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5화 - 축제 (1) >
이후로도 영민은 꾸준하게 던전 입장권을 구입하고, 클리어했다. 그것도 남들이 잘 찾지 않는 어려운 형태의 던전들만 골라서. 이는 남들의 눈에 띄지 않기 위함이었지만 늘 세상 일은 뜻대로 되지 않는 법이다.
그의 던전 클리어 횟수가 늘어갈수록 다른 의미에서 그를 주목하는 이들이 생겨나는 것이다.
대형 길드의 밀어주기도 아닌 것 같은데 돈 따위는 상관 없다는 듯, 돈도 안 되고 어렵기만한 가성비 꽝의 던전들만 깨고 다니니 호기심 많은 이들의 관심을 살 수밖에 없었다.
물론 그렇다고 영민에 대한 다른 정보가 거창하게 드러난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아이템을 코인 상점에 팔아치운 통에 아이템 거래 등을 위한 최소한의 모습조차 보이지 않았으니 팀 명과 클리어한 던전 목록 정도나 볼 수 있을 따름이다.
그래서 말하기를 좋아하는 이들은 팀 럭키맨을 ‘D등급의 청소부들’이라 부르며 궁금했다.
그렇게 영민이 노가다에 가까운 반복 던전 클리어로 힘을 키우는 사이, 시간은 흘러 기다리던 날이 다가왔다.
제4회 대한민국 헌터 어워드.
축제가 시작되었다.
“와우, 스케일이 어마어마하네.”
강태성의 기억을 통해 보기는 했지만 실제 눈으로 보는 것과는 차이가 있었다. 아니 전혀 다르다 말해도 좋을 만큼 큰 차이였다.
강태성이 말년에 워낙 스케일이 큰 일을 많이 겪어서인지 대한민국 헌터 어워드 정도는, 특히 아직 초기라 할 수 있는 지금의 축제는 많이 부족하고 허술하다고 기억을 하고 있던 것이다. 자기도 직접 와보지는 못했으면서...
그렇다보니 막상 영민이 실제로 보았을 때 눈이 휘둥그레 질만 했다.
“이러니 입장권이 그렇게 비싸지.”
100만원의 입장료. 일반의 공연이나 축제를 기준으로 할 때 터무니 없이 비싼 가격이지만 스케일이며, 꽉 채워 준비 된 부스들을 그럴만하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사실 어쩌면 그다지 비싼 금액도 아닐지 모른다. 애초에 입장권을 판매하는 대상 자체가 ‘헌터’로 국한되었기 때문이다.
한 푼이 아쉬운 채집꾼이 굳이 큰 돈을 들여가며 구경을 올 리는 없고, 대부분이 D등급 이상의 헌터라는 소리인데 그들에게 100만원은 그렇게 무리가 될 만큼 큰 돈이 아닐 테니까.
물론 입장권 중에는 1천만원이 넘는 거액을 지불해야 하는 것도 있었다. 비밀 경매에 참석 할 수 있는 권한이 부여되는, 사실상 그것을 위한 입장권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인데 그것이 가능한 돈을 가지고 있음에도 영민은 가장 낮은 등급의, 100만원짜리 입장권을 구입했다.
그가 원하는 것은 저 발버둥 쳐도 닿을 수 없을 만큼 아득히 높은 이들의 경쟁 속에 있지 않았으니까.
“그게 어느 쪽에 있었더라?”
강태성의 기억으로, 원하는 아이템이 경매에 나오려면 시간이 있었다. 그때까지는 자유시간이라는 말. 영민은 모처럼의 축제를 즐겨보기로 했다.
물론 그렇다고 정말로 놀기만 하겠다는 건 아니다. 강태성의 기억을 뒤져, 써먹을 수 있을 만한 정보는 최대한 써먹을 생각이었다.
“자, 이게 신라 컴퍼니에서 나온 마나스톤 라이플 AJ-08입니다. 모델 잘 빠졌지요? 충전식이라 기존 마나스톤 라이플보다 효율성도 높고 위력도···.”
“MP길드에서 만든 양산형 포션입니다! 특별 할인 중이니 보고 가세요!”
헌터들의 축제라고 고상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아니, 헌터라는 특성상 오히려 시장바닥 만큼이나 시끄럽고 북적거렸다.
온갖 신상 헌터 용품이 선을 보이고, 부스를 차린 중소 길드의 판촉이 여기저기에서 열린 까닭이다.
이날을 위해 일 년을 기다렸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준비 많이 한 티가 팍팍 나는 열정적인 목소리와 제품들이 사방에서 눈을 희롱했다.
“아, 저기 있다.”
