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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행운 MAX-34화 (34/177)

< 34화 - 변화 (2) >

아리랑 길드는 좋은 길드다. 대한민국 10대 길드로 꼽힐 만큼 규모도 크고, 힘도 갖추었지만 다른 길드들에 비하면 갑질도 적었고 돈을 최우선으로 여기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충분히 많은 돈을 벌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도태되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을 벌고, 사냥을 하고, 인재를 영입하는 다른 길드들에 밀리고 치여서 망해버렸다. 뒤늦게 따라가려는 움직임을 보이기도 했지만 그때는 이미 힘이 많이 쇠한 뒤였다.

힘이 없는 맹수는 결국 잡아먹히는 법. 무리한 던전 공략을 진행하다가 주요 인사들은 죽어버리고, 나머지는 뿔뿔이 흩어졌다. 생존을 위해서라도 큰 길드에 몸을 의탁해야 하는, 그런 시기였다. 그때는.

“바람의 거신이라면··.”

그랬어야 할 아리랑 길드가 바람의 거신을 잡아냈다? 물론 몬스터 한 마리, 던전 하나 클리어 한 것쯤 별 것 아니라고 치부 할 수도 있다. 6레벨 던전이 하나만 있는 것도 아니고 공략 된 적 없는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바람의 언덕, 바람의 거신이라면 조금 특별했다.

“그걸 아리랑이 먹게 되는 건가?”

강태성의 기억 속 바람의 거신이 드랍했던 선풍환이라는 무기. 당시 그것을 입수한 것은 현무단이라는 길드였다. 10대 길드에는 들지 못했으나 전투력만큼은 그에 필적한다고 알려졌던 이들이지만 선풍환을 얻은 뒤 상황이 바뀌었다. 압도적 공격력과 선풍환에 내장된 스킬 [선풍난무]가 그들의 전투력을 비약적으로 상승시킨 것이다. 덕분에 10대 길드가 일시적으로 11대 길드로 불리기까지 했었다. 곧 다시 10대 길드가 되기는 했지만, 그들이 내려가서가 아니라 다른 하나의 길드가 모종의 사건으로 무너졌기 때문이었다.

“그럼 안 망할 수도 있다는 거네.”

정말로 선풍환이 드랍되고, 그들이 그것을 얻었다면 어쩌면 앞으로 벌어졌어야 할 아리랑 길드의 해체는 일어나지 않을 수 있었다. 강력한 무력만 갖추고 있다면 정도를 지키든 사도로 빠지든 쉽게 무너지지 않을 테니까.

과연 이게 좋은 것일까? 머리가 복잡했다.

“어쩌면 애초부터 틀어진 걸지도··.”

자신 때문에 강태성이라는 존재가 세상에서 사라졌다는 자체만으로도 변화는 시작된 것일지도 몰랐다.

그럼 이제 미래는 어떻게 되는 거지? 이 변화로 인해 미래가 어떻게 바뀔지는 몰랐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인간이 어찌 할 수 없는 어떠한 일들이 수년 내에 시작된다는 것이다.

그것은 변하지 않았다.

영민은 싱숭생숭해진 마음으로 태블릿을 조작했다. 다음으로 들어갈 던전을 예약했다.

2레벨 던전까지는 D등급 파티로도 어떻게든 되기 때문인지 일반적인 던전들은 예약이 금세 찼다. 빈자리를 확인하고 곧장 신청을 해도 그 사이 자리가 나갈 정도. 대학교 수강신청을 방불케하는 스피드에 영민은 혀를 내둘렀다.

하긴, 아예 전문적으로 인기있는 던전만 예약하고 프리미엄을 붙여 권한을 팔아넘기는 이들도 있다고 하니 당연한 것일지 모르겠다.

“역시 이런 걸로 해야하나.”

하는 수 없이 검색에 몇 가지 필터링을 넣었다. 주로 사람들이 귀찮고, 짜증나고, 곤란해하는 것들.

그러자 예약이 텅텅 빈 던전들이 쭉 떠올랐다.

그 중 이번에 영민이 택한 것은 미로형 던전이었다.

“어떻게든 되겠지.”

미로형이라고 한 가지 스타일만 있는 것은 아니다. 같은 미로형 던전이라도 크게 길이 복잡한 스타일과 함정이 많은 스타일, 퍼즐 스타일이 있는데 영민은 그 중 길이 복잡한 스타일을 예약했다.

