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3화 - 변화 (1) [유료 연재 시작 편] >
바로 던전이 사라지며 나타난 던전 스톤. 지금은 정체 불명의 돌멩이, 혹은 전리품 쯤으로 여겨지지만 나중에는 커다란 값어치를 하는 그것을 수거한 것이다.
이로서 영민이 가진 던전 스톤은 1레벨과 2레벨 각각 1개씩이었다.
‘아니, 던전 스톤 활용법이 나오는 게 2년쯤 뒤이니 어쩌면 벌써 알고 있는 자들이 있을 수도 있겠네.’
강태성의 기억에 따르면 2년 쯤 후에야 공개되는 정보. 그렇다면 미리 알아차려 단물을 빨아먹고 있는 이들이 있을 가능성은 충분했다.
‘조심해야겠어.’
순간 돈도 있겠다 마켓이나 헌터 경매를 통해 대량으로 사들여볼까 하던 영민은 생각을 바꾸었다. 그렇다고 포기 할 수는 없지만 눈에 띄는 행동은 자제하기로 한 것이다. 어차피 그것을 당장 쌓아둔다 한들 다 써먹기도 어려우니 크게 아쉽지는 않았다.
‘가만, 이때쯤이지 않았나?’
아직은 강태성이 바닥을 벅벅 기고 있었을 시기라서인지 많은 정보가 기억되지는 않았지만 몇 가지 떠오르는 것들이 있었다. 당장 어찌 해볼 능력이나 방법이 없어 강태성도 흘려듣고 말았던 정보들. 도깨비들이 남긴 아이템을 코인 상점에 팔아넘기던 영민이 그것들을 떠올렸다.
강태성은 할 수 없지만 자신은 할 수 있는 것.
뜻 모를 미소를 지은 영민은 다시 아이템 정리에 열중했다.
무기는 레전드에, 방어구는 세트로 입고 있는 터라 대부분의 수거 템들은 코인 상점 행이었다.
남긴 것은 딱 세 가지.
도깨비 감투와 도깨비 방망이, 그리고 이백년 묵은 도깨비의 T 팬티였다.
마지막 것은 영민으로서도 상당한 고민이었다. 냄새도 냄새지만 ‘T팬티’라는 것과 ‘바지’ 부위의 방어구라는 점이 ‘무조건 상점행’이라고 외치게 만들었다. 하지만 마지막 효과인 ‘매혹 계열 능력에 높은 확률로 저항’이라는 옵션이 멈칫하게 만들었다. 아직 등급과 관계없이 정신 계열을 상대하는데 취약한 헌터들에게 이 옵션은 상당히 쓸만하지 않을까? ‘바지’ 파츠로 인정되기 때문에 그 위로 아무것도 입지 않아야 효과가 발휘되는 단점이 있지만 꼼수는 존재했다. 바깥이 아닌 안에 무언가를 입는 것. 슈퍼맨처럼 바지 위에 팬티를, 그것도 T 팬티를 입는 이상한 모양새가 되기야 하겠지만 옵션이 좋으면 패션테러, 안구테러를 하더라도 일단 착용하고 보는 이들쯤이야 얼마든지 있었다.
냄새는··. 뭐, 어떻게든 하겠지.
“자, 이제 뽑기 시간이다.”
인벤토리 정리를 끝낸 영민은 경건한 마음으로 방 한 켠에 도깨비 방망이를 쌓았다. 무려 31개나 되는 엄청난 물량. 단 4번의 클리어만으로 얻은 것이라고 보기에는 터무니없이 많은 숫자였지만 지금 그것이 눈 앞에 있었다. 아쉽게도 황금 도깨비 방망이는 나오지 않았지만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두근거렸다.
‘가만 보자··.’
무엇을 달라고 외쳐야 할까? 첫 번째 방망이를 손에 쥔 잠시 고민에 빠졌다.
사람들이 일명 ‘도깨비 방망이 러쉬’를 하면서 망하는 이유는 대게 하나다. 바로 욕심이 과했다는 것. 지금보다 더 훗날 밝혀질 정보에 따르면 일반 도깨비 방망이를 통해 나올 수 있는 아이템의 최고 등급은 레어가 한계였다. 황금 도깨비 방망이는 유니크까지.
그런데 사람들이 대게 외치는 것은 유니크 혹은 레전드 등급의 최상급 아이템들이었다. 그러니 원하는 대로 나올 턱이 있나. 결국 더 낮은 확률로 랜덤을 돌리게 되고, 잡템 따위의 꽝이 나올 확률이 상대적으로 더 올라가는 것이다.
만약 등급 내로 정확히 외치기만 한다면, 원하는 아이템이 나올 확률은 대략 5~7%정도. 랜덤치고 그렇게 낮은 편도 아니었다.