대한민국의 모든 헌터들이 모였다해도 과언이 아닌 만큼 D등급을 넘어 C등급, B등급 헌터용 아이템들이 즐비한 만큼 영민 또한 눈이 즐겁게 아이쇼핑을 즐겼다.
당장 장비의 스펙업이 필요하지는 않아서 직접 구매로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좋은 물건을 구경한다는 것은 그것만으로도 나름 즐거운 일이었다.
그렇게 수많은 유혹과 인파를 헤치고 찾은 곳은 바로 환전소였다. 헌터들의 축제이다보니 엄청난 거액이 오고가는 일이 많기 때문에 번거롭게 현금을 들고 다니지 않도록 돈을 특수한 칩으로 환전을 해주는 것이다.
물론 계좌이체가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칩으로만 이용이 가능한 것들도 상당히 많은 편이기에 줄은 제법 길게 늘어서 있었다.
“역시!”
영민이 열 개가 넘는 대기열 중 한 곳을 선택하자 그 줄만 믿을 수 없을 만큼 빠르게 일처리가 진행되었다. 갑자기 베테랑이 근무교대를 하기라도 한 것인지 거의 남들의 두 배 속도. 눈치가 빠른 이들은 슬쩍 라인을 바꿀 정도로 줄은 빠르게 줄어들었다.
“얼마나 환전 하실 건가요?”
“15억이요.”
영민은 생활비 등 따로 떼어놓은 돈을 제외한 거의 모든 돈을 칩으로 바꾸었다. 그러나 B등급 이상의 헌터 중에서는 그 이상을 환전하는 이도 많았기에 환전소 직원은 크게 놀라거나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곧 손 떨리게 만드는 수십 개의 칩이 손에 쥐어졌다. 영민의 요청에 따라 5억짜리 칩 2개에 1억짜리 3개, 나머지 2억은 백만원 단위로 쪼개어 준 덕이다.
고작 이 작은 칩 몇 개가 서민들이 평생을 벌어도 못 모을 돈이라니. 실감이 나지 않았지만 이제 좀 더 미친 짓을 할 생각이기에 깊게 생각하지는 않았다.
“와아아아아아!!!”
15억원 어치의 칩을 들고 영민이 찾은 곳은 행사장 외곽에 마련된 경기장이었다. 원래는 스포츠 경기를 하는 경기장이라고 하는데, 행사 기간에는 아주 특별한 행사가 열렸다.
바로 한시적으로 열리는 합법적인 도박, 슬라임 레이스였다.
“이번엔 어디다 걸거야?”
“가버너랑 엘븐애로우. 왜?”
“그야 니가 고르는 거 피해서 걸려고 그러지. 너 엄청난 똥손이잖냐! 크크크.”
슬라임 던전 하나를 일부로 방치한 뒤 던전에서 쏟아져 나온 놈들 중 일부를 제압해 경주를 시키는, 일종의 경마게임 같은 것이었다. 누가 헌터들 아니랄까봐 말이 아니라 몬스터로 바뀐 것 뿐이고.
돈을 거는 방식도 동일했다. 칩을 마권에 해당하는 티켓으로 바꾼 뒤 경기 결과에 따라 휴지조각이 되거나, 배당을 받는 식이다. 당연히 적게 거는 쪽이 우승을 할 시 큰 배율로 배당을 받게 되는데 매년 행사 때마다 열리다보니 전문가라 자처하는 이들까지 나타나며 성황이었다.
“다행이다. 아직인가 보네.”
돈 단위가 큰 만큼 우승 슬라임을 맞췄을 때의 배당금도 큰 편인데 영민은 강태성의 기억으로 오늘의 경기 중 중요한 한 경기의 결과를 알고 있었다.
처음 출전하는 몸집 작은 슬라임 하나가 대 이변을 일으켰던 그 경기는 고작 한 번일 뿐이지만 놀라운 배당으로 두고두고 회자 될 예정이었다.
슥 훑어보고 자신이 기억하는 그 슬라임이 아직 출전하기 전이라는 것을 확인한 영민은 재미 삼아 작은 돈으로 환전한 일부 칩으로 티켓을 구입했다.
“우승은, 캐논보이!”
“축하합니다. 라이트닝!”
“승자는 슈팅스타!”
그리고 돈을, 아니 칩을 쓸어 담았다.
잘 달릴 슬라임을 고르는 안목 같은 건 없었다.
오로지 운. 말 그대로 그냥 찍었다.