길 찾기에 자신이 있는 편은 아니지만 자신에게는 행운이 있었으니까. 여차하면 거대 개미의 더듬이도 있으니 괜찮을 것이라 생각하며 던전을 공략할 채비를 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태블릿을 조작해 경매장을 띄웠다. 개인, 팀, 파티 등으로 이름을 등록하고 헌터협회에서 감정을 받은 아이템을 올리면 다른 이들이 헌터넷에 접속해 입찰을 하는 방식이다. 물건과 돈은 헌터협회가 맡아두니 사기를 당할 위험도 없고, 복잡한 세금처리도 자동으로 되어 편하다. 허위 입찰로 3번 이상 경고를 받을 시 큰 패널티를 받기에 장난질을 치기도 어렵다.

물론 탈세 등을 위한 사설 아이템 거래 사이트도 있기야 하지만 돈만 받고 물건을 주지 않거나, 물건을 위탁했는데 받은 적 없다고 발뺌하는 등 부작용이 많아 대게 헌터넷의 경매를 이용하는 추세였다.

그것이 아니라면 영민이 그러한 것처럼 오프라인에서 위탁 판매를 맡겨도 되고.

많은 사람들에게 노출하고 싶지 않은, 정말 대단한 아이템들은 오히려 오프라인에서만 나오기도 했다.

그곳에서 너무 눈에 띄지 않도록, 개인이나 소규모 파티들이 올린 던전 스톤들에 입찰한 영민은 낙찰 될 시 자신의 통장에서 알아서 돈이 빠져나가도록 계좌를 연동해두고 던전으로 걸음을 옮겼다.

영민에게 있어서 미로는 너무나 간단했다. 이게 정말 미로인가? 싶을 정도로 빠르게 돌파했고 미로라는 던전의 특성상 몬스터의 수준도 그리 높지 않았다.

고작해야 2레벨인 탓에 전체의 넓이도 그다지 넓지 않아서 오히려 일반 던전에서보다 빠르게 끝까지 도달 할 수 있었다.

“매드 카우인가.”

미로의 끝을 지키는 보스 몬스터는 성난 황소처럼 생긴 매드 카우라는 놈이었다. 소라고 하기에는 고릴라처럼 상체가 발달한 것이 특징인데 생긴 것만큼 성격도 단순하고 불 같아서 상대하기에는 편한 족속이었다.

신화속에 나오는 미노타우르스와 어쩐지 비슷한 느낌이지만 놈과 비교하기에는 한참이나 차이가 있었다.

“럭키 펀치!”

“끄워~.”

선빵필승!

놈을 발견하자마자 덤벼들어 날린 주먹에 [괴력]의 힘이 깃들었다. 미간으로 날아든 주먹이 두개골을 박살내고 뇌수로 손을 적셨다.

[매드 카우의 광폭화 스킬을 흡수합니다.]

“··?!”

생긴 것 무시무시하지만 그래봐야 D등급들이 들락거리는 2레벨 던전의 보스. 치명타가 터지며 일격에 놈을 끝장내자 생각지도 못한 일이 벌어졌다.

능력치를 흡수하리라는 기대와 달리 놈의 스킬을 흡수해버린 것. 영민으로서도 당황스러웠지만 가만 생각하니 스킬 설명에서 ‘능력치’, ‘스텟’만을 흡수한다는 소리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러고 보니 이 능력과 기억도 어쩌면··.’

당장 게이머의 고유 능력과 미래에 대한 기억도 강태성의 것이 아니던가?

“자신이 죽인 대상의 능력 중 일부를 랜덤하게 흡수 할 수 있다.”

영민은 다시 한 번 자신의 고유 능력, 드레인의 설명을 읽었다. 그렇다. 능력 중 일부라고 했지 그것이 어떤 것인지에 대한 것은 없다. 스킬이 될 수도 있고, 스텟이 될 수도 있다. 그 밖에 고유한 무언가가 될 수도 있다.

어쩌면, 드레인의 능력이 게이머 이상으로 대단할지 모른다는 생각을 떠올렸다.

[광폭화]

분노를 폭발시켜 일시적으로 한계 이상의 힘을 낸다.

다만, 분노에 잠식될 경우 이성을 잃을 수 있다.

- 사용 시 힘과 민첩, 체력이 20% 상승

- 체력이 5% 이하로 내려 갈 시 자동 발동

- 유지 시간 : 10분

- 광폭화 종료 시 30분 동안 모든 능력치 -30%

새롭게 흡수한 능력, 광폭화는 꽤나 쓸만한 스킬이었다. 몬스터만 사용하는 스킬이 아니라, 전사 계열 헌터들도 스킬북이 나오면 찾아 익히는 스킬인 만큼 강태성의 기억 속에도 정보가 존재했다.

“상성이 좋은데?”

