레인이 통하지 않게 된 것이다.
상태창을 열어보니 이번에도 각 능력치가 50씩 상승한 상태였다. 힘, 민첩, 체력, 마력, 인내, 정신력까지. 행운을 제외한 6가지 스텟이 50씩 상승했으니 도합 300의 수치가 상승한 셈. 대단한 수치가 아닐 수 없지만 영민은 살짝 입맛을 다셨다. 50레벨부터는
레벨업마다 2개의 스텟이 자동으로 상승하고 보너스 포인트 역시 2개씩 얻기 때문이다.
똑같은 상승폭이지만 50레벨 이전과는 상황이 다른 것. 2레벨 던전에서는 더 큰 폭으로, 빠르게 능력을 흡수하니 나쁘진 않았지만 아쉬운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러나 기대를 버린 것은 아니다. 2레벨 던전까지는 D등급 헌터의 영역으로 분류하는 것처럼 3레벨, 4레벨에서는 다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범위가 넓어진 것이긴 해도 드레인이라는 고유 능력 자체가 진화하기도 하지 않았나? 아직은 두고봐도 좋을
터였다.
‘제법 두둑해졌군.’
고작해야 2레벨 던전에 생긴 이중 던전인 만큼 보물상자에서 나오는 아이템도 제한적이기는 했다. 사실 3레벨 던전의 이중 던전에서 에픽 등급이 나왔던 것도 기적에 가까운 일이니까.
하지만 영민의 자비없는 행운 덕분에 나오는 것마다 레어 아니면 유니크 등급이었다.
당장 쓸만한 것은 없다는 게 문제이긴 했지만, 코인상점에든 마켓에든 팔아먹으면 제법 값을 받을 것 같으니 상관없다.
‘선택의 시간이군.’
던전 밖으로 나온 영민은 고민에 빠졌다. 이대로 이중 던전을 찾아 2레벨 던전을 더 돌 것이냐, 아니면 3레벨 던전 단독 공략에 도전할 것이냐. 그도 아니면··.
‘그 사람을 찾아볼까? 지금쯤 개고생을 하고 있을 텐데.’
이번 던전 쇼크를 통해 새롭게 각성한 헌터들 중 강태성의 기억에 ‘동료’로서 인식된 이들을 찾아볼 것인가.
걔 중에는 진지한처럼 처음부터 강력한 능력을 드러낸 이도 있고, 강태성처럼 성장형의 능력인 탓에 던전 쇼크로 튀어나온 몬스터들과 목숨 걸고 싸우는 중인 이도 있을 터였다.
그런 이를 먼저 발견하여 성장을 돕는다면 나중에 큰 힘이 될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지금 그들을 찾는 것이 과연 그들에게도, 자신에게도 이득일지에 대해서는 생각해볼 일이었다.
몇몇은 이미 지금의 자신보다 강력한 능력을 지녔을 터였고, 밑바닥부터 강해지는 이들은 그런 험난한 일들이 있었기에 그만큼 성장했던 것은 아닐까? 단순히 재능의 문제로만 볼 일은 아니지 않을까?
그리고, 그들을 이끌어나갈 만큼 지금 자신은 강한가?
고민 끝에 영민은 결정을 내렸다.
‘일단은 취할 수 있는 것부터 취한다.’
시간과 정보. 이것이 바로 지금 영민이 갖는 최고의 무기였다. 괜히 남을 키운답시고 시간을 버리다 이점을 날려먹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됐다.
‘그들도 어쨌든 살아남을 테니까.’
적어도 죽지는 않는다. 적어도 자신이 아는 미래에서는 그들이 슬퍼할 일들이 생길지언정 죽지는 않는다.
그러니 지금은.
스스로를 다독이며 다른 던전을 찾았다.
반월동과 동산동 일대의 던전들을 빠르게 훑은 영민은 활동반경을 더욱 넓혔다. 감지의 눈으로 던전 레벨을 체크하며 빼먹을 것만 신나게 빼먹었다.
그리고 마침내, 군과 헌터협회가 정리하며 확장해가고 있는 경계에까지 도달했다.
“도깨비 감투, 착용.”
딱히 숨을 이유는 없었지만 영민은 도깨비 감투를 이용해 눈에 띄지 않고 안으로 들어갔다. 굳이 그들을 피한 이유는 간단하다. 던전에 몰래 들어가기 위함이다.
당장 거리를 장악한 몬스터들을 상대하느라 새로 생긴 던전까지는 공략할 엄두를 내고 있지 못하고 있는 것을 이용해서 가장 먼저 던전에 입장하고, 이중 던전의 보물만 쏙 빼먹을 셈이었다. 그리고 나서 다시 도깨비 감투를 이용해 조용히 빠져나오면 그만.
던전이 사라지는 것은 11번의 공략횟수를 모두 채웠을 때 뿐이었으니 특수한 감지 능력을 지닌 자가 오지 않는 이상 던전 공략 횟수까지 파악하는 데에는 시간이 걸릴 터였다.
11번이 10번으로 바뀐 것을 안다 한들 그것이 영민의 짓이라는 것을 알 방법도 없었고.
때문에 다른 이들이 밖으로, 밖으로 나아갈 때 영민은 경계선 안 쪽에 생겨난 모든 2레벨 던전을 돌며 인벤토리 두둑하게 아이템을 쌓아갔다.
'이제, 3레벨 던전에 도전할 때군.'
< 39화 - 던전 쇼크 (3) > 끝
ⓒ 갈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