‘그게 좋겠군.’
강태성의 기억을 훑으며 뒤엉킨 생각들을 빠르게 정리한 영민이 결정을 내렸다.
좋은 무기? 단단한 방어구? 돈이 되는 무언가? 물론 그것도 좋다. 그러나 자신에게 꼭 필요한 것은 아니었다. 평생을 없이 살아온 터라 지금 가진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할 수 있다.
지금 중요한 것은 스스로를 강화하는 것이었다. C등급 중상위에 필적하는 전투력이라고는 하지만 ‘고작’ C등급이다. 아직 갈길이 멀었다.
더 빠르게 사냥을 하고 레벨을 올리기 위해서는 보다 자신을 강화하는 것이 필요했다.
선택한 것은 장신구 아이템이었다.
‘확률성 능력을 가진 장신구가 필요해.’
처음엔 믿지 못했지만 이제는 믿을 수 있다. 믿어보기로 했다. 자신의 행운을.
그렇기에 영민이 택한 것은 확률성 능력을 지닌 아이템이었다. 한파의 단검과 같이 일정 확률에 의존하지만 터지기만 하면 커다란 힘을 발휘하는 것들. 영민은 특히 장신구류에 잘 붙는 것으로 알려진 확률성 능력들을 떠올렸다.
“시작은 이거다. 연쇄의 귀걸이 나와라, 뚝딱!”
퍼엉!
“아··.”
틀렸다. 애초에 귀걸이가 아니었다. 어떤 아이템인지 확인도 하지 않았다. 대신 다른 도깨비 방망이를 집어 같은 작업을 반복했다.
퍼엉!
퍼엉!
퍼어엉!
두 번째도, 세 번째도 실패였다. 하지만 개의치 않았다. 어차피 딱 하나만 걸리면 되니까. 네 번째, 다섯 번째, 열 번째. 실패가 거듭될수록 마음이 조급해졌다. 간절함이 더해졌다.
“연쇄의 귀걸이 제발 좀 나와라, 뚝딱!”
퍼엉!
“아싸!”
열 한번 째에 드디어 터졌다. 귀걸이의 외형도, 내뿜는 빛도 강태성이 알고 있는 바로 그것이었다.
[연쇄의 귀걸이][레어]
자린고비 팔로만이 애지중지했던 귀걸이. 일정 확률로 조금 전 자신이 사용한 능력을 조건 없이 반복할 수 있다.
- 스킬 사용 시 3% 확률로 [연쇄] 발동
- 연쇄 발동 시 10초 안에 동일한 스킬 재사용 가능
- 연쇄 발동 스킬은 재사용 대기 없이 사용 가능
- 연쇄 발동 스킬은 마나 소모 없이 사용 가능
3%라는 낮은 확률이지만 마나 소비 없이, 재사용 대기시간 없이 자신의 스킬을 복사해 사용 할 수 있게 해주는 장신구. 남들에게는 계륵 같은 아이템일지 몰라도 영민에게 만큼은 꿀 아이템이었다.
원하던 것을 손에 넣은 영민은 즉시 착용했다. 평소 귀를 뚫고 다니지도 않았건만, 게이머로서 착용하니 저절로 귀에 고정이 됐다.
“그럼 계속해볼까? 여신의 눈물 나와라 뚝딱!”
입이 함지막하게 벌어진 영민은 신이나서 다음 도깨비 방망이를 들었다. 생각해둔 다른 장신구의 이름을 외치며 힘껏 땅에 내리쳤다.
31개나 되는 도깨비 방망이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데 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대신 영민은 고대하던 아이템 2개를 더 얻었다.
[여신의 눈물][레어]
물방울 모양을 한 푸른 보석이 박힌 목걸이. 여신의 눈물을 떠올리며 만들었다고 전해지는 이 목걸이는 착용자의 상처를 보듬어준다.
- 상처를 입을 시 1분 이내 지혈 효과
- 체력 재생력 100% 증가
- 1% 확률로 [여신의 축복] 발동
- 여신의 축복 발동 시 모든 체력과 마나, 상태이상 회복
- 여신의 축복 재사용 시간 : 48시간
[망가진 괴력의 반지][레어]
강대한 힘을 갖게 만들어주는 반지. 그러나 어딘가 망가진 것처럼 보인다. 능력이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을 수 있다.
- 착용시 힘 + 5
- 공격 시 3% 확률로 [괴력] 발동
- 괴력 발동 시 10분간 힘 + 50
- 괴력 재사용 시간 : 10분
두 가지 모두 낮은 확률의 특수 능력을 지닌, 어딘지 어정쩡한 장신구였다. 하지만 행운 수치가 Max인 자신이 쓰면 어떨까?