그 정보들을 훑은 영민은 의외로 쓸만한 능력에 미소를 지었다. 광폭화의 단점은 이성을 상실 할 수 있다는 것인데, 이미 자신이 익힌 ‘불굴의 정신’ 스킬을 패시브로 가지고 있다면 조금 흥분은 할지언정 이성을 상실하는 수준까지는 가지 않는 것이다. 그 뿐이 아니다. 20% 능력치 상승도 꽤나 쓸만했지만 게이머 능력이 가지는 숙련도 시스템을 이용하면 더 성장 시킬 수도 있었다. 숙련도를 올릴수록 상승률과 유지시간은 증가하고 패널티는 줄어드는데 숙련도 100%를 달성하면 [폭발하는 내면의 힘]이라는 스킬로 바뀌며 능력이 크게 상승하기도 했다.

패널티 시간이 30분이나 돼서 숙련도를 쉽게 올리기 어렵다는 단점이 있기는 하지만 올릴 수만 있다면 자신보다 격이 높은 상대조차도 거꾸러뜨릴 수 있을만한 힘이었다.

“좋았어.”

영민은 곧장 그 힘을 확인해보기로 했다.

어차피 미로 지형인 이곳에서는 채광 지역을 찾기도 어려웠고, 다시 미로로 들어가봤자 길을 잃을 확률이 높았다. 그러니 채집은 이곳까지 오는 동안 획득한 약초들로 만족하고 곧장 귀환석을 사용한 것이다.

역시나 대기가 없는 비인기 던전이라 즉시 재입장이 가능했다. 이거참 번거롭군. 아예 마지막 회차까지 모조리 예약을 해버리고 다시 미로로 들어갔다.

무려 7번이나 남은 던전 입장 횟수를 모조리 써버리기까지는 3일이 채 걸리지 않았다. 미로를 돌파하는 것은 일도 아니었고, 간혹 길을 잃었나 싶을 때는 여지없이 보물상자가 나타나 그 이유를 대변했다.

몬스터들의 수준이 한참이나 낮으니 틈틈이 광폭화를 써서 숙련도를 올리기도 했다.

재미있는 것은, 매드 카우를 죽였을 때, 이따금씩 광폭화의 숙련도가 올랐다는 것이다. 아주 높게는 아니지만, 또 반복될수록 상승폭이 낮아지기는 했지만 올랐다는 사실이 중요했다.

드레인의 재발견이다.

흐뭇한 마음으로 던전을 나왔을 때, 영민은 또 한 가지 기분 좋은 소식을 접했다.

[헌터들의 축제, 제 4회 대한민국 헌터 어워드 개최]

바로 대한민국 헌터 어워드의 개최 소식이었다.

남이 상 받는 게 무슨 좋은 소식이냐고? 당연히 그런 게 좋을 리 없다. 영민이 반긴 것은 그에 따른 부대행사들이었다.

대한민국 헌터 어워드는 상위 헌터들의 시상식이라는 의미 뿐만이 아니라 대한민국 헌터들의 축제라는 의미도 갖고 있었으니까. 때문에 그 때가 되면 행사가 열리는 일산 전체가 온갖 행사들로 들썩이기 마련이었다.

영민이 노리는 것도 그 중 몇 가지였다.

“드디어 그게 나오겠군.”

가장 눈독을 들이는 것은 그 행사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경매였다. 헌터넷의 온라인 경매장은 지금 이 순간에도 활발히 이용되어지고 있겠지만 그때는 ‘진짜배기’들이 등장한다. 그것도 일부 경매를 제외하면 매우 공개적인 자리에서 진행되고 일부는 전시가 되기도 하기 때문에 저등급의 헌터들도 꿈만 꿔오던 아이템들을 실물로 만나 볼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영민은 그곳에서 어떤 아이템을 얻을 생각이었다. 과거에는 오랫동안 조명받지 못했던, 아니 애물단지 취급을 당하던 아이템. 그러다 어느 순간, 그 희미한 가치가 밝혀지며 큰 소란을 일으켰던 그 아이템을.

‘공개 경매장에 나온다고 했지.’

지금은 아무도 가치를 모르고 있기 때문에 강태성조차도 손에 넣을 수 있을 것이라 여기던 것이니 입수가 어렵지는 않을 터였다.

‘이제부터 바빠지겠군.’

초반에 바닥을 기어야하는 게이머의 능력인 만큼, 강태성이었다면 포기해야 했을 정보들. 원래대로라면 기억에만 담아두어야 했을 그것들을 이제 활용할 때가 되었다.

강태성은 불가능하지만 영민은 가능했으니까.

< 34화 - 변화 (2) > 끝

ⓒ 갈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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