한 방의 큰 건을 앞두고 장난처럼 몇 백씩만 건 것이지만 1.3배에서 많게는 3.4배의 높은 배당률을 적중시키며 돈이 불어났다. 이쯤되니 영민도 신이 나지 않을 수 없었다. 처음 이백만원을 배팅 했던 것이 오백만원, 천만원, 이천만원으로 커지고 눈 딱 감고 걸었던 1억원짜리 배팅에서도 성공했다. 15억원이던 자본금이 이제는 17억원을 조금 넘게 변해있었다.
“자, 5분 뒤에 경기가 시작됩니다!”
그리고, 마침내 기다리던 경기가 시작되려 했다.
“꿀꺽.”
미래를 알고 있는 영민이지만 이번 만큼은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올인(all in).
17억의 칩을 모조리 배팅했다. 그것도 단 한 마리의 슬라임에게.
이번 경기에 처음 출전하는 놈이었다. 경기 시작 전 볼 수 있는 외형상으로는 왜소하고 볼품없어 보이는 녀석. 그러나 막상 경기가 시작되면 폭주 기관차처럼 달려 나가는 승리의 아이콘으로 돌변했다. 덕분에 이 첫 경기 이후로는 높은 배당을 기대하기 어려웠지만 이 한 경기만큼은, 적어도 이번 경기만큼은 역대 최고의 배당을 기대 할 수 있었다.
“경기, 시작했습니다!”
잠시 후, 경기가 시작하고 슬라임들을 가로막고 있던 문이 열렸다. 일제히 달려 나가기 시작하는 녀석들.
“어? 어? 이제 웬일입니까. 작은 고추가 맵다! 첫 출전인 뷸렛, 뷸렛이 앞서나가고 있습니다!”
“빠릅니다. 빨라요! 다른 슬라임들을 압도적으로 제치며 달려나갑니다!”
“아아! 이렇게 쉽게 승부가 갈리나요! 독주입니다. 독주에요. 이건 다른 슬라임들에게 헤이스트를 걸어줘도 못 이겨요~!”
처음부터 앞서나가는 것은 단연 한 녀석이었다. 영민도 배팅한 뷸렛이라는 이름의 슬라임. 슬라임에게 폭주 스킬이 있던가 고민하게 될 정도로 녀석은 파격적인 행보를 보이며 단숨에 다른 녀석들과 거리를 벌렸다.
“승자는 뷸렛! 새로운 강자가 탄생합니다!!”
마침내 승리를 알리는 장내 아나운서의 외침이 들려왔다.
“우와아아아아!!!!”
그리고 곳곳에서 들려오는 함성.
하지만 영민은 아닌 척 시치미를 떼고 속으로 웃었다.
‘배당률 20배!’
복승식으로 배팅하면 더 어마어마한 배당률이 나올 수도 있지만 그것까지 다 기억하지는 못했고 단 건의 배팅으로는 이번 축제 최고 배당률일 터였다. 배당이 높다는 것은 승리할 확률이 그만큼 낮아보인다는 뜻이니까. 배당이 아무리 높다한들 이기지 못하면 말짱 헛것이다.
17억을 걸었으니 받을 돈은 340억! 여기서 국가에 내는 세금 18%와 헌터협회에서 가져가는 10%를 제외하더라도 약 245억의 거금이 된다. 한 경기로 228억원을 번 것. C등급 헌터용 장비를 최상급으로 맞춰도 돈이 한참 남고 당분간이 아니라 몇 년 간 던전에서 획득하는 아이템을 모조리 코인 상점에 팔아치워도 떵떵거리며 살 수 있을 정도의 거액이다.
그런 돈을 너무 쉽게, 한순간에 벌어들이자 어안이 벙벙해 질 정도였지만 영민은 침착하게 칩으로 환전을 하고 자리를 떴다. 사기적인 행운이 있으니 더 벌수도 있겠지만 요행에 기대어 쉽게 돈을 벌려 하다가는 그만큼 쉽게 돈을 잃을 수도 있었다.
자신이 겪어본 바로는 행운의 판정이 매우 유동적이라서, 넘친다고 생각 될 때는 오히려 불행을 가져다주기도 하는 것이다.
행운이 Max라고 무조건 좋은 일만 일어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더 크고 긴 행복을 위해 브레이크를 걸어주기도 한다고나 할까?
‘조심해야지.’
그렇게 생각하던 영민은 문득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죽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았던 과거의 불운처럼, 어쩌면 죽는 것이 행운이라고 여겨질 때는 행운도 그렇게 작용을 하는 건 아닐까.
‘적어도 그런 일은 없을 만큼 강해져야 해.’
Max의 행운에 풀어지려던 마음을 다잡고 목표했던 것들을 다시 떠올렸다.
< 35화 - 축제 (1) > 끝
ⓒ 갈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