망가진 괴력의 반지는 일발역전의 기회를 만들어 줄 것이고, 여신의 눈물은 구사일생의 기회를 제공해 줄 것이다.
영민은 만족스럽게 도깨비 방망이의 잔해들을 치웠다. 원하는 것이 나오지 않았을 뿐이지, 꽝으로 나온 것들도 나쁘지 않았다. 값이 나가는 종류인 장비류 아이템도 많았고, 체력 포션과 마나 포션도 일부 나와 인벤토리에 챙겨두었다. 스텟 캔디 두 알은 바로 까먹었다.
“코인 상점 오픈.”
각종 장비류며 잡템들은 모조리 팔아 코인을 챙겼다. 도깨비들을 상대하며 얻은 코인과 드랍템을 판매해 얻은 코인까지 합치니 벌써 다시 1만 코인 가량이 모였다.
가장 낮은 등급의 스킬을 구매하면 6개나 구매 할 수 있는 금액이지만 영민은 꾹 참았다.
사실 스킬보다 손가락을 근질거리게 만드는 것이 있기는 했다. 바로 코인 상점과 함께 제한 해제 된 ‘탈 것’. 테이밍의 형태도 아니고 언제든 그 자리에 소환하고 해제 시킬 수 있는 탈 것 창이 반짝반짝 그를 유혹하고 있었다.
“으으으으.”
영민은 그 유혹을 정말 간신히 참았다. 강태성의 기억이 코인을 더 모아야 한다고 강하게 외치지 않았다면 아마 질러도 진작에 질렀을 것이다. 단순히 탈 것 기능이 있는 5천 코인의 탈 것보다는 부지런히 모아 2만 코인짜리를 한 방에 질러야만 의미가 있다는 것을 몇 번이나 되새기며 코인 상점을 닫았다.
대신 잡념을 떨치기 위해 모아온 채집물을 꺼내놓고 조합의 큐브를 신나게 흔들어 댔다. 다시 노가다 타임이다.
* * * * *
노가다 덕분에 연금술과 대장술의 숙련도가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음을 확인한 영민이 만족한 미소를 지으며 태블릿을 만질 때였다.
다음 던전은 어디로 할까 확인하려고 접속한 헌터넷에 올라온 기사에 댓글이 수천 개가 달린 것을 보고 멈칫 시선을 빼앗겼다.
“····어?”
이게 뭐지? 이런 내용의 사건이 있었던가?
자신과는 관계없는, 별 것 아니라면 아닌 기사였지만 강태성의 기억에서 찾을 수 없는 이슈에 묘한 끌림을 느꼈다.
기사의 제목은 [바람의 거신, 쓰러지다.]
터치해 들어가 보니 아리랑 길드의 이야기였다. 바람의 거신은 6등급 던전 바람의 언덕에 출현하는 몬스터였다. 폭주하는 바람의 정령처럼 거친 칼날 바람으로 전신을 감싼 10미터 신장의 거인. 그리고 그를 보호하듯 주변을 맴도는 하피들은 헌터들 사이에서도 공포로 불리던 것인데 몇 번의 시도 끝에도 쓰러뜨리지 못하던 녀석을 대뜸 아리랑 길드가 쓰러뜨렸다는 것이다.
강태성의 기억 속에도 없는 놀라운 이야기였다.
‘바람의 거신이 쓰러지려면 일이년 쯤 더 있어야 할텐데··.’
심지어, 바람의 거신을 쓰러뜨리는 것은 아리랑 길드가 아니었다.
“설마, 나 때문인가?”
뭐지? 무엇 때문이지? 스크롤을 내려 기사를 한참 읽던 영민이 움찔 몸을 떨었다. 공략 포인트를 묻는 인터뷰에서 ‘탱킹이 가능해졌다.’고 답한 아리랑 길드의 간부의 말에서 깨달은 바가 있는 것이다. 그 방법에 대해서는 비밀이라며 말하지 않았지만 영민은 알 것 같았다.
“윈드 엘리멘탈··.”
그 방법이 혹시 윈드 엘리멘탈인 것은 아닐까? 본래는 바람의 거신의 공격을 받아낼 자신이 없어 공략을 포기했던 아리랑 길드가 느닷없이 놈을 해치워버린 것은, 에픽 등급의 아이템인 윈드 엘리멘탈을 얻었기 때문인 것은 아닐까?
영민의 표정이 무겁게 변하고 신음 같은 한마디가 흘러나왔다.
“미래가 변했다.”
영민의 마음이 급해졌다.
< 33화 - 변화 (1) [유료 연재 시작 편] > 끝
ⓒ 